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도대체 왜 자신을 암살하러 온 청년 사물을 곁에 뒀을까요.
같이 보자고요. 같이 세상을 보고 느끼면 함께 공감하고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서요. 아마 양만춘을 죽이러 온 자객이 사물이 처음은 아니었을 거예요. 사물을 죽여도 연개소문이 누군가 또 보내올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적을 죽여 없애기보다 설득하기로 선택한 거예요. 물론 기회를 줬다가 달라지지 않으면 죽였겠죠. 그런데 사물이 양만춘으로 인해 변하죠.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구나. 내 수준으로만 세상을 봤구나.
양만춘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면서요. 결국 영화 <안시성>의 양만춘은 조인성에게서 나온 인물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데 조인성은 양만춘을 그런 인물로 그렸네요. 적에게도 곁을 내주고, 다 같이 세상을 한번 보자고 하는 열린 리더.
제가 그렇게 살아온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좋아하는 형들도 그렇고요. 강압적이거나 엄숙한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리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불편하더라고요. 곁에 잘 안 가게 되고. 나이를 먹고, 모임의 형이 되고, 현장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앉은 이 테이블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묻지 않아도 서로 말하는 그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요.
<안시성> 개봉이 추석으로 잡혔을 때 직감했어요. <명량>이겠구나. 천만이겠구나. 그래서인지 당연히 <안시성>의 양만춘도 <명량>의 이순신처럼 근엄한 성웅으로 그려지겠거니 했어요.
그래서 양만춘을 조인성이 연기하는 게 영화에 플러스도 되고 마이너스도 되는 문제였죠. <안시성>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조인성이란 배우를 처음 만나보고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은 모습을 봤다고요. 조인성이라면 양만춘을 좀 더 가볍고 자유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그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안시성>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막연하게 성웅 이순신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남주혁 씨가 연기한 사물이라는 인물과 별다르지 않았던 거죠. 양만춘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데 <안시성>에서 조인성의 양만춘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런 고정관념이 모두 깨져버려요. 진창에 바퀴가 빠진 노파의 수레를 밀고 끄는 첫 등장 신. <안시성>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영웅의 리더십을 보여주리라는 걸 직감하게 되죠.
조인성의 양만춘이 관객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건 결국 저의 확신이죠. 그러니까 제 확신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들이 빠져드느냐 아니냐에 달린 거죠. 저는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고요.
추석 대전에서 <안시성>이 승리할 거라는 말들이 이미 파다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예상하고요. 물론 마찬가지로 저의 확신이니까 결과는 받아들여야 하겠지만요.
저는 처음에 그랬거든요. 내가 어떻게 장군을 해? 사실 저 같은 외모를 가진 배우들은 장군상이 아니에요. 무사죠. 장군은 리더잖아요. 대중은 사극의 리더상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고, 저 역시 그런 생각 때문에 여러 번 거절했어요.
<안시성> 출연 제의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고 하던데요.
사실 세 번이었어요. 나는 불가능할 것 같다. 내 목소리가 장군 역할과 맞아떨어지느냐. 나는 현대물에 더 어울린다. 그동안 해온 현대물의 이미지가 있는데 이런 사극과 어울리겠느냐. 그러다 생각해봤어요. 제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장애가 있는 역할을 했잖아요. 그때도 저렇게 생긴 애가 장애인이라는 게 와닿지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영화 <비열한 거리>를 할 때도 저렇게 생긴 애가 깡패인 게 말이 되느냐고 했죠. 그러면 전 뭘 해야 되나요?
재벌 2세?
재벌 2세만 계속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재벌 2세가 저처럼 생겼다는 리얼리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건데요?
솔직히 조인성만큼 잘생긴 재벌 2세는 저도 본 적이 없네요. 저도 경제경영 분야 취재를 꽤 오래 했는데 말이죠.
관객분들의 편견이고 고정관념인 거죠.
관객의 편견에 얽매여서 배우 스스로 자신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전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 거절을 하고 나서 한 시간 만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 하겠다고 했어요. 너무 찝찝하고 욱하더라고요. 이거 피하지 말자. 노희경 작가의 첫 작품을 할 때도 그랬어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어요. 너무 어려울 것 같은 거예요. 인간에 대해 깊고 깊이 얘기하니까. 하겠다고 결정은 했는데 너무 표현이 어려워서 자꾸 물었어요. 계약했냐고. 계약을 했다는 거예요. 그럼 왜 그렇게 빨리 계약했냐고. 너무 피해가고 싶어서. 그런데도 끝내 갔거든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에 노희경 작가와 <괜찮아 사랑이야>와 <디어 마이 프렌즈>까지 세 작품을 함께 했어요. <안시성>도 내가 피해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으면서 피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결정했죠. 그때부터 쭉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렇게 <안시성>을 선택한 것도 조인성다웠다면 양만춘을 그려내는 것도 조인성스러웠어요. 자신을 죽이러 온 사물을 곁에 두고 함께 당나라 군대와 대적하는 성주 양만춘과 후배 남주혁을 가까이에 두고 <안시성>이라는 영화를 함께 이끌어가는 주연배우 조인성은 분명 닮아 있어요.
보통은 그걸 잘 모르는데. 사실 저는 그렇게 동생들을 보는 게 있거든요. 제 곁에 두고 싶어 해요. 같이 보고 싶어 해요.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세상을 보여줘야 해요. 가르치려 들지 말고 보여줘야 해요. 같이 볼 수 있게 해주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거든요.
기자 간담회에서 남주혁 씨에게 건네는 조인성 씨의 눈빛과 말투에서 알 수 있었어요. 아끼는구나. 더 보여주고 싶어 하는구나. 어쩌면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겠구나.
주혁이는 지금 모든 게 처음이에요. 영화도 처음이고 GV도 처음이고 영화 인터뷰도 처음이고 무대 인사도 처음이고. 영화 촬영 현장은 드라마 촬영 현장과는 다르니까요. 주혁이가 처음에 그러더라고요. “영화는 밥을 다 줘요?” 드라마 현장에선 따로따로 밥을 먹거든요. 잠도 각자 모텔 잡아 자고. 영화는 다 같이 시작하고 다 같이 끝내죠. 이런 걸 신기해하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주연이었잖아요. 그래서 첫 영화 현장에서도 차마 못 물어봤던 것들이에요. 창피하니까. 주혁이가 그런 걸 물어보니까, 그러니까 귀엽죠.
그렇게 남주혁이 물어볼 수 있는 현장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했던 거잖아요. 양만춘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 거고. 양만춘의 부관 추수지 역할로 배성우를 추천한 것도 그래서였고. 배성우 씨와는 <더 킹>에서 함께하면서 더욱 친해진 걸로 알고 있어요.
캐스팅 과정에서 제가 푸시를 많이 했죠.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려면 중간에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요. <안시성>에서는 배성우 형이 있었다면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광수가 있었죠. 이광수가 있어서 경수와도 친해진 거고.
<안시성>에서는 남주혁을 곁에 뒀다면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도경수 씨와 함께했네요.
그때 경수도 저한테 바로 오기에는 나이 차이도 나고 어려웠나 봐요. 광수와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인성이 형하고 같이 술도 먹고 그러자는 분위기가 된 거죠. 경수가 <괜찮아 사랑이야>의 현장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드라마는 촬영 중에는 밖에서 술 마시고 그럴 수가 없거든요. 경수가 나중에 밖에서 보자고 해서, 그래서 친해지게 된 거죠.
선후배 사이는 중간에 누군가 연결해줘야 한다. 사실 이건 누군가 연결해줘서 선배와 친해져본 적도 있고 연결해주지 않아서 쭈뼛쭈뼛해본 적도 있어야 알 수 있는 지혜거든요.
맞아요.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쳤죠. 사실 영화계에도 그런 연결 고리가 많아져야 연말 시상식에서 만나서도 정말 반갑고 제대로 놀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상 받는 것만으로도 가뜩이나 어색해 죽겠는데 옆자리에 대선배님들이 앉아 있으면 더 위축만 되죠. 그러면 다들 쟤는 왜 인사도 못하고 뻣뻣하기만 하냐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사실 본인들도 그 자리가 어려워서 쭈뼛거린 건데.
도경수도 남주혁도 배성우도, 조인성 곁에는 사람들이 많네요.
(김)우빈이도 있고 (이)광수도 있고. (도)경수도 있고 (임)주환이도 있고.
그러고 보니 아예 모임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풍문으로 들었네요.
저도 그들도 서로의 곁에 있는 거죠. 제가 나이로는 형이지만 사실 친구인 거고. 이번에 (차)태현이 형의 권유로 <라디오스타>에 나갈 때도 다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었어요. 태현이 형 의견도 듣고 제 의견도 얘기하고 각자의 의견도 듣고.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요?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길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스스로 보는 거죠. 내 길이 반드시 맞는 건 아니니까. 세상의 여러 면을 다 같이 함께 다양하게 보는 거죠.
<안시성>에서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당 태종 이세민과의 대결은 결국 서로 다른 리더십의 대결이라고 봐야 해요. 겉보기에는 공성전 같지만 본질은 수평적 리더십과 수직적 리더십의 승부죠. 3차 공성전에서 이세민이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을 쌓겠다는 전략을 세우잖아요. 솔직히 무모한 작전인데 당나라 군대 안에서는 누구도 반대를 못 해요. 이세민이 토산을 쌓겠다고 하면 쌓는 거죠. 반면에 양만춘이 그런 전략을 세웠다면 아마 안시성 안에서 온갖 반대 의견이 나왔을 거예요.
맞아요. 양만춘은 그게 왜 말이 안 되느냐고 모두와 논쟁을 했겠죠. 결국 양만춘은 자신의 전략을 수정했겠죠. 그렇게 올바른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졌을 거예요.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다만 올바른 선택을 할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이죠. 확률이 높다고 모든 결정이 올바른 것도 절대 아니에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이죠.
올해가 데뷔 20주년인가요?
12월 28일이 딱 20주년이네요. 그날 처음으로 지오지아 광고 촬영을 했어요.
조인성은 처음부터 주연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버리기 쉬워요. 지난 20년 동안 그런 경우를 주변에서도 많이 봤잖아요. 그렇게 갇혀 있다가 잊힌 사람들.
모르겠어요. 제가 갇혀 있는지 열려 있는지는. 다만 저는 제가 모르는 세상이 정말 많다는 건 알아요. 어느 순간 제가 보는 게 제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거든요. 이 일은 하다 보면 누구나 공중에 붕 뜨게 돼요. 모든 걸 내려다보게 되죠. 실제로 많이 보이는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발을 땅에 못 붙여요. 땅을 알아야 해요. 내가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알아야 해요. 그런데 내가 보는 세상이 저들보다 우월하고 세련되다고 생각하면 세상과의 괴리감만 커지는 거죠.
주변의 평가도 그렇게 바뀌죠. 저 사람은 공중에 붕 떠서 사는 허깨비 같다고.
그래서 주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아져요. 악순환이죠. 스스로 더 많이 안다고 믿는데 주변에서는 본인을 자꾸 비판하니까 더 스스로에게 갇히게 되죠. 그럴수록 더 안 고쳐져요, 사람이.
조인성도 그랬던 적이 있는 거죠?
있었죠.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그러다가 저보다 더 깊은 분들을 만나면서 완전히 깨졌어요. 그렇게 확 깨지고 나니까 내가 천지 구분을 못 했구나 싶었어요. 너는 어느 시대 사람이고 너는 도대체 뭐냐. 누군가 그렇게 묻는데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더라고요. 울컥했어요. 내가 너무 뜬구름만 잡고 살았구나.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쁜 짓을 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죠. 인과응보가 반드시 현실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반면에 인연과보라는 말이 있어요.
인연과보는 뭐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렇게 될 일이란 거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깨달아야 할 게 있어요. 땅이 안 좋고 기후 상태가 별로면 콩을 심었지만 콩이 안 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나게 된다면 반드시 콩이 나죠.
원래 그리 될 일도 그리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리 된다면 그리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배움이 저를 쓸데없는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줬어요. 저는 교만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사실 교만했어요. 실패가 많이 없었거든요. 착하고 무지하면 진정 무섭기가 한이 없어요. 스스로 잘 살았거든요. 내가 본 게 맞거든요. 그래서 세상이 더 넓다는 걸 모르죠. 그래서 책에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혼자 잘나서 동양철학 이론까지 파고들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냥 사는 거죠. 그때 무너지고 나서 정리되기 시작했죠.
교만한데 교만하지 않은 척하는 재주까지 생겨서 더 교만한 상태. 저도 자유롭지 않을 것 같네요. 편집장이랍시고 내심 교만하면서도 그런 지위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은 척 보이려는 교만까지 갖고 있어서, 아주 교만한 상태죠.
저도 그랬어요. 그러면 정말 유려해져요. 가짜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사실 가짜로 사는 거죠.
조인성이 빠졌던 가장 깊은 교만은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세련됐다. 내가 하이다. 내가 그랬다는 걸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나를 만들어서 살려고도 했었거든요. 부족하니까.
그 뒤에 숨으면 안전하잖아요. 다들 조인성이 하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대로 살아주면 되는데. 사실 너무 일찍 데뷔했잖아요. 자아가 완성되기도 전에 세상이 만들어준 자아대로 살아가는 직업을 갖게 된 거죠.
그렇죠. 그래서 더 위험했던 것 같아요. 정상적이지 않았으니까. 사람을 만나고 세상에 나오고 깨지고 넘어지고 일어났다 해야 되는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했었거든요. 위태롭게 자전거를 타고 갔던 거예요. 차라리 넘어지면 넘어진 걸 실패라고 받아들이고 더 잘 타려고 하잖아요. 실패와 좌절은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데 제대로 넘어져본 적이 없으니까 실패가 좌절일 거라고 두려워하면서 안 넘어지려고 안간힘만 쓰고 사는 거예요.
조인성이 조인성을 알기도 전에 세상이 만들어준 조인성으로 살기 시작했던 거죠.
그러니까 너무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자기 상태를 자각한 사건이 있었나요?
굉장히 우울해져요. 세상이 진짜 나를 몰라주는 것 같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더 크고 그래야 하는데 실제의 나는 그것에 못 미치니까. 그걸 숨기고 싶으면서도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라고. 반대로 내가 사고 친 적도 없고 민폐 끼친 적도 없는데 왜 나는 더 사랑을 못 받는지 자꾸만 고민도 해요. 스스로에게 자꾸만 채찍질을 하죠.
어느 정신과 의사분이 사람은 자기 마음을 분석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어요. 자기가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게 된대요. 그래서 길잡이 역할을 해줄 전문 상담 의사가 필요한 거고. 그 시절에는 자기 안으로만 빠져들어서 침잠해가고 있었던 거네요.
그 상태가 화면에 그대로 나와요. 그래서 배우는 곧 상태예요. 배우의 상태에 따라 그 배우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정확하게 드러나요. 화면의 빛깔부터가 달라요. 우리가 흔히 낯빛이 좋다고 하잖아요. 그게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배우야말로 상태예요.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면 그 사람의 착함이나 맑음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 그건 대본에도 없는 거예요. 그냥 그 배우가 갖고 있는 상태거든요.
배우는 상태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안민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그래서 저도 제 상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요?
지금은 뭐랄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족스러운 거죠. 태현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이 좋다고. 다시 살아도 지금보다 잘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요. 저도 그래요. 이미 너무 최선을 다했어요. 이것보다 더 잘될 가능성은 희박해요. 나쁘고 힘든 시간도 다 겪어냈고 지금은 나쁘지 않은 상태예요. 더 잘될 자신은 없어요. 지금까지 잘해온 것 같아요.
그렇게 내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흥행작이 몇 개고 개런티가 얼마냐는 아닐 것 같아요.
무언가 이룬 게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죠.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 아무 일도 없다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안시성>이란 220억원짜리 영화를 찍고 많은 관객이 봐주신다고 해도, 만약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지금 저는 아무 일도 없거든요. 그게 행복이더라고요. 부모님 건강하시지, 동생도 별일 없지,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 이 순간의 결과와 상관없이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는 것만 해도 행복한 상태인 거예요. 기분이 좋고 나쁠 수는 있어요. 그건 기분이지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기분이 좋아야 행복한 게 아니에요. 기분과 관계없이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좋아요. 전 지금 좋은 상태예요.
그런 상태라면 무엇이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죠.
맞아요. 살면서 내가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는 없어요. 그런 진리를 깨달으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영화 흥행. 책임을 지고 인정하면 돼요.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관객 수준을 탓하게 되죠. 피해의식 속에서 화가 나는 거예요. 미안할 수는 있어요. 열심히 함께해준 스태프들을 위해서라도 흥행이 됐으면 좋겠는데 안 되면 미안하죠. 하지만 받아들여야죠. 결과는. 그게 안 되면 파괴 에너지만 나와요. 부정 속에 비판만 하게 되니까.
배우들의 상태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영화 같아요. 전쟁 영화는 촬영 현장 자체가 전쟁이기 마련이에요. 좋은 상태의 배우들이 모여도 전쟁 같은 현장에서는 지치기 마련인데요.
바로 거기에 필요한 게 유머죠. 저는 어떤 순간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나를 파괴할 권리도 있고.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나는 어떤 순간에도 행복하길 원해요. 그래서 웃는 거예요.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겠죠. 힘든 순간에는 유머로 한번 웃고 그렇게 넘어가는 거예요.
우리 일상에 그런 위트가 부족한 건?
우리 삶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죠.
할리우드 영화에는 그런 위트가 자주 등장하죠.
<어벤져스>를 보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위트가 매력 있잖아요. <안시성>도 그런 맥락이 있어요. 다들 죽기 살기로 싸우잖아요. 그렇게 계속 싸우기만 하면 지쳐요. 감흥이 없어져요. 그런데 위트가 있으면 분위기가 전환돼요.
그런 위트가 상태를 바꾸죠.
공기가 확 바뀌어요. 촬영 현장에서든 영화 속에서든. 성우 형의 애드리브도 너무 웃기고, 박성웅 선배도 기가 막혀요. 스태프들이 다 같이 웃죠. 집중할 때는 집중하고. 그렇게 전쟁의 고통을 이겨내는 거죠. 안 그러면 정신병 걸려요.
<안시성>을 보고 나서도 그렇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렇고, 이제는 조인성이 아닌 양만춘을 상상하기 어려워요. 조인성도 세 번이나 거절했지만 사실 <안시성>의 시나리오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한 번씩 고민했던 책이잖아요.
누구한테 먼저 갔느냐는 상관이 없어요. 결국 누가 선택하느냐에 달린 거죠.
그리고 그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느냐의 싸움.
맞아요. 누구한테 먼저 가고 말고로 질투하고 그러는데, 그런 거 정말 쓸모없어요.
그렇게 조인성이 아니면 상상이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괜찮아 사랑이야> 같습니다. 조인성의 20년 배우 인생에 노희경 작가가 미친 영향력이 적잖은 것 같아서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이후에 저와는 두 번째로 함께 한 작업이었잖아요. 그래서 배우 조인성의 장단점과 매력을 충분히 관찰하고 드라마를 쓰셨다고 봐야겠죠.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를 구체화하는데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쓰임이 있었던 거고, 그것이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가 아닐까. 작품을 찍으면서 위로받았어요. 마음을 울린 작품이거든요.
배우한테 성장이나 변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좀 피하고 싶어요. 배우는 변신 로봇이 아니고 성장기 청소년도 아니니까요. 너무 함부로 기대하고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도 노희경 작가를 만난 후의 배우 조인성은 그 전과는 분명 달라졌어요.
성장한 거 맞아요. 로봇처럼 변신은 못 해도 새로워진 것도 맞아요. 어떤 배우도 매 작품마다 100% 새로울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100%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죠. 노희경 작가가 말씀하시길, 그중에서 10%만 바뀌어도 새롭게 보인데요. 그 10%를 찾아내는 게 우리의 숙제라는 거죠. 작가가 이 배우를 캐스팅해놓고 전혀 엉뚱한 다른 걸 그려 넣으면 안 된다는 거죠.
노희경 작가가 조인성의 발성에 관해 조언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발성에 자신이 없었나요?
저는 제 목소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노희경 작가도 제 목소리를 좋아해주시고. 다만 끝음 처리나 어미 처리를 조금 잡아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던 부분을 잡아주셨어요.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사랑받으려고 하니까 발성에서 자꾸 어린 티를 냈죠. 그게 생존이었거든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발성법이 안 먹히는 거죠. 그런 습관은 남아 있고. 이런 것만 봐도 어려서 잘된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에요. 플랫하게 대사를 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딱 끊고 맺고. 저도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그걸 계속 연습했어요.
조인성에게 노희경 작과와의 만남은 행운이네요.
고맙죠. 이번에 성우 형이랑 <라이브>라는 작품을 하셨잖아요. 성우 형이 느낀 노희경 선생님이 있는데, 두 분이 말이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연기 이론이나 훈련법이라든지. 성우 형은 연극을 오래 했으니까 그게 되게 잘 맞았나 봐요.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노 작가님 작품에서 배우들이 새롭게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노희경 드라마는 배우가 소화하기 참 어렵죠?
어려워요. 그런데 하다 보면 어렵지만은 않아요. 결국 쉬워져요, 오히려. 되게 단순하게 들어가더라고요. 선생님도 자기 작품이 어렵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서 계속 공부하세요. 그 정도 작가라면 자존심이란 게 있을 거잖아요. 그런 거 다 내려놓고 젊은 사람들 말을 듣고 스스로 더 진화시키려고 노력하세요. 무엇이 어렵냐고 묻고. 덕분에 최근 작품들은 더욱 라이트해지는 것 같아요.
<라이브>도 <괜찮아 사랑이야>도 전부 넷플릭스로 봤네요. 덕분에 드라마를 조금 더 천천히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괜찮아 사랑이야>만 해도 한 회 안에서도 인물들 사이의 감정선이 정말 복잡하게 교차하더군요. 게다가 주인공 장재열은 스키조 환자고 환각을 보죠. 나를 치료하려고 애쓰는 연인이자 의사도 믿고 싶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믿고 싶어 하는 이중, 삼중, 사중, 오중의 감정을 대사와 표정으로 표현해야 해요.
마지막에 효진 누나와 정신 병원에 앉아서 울면서 나 좀 여기에서 빼내달라고 애원하는 신이 있어요. 그땐 정말 끝까지 가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캐릭터 속에서 답을 찾으니까 풀리더라고요. 그게 어렵긴 했어요.
잘생긴 배우들이 있죠.
제 또래에는 (현)빈이, (강)동원이, (김)래원이가 있죠. 다들 저와 같은 시대를 공유한 배우들이네요.
그런데도 <괜찮아 사랑이야>는 조인성만이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낀 건, 잘생긴 배우들 사이에서 조인성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조인성한테서는 아름다운 육체 뒤에 감춰진 연약한 영혼이 보이거든요. 연약한 영혼을 애써 숨긴 채 세상과 사투를 벌이죠. 노희경 작가도 조인성의 그걸 관찰하고 <괜찮아 사랑이야>를 쓴 건 아닐까요? 사실 잘생긴 외모가 내면을 가려서 배우의 약점이 돼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조인성은 정반대죠. 잘생겼는데 자꾸만 그 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더 킹>을 함께 한 한재림 감독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네요.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그러셨어요. 조인성이라는 배우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극의 흐름이 지지부진할 때 그 모성애가 확 느껴지는 연기가 나오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고. 그걸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맞는 말씀 같았어요. 그런 건 연기로 표현한 거라기보다는 그냥 그 배우가 가진 특성 같은 거라고 하더군요. 시나리오에도 연출에도 없는 어떤 요소죠. 부모님이 주신 달란트 같은 것. 제가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해도 배우가 가진 본질적 카리스마, 그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셔서 저도 새로운 발견이라고 했어요. 그런 게 분명 저한테도 있나 봐요. 대본에는 없지만 배우가 가진 본질이라 극을 더 살리기도 하고 튼튼하게도 만들어주는 특징이요. 한재림 감독은 <안시성>을 선택할 때도 준비할 때도 영향을 많이 주셨어요. <안시성>을 왜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죠. 제가 헷갈려할 때. 고맙죠.
<안시성>에도 그런 장면이 있어요. 정은채 배우가 연기한 신녀를 베어야 할 때. 고구려를 저주하는 신녀를 지금 베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져요. <명량>의 이순신이었다면 단칼에 베어버리겠죠. 실제로 그런 장면도 있고. 양만춘도 칼을 들어요. 하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해요. 영웅이지만 인간인 거죠. 조인성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간형이랄까요.
옮고 그름은 머리인데, 좋다 싫다는 마음이잖아요. 그 순간 그 심정이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아픔을 이겨내는 게 사람이에요.
조인성도 살면서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런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거겠죠.
그런 모습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저는 살면서 늘 상처받는 쪽을 선택했어요. 상처 주는 쪽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제 생각엔 상처 주는 게 더 힘들거든요. 제 나름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좀 있어요. 상처받는 쪽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