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레전드로 산다는 것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기성용을 통해 바라본 국내 스포츠 구단이 레전드를 대하는 자세.

선수 시절 다소 독단적이라는 평을 듣던 코비 브라이언트는 코트 밖에선 많은 선수들의 멘토였다. '킹' 르브론 제임스도 코비 브라이언트를 존경한다고 자주 표현한 바 있다.

선수 시절 다소 독단적이라는 평을 듣던 코비 브라이언트는 코트 밖에선 많은 선수들의 멘토였다. '킹' 르브론 제임스도 코비 브라이언트를 존경한다고 자주 표현한 바 있다.

“맘바 아웃(*Mamba Out, 아래 각주 참고)”.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지난 1월 26일 불의의 헬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NBA는 경기 시작 후 24초와 8초(코비의 등번호 24번과 8번)동안 서로 공격을 하지 않았고 NBA 로고에 코비 브라이언트의 실루엣을 사용하자는 얘기도 나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떠난’ 레전드를 향한 예우도 대단하다는 생각도 잠시, 비슷한 시기에 국내 무대로 돌아오려고 했던 ‘한국의 레전드’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한국 축구의 현재진행형 전설 기성용입니다.
(*은퇴식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21년간 한 팀에서 뛴 레전드로서 묵직한 한 마디 말만을 남겨서 전 세계 농구팬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맘바'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애칭으로 아프리카 독사를 뜻함.)

지난 1일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계약을 종료한 기성용은 자유계약선수가(FA)가 됐습니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친정팀 셀틱 FC를 비롯해 여러 팀에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뉴캐슬에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지만 서른 한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와 여전히 괜찮은 기량 덕분에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이죠. 기성용은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 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을 위해 결국 국내 복귀를 택했습니다. 국내 사정을 고려해 최근 연봉(약 33억원)보다 낮은 금액을 받고서라도 고향으로 돌아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금의환향을 꿈꾸던 것도 잠시, 친정팀 FC 서울과의 협상은 미미했습니다. FC 서울 구단 측은 이미 스쿼드 구상을 마친 상태라는 이유로 8억원 수준의 연봉을 기성용에게 제시했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수정된 금액이었고 첫 오퍼 때는 약 3~4억원을 제시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물론 K리그 기준으로 적지 않은 금액은 맞으나 전북 현대 모터스의 김진수가 14억원을 받고 역시 같은 팀이자 올해 마흔 한살의 이동국도 10억원을 받는 상황에서 FC 서울은 현재의 기성용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FC 서울이 제시한 연봉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당장 기성용이 돌아왔을 때 관중 동원, 유니폼 판매, 스폰서 등 구단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얼마나 될까요? 최소한 구단이 제시한 연봉 그 이상은 될 것입니다. 또한 더 넓게 생각하면 기성용과 같은 전국구 스타는 원정 경기에서만 뛰어도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녀서 지지부진한 K리그의 흥행에도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전북 현대가 기성용 영입에 관심을 드러내고 긍정적인 대화가 오가자 FC 서울 측에서 위약금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과거 기성용이 셀틱 FC로 이적할 때 FC 서울 측에서 선수 본인에게 이적료 일부를 지급했고, 이후 국내 팀 중에서 FC 서울이 아닌 다른 팀으로 입단할 경우 위약금(약 26억원)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전북 현대 입장에서는 기성용의 상징성에 15억원 이상의 연봉을 맞춰 줄 수 있으나 위약금까지 안기에는 부담이 따랐습니다. 전북 현대는 결국 기성용의 영입전에서 한 발 물러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기성용과 같은 레전드 선배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도 존재할 수 있었다.

기성용과 같은 레전드 선배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기성용 팬들을 넘어 국내 축구팬들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FC 서울 스스로가 품지 못할 거면 리그 흥행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라도 FC 서울 측에서 위약금 조약을 완화해야 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전북 현대에서는 위약금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지급할 의사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죠. 이후 팬들 사이에서 시즌권 환불 얘기까지 나오자 FC 서울 측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향후 기성용 선수와 다시 협상에 임하겠다” 고 서둘러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의 큰 상처를 입은 기성용은 K리그 복귀 계획을 접었고 스페인 무대 진출을 선언했고 오늘(21일) 스페인 1부 리그 팀 레알 마요르카에 입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기성용 사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선수는 물론 국내 축구팬들 모두가 상처를입었고, FC 서울은 물론 K리그의 위상마저 실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지금의 식어버린 민심보다도 나중이 더 걱정입니다. 자국을 빛낸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찾아볼 수 없는 작금에 팬들은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요? 또 향후, 어떤 해외파 레전드 선수들이 국내 복귀를 고려할 수 있을까요?

NBA는 지난 올스타 주간을 맞아 대대적으로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고 마지막까지 예우를 다했습니다. 결국, 올스타전 MVP 트로피 이름을 ‘코비 브라이언트 MVP 어워드’로 짓고 경기 방식도 바꿨습니다. 1~3쿼터까지는 기존대로 진행하고 4쿼터는 3쿼터 종료 때 리드팀의 점수에서 ‘24’점을 더한 스코어를 먼저 기록한 팀이 승리하는 방식입니다(3쿼터 종료 시 리드팀 점수가 100점이었다면 4쿼터에서 124점을 먼저 기록한 팀이 승리). 모두 코비 브라이언트의 등번호 24번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관중들은 기간 내내 코비 브라이언트를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NBA의 전설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배웅 속에 떠났습니다. 다른 의미지만 한국 축구의 레전드도 (고향팀의 홀대를 받으며) 스페인 무대로 떠났습니다. 이제 코비 브라이언트는 돌아오지 못 합니다. 그리고 기성용은 돌아오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기성용은 결국 스페인 무대 도전을 택했다. 그는 은퇴하기 전 국내로 복귀할 수 있을까.

기성용은 결국 스페인 무대 도전을 택했다. 그는 은퇴하기 전 국내로 복귀할 수 있을까.

- 신동균 피처 칼럼니스트
기성용을 통해 바라본 국내 스포츠 구단이 레전드를 대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