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오른 치즈, 과연 치즈의 대한 인식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풍미의 견문을 넓혀주는 치즈.



낯선 치즈


언뜻 보면 외모도 키도 조시 하트넷을 닮은 손님이 들어왔다. 벨기에에서 왔다는 그가 물었다. “서울에 어떤 치즈 가게가 있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서울에 치즈 가게가 있던가. 그가 떠난 후 한참 뒤에야 두 곳이 떠올랐지만 서울에는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즈 전문점인 프로마주리는 전무하고, 치즈와 햄류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제대로 된 델리도 딱히 없다. 머뭇거리다 뱉은 답변은 이랬다. “이…마트?”
현실이 그렇다. 국내 치즈 판매점은 주로 백화점을 위주로 발달해왔다. 저변이 확대되면서 대형 마트나 마켓컬리 같은 인터넷 쇼핑몰로 확대됐지만 소비층이 얇아서 아직 전문점이 많지는 않다. 떠오른 두 곳도 한 곳은 한남동에 있는 치즈플로라는 레스토랑을 겸한 수제 치즈 판매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터넷 쇼핑몰로 시작한 수입 치즈 소매점 유어네이키드치즈다. 살균하지 않은 수제 치즈를 맛볼 수 있는, 정말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치즈플로의 고객은 주로 외국인이고, 유어네이키드치즈의 고객은 주로 서울숲이나 뚝섬한강공원을 찾은 피크닉족이다. 그럼에도 치즈는 외식업계의 가장 뜨거운 아이템이다. 안다즈 서울 강남 지하에 있는 치즈룸의 대기 줄이 엄청나고, 뚜레쥬르의 디저트 치즈방앗간은 출시 한 달 만에 30만 개가 팔렸다. 버거킹은 통모짜와퍼로 재미를 봤고, 소곱창이나 부대찌개, 심지어 찜닭에도 치즈를 잔뜩 얹으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벨기에 손님이 다녀간 후 며칠 뒤 마침 치즈라면 국내에서 손에 꼽는 전문가인 서재용 S&S 내추럴 대표가 매장에 찾아왔다. 수입 식자재를 유통하는 구르메F&B 창업자이자 서촌 레스토랑 유로구르메를 운영했던 그는 1980년대부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해외에서 수입해 국내 호텔이나 백화점에 납품하면서 치즈 시장의 저변을 넓혀온 이다. 외국인 셰프나 해외파 셰프도 새로운 치즈나 식자재가 필요할 때면 그에게 가장 먼저 물을 정도다. 그에게서 서울에 왜 치즈 가게가 없는지, 국내 치즈 시장이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단초를 얻게 됐다. “치즈로 치면 우리나라는 미국식 식문화에 가깝죠. 미국은 영국의 식문화가 넘어간 거고요. 주로 소비하는 치즈도 체다나 스위스 치즈예요. 베이글 위에 크림치즈를 발라 커피와 함께 먹는 문화죠. 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바게트를 사선으로 길게 썰어서 고다나 과일 치즈를 얹어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어요. 프랑스는 햄, 토마토와 함께 카망베르를 얇게 썰어 넣은 샌드위치도 즐겨 먹죠. 정말 쿰쿰하죠.” 그 쿰쿰한 풍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도 유럽 치즈보다 미국과 호주 치즈가 주로 국내에 수입됐고, 치즈 식문화도 그에 더 가깝게 뿌리를 내렸다. 또한 치즈가 요리에 쓰이기보다 패스트푸드의 식재료로 소비됐고, 다양한 치즈의 풍미를 즐기는 방향보다 고소한 맛이나 쫄깃한 식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사용됐다. 사람들이 치즈를 가장 많이 접하는 음식도 그래서 햄버거나 피자, 샌드위치다. 그에 맞춰 국내에 보급되는 치즈의 종류도 모차렐라나 고르곤졸라, 체다, 카망베르로 굳어졌다. 치즈 판매량에 비해 종류가 상당히 박한 이유다. 그보다 많이 판매되는 건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로 대변되는 달콤한 치즈다. 물론 유럽에서 수입되는 치즈라고 해서 모두 퀄리티가 높은 건 아니다. 더군다나 저렴한 제품을 비싸게 팔려는 도매상이나 소매상, 좋은 제품도 무조건 싸게 사려는 셰프들로 인해 보관이 용이하고 재고 부담이 없는, 유통기한이 긴 유럽 제품이 국내에 많이 수입됐다. “제품에 두는 가치가 다르니까요. 프랑스에서는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인 제품을 소비하죠. 캔에 든 유통기한 1년짜리 치즈는 솔직히 거의 안 먹어요. 브리도 휠 타입(커팅하지 않은, 바퀴 모양의 덩어리 타입)의 큰 치즈를 먹고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코스트코가 그나마 좋은 치즈의 가치를 제일 잘 아는 곳이에요.”


좋은 치즈는 우리 생각보다 더 다양하고 깊은 풍미를 가지고 있다. 치즈 자체로도 느낄 수 있지만 젓갈이나 간장처럼 요리에 깊이를 더해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풍미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이를테면 파스타가 그렇다. 기본적인 버터 파스타를 만들었을 때 위에 어떤 치즈를 올리느냐에 따라 파스타의 풍미가 완전히 바뀐다. 파르메산 치즈를 올려 고소한 맛을 끌어올릴 수도 있고, 에멘탈을 치즈 그레이터에 갈아서 뿌리면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풍미의 감칠맛이 깃든다. 그라나 파다노는 짭쪼름한 맛과 쿰쿰하면서도 고소한 향을 더한다.

이런 치즈의 풍미는 박테리아와 곰팡이, 숙성 기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고르곤졸라를 예로 들면 숙성이 얼마 안 된 고르곤졸라를 비앙코, 60일가량 지난 것을 돌체, 그 이상 숙성한 것을 피칸테라고 한다. 오랫동안 숙성할수록 맛과 향이 더 강해진다. 국내에서 고르곤졸라 피자에 사용되는 건 대부분 피칸테다. 숙성 기간이 길어 푸른곰팡이가 가장 많고 그만큼 푸른곰팡이의 독특한 향과 맛이 가장 강하다. 또한 가격이 저렴하고 유통기한이 길다. 이 고르곤졸라는 피자뿐만 아니라 스테이크 위에 뿌려도 맛있다. 스테이크를 팬에 올려 어느 정도 익히다가 마지막으로 오븐에 구울 때 위에 툭툭 떨어뜨려 같이 구우면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때 돌체를 사용하면 스테이크 위에 잘 녹아들어 풍미가 어우러진다. 하지만 피칸테는 푸른곰팡이의 쏘는 향과 스파이시한 맛이 너무 강해 스테이크 본연의 풍미를 저해한다. “이제 흰 곰팡이를 사용한 카망베르나 브리는 국내에도 흔하죠. 숙성이 짧은 셰브르 치즈는 그냥 먹어도 맛이 괜찮고, 반면 3~6개월 숙성한 그뤼에르는 냄새가 독해요. 그렇지만 그뤼에르가 그라탱으로 오븐에 구워져 나오면 전혀 달라져요. 블루 치즈인 로크포르는 요구르트나 씨겨자에 넣고 레몬을 넣어서 드레싱으로 만들면 맛있어요. 유럽 치즈는 냄새가 독해서 국내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데 과일을 넣어 한 달 정도 숙성한 치즈는 엄청 부드럽죠. 오븐에 익힌 빵에 올려 먹으면 빵의 거친 맛과 치즈의 크리미한 맛이 중화돼서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요. 이런 치즈의 활용법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치즈가 어떻게 생겨나고 만들어졌는지를 아는 거죠.”
서울에 다양한 치즈 가게가 생기려면 치즈를 사용하는 요리의 저변이 더 넓어져야 한다. 와인 안주로 먹는 치즈의 양과 요리에 사용하는 치즈의 소비량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리에 치즈를 사용해야 일상에 더욱 잘 스며든다. 치즈는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역시 녹아야 새로운 풍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풍미의 견문을 넓혀주는 치즈

1 페이장 브레통 블루 도베르뉴 Paysan Breton Bleu D’auvergne
우유로 숙성한 프랑스 대표 블루치즈다. 푸른곰팡이 특유의 강하고 날카로운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기름진 조각을 툭 부러뜨려 혀 위에 한 점 올리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푸른곰팡이가 있는 부분이 혀에 닿을 때마다 톡톡 쏘는 맛이 중독적이다.

2 메르시 셰프 카망베르 Merci Chef Camembert
국내에서 유통되는 카망베르 치즈는 대부분 유통기한이 1년이다. 유통기한이 길면 당연히 신선도가 떨어진다. 메르시 셰프 카망베르는 유통기한이 60일인 프레시 치즈다. 저온살균 우유로 만들어 더 부드럽고 맑은 카망베르 본연의 맛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3 하데거 그뤼에르 포션 Hardegger Käse Le Gruyère
스위스 전통 제조법으로 생산한 치즈로 달콤한 견과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향은 부드럽지만 입안에서 강하게 퍼지는 고소함과 ‘단짠’의 쓰나미 때문에 한번 맛보면 쉬이 잊히지 않는다.
풍미의 견문을 넓혀주는 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