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팝, 각자의 사운드트랙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도시의 삶을 음악으로 승화한 우리 생의 사운드트랙, 시티팝에 관하여. | 음악,뮤직,칼럼,시티팝

시티팝에 대해 말하기에는 이제 늦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시티팝의 정체를 설명하는 기사들이 나온 지 이미 오래고, 시티팝 앨범 가격도 이미 오른 지 오래다. 또 우리는 윤종신의 ‘Summer Man’이 시티팝을 지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유빈의 ‘도시애’에 얽힌 사건도 이미 목격했다.시티팝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낯설었던 시절을 찾아내려면 최소한 1년 정도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 이 글이 선도적 역할을 하기란 불가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글이 무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글을 시의적절한 모양새로 다듬어볼 예정이다. 지금이기에 더 의미 있는 글을 써보겠다는 이야기다. 시티팝의 끝을 잡고 있기에 더 의미 있는 글을.라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 일본에 온 외국인과 동행하며 그들이 일본에서 무엇을 하는지 카메라에 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2017년 12월 11일 방영분을 보면 스코틀랜드에서 온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일본에 온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레코드 숍을 방문하러 왔습니다. 사고 싶은 시티팝 앨범 40장을 노트에 적어 왔어요. 야마시타 다츠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같은 뮤지션의 앨범 말이에요.” 이 외국인 남성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면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일본 음악,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의 음악 때문에 바다를 건너왔다고? 도대체 시티팝에는 어떠한 힘이 존재하는 걸까?시티팝이란 어림잡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일본에 존재한 특정 경향의 음악을 총칭하는 말이다. 공인된 장르는 아니지만 당시 일본에 분명히 실존했던 음악 사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시티팝은 이름에 걸맞게 도시적인 음악이었다. 구수하기보다는 세련되고 일본의 전통보다는 서양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이었다. 실제로 우가야 히로미치의 책 는 시티팝의 대부 격인 야마시타 다츠로의 음악을 서양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일본 음악, 어떤 서양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일본 음악으로 분류한다. 그런가 하면 수지 스즈키는 자신의 책 에서 시티팝을 보다 직접적으로 정의했다. “시티팝이란 단어는 1984년 전후로 유행한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그 정의는 조금 모호했다. 이제 와 다시 정의하자면 도쿄 사람의, 도쿄를 무대로 한, 도쿄를 위한 음악. 도시적이고 어른스러운 음악.” 한편 는 시티팝을 이렇게 정의했다. “소울과 퓨전, 성인을 겨냥한 록 음악 AOR(Adult Oriented Rock)을 섞은 사운드에 버블 경제 시절 겪은 도시의 삶을 가사로 얹은 음악.” 의 정의에서 보듯 시티팝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가 ‘버블 경제’다. 시티팝의 흥행은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잘살았던 시절과 겹친다. 그 때문에 시티팝에는 기본적으로 호시절의 여유로움, 낭만, 낙천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또한 카오디오의 등장과 보급이 시티팝의 인기에 기여했다는 분석은 이미 유명하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애인을 옆자리에 태운 채 시티팝을 틀어놓고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이다. 여름낮에 바다로 떠나든 겨울밤에 도시를 배회하든.시티팝을 말할 때 또 하나 정확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시티팝이 서양음악의 여러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인이, 일본에서 추구한, 일본 음악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야마시타 다츠로는 일본 전통 가요에서 탈피한 세련된 팝을 갈구하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대망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마시타 다츠로의 음악을 당시 서양음악의 훌륭한 모방에 불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역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야마시타 다츠로의 보컬 자체가 상징적이다. 일본 전통 가요와 다르고 서양음악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자기만의 창법을 만들어냈다. 가도마츠 토시키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의 음악은 펑크, 디스코, 모던 소울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동양인이 서양음악 흉내 낸 걸 듣느니 오리지널을 듣겠어’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도마츠 토시키의, 그리고 일본의 독자적이고도 매력적인 음악으로 인식된다. 문득 일본 커리가 떠오르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시티팝이 일본의 독자적이고도 매력적인 음악으로 인식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버블 경제하고도 연관 있다. 바로 완성도다. 시티팝의 무기는 정서만이 아니다. 완성도도 있다. 시티팝 앨범 컬렉터이기도 한 DJ 제시 유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일본의 시티팝은 그 시기 미국의 음악과 비교해도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 당시 일본은 지금의 미국과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음악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또 시티팝 앨범의 크레디트를 보면 서양인 세션이 많다. 그들의 수준 높은 연주와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시티팝에 그대로 담겨 있다. 게다가 나는 당시 일본 재즈도 미국 재즈보다 더 수준이 높았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한국에는 시티팝이 없었을까? 있었다. 시티팝이라고 불린 적은 없지만 도시적이고 어른스러운 한국 음악이 있었다. 당장 김현철의 (1989), 장필순의 (1989)가 떠오르고 빛과 소금의 많은 노래와 토이의 초기작도 생각난다. 손무현의 ‘처음부터 사랑한 나’와 장혜진의 ‘사랑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잊을 수 없다.그리고 이런 음악이 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후반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다. 1997년 외환 위기 사태가 터지기 전의 호시절이기도 하고, 일본보다 10년 정도 늦다는 점에서 양국의 경제 격차를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해서다.중요한 것은 시티팝이라는 명칭이 아니다. 도시의 삶을 사운드와 정서로 승화한 음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1990년대 웰메이드 싱어송라이터로 프레임 짓던 음악가들을 우리는 도시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잠깐 유행했던 댄스음악 정도로 생각하던 모노의 ‘넌 언제나’ 역시 이제 도시와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즐길 수 있다. 전자음악 팬이 김현철을 좋아하는 모습이나 재즈 팬이 윤상을 좋아하는 모습은 어색하다. 그러나 도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김현철과 윤상을 모두 좋아할 수 있다. 둘은 도시에서 만나니까. 시티팝을 겪은 후 우리는 한국의 도시 음악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대해.이쯤에서 다시 스코틀랜드의 한 남성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어쩌다가 40년 전의 음악을 찾아 바다를 건너오게 된 걸까? 물론 구체적인 경로를 댈 수도 있다. 이 남성의 말처럼 네덜란드와 러시아의 특정 매체에 실린 시티팝에 관한 기사 덕분이라거나, 퓨처 펑크 디제이들이 시티팝을 자주 샘플링하면서 알려졌다거나, 다케우치 마리야의 가 유튜브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추천 영상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하게 작용한 힘은 바로 시티팝 자체의 분명한 자기 색과 탄탄한 완성도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간 이루어진 시티팝의 발견은 훌륭한 음악 라이브러리가 새롭게 추가된 것과 같다. 시티팝은 기본적으로 잘 만든 좋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티팝에 관한 데이터베이스가 전무한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근사한 삶의 사운드트랙이 하나 더 생겼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삶의 사운드트랙이라···. 맞다. 시티팝은 현재 내 삶의 중요한 사운드트랙이다. 그런데 왜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도 못한 시공간에서 탄생한 이 음악을 내 삶과 밀착시키는 걸까. 어떠한 추억도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뿐 아니라 현재 20대이지만 시티팝을 추구하는 밴드 서교동의 밤을 비롯해 시티팝에 매료된 수많은 젊은이의 상황이기도 하다. 글쎄, 생각해본다. 시티팝 속의 세계는 일단 시간적으로는 과거다. 1980년대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내 삶에서 시티팝 속의 세계는 미래다. 미래로 느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잃어버린 미래라고 할까. 갈망하지만 아마도 겪지 못할 것 같은 호시절, 나의 미래로 삼고 싶지만 아마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이미 잃어버린 미래. 어쩌면 시티팝 열풍이란 복고나 향수와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