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봤죠? 역사적인 날에 만났어요. 노래 중에 통일에 대한 노래가 있지 않나요?
‘Gang Gang Schiele’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게 사실은 그냥 ‘강강술래’예요. 독일에서 작업을 해서 ‘쉴레’라는 독일식 이름이 떠올랐어요. 에곤 쉴레의 쉴레 말이죠.
저는 오늘 뉴스를 보면서 그 노래에 있는 ‘Over the fake iron wall’이라는 가사가 떠올랐어요. 오늘 트럼프가 김정은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가는 걸 보니, 경계선이 별거 아니더라고요. 가짜 철벽을 넘어선 거죠.
이 곡의 의미는 마음으로 하는 사과예요.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가 왔으면 좋겠어요.
4년 전에 만나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혁오를 소개할 때는 인디계의 ‘슈퍼노바’로 소개했더라고요.
제가 저희를 그렇게 소개했나요?
아뇨.(웃음) 제가 혁오를 소개할 때 ‘신성’이라고 소개했다는 거죠. 근데 이제는 해외 투어를 다니는 월드 클래스가 되었어요.
‘월클’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해외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건 맞아요. 예전에는 해외 공연은 막연하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기도 저희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한번 가기 시작하니까 그 경험이 너무 좋고, 더 많은 분들이 우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홈페이지 일정표를 보니 2월부터 3월까지 13개 도시를 18일 만에 돌았어요. 공연장도 생각보다 커요. 예를 들면 파리에서는 1000석이 넘는 르 트리아농을, 싱가포르에서는 2000석에 가까운 규모의 에스플라네이드 베이 시어터를 채웠어요. 단독으로 월드 투어에서 이 정도 규모의 관객을 끌어모은 한국의 록 밴드가 있었나 싶어요.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아시아권이랑 영미권 혹은 유럽은 공연을 즐기는 방법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각각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공연이 끝나니까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처음에는 야유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앙코르를 요청할 때 부르는 노래였어요. 같은 노래를 독일 축구장에서 응원단이 부르는 걸 들었어요. 그런 순간이 정말 재밌는 경험이에요.
파리였나요? 감동이었겠어요.
예, 파리였죠. 그때 정말 재밌었어요. 또 일본 관객은 정말 집중한다는 게 느껴져요. 곡을 연주하는 동안에는 춤을 추면서 각자 놀다가도 곡이 끝나고 포즈가 있는 순간에는 제가 물 마시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해져요. 소름이 돋았어요.
공연 때 말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하죠. 전에 가본 공연에서는 팬들이 “말 좀 해!”라고 외치더라고요.
일종의 취향인데, 공연을 보러 가면 정말 좋은 공연을 보고 나오고 싶거든요. 멘트를 들으러 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건 제가 잘 못하기도 하고, 굳이 제가 할 건 아닌 것 같아서 줄이고 있어요.
코첼라도 다녀왔죠? 전통적인 드럼, 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영미 스타일의 록 밴드로는 처음인 것 같아요. 어땠어요?
코첼라, 정말 힘들었어요.
왜요?
스케줄도 빡빡했고, 우리가 직접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다녔거든요. 도시 수를 좀 줄여서 좋은 호텔에 묵어가며 할 수도 있었는데, 이왕 간 거고 몸도 성하고 그러니 좀 많이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물론 매니저랑 친구들도 있어서 돌아가며 운전하고 가다가 뭐도 좀 사 먹고 그러고 다닌 거죠. 저희가 코첼라에서는 아무래도 인지도가 높지 않으니까 사운드 체크를 아침 7시에 하라고 하더라고요. 새벽 5시에 운전해서 사운드 체크하러 갔다가 끝나면 기절하는데 해 뜨면 너무 뜨거워서 일어나고 그랬어요.
무슨 말이에요? 일정이 어떻게 그렇게 돼요?
코첼라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공연했는데, 로스앤젤레스로 입국해서 600km를 운전해서 피닉스로 먼저 갔어요. 피닉스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시 코첼라로 돌아와서 첫 번째 일요일 무대에 섰고, 다시 짐을 챙겨서 샌디에이고와 로스앤젤레스 공연을 마친 후에 두 번째 무대로 복귀한 거죠. 다른 도시에서 코첼라 숙소로 복귀할 때마다 다음 날 새벽 7시에 사운드 체크를 하라는데, 호텔에서 공연장까지 가는 데만 차로 또 두 시간이더라고요.(밴드 혁오는 4월 14일과 21일 두 번 코첼라 무대에 섰다.)
와, 너무 피곤했겠다. 지금 찾아보니 총 이동 거리가 최소 1600km네요. 이 정도 거리면 절대 매니저에게만 운전을 맡겨선 안 될 것 같아요. 안전 때문에라도.
그렇죠. 그 이유로 멤버들끼리 돌아가면서 했어요. 기사를 따로 두 명쯤 데려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까요.
유럽에서도 그렇게 했어요?
유럽에서도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정말 현지 밴드처럼 해보자는 생각으로 스케줄을 잡았어요. 대도시만 찍어서 비행기로 움직일 수도 있지만, 거점을 여러 개 찍고 버스로 투어했어요. 침대칸 있는 버스 아시죠?
멋지다. 진짜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에 나오는 밴드의 모습이네요.
근데 큰 용변을 못 봐요.
아니, 무슨 소리예요?
버스에 화장실이 있긴 한데 열댓 명이 한 버스를 쓰니까 그게 안 돼요(자세한 이유는 생략). 반드시 휴게소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휴게소에 갔을 때 바로 볼 일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의외로 유럽 휴게소 화장실이 깨끗하더라고요.
힘드네요, 정말. 물론 젊으니까 체력은 될 테지만요.
체력 안 돼요. 이제 체력이 제일 안 돼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또 공연이 좋으면 다 잊혀요. 내가 평가했을 때 그날 공연을 잘했다 싶으면 그걸로 보상이 돼요. 다음 날 일어나서 힘들다고 투덜대다가도 그날 공연이 좋으면 또 다 잊어요.
코첼라는 좀 급이 다른 페스티벌인데, 여느 페스티벌과 다른 점은 뭔가요?
별다른 건 없더라고요. 다 비슷비슷했는데 보안이 정말 빡세요. 아티스트 전자 팔찌를 검색대에 찍어서 불이 들어와야 통과가 되거든요. 밖에서 아티스트 접근 구역까지 들어가는 동안 검색대를 한 여덟 개는 통과해야 해요.
노는 분위기는 어땠나요?
공연도 좀 보고 했는데, 다 비슷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나오면 일단 스마트폰 꺼내서 찍고.
유명한 뮤지션들 중에는 특이한 라이더(뮤지션의 특별한 요구 사항을 적은 문서)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대기실에 새 좌변기를 요청하는 사람(마돈나라는 얘기가 있다)이 있는가 하면, 원디렉션은 탁구대를 설치해달라고 했다고 해요. 혁오는 그런 거 없었나요?
일단 저희는 특이한 건 없어요. 주는 대로 먹는 편이에요. 미국 가면 제임슨급의 좀 흔한 위스키 정도를 요구해요. 마셔도 머리 안 아픈 정도의 수준으로요. 물론 제가 라이더를 직접 쓰는 건 아니에요.
해외 아레나에서 공연하는 급의 슈퍼스타가 되면 따로 요청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저는 대기실이 안 넓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아레나급이 되더라도 같이 모여 있을 수 있는 곳이 좋아요. 다른 건 뭐 그냥 과일 정도 요청하려나 싶어요.
근데 예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그때는 술을 못 먹기도 했고 (그 맛을) 잘 몰랐는데, 지금은 마셔요. 맥주를 마셔봤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러다 또 와인을 마셨는데 그것도 맛있어서 조금씩 마시다가 이제는 위스키에 취미를 들였어요. 근데 뭐 다 혼자 마시니까요.
진정한 술맛을 아는 나이가 되었군요. 멤버들은 같이 안 마셔요?
같이 살면 함께 마실 텐데 멤버들 집이 좀 멀어서요.
월드 투어를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잖아요. 데뷔부터 지난 앨범까지 계산해보니 약 1년 반 만에 하나씩 작업물을 발표했더라고요. 앨범이 됐든 EP가 됐든 다 합해서요. 작업할 시간이 없지는 않아요?
과거에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렇게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효율적인 방법을 알거든요. ‘하고 싶을 때 기쁜 마음으로 하는 작업’이 사람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효율을 내는 방법인 것 같아요. 투어를 하다 보면 그런 때가 이동 중에도 있어요. 투어는 또 이동이 많으니까 그때그때 작업을 하는 거죠.
미국 투어 버스, 그런 콘셉트로 꼭 화보를 다시 찍어야겠네요. 투어 버스 의자에 통기타 들고 누워서 작업하는 모습으로요. 근데 지금 스물일곱이죠? 친구들이 이제 슬슬 취업을 할 나이예요. 20대 초반과 뭔가 마음가짐이 다른가요?
변하고 싶지 않아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마음이 그때와 다르다는 걸 알아요. 그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약간의 답을 얻고 그 방향으로 마음이 변한 것 같아요. 모든 건 행복하려고 하는 거니까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밸런스를 찾으려고요.
행복을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23> 앨범을 다시 들으며 가사를 살펴보니까 염세적이고 좀 우울한 구석이 보이더라고요.
원래 제가 밝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쾌활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 앨범을 만들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24> 앨범의 부제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방법’이잖아요?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실 그 제목도 진짜로 찾는 방법을 제안한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미거든요. 제가 뭐라고 답을 주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이런 부제를 달고 제가 고민했던 지점과 생각을 공유하자는 의미였어요.
이제 슬슬 다음 앨범을 준비할 때가 된 건가요?
다음은 항상 준비하고 있고, 지금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시기는 정해두었나요?
그것도 열어뒀어요. 저희가 생각했을 때 ‘이 노래는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마음이 들면 그 후로 몇 달 뒤에 작업물이 나오겠죠.
앨범 단위의 작업물은 전체적인 곡을 아우르는 주제 의식이 필요하잖아요.
다음 앨범도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아요.
근작 두 장(<23> <24>)을 노먼 니체라는 독일 엔지니어랑 작업했어요. 이분의 손길이 닿은 앨범이 수백 장인 장인이잖아요. ‘더 화이티스트 보이즈 얼라이브’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얼렌드 오여에 대한 팬심에서 연락한 건가요?
맞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얼렌드 오여(오혁의 공식 ‘최애’ 뮤지션)의 앨범을 엔지니어링한 분이라 함께 했어요.
노먼 니체는 혁오가 원하는 사운드를 잘 뽑아주던가요?
오랫동안 프로 엔지니어로 일해온 분이다 보니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을 많이 받았죠. 앨범을 낼 때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편인데, 저희가 새로운 작업 방식을 제안하면 옵션 두세 개를 말해주는 식이죠.
노먼 니체랑 신경전도 좀 있었던 걸로 알아요.
저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그분은 제가 곡을 쓴 배경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다 보니 사소한 걸로 싸웠어요. 볼륨을 줄이느냐 마느냐, 리버브(소리가 울리는 공간감)를 넣느냐 마느냐 하는 걸로요. 그분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분은 아니거든요.
그럼 프로듀서 역할도 한 거네요?
독일이라 그런지 엔지니어링의 영역이 좀 넓은 것 같더라고요. 사운드적인 부분에 대해서 뮤지션이랑 같이 의견을 나누는 것까지가 그분이 생각하는 엔지니어링의 영역이었어요. 녹음만 해주는 기사님이 아닌 거죠. 그래서 <24>에는 공동 프로듀서로 올라갔어요.
뮤지션들 앨범 낼 때 보면 일반 사람은 중요한지도 잘 모르는 마스터링이나 믹싱을 다시 하느라 계속 딜레이되잖아요. <24>도 이번에 마스터링에서 오래 걸렸죠? 마스터링에 따라 큰 차이가 나나요?
저희가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기에는 녹음 소스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결국 결과물에서도 원하는 형태가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았죠. 제가 이 과정을 항상 요리에 비유를 하는데, 재료(녹음한 음원)가 맛있어야 요리(믹싱한 음원)가 맛있게 나오더라고요. 재료가 맛이 없으면 아무리 양념을 치고 소스를 발라도 그건 다 소스 맛이죠. 결국 맛있는 요리는 재료부터 시작이다, 뭐 그런 깨달음을 얻었죠. (악기와 목소리를) 녹음하는 과정이 재료를 구하는 과정이고, 믹싱은 요리하는 과정, 그리고 마스터링은 최종 데커레이션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아요.
데커레이션을 하다가 재료가 별로였다는 걸 깨달은 건가요?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죠. 모르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 믹싱 들어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살려내야지 했던 건데, 살려낼 수가 없더라고요. <24>에서는 특히 톤이 문제였어요. 녹음 단계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넘어가야 해요. 근데 또,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안 하는 거죠.
혁오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송라이터로서 고민이 생기진 않았나요? 예를 들면 ‘팬이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 것인가, 내가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죠.
매슬로가 말한 인간 욕구의 5단계라는 게 있잖아요. 그중 가장 높은 수준의 욕구가 바로 자아실현 욕구고요. 자아실현 하려고 고생하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가치판단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질문한 제가 부끄럽네요.
저희 음악을 꾸준히 들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어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믿음이죠. 내 기준에서 좋은 걸 내면 저희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사람이 노력해서 낼 수 있는 결과물이 분명히 있고, 그걸 넘어서는 결과물이 있는 것 같아요. 각자가 주어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놀면서 낸 결과물요. 또 기존 팬이 아니더라도 그런 결과물에서는 대부분의 청자들이 계산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좋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럼 최근 앨범인 <24>에서 ‘이게 메인 요리다’라고 할 수 있는 노래는 뭔가요?
그 전체가 한 판이에요. EP 전체가 한 플레이트에 올라와 있는 한 요리예요.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최근 앨범을 들으면 초창기의 댄서블한 노래가 사라지고 거의 정통 8비트 록에 가까운 넘버가 늘어난 것 같아요.
요즘처럼 장르가 무의미한 시대가 없는 것 같아요. 옛날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장르가 변했다고 하기보다는 자신은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인데, 성정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는 거죠. 예전에 가을방학의 계피를 만나 인터뷰할 때 혁오가 아이유랑 제비다방(홍대의 소규모 공연장)에서 깜짝 공연을 했던 사건의 상징성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계피가 ‘혁오는 밑에서 치고 올라가고 아이유는 위에서 치고 내려오고 인디즈와 오버그라운드의 경계가 이미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했죠. 저 역시 오혁과 혁오가 경계를 허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인디즈와 오버그라운드의 경계, 각 스타일과 각 장르의 경계, 패션과 아트의 경계를 허문다는 느낌이죠.
사실 경계라는 게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노력의 경계를 넘어본 적은 있어요. 남들이 하는 걸 또 하는 건 제게는 큰 의미가 없거든요.
생각해보면 다다이즘 클럽이나 노상호 작가 등 소위 ‘아트력’ 넘치는 분들과 모여서 경계를 넘어서는 예술 집단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죠.
저는 인복이 좀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잘 만났어요. 잘 만났고 잘 맞거든요.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또 친구니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계속 재밌게 계속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노상호 작가의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한 갤러리 오프닝에 갔더니 다들 그 작품을 알아보더라고요. 다다이즘 클럽도 여기저기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죠.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그 집단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다 먹어버리겠다’고 한 적이 있던데요.
그런 불가능한 얘기를 왜 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그냥 재밌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에 그 친구들과 함께 한 작업이 있나요?
다음 주에 또 오랜만에 다다이즘 클럽이랑 같이 작업할 예정이에요. 꽤 재밌을 것 같아요. 다다이즘 클럽과 하는 아카이빙 작업인데, 아직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어요.
친구들 말고 같이 협업을 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카니예 웨스트? 카니예 웨스트랑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희한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정말 미친 사람 중 하나죠. 미국 대통령 출마 선언도 하고.
근데 모두가 예상한 일 아닌가요?
오혁은 뎀나 바잘리아의 ‘베트멍’을 좋아하는 셀럽으로도 꼽히죠. 바잘리아가 몸담고 있는 발렌시아가를 입었는데, 소회가 있다면?
다가오는 시즌의 옷들이 강력하더라고요. 부츠도 쇼에서 봤을 때보다 존재감이 크고요.
그래도 잘 어울리던데. 신체적인 특징이 있다면서요.
팔다리가 길어요. 리치가 180cm이고 다리 길이가 109cm예요. 뭐랄까, 원숭이 같은 느낌이죠? 전 이렇게 생겼어요.
with BALENCIA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