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연말 선물을 앞둔 당신에게 추천하는 이달의 시집 두 권

아 추워, 하고 들어서게 되는 서점에 난로가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려나.

BYESQUIRE2019.12.19
 

POEM

 
이달의 시집

이달의 시집

아 추워, 하고 들어서게 되는 서점에 난로가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려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난롯가에 모여서 언 손 녹이는 그 장면, 참 다정하겠다. 아는 얼굴끼리는 눈인사도 하리라. 곁에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하나 놓아본다. 그럼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멈추는 기분으로 작년 크리스마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누구와 어떻게 보냈든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니까. 아닌 게 아니라 나는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것은 몽땅 좋아한다.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럴 나이도 아니면서, 선물 같은 것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마음이란 언제나 훌륭한 법이다. 그런 것이 선물이겠지.
연말이어서다. 선물 포장이 되는지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손재주가 형편없는 나는 그런 주문 앞에서 늘 우물쭈물하고 만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책에 왜 포장이 필요한 거지. 이미 그것은 선물이 든 상자인데. 책의 표지를 열면 나타나는 그 세계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투덜거리기도 하는 것이나, 한편 미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표지도 제목도 모르게 슬쩍 건네고 싶은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물이 매번 좋을 리는 없다. 이런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어색한 사이. 아마도 소개팅 같은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눈에도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남자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여자에게 선물해줄 시집을 찾았다. 나는 내 일에 몰두하는 척하면서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부디 그 모든 것이 나의 상상이길 바라면서. 마침내 남자가 골라 온 시집은 네루다의 것이었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네루다의 시집은 아름다운 연애 시로 정평이 나 있다. 내 감탄에 남자는 우쭐해져서는 사랑의 시가 스무 편이나 담겨 있으니까요, 했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여자가 한마디를 보탰다. 한 편은 절망의 노래죠.
그들이 어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뒤로는 그들을 만난 적이 없다. 아마 잘 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라는 것은 고르는 순간이 거의 전부가 아닌가. 반해버린 대상에게 걸맞은 시집을 찾으려던 남자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의 연가(戀歌)가 결국 한 편의 절망의 노래가 되었다 해도 그 순간을 가치 없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의 모진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선물이라는 행위의 절정이 고르는 데에 있는 거라면, 완성은 주는 이에게 달려 있는 것일 테니까.
문득, 시집을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지키고 있는 이 자리가 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점 주인이라는 일은 참 멋진 직업이겠지. 그런 이들의 덕을 보며 살고 있는 거니까. 새삼 난로 따위가 없어도,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언 손이나 눈인사가 없어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없어도 괜찮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연말이 다 가기 전에 포장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엉성한 솜씨로 싸놓은 책을 누군가 풀어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방금 올라온 이들은 다정하다.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리는 시집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도 종종 있는 곳이 시집 서점이다. 당혹스러웠던 기억의 그때처럼 나는 내 일을 하는 척하면서, 그들이 각자 들고 올 시집을 기대하고 있다. 퍽 오래 걸린다. 그 시간이 아낌의 정도를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 나는 안다. 그 어떤 시집을 들고 내게로 오든 한껏 칭찬해줄 것이다. 너무 잘 어울린다고. 더없는 당신의 시집이라고. 그러면 그들은 기뻐하며 저 계단을 따라 내려갈 것이다.
모두가 떠나간 서점을 정리하다가 책장 앞에 서서 한참을 본다. 이 서점에서 내 돈을 주고 시집을 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서점을 하게 되면 생기는 아쉬움 중 하나가 이것이다. 기껏 진열하고 꾸며놓고 나는 나의 취향인 나의 서점의 손님이 되지 못한다. 혹시 내가 구매했다가 정작 필요한 손님에게 전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이 책들이 사실 다 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나에게 시집값을 지불해본 적이 없다. 누가 보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무도 없다. 작정하고 한참 책장 이곳저곳을 살핀다. 마치 손님처럼. 아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서점의 손님이다. 내가 집어든 것은 빨간색 표지 김언의 시집. 이것을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선물은 그렇게도 마련된다.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김언 문학동네, 2018.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김언 문학동네, 2018.

이달의 시집
김언의 이야기는 서늘하다. 서늘해서 자꾸 덮게 된다. 덮었던 시집을 도로 펼치게 된다. 기묘한 중독성. 그것이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아니겠는지. 너무 빨리 어두워져 마침내 깜깜해지는 겨울밤에, 당신의 너, 너의 마음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어간다면, 발 젖은 꿈을 꾸게 될지도. 아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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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유희경
  • WEB DESIGNER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