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부활
극장이 망했다고 몇 번이나 예언했건만, 이렇게 호기롭게 부활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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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망했다. 극장 산업이 종말을 맞이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2025년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극장에 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2025년의 문제는 박스오피스가 증명했다. 그해 최고 흥행작은 미국과 한국 동일하게 <주토피아 2>였다. <주토피아> 전작은 큰 성공작이었다. 속편도 당연히 잘될 거라 모두가 예상했다. 한 해를 결산하는 박스오피스 1위를 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미국, 한국 공히 1위를 차지할 만한 영화는 더욱 아니었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 개봉한 <주토피아>(2016)는 전 세계 10억 달러 수익을 넘긴 대형 히트작이다. 2편은 전 세계 14억 달러를 넘겼다. 영화는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면 영화 역사의 신전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지금 개봉 중인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와 <오디세이>처럼 말이다. 문제는 성적이 아니다. <주토피아>라는 IP다. 이 시리즈는 디즈니의 주력은 아니다. 누구도 속편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북미에서만 4억3000만 달러 수익, 한국에서만 770만 관객을 기록한 것은 예상 밖의 결과였다. 독자 여러분 중 2025년 최고의 흥행 성공작이 <주토피아 2>라는 걸 기억하는 분 계신가? 나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몰랐다. 여러분도 몰랐을 것이다.
2025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는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흐리멍덩했다.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영화는 <주토피아 2> <마인크래프트 무비> <릴로 & 스티치> <아바타 : 불의 재>, <슈퍼맨>이었다. 한국 박스오피스는 <주토피아 2>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 <좀비딸> <F1 더 무비> <아바타 : 불의 재>다. 미국 1~5위의 평균은 4억 달러 정도다. 한국은 500만 정도다. 모두가 그해 내내 이야기할 만한 영화는 없었다. 2025년의 가장 큰 성공작은 극장이 아니라 안방에서 나왔다.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이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극장이 추락하고 OTT가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 증거였다.
넷플릭스는 원래 잘되고 있지 않았냐고? 아니다. 넷플릭스는 시리즈로 세상을 정복했다. 영화는 아니었다. 넷플릭스는 내내 할리우드와 맞먹는 예산을 오리지널 영화에 투자했다. 거의 모조리 실패했다. 영화계는 안심했다. 아직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충무로가 만든 대작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희망을 무너뜨렸다. <주토피아 2>의 박스오피스 1위는 그러므로 할리우드의 실패였다. 영화의 실패였다. 미국은 유니버설과 파라마운트가 합병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국은 메가박스와 롯데가 합병한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극장 산업은 붕괴 직전이었다.
2026년은 영화가, 아니 극장이 컴백한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2025년 상반기와 2026년 상반기를 비교해보자. 2025년 상반기 미국 박스오피스는 모두 59억 달러를 벌었다. 올해 상반기는 72억 달러다. 2025년 상반기 한국 극장 관객 수는 4250만 명이었다. 올해는 5705만 명이다. 2024년보다 14%나 관객이 감소한 2025년의 악몽은 일단 멈췄다. 심지어 2026년 상반기 한국 극장 매출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이다. 회복의 신호다. 물론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2025년 극장가의 박동이 지나치게 떨어진 탓에 2026년 극장가가 호황으로 보이는 걸 수도 있다. 상대평가에서 앞선 것이다. 절대평가에서 완전히 앞섰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이건 좋은 신호다. 올해 극장가는 바글바글하다. 사람들은 극장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서로 묻는다. 요즘 극장에 가본 독자라면 호황의 맛을 충분히 봤을 것이다. 작년 한 번도 극장에 가지 않았던 독자들도 올해는 굳이 극장으로 갔다.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압도적인 몇 편의 성공작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와 마블의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는 전 세계 10억 달러를 오래전에 넘어섰다. 아직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오디세이>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심지어 ‘암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암표라는 단어를 여러분은 언제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들어보셨나? 나는 <사랑과 영혼>(1990) 개봉 시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 같다.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역시 천만을 돌파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에는 <어벤져스 : 둠스데이>도 개봉한다. 이게 천만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적다. 지난 10년간 처절하게 망했던 마블마저 부활의 노래를 쓰고 있다.
한국영화는 아직도 불황 아니냐고? 2026년을 한국영화 불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왕과 사는 남자>다. 이건 생각보다 굉장한 신호다.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끄는 건 무엇인가. 입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입소문을 타고 천만을 넘어간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2025년 가장 입소문을 탄 <좀비딸>도 500만 관객 정도를 기록했을 뿐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세 배에 가까운 1600만 관객을 극장에 끌어들였다. 한국영화의 전통적 강자인 사극 장르가 아직 죽지 않았고, 입소문이라는 한국영화의 전통적 마케팅도 죽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는 연상호의 <군체>와 나홍진의 <호프>가 각각 600만과 45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 아니냐고? 지난 몇 년간 한국 중견 감독들의 영화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얻었는지 떠올려보시라. 두 영화는 실패라고 할 수 없다. <호프>는 시작부터 전 세계 시장을 노린 국제적 블록버스터로 기획된 영화다. <기생충> 이후 북미에서 와이드 릴리즈되는 첫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이 모델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450만도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다.
2026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다시 정리해보자. 흥행의 신전에 입성할 자격을 얻는 10억 달러 이상 수익을 거둔 영화가 무려 5편이 넘는다.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오디세이> <토이 스토리 5>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 <마이클>이다. <프로젝트 헤일 메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지금 한국에서도 개봉 중인 초저예산 호러영화 <옵세션> 등도 못지않은 성공을 거뒀다. 미국 극장가는 여름 시장에서만 46억 달러를 벌었다.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심지어 반등 폭이 미국보다 크다. 올해는 상반기만 따져도 2025년보다 34.2%나 높다. 매출로 따지자면 41.9%나 상승했다.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로만 따지자면 더 긍정적이다. 2026년 상반기 한국영화 매출은 팬데믹 이전 수준의 94.2%까지 회복했다. 2025년이 극장 산업이 이대로 쪼그라들어 사라질 거라는 공포가 실현된 해였다면, 2026년은 그 공포가 필연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해다.
물론이다.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가 없었더라면 한국도 미국도 세계도 2025년의 악몽을 계속 꿨을 수도 있다. 극장이 부활한 게 아니라 2025년이 워낙 나빴던 탓에 나타난 기저효과일 수도 있다. 2027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희망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극장에 어쨌든 다시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객이 극장을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관객은 볼 만한 영화가 있으면 언제든 극장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 바뀐 게 있다면, 이제 관객은 아무 생각 없이 극장에 놀러 갔다가 개봉하는 영화 중 아무거나 선택해서 보는 습관을 버렸다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생긴 이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2026년은 이 습관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사실 관객은 영화를 버린 적이 없다. 극장을 잠시 버렸을 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증거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영화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썼다. 극장의 종말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정정한다. 아니다. 지금까지 누적 6억 뷰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거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넷플릭스 영화지만 결국은 영화다. 서류상 2025년 박스오피스 1위는 <주토피아 2>지만 실질적 1위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그것이 개봉한 플랫폼이 극장이 아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영화가 싫어진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다는 걸 받아들였을 뿐이다. 관객들은 안방이든 극장이든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본다. 2025년에는 넷플릭스로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고, 2026년에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박스오피스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꿀 시기에 도달한 걸지도 모른다. 2025년과 2026년이 주는 교훈은 하나다. 박스오피스가 영화의 대중적 크기를 측정하는 유일한 도구이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극장은 잠깐 죽었다. 영화는 계속 살아 있었다. 살아 있는 영화는 다시 돌아와 극장을 살린다. 그러니 이창동이 투자를 받지 못해 넷플릭스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탄하는 건 헛되다. 그는 그저 영화를 만든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창동 신작 <가능한 사랑>을 극장에서 개봉한 뒤 넷플릭스로 공개할 예정이다. 극장과 안방이 호흡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영화와 극장 산업의 새로운 오디세이를 목격하고 있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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