LIFE

모든 러너는 전혀 괜찮지 않다

러닝이 모든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되는 운동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 중독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40대 중년 남성의 이야기.

프로필 by 박세회 2026.09.10

꽤 긴 스페인 출장을 앞둔 날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짐을 싸고 여권을 챙겼을 것이다. 나는 20km LSD(Long Slow Distance)를 뛰러 나갔다. 그 전날에도 15km를 뛰었지만 한 번 더 뛰어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출장 가면 못 뛸 테니까. 러닝복은 챙겨 가지만 혹시 바빠서 못 뛸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마일리지가 비니까. 내 구멍 난 마일리지는 아무도 채워주지 않으니까. 조상님이 음덕을 내려 주실 순 있지만 마일리지를 채워주진 않으니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도 내 마일리지를 채워주진 못하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한국에는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라면 나를 이해할 것이다. 러너에게 이건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우리 집은 안국역 인근. 삼일대로를 타고 청계천으로 쭉 내려가 동대문 쪽으로 뛰다가 성북천 합류부에서 성북천을 타고 북쪽으로 쭉 올라가 성북천 분수광장에서 되돌아오면 기막히게 딱 20km다. 돌아오는 길에 탑골공원 앞을 지날 때였다. 왼발 앞쪽에서 뭔가 “툭” 하고 터졌다. 그건 소리라기보다 감각이었다. 처음엔 돌을 밟은 줄 알았다. 아니면 신발에 뭐가 들어갔거나. 다음 착지에서 알았다. 바늘로 혈자리를 쑤시는 듯한 통증이 발바닥에 번졌다. 이런 종류의 통증은 돌멩이가 만들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안 사실이지만, 둘째 발가락이 앞꿈치와 붙는 중족지관절의 관절낭이 터진 거였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발가락 밑에서 피카추가 최대 전력으로 내 속살을 지지는 느낌? 혹은 신발 밑창과 발바닥 사이에 유리 파편을 깔아놓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나는 파고다 공원 앞에서 택시를 잡지 않았다. 워치를 멈추지도 않았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20km는 채워야지.” 이게 대학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의 뇌로 할 생각인가? 문과라 그런가?

참고로 나는 잘 뛰는 러너가 아니다. 10km를 30분대에 주파하는, 호리호리 길쭉하고 멋있는 마른 근육의 검은 피부 멋쟁이 러너들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보통의 아저씨. 일주일에 세 번쯤 술을 마시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해본 한국어 문장이 “여기 오백 한 잔 추가요”인 한국의 중년 남성이다. 이런 아저씨가 머리까지 나쁘면 더 괴로운 법이다.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그 전 해엔 장경인대였다. 골드코스트라는 도시 관광청의 초청으로 기사를 쓰기 위해 하프 마라톤을 뛰러 갔었다. 인생 최고 기록으로 하프 마라톤을 마치고는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회복 러닝을 해야 한다며 같이 뛴 20대 친구들과 5km를 더 뛰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도 자신이 20대인 줄 안다. 평생 자신이 애기인 줄 착각해, 주인에게 펄쩍 뛰어 안긴다는 거대 골댕이들을 욕할 처지가 아니다.

다음 날 아침, 무릎 바깥쪽, 손가락 하나 폭의 어떤 지점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엔 아프지 않다가 계단을 내려가거나 달리기라도 할라치면, 누가 관절을 커터칼 끝으로 슬근슬근, 세게도 아니고 딱 거슬릴 정도로 긁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건 괜찮은데 내려가는 게 안 된다는 점이 특히나 큰 좌절이었다. 얼마 전에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전에 뛰었던 마라톤 대회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다 큰 아저씨들이 게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모습 말이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매일 밤 거실 바닥에 누워서 TV를 보며 폼롤러를 탄다. 쿠팡플레이에 올라와 있는 HBO의 명작 <인더스트리>를 보면서 허벅지 바깥쪽을 쭉쭉 민다. 가끔은 신음을 하고 가끔은 소리도 지른다. 아내는 처음엔 애처로워했지만, 이제는 내가 폼롤러에 올라가기 시작하면 드라마 볼륨을 올리고 고개를 돌린다.

가장 최근에 뛴 마라톤에서도 나는 멀쩡하지 않았다. 38km 지점에서 종아리에 쥐가 왔다. 한쪽도 아니고 양쪽이 동시에. 근육이 내 허락 없이 돌덩이가 되는 그 느낌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도로 한복판에서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화를 냈다. 왜 너는 돈까지 내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이 고통을 받으며 아스팔트를 달리고 있나. 그 순간의 분노는 러닝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를 향한 것이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폼롤러에 엉덩이를 올리고 씰룩거리며 아내의 눈을 테러한 시간을 생각하면, 집에 가서 “포기했어”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주법을 발명했다. 두 다리를 거의 수직으로 지면에 꽂아서, 착지할 때마다 종아리가 강제로 스트레칭 되게 하는 주법. 머릿속으로는 계속 ‘쥐야 풀려라, 제발, 제발’ 주문을 외웠다. 뒤에서 보면 사람이 아니라 고장 난 로봇이 걷는 모습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남은 4km를 기어갔고, 완주했고, 메달을 받았고, 이틀 동안 계단을 게걸음으로 내려갔다.

러너는 괜찮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얼마 전 후배가 물었다. ”러닝은 건강한 운동이라는데, 제 주변 러너들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러닝 정말 괜찮은 운동 맞나요?” 맞다. 그가 맞다. 러닝은 괜찮지 않다. 러닝은 사람을 좀먹는다. 러닝은 당신의 머리를 나쁘게 하고, 러닝은 당신을 운동 의존적으로 만들며, 러닝은 당신이 늘 뛸 시간이 없다는 강박에 휩싸여 불안하도록 만든다. 러닝이 괜찮은 건 정형외과 의사뿐이다.

지금도 전에 관절낭이 터졌던 둘째 발가락이 퉁퉁 부어 있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적당히 뛰면 나아요.” 나는 그렇게 많이 안 뛰는데. 진짜 내 주변에 있는 미친 사람들처럼 뛰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만 그러시지? “진짜 다 필요 없고, 풀코스 마라톤은 제발 일 년에 한 번만 하세요.” 나는 진료실에서 깊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오자마자 봄 대회와 가을 대회를 검색한다. 아무리 못해도 두 번은 해야지. 봄만 뛰면 그게 무슨 사계절입니까? 가을엔 그럼 누가 뛰나요! 선생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러너의 몸은 정말 하나도 괜찮지 않다. 우리는 소염제와 테이핑과 폼롤러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겨우 붙여 놓고 도로로 나간다. 아무 데도 안 아픈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다. 있다면 그건 아직 훈련량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괜찮다. 이상한 일이 있다. 이렇게 온몸이 골고루 아픈데, 건강검진 결과지는 매년 지루할 만큼 깨끗하다. 발가락은 터졌는데 혈압은 멀쩡하고, 무릎은 늘 아프지만 피는 깨끗하다.

러너들이 강박적으로 들여다보는 숫자가 하나 있다. VO2max. 요즘엔 스마트 워치들이 알아서 다 계산까지 해주는 최대산소섭취량이다. 이게 48에서 49로 올라간 날,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 화면을 캡처해서 친구에게 보낸다. 친구는 답이 없다. 상관없다. 나만 알면 되지 뭐.

최근 이 숫자의 위상이 전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이 수치가 높으면 그냥 ‘잘 뛰는 사람,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힘든 고강도 운동을 잘 견디는 사람’ 정도로 여겨졌다. 지금은 다르다. 심폐체력(cardiorespiratory fitness)이 심혈관질환과 사망률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 중 하나라는 연구들이 쌓이고 있다. 2018년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12만 명 넘는 사람들의 운동부하검사 데이터를 추적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심폐체력 최하위군의 사망 위험은 최상위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 격차는 흡연, 당뇨, 관상동맥질환 같은 전통적인 위험 인자의 격차보다도 컸다. 요약하면 이렇다. 심폐체력이 낮은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위험하다.

여기서 사람들이 흔히 오해한다. VO2max를 올리면 건강해진다고 읽는 것이다. 그건 인과를 거꾸로 잡은 것이다. VO2max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VO2max는 심박출량(연료 펌프의 세기)과 동정맥 산소차(최대 연료 사용량)의 곱이다. 더 쉽게 말해, 코로 들어온 산소가 폐를 지나 혈액을 타고 근육 미토콘드리아까지 도달해 실제로 우리의 생명 유지와 운동을 위해 연소하는, 그 긴 사슬 전체의 최종 성적표다. 이 사슬에는 참여자가 아주 많다. 폐포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교환되는지, 혈액 중에 산소를 실어 나르는 헤모글로빈 농도와 총 혈장량은 충분한지, 좌심실이 한 번 수축할 때 밀어내는 피의 양은 얼마나 많은지, 혈관은 얼마나 유연하게 벌어지는지, 근육 안에 모세혈관은 얼마나 밀도 있게 분포되어 있는지 등등. 이 수많은 요소가 VO2max라는 최종 성적표를 결정한다. 이 중 하나만 삐끗해도 숫자는 오르지 않는다. 혈압, 인지질량, 혈관경직도 등등이 한 과목의 점수인 시험의 전 과목 총점인 셈이다. 달리는 기계로서의 내가 느끼기엔 정말 그렇다.(물론 기계처럼 잘 달린다는 말은 절대 아님.) 그러니 어쩌면 이 숫자가 높은 사람에게 심혈관 사고가 적게 일어나는 건 예측이라고까지 예기할 것도 없다. 늙으면 죽고, 총점이 높은 학생은 특정 과목에서 낙제할 확률이 낮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대략 이렇다. 우리는 가끔 연골, 힘줄, 인대, 관절낭, 발톱을 부수고, 심장과 혈관과 폐를 만든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육참골단)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우리는 뼈를 주고 심장을 얻는다. 이게 멍청한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문과라서.

달리는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은, 모두 다 맞는 말이다. 마라톤이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말은 옳다. 인간의 몸은 42.195km를 3시간대에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적어도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하루에 한 2000보쯤 걷고, 12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역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충분히 알고 있다. 이건 중독이 맞다. 애시당초 나라는 인간은 워낙 중독에 약하다. 러닝에만 중독된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래 늘 무언가에 기대 사는 정말 하찮고 나약한 인간이었다. 술에 기대고, 사랑에 기대고, 치킨에 기대고, 야채곱창에 기대고. 너무 많은 것들이 주는 온갖 쾌락에 매달려서 겨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딘가에 중독되어야 한다면, 그래도 러닝이 낫지 않을까? 값이 싸고, 시간도 적게 들고, 덜 부끄럽다. 나이가 들어 와인이라도 마시면 최소 10만원이고, 취하려면 5시간은 들여야 하고, 다음 날 일어나 보면 늘 부끄럽다. 그리고 심지어 나의 중독은 세상의 다른 훌륭한 러너들에 비하면 아주 약하다. 선수도 아닌데 한 달에 400km를 뛰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렸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그건 너무 심한 중독이니까. 제발 좀 적당히 뛰세요.


박세회는 <에스콰이어>의 피처 디렉터로 와인, 위스키, 다이닝, 현대미술 분야를 취재하고 글을 쓴다. 2019년 <부자를 체험하는 비용>으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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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박세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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