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다무 세대의 음주가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20대가 2차 대신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로 흩어지는 '올다무 세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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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술자리에 가면 술이 줄지 않는다. 많이 시켜서가 아니다. 넷이 둘러앉아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두 시간이 지나도 반 병이 남는다. 한 명은 하이볼을, 한 명은 제로 콜라를 시킨 탓이다. 남은 한 명은 홀짝이며 눈치를 보다가, 이윽고 요즘 술을 잘 못하니 그만 마시겠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요즘 만나는 또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기가 술이 약하다고 선언한다. 통계도 이들 편이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절반이 넘는 56%가 술을 거의 안 마시거나 한 달에 한 번 이하로만 입을 댄다고 한다. 술 안 마시는 비율로는 역대 최고치란다.
그렇게 싱겁게 잔을 비우고, 여덟 시 반쯤이면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호프집에 2차를 마시러 우르르 몰려가는 대신 근처 무인 포토부스로 향하는 것이 요즘의 수순이다. 좁은 기계 안에 얼굴을 구겨 넣고, 방금까지 멀쩡하게 굴던 성인들이 일제히 손가락 하트를 만든다. 맨정신으로 하기엔 어쩐지 조금 낯부끄러운 일이지만, 네 컷이 인화되어 나오면 그걸로 하루의 마무리다. 각자 한 장씩 공평하게 나눠 갖고 밖으로 나선다.
돌아서는 길, 누군가가 슬쩍 선수를 친다. “나 가는 길에 올리브영 좀 들렀다 갈게.” 눈치 빠른 내향인들은 안다. 저건 진짜 뭘 사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먼저들 가라는 정중한 해산 권고이자 혼자만의 쉼터로 도피하겠다는 선언이라는 것을. 만약 눈치 없는 누군가가 “어, 나도 살 거 있는데 잘됐다. 같이 가자!”라고 외치면 그때부터 작은 비극이 시작된다. 다들 어떻게든 깔끔하게 흩어질 핑계를 찾는다.
나로 말하자면 올리브영에는 잘 가지 않는다. 대신 다이소에 간다. 술자리 끝에 다이소에 들르는 건 어느새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딱히 당장 필요한 건 없지만 무언가 사고는 싶고, 돈은 쓰고 싶은데 많이는 쓰고 싶지 않은 묘한 허기. 그 상태로 매대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과연 그동안 없이도 잘 살아온 자잘한 물건들이 하나둘 눈에 밟힌다. 그날도 나는 결국 양손 가득 뭔가를 집어 들고 나왔다.
일상에서 다이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한 친구는 최근 이사를 하며 다이소와 올리브영이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는 동네인지를 가장 먼저 따졌다고 했다. 그쯤 돼야 밤길도 덜 무섭고 유동 인구가 있어 사람 사는 동네 같다는 것이다. 이제 그 매장들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청년들의 필수 인프라이자 치안의 지표다. 올리브영에서 쉬고, 다이소에서 사고, 무신사에서 입는다고 해서 이른바 ‘올다무’라 부른다. 트렌드 분석가들은 그 세 글자를 묶어다 요즘 청년 세대의 소비 지형이라 부르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름하여 올다무 세대.
어른들은 이 낯선 풍경을 보며 혀를 찬다. 요즘 애들은 낭만이 없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 기껏해야 그런 곳이나 맴돈다고 말이다. 소득은 마땅찮은데, 술값과 안줏값은 갈수록 비싸지고 있으니, 반쯤은 맞는 말이다. 실제로 20대 남성의 고위험 음주는 10년 새 40% 넘게 줄었고, 한 은행의 카드 결제 데이터를 보면 20대의 주점 소비가 1년 만에 20% 넘게 증발했다. 주류업계와 호프집 사장님들이 한숨을 쉴 만도 하다.
하지만 지갑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주점에서 긁는 카드는 줄었어도 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가 작년 한 해 올린 매출만 합쳐서 무려 11조 8400억원에 달한다. 물론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이 대기업 유통 공룡의 매출로 넘어가는 거창한 사정까지 짚으려는 건 아니다.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의 성격이 변했다는 뜻이다. 돈이 없어서 못 노는 게 아니라, 노는 방식의 패러다임이 통째로 옮겨간 셈이다.
생각해보면 원래 음주가무란 일종의 묶음 상품이었다. 1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2차에서 맥주를 마시고, 3차에서 노래방에 가고, 4차에서 해장국을 먹는 코스. 그 긴 코스를 하나로 이어 붙이던 접착제가 바로 취기였다. 요즘도 밤샘은 덜할지언정 그들만의 코스는 여전히 건재한 모양이다. 듣기로는 평양냉면집에 비싼 와인을 싸 들고 가 선주후면(先酒後麵, 술을 먼저 마시고 면을 먹음)의 예절을 따지는 4050 미식가들도 있다지 않나. 어른들에게 술은 하룻밤을 관통하는 서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취기가 접착제이던 시절, 사람들은 그 취기 속에서 서로에게 집요하게 폐를 끼치곤 했다. 친하지도 않은 이들끼리 모여 앉아 상사 앞에서 혀 꼬인 실언을 뱉고, 다음 날 아침이면 이불을 걷어차며 흑역사를 복기하고, 동료들의 짓궂은 피드백을 꾸역꾸역 감내해야 했다. 그 끔찍한 쪽팔림을 통과하는 과정은 잔인했을 테지만, 멀쩡한 척 폼 잡던 저 사람도 실은 나만큼이나 볼품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생기는 기묘한 유대감, 타인의 추태를 능구렁이처럼 눙치고 넘기는 관용과 눈치 역시 그렇게 몸으로 굴러가며 체득되었을 것이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책이나 유튜브 쇼츠 따위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어달라. 내가 시도해봤다.)
이제 그 묶음 상품은 철저히 낱개로 쪼개져 팔린다. 음(飮)은 하이볼 한 잔으로. 취하려는 게 아니라 분위기만 내려는 거라 한두 잔, 혹은 논알코올 맥주면 족하다. 그마저도 여러 캔 마실 바에는 아예 13도짜리 고도수 캔맥주 하나를 사서 가성비 있게 취기를 농축해버리기도 한다. 알코올마저 철저히 계량해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다. 팬데믹 때 반짝했던 바(Bar) 투어나 홈텐딩 유행도 마찬가지다. 비싼 바에 가자니 지갑이 얇고, 집에서 혼자 마시자니 만날 사람이 없어 흥이 안 난다. 결국 높아진 안목은 사케나 편의점 캔 하이볼로 적당히 타협점을 찾으며 식어버렸다.
가(歌)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놀랍게도 노래방 결제의 절반 이상이 아직 20대다. 다만 우르르 2차로 몰려가는 대신 맨정신으로 코인 노래방을 찾을 뿐이다. 무(舞)는 클럽 대신 러닝 혹은 유사한 유산소운동으로 대체되었다. 한강에 나가보면 수많은 20대가 뛰고 있다. 20대의 수영장 결제가 1년 새 60%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뛰고 있으니 술에 취해 춤추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다. 그러니 재미없는 세대라는 말은 어쩐지 조금 억울하다. 우리도 충분히 논다. 다만 한 품목씩 알뜰하게 소비할 뿐이다.
그렇다면 묶음 상품이 어쩌다 낱개가 되었을까. 추측해보자면 요즘 사람 사이가 좀처럼 두꺼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몫했을 것이다. 선을 조금만 넘어도 가차 없이 연이 끊기고, 사소한 실수 하나가 영구히 박제되는 시대다. 폐를 끼쳐도 눙쳐줄 사이가 아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내일 아무렇지 않게 마주칠 자신이 없다. 취한다는 건 결국 제 밑바닥과 통제력을 타인에게 맡기는 일인데, 안전하게 받아줄 사람이 없는데 무장을 해제할 리 만무하다. 술이 약하다는 친구들의 고백은, 실은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취기라는 리스크를 감당해본 적이 없다는 뜻, 즉 ‘안 마셔본’ 쪽에 가깝다. 취하는 연습을 할 자리가 없으니 허들만 자꾸 높아지고, 조금만 발그레해져도 큰일이 난 듯 군다.
함께 망가지는 자리가 사라진 시대, 다들 각자 혼자 정비하는 법을 택했다. 술자리가 서로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야만의 공간이었다면, 올다무는 저마다의 흠결을 보수하고 관리하는 문명의 공간이다. 앞서 언급한 친구는 올리브영에서 식사 대용 단백질 셰이크를 박스째 사 오더니, 며칠 뒤 성분표를 다시 뜯어보고는 단백질에도 급이 있다며 기어이 농축유청단백 함량이 더 높은 다른 제품으로 갈아탔다. 그 꼼꼼함이란. 일상적으로 혈당 스파이크를 경계하고, 건강검진을 받으며 즐거움조차 철저히 통제하려 든다.
반면 다이소에 가는 나는 굳이 성분을 따지지 않고 팍팍 집는다. 어차피 몇천 원이니까. 얼마 전에는 SNS를 타고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5000원짜리 스킨팩을 어느 친구가 집들이 선물이라며 머릿수대로 사 들고 온 적도 있다. 술자리에서의 실수처럼 평생 놀림감이 될 일도 없고, 실패해봐야 5000원짜리 해프닝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치명적인 밑바닥을 들키는 리스크를 감내하는 대신, 철저히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소분된 실패를 구매하는 셈이다.
사람을 만나는 자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취미로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한 친구는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일 당장 안 만나도 상관없는, 쉽게 의지할 수도 없고 의지해서도 안 되는 관계’라고. 그런데도 일상을 누군가와 나누는 그 과정 자체가 필요해서 굳이 모임에 나간다고 했다. 관계가 지속되지 않더라도 매주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고, 신상을 깊이 밝히지 않고도 적당히 떠들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취하지 않으니 추태를 부릴 일도 없고, 관계가 얕으니 상처 받을 일도 없다. 참 깔끔하다. 덤이 없어서.
집에 도착하니 아홉 시 사십칠 분. 다이소에서 사 온 1000원짜리 커튼봉 집게를 창틀에 고정한다. 다이소몰 앱으로 규격에 맞는지 미리 꼼꼼하게 확인까지 하고 간 터라, 과연 오차 없이 꼭 맞았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 없이 무사히 귀가했고, 내일 아침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할 일도 없다. 개운하다. 그리고 조금은, 쓸쓸하다. 다이소는 과연 필요한 건 다 있는 가게라지만, 인생을 정비하는 데 필요 없는 우정이나 효율적이지 못한 낭만을 팔지는 않는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매대를 샅샅이 뒤져봤는데, 끝내 없었다.
장민욱은 사회학을 공부하고 글을 쓴다. 세상과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단기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을 전전하며 만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동시대 청년들의 내밀한 여정에 관심을 가진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장민욱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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