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일과 말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박원순을 따라다니며 일을 구경하고 인터뷰를 나눴다. | 박원순,서울시장

서울시청 근처 중국집 만복림에 가는 길에서 박원순이 먼저 말을 걸었다.“시장 일 하는 거 보니까 어때 보입니까?”먼저 물어볼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게 솔직하게 말해버렸다.“저라면 안 할 것 같은데요.”박원순이 허허 웃었다.“그래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보람 있고.”는 정치나 시사 전문 잡지가 아니다. 정치인 박원순의 향후 행보가 어떨지, 지방선거에 나갈지 말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이런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 게 궁금하다면 정치를 전문으로 다루는 시사 잡지를 보면 된다.가 집중한 건 박원순의 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얼마나 바쁜지. 일을 대하는 자세와 일할 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어떤지. 가 시사지는 아니지만 서머셋 모옴의 단편처럼 때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본 아주 작은 단초가 그 사람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 박원순 기사를 만든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그래서 서울시청에 취재를 제안했다. 인터뷰도 인터뷰지만 1000만 명이 사는 서울특별시의 시장이 하는 일 자체를 보고 싶다고. 사진가가 함께하든 에디터가 따라붙든, 일정을 옆에서 할 수 있는 한 바짝 따라다니고 싶다고. 서울시가 우리의 의도를 받아들여 허락해 주었다. 이례적일 정도로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특별 대우였다. 함께하는 일정은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오전 8시 40분부터였다.목요일, 시장은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탔다차가 조금 막혀서 오전 9시에 도착했다. 처음 만난 박원순은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그날 밤에 방송 촬영이 있었는데 방송 직전엔 시간이 없어서 아침부터 메이크업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듣기만 해도 바쁜 일정이었다. 오전 보고가 이미 끝났고 메이크업이 끝나면 학생들을 만날 일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청을 견학 온 서울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이때도 그렇고, 박원순은 젊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 더 신나 보였다. 이게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박원순과 대화가 더 잘 통하는 사람은 젊은 사람 같았다.박원순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만나고서는 다음 일정 장소로 향했다. 환경미화원으로 불리는 서울시조합원노조의 정례 체육대회 행사장이었다. 박원순은 겉에서 보기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구형 미니밴을 탔다. 보안 문제 때문에 밝힐 수는 없지만 색도 무척 흔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처럼, 가장 흔한 설정이 가장 확실한 보안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서울시청부터 KBS 등촌체육관까지는 차가 막히지 않았다.박원순은 여기서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아내 다음으로 박원순이 좋다”, “원순이 사랑한다”라고 쓰인 현수막들이 보였다. 다만 시간 계산에 문제가 있었다. 이날 박원순이 이 행사에 할애한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행사는 1시간 정도 이어졌다. 박원순은 자신의 연설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보좌관은 속이 탔다. “일정이 매번 늦어지긴 하죠.” 늘 이러냐고 물었을 때 한 비서관이 말했다. 그런데 다음 일정도 보통 일정이 아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열리는 캠퍼스타운 국제 콘퍼런스였다. 서울 시내 48개 대학 총장이 모이는 자리였다. 박원순은 거기서 기조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연세대 팀 어떡해. 엄청 난처하겠네.” 보좌관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정작 박원순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신경을 안 쓴다기보다 ‘신경 써봤자 이미 일어난 일에 달라질 게 뭐 있겠느냐’는 사람처럼 보였다. 등촌동에서 연세대학교까지 가려면 성산대교 북단을 넘어 성산로로 쭉 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길은 상습 정체 구간이다. 박원순은 정체 구간에 갇혔다.갇힌 박원순은 계속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민원 전화였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어딘가에 할 말이 있는 듯한 사람의 화난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박원순은 그걸 계속 듣고 있었다. “네. 그러시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에서 화난 사람의 말을 계속 듣는 게 정신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박원순은 침착하게 말을 다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막히는 차 안에서 민원 전화를 3통쯤 쉬지 않고 받았다. 그의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은 1만2000명쯤 된다고 했다.연세대학교에 도착했다. 박원순이 움직여야 하는 방향을 미리 파악해둔 보좌진이 박원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원순은 달리기 시작했다. 오전 일정을 따라가야 하는 나도 옆에서 뛸 수밖에 없었다. 뛰는 도중에 물었다. “매일 이렇게 일정이 급하세요?” 박원순이 대답했다. “늘 이렇게 많지는 않은데, 오늘은 이동하는 시간이 있어서 그럽니다.”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달리는 시장을 알아봤다. “박원순 시장님이다.”기다리느라 화가 난 대학 총장들은 박원순이 어디서 왔는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원순의 이날 일정은 콘트라스트가 컸다.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억울한 구석이 있는 청소 노동자들의 모임이 끝나고 박원순에게 문을 열어준 곳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연세대학교 강당이었다. 이날을 위해 모인 48명의 대학 총장과 외국에서 온 학자들이 박원순을 기다리고 있었다.“조합원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던 박원순은 여기서는 전혀 다른 말을 해야 했다. 서울시가 어떤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지, 연세대학교와 서대문구와 서울시는 지금 어떻게 협력해 청년들을 위한 일을 펴나가고 있는지. 시장의 일이란 참 복잡한 것이었다.박원순의 업무에는 악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청소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악수, 연세대학교에서도 악수, 이후 내가 봤던 일정에서도 악수는 계속됐다. 서울시 예산으로 박원순의 손비누값과 핸드크림값이 편성되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유권자겠구나 싶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랬던 건지도 모르지만. 이다음 일정도 늦어져서 박원순은 어떻게든 빨리 가야 했다. 보좌진이 섭외해둔 퀵서비스 기사가 있었다. 대학 총장들 사이를 재빨리 빠져나와 오토바이까지 달려간 박원순은 그 기사님과도 악수를 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랐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시장님은 저기서도 악수를 하네.”박원순과의 첫날 일정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서울시가 자랑하는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한남동으로 이동했다. 중앙버스전용차로제는 이명박에게 대권을 안겨줄 만큼 강력했던 프로젝트다. 중앙버스전용차로 덕분에 연세대학교에서 한남동까지 20분밖에 안 걸렸다. 박원순이 탄 오토바이는 나보다 늦게 시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시장을 태운다고 긴장한 기사님이 교통법규를 아주 잘 준수했기 때문이었다.금요일, 시장은 먹다 말았다서울시장의 일정은 대부분 오전 8시 30분쯤 시작한다고 했다. 박원순은 하루에 7시간쯤 자고 꾸준히 마라톤을 한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일할 체력만큼은 확실하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박원순에게는 늘 기운찬 에너지가 있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술과 담배를 오래 해온 사람의 얼굴에는 알코올과 니코틴과 타르의 자국이 여러 형태로 쌓인다. 박원순의 얼굴에서 그런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박원순을 만나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이날 일정 중에는 안드레이 보로비예프 모스크바 주지사 방문과 사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방문이 있었다. 모스크바 시장 방문은 실제로 옆에서 참관하기도 했다.박원순은 모스크바 주지사단 앞에서 ‘디지털 시장실’에 관해 설명했다. 그가 3년 동안 구축한 서울시의 디지털 통합 정보 디스플레이 프로그램이었다. 박원순이 앉아 있는 시장실 뒤에는 교실 칠판처럼 큰 터치스크린이 있다. 수도, 화재, 교통지도, 경찰 출동, 뉴스 현황 등 여러 가지 정보가 한 번에 표시된다. 시청 내외의 각 부서와 기관들이 각각 업데이트하던 정보를 한 화면에 통합해 띄운다는 개념이다.딱딱한 건 모스크바 주지사 측이었다. 모스크바의 공무원들은 얼어붙은 보드카 같은 눈빛으로 박원순 측의 설명을 듣더니 굉장히 많은 것을 빠른 속도로 물어보았다. 모스크바 쪽의 질문도 흥미로웠다. 모든 도시는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가령 “정전이 나면 어떻게 하느냐” 같은. 서울은 그런 사회 인프라가 꽤 잘 돌아가는 도시다. 박원순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다 해도 예비 전력 시스템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주지사단은 서울시 교통정보 시스템 토피스를 보러 내려갔다. 박원순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인사를 했다.시장의 집무란 정말 폭이 넓은 일이었다. 모스크바 주지사를 만난 후 박원순의 일정은 청년 소셜 벤처 대표단 오찬이었다. 이쯤 되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박원순은 일을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하다. 박원순이 워낙 일을 바쁘게 하나? 아니면 서울시장 직위가 원래 이렇게 일이 많은가?“박원순이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하잖아. 참여연대 할 때는 주말 내내 자료 읽고 와서 월요일이 되자마자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일 시키고 이랬던 거 유명해.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도 있고.” 박원순과 함께 일한 지인이 있었다던, 익명을 요구한 취재원이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박원순이 일을 많이 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요즘은 좀 내려놨다고도 들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말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틀 동안 바로 옆에서 지켜본 박원순은 전혀 쉬지 않았다. 저런 사람과 일하려면 나도 꽤 긴장해야 할 것 같았다.소셜 벤처 대표단 오찬에서의 박원순은 역시 신나 보였다. 지금의 박원순에게 아주 큰 역할을 한 시민 단체에서의 일들이 생각나서일지도 몰랐다. 박원순은 짜장면을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 청년 대표 20명의 말을 하나하나 적었다. 다 적고 나서는 하나씩 다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을 따라다니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이었다. 모든 질문을 바로 다 대답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말도 마세요.” 박원순을 만나기 며칠 전 서울시 프리랜서 모임에서 박원순이 있는 현장을 보았다던 한 스타트업 운영팀장이 말했다. “거기서 어떤 DJ가 돌발 질문을 했어요. ‘나도 프리랜서입니다. 엄마는 내 일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사실 서울시장에게 물어볼 만하거나 서울시장이 해결해줄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박원순은 어떻게 했을까? “그분한테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했어요. 전화기를 넘겨받더니 ‘박원순입니다. 제가 보장하는데 따님은 직업이 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 포퓰리즘이란….” 이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했지만 이건 그 자체로 박원순의 진심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한 가지 사실이 남는다. 박원순은 순발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그리고 적어도 그날 점심 자리에서 박원순이 청년들에게 포퓰리즘이 의심될 법한 좋은 말만 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지만 해야 할 말은 확실히 했다. “여러분이 원하는 걸 자세하게 말씀하세요. 서울시에 ‘안 쓰는 공간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할 게 아니라 ‘어디 어디에 안 쓰는 곳이 있는데 그걸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여러분도 공무원을 이해해야 해요. 공무원은 실패하면 안 돼요. 감사를 받으니까. 공무원도 바뀌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해주세요’ 해야 개선이 돼요. 내가 해보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잘해서 공무원이 여러분을 붙잡게 만들어야 돼요. 아주 디테일하게, 돈만 주면 되고, 해주기만 하면 되는 제안을 해야 해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이야기를 듣고 나서 박원순이 하는 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요구도 해야 하지만 자신도 뭔가 해야 한다는 점. 중국집에서도 청년들에게 박원순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공짜가 없어요. 투쟁이에요.” 식사 장소였던 중국집의 방에 들어가기 전 식당 사장님이 박원순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자기 이름 위에 박원순은 이렇게 적었다. “행복은 스스로 만듭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박원순이 2017년 11월 23일부터 11월 24일까지 소화한 일정의 3분의 1도 안 된다. 박원순은 청년 창업가를 만나고 돌아와 사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을 만났다. 연세대학교에서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장윤주와 장도연 등 서울시 홍보대사들을 만났다. 타 매체와의 언론 인터뷰 일정도, 기타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 다른 일정들도 있었다. 나도 박원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바빠서 일정을 다 따라다니지는 못했다.“입체적인 사람이에요. 보통 정치인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어요.” 박원순과 함께하고 있는 서울시 보좌관 허윤미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 586이라 불리는 그 세대 특유의 특징이 있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거나, 지킬 수 없는 하나 마나 한 예쁜 이야기만 한다거나, 자기모순이 드러날 때는 눈을 감아버린다거나, 말로는 새롭자고 하고서는 늘 하던 방식만 답습한다거나. 그런 눈으로 봤을 때 박원순은 이질적인 사람이었다. “일할 때 가장 즐거워 보여요.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와 “권력욕이 있는 건 확실해요” 같은 평가가 함께 나올 만큼.물론 직업 정치인은 업적과 권력을 모두 노리는 사람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인은 권력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청와대에서의 거주 자체를 좋아하는 듯했던 직전의 대통령이다. 박원순의 미래는 앞서 말했듯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에게 말해줄 리도 없다.서울시청은 취재 전의 사전 인터뷰에서 ‘일을 너무 많이 하는 박원순의 이미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소위 말하는 ‘저녁이 있는 삶’과 워커홀릭 박원순의 삶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금은 낮은 성장 가능성과 높은 불확실성이 사회 전반에서의 상수다. 모든 선진국이 이 문제에 휘말려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젊은이들은 늘 세상을 더 빨리 받아들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세상을 탓하거나 국가에 뭔가를 바라는 걸 넘어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미친 듯이 하기 시작했다. 좋은 예가 서울시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한 방탄소년단의 ‘쩔어’다. ‘쩔어’의 가사인 ‘밤새 일했지 every day/네가 클럽에서 놀 때’가 시대정신이다. ‘쩔어’에 쩔어 있는 정서는 힙합 특유의 허슬이다. 내가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해서 더 나은 곳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다. 빈지노와 우원재도 ‘Always Awake’나 ‘시차’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 젊음을 쓰겠다. 이는 우연히도 박원순이 중국집 사장님에게 써준 말과 같다. “행복은 스스로 만듭니다.”어쩌면 박원순이 바꾸고 싶어 하는 워커홀릭 이미지야말로 박원순을 일으켜 세울 시대정신이 될지도 모른다. 중산층, 내 집 마련, 노후 보장, 긴 휴가는 모두 냉전기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20세기 후반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한때의 경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고성장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몇십억 명을 한 방향으로 몰고 나가는 거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시대의 숙제인 지금 무슨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거야말로 박원순이 좋아하는 패러다임 시프트 아닌가.이제 박원순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박원순은 무엇을 노릴까? 무엇을 좋아할까? 왜 저렇게 바쁘게 살까? 이어지는 인터뷰에 박원순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주로 듣고 있었던 이 글 안에서의 박원순과 달리 인터뷰에서의 그는 내게 먼저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