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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고유의 헤리티지를 녹여낸 제네시스, 람보르기니, 아우디, BMW, 볼보 5대의 SUV

시작하는 헤리티지 하나와 이미 녹아든 헤리티지 넷의 이야기.

BYESQUIRE2020.03.26
 
 

 The Heritage 

 
그릴을 중심으로 양옆에 두 줄로 자리한 헤드램프의 모습은 중앙에 박힌 엠블럼과 꼭 닮았다. 제네시스 GV80.

그릴을 중심으로 양옆에 두 줄로 자리한 헤드램프의 모습은 중앙에 박힌 엠블럼과 꼭 닮았다. 제네시스 GV80.

얼마 전 있었던 GV80 출시 행사에서 제네시스 디자인 센터장 이상엽 전무는 “포르쉐 911의 둥근 헤드램프처럼 제네시스 역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확실한 패밀리 룩 디자인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검지와 중지를 폈다. “그 시작은 바로 두 줄로 된 헤드램프입니다.” 그가 콕 집어 포르쉐 911을 이야기한 건 둥근 헤드램프에 담긴 헤리티지 때문일 거다. 둥근 헤드램프의 가계 유전은 911 모델이 처음 출시된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쪽 보닛 라인 앞에 봉긋하게 솟은 원형 헤드램프가 자리했는데, 지붕에서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옆 라인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사람들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1988년에 출시한 2세대와 1993년의 3세대(코드명 964) 역시 1세대 디자인의 방향성을 그대로 따랐다. 세세한 외관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둥근 헤드램프만은 변함없었다. 이후 둥근 헤드램프는 911의 헤리티지로 자리 잡았다. 1997년에 등장한 911 5세대(코드명 996)에서 둥근 헤드램프가 아주 잠시 사라지긴 했지만 결국 911의 골수팬들이 포르쉐에 압력을 넣어 되찾아왔다. 둥근 헤드램프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헤리티지는 브랜드가 만들어낸 탄탄한 유산이고 가치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시장의 담금질을 거쳐 완성된다. 그러나 일단 그 가치를 인정받고 나면 경도가 높은 철처럼 굳건하게 브랜드 혹은 제품의 가치를 지켜낸다. 팬들이 911의 둥근 헤드램프를 사수한 것처럼.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는 고유의 역사와 가치를 바탕으로 발전한다. 그 가치를 아는 소비자가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를 신뢰하고 따르는 이유다. 소비자의 신뢰는 제품에 대한 소비와 브랜드에 대한 소비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진다.
헤리티지의 형태는 유형과 무형을 따지지 않는다. 스포츠 드라이빙의 교과서라 불리는 BMW 3시리즈, 안전의 대명사 볼보, 사막 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레인지로버(이젠 롤스로이스도 자체 SUV인 컬리넌을 생산해 앞으로 별명이 어떻게 바뀔지도 의문이다) 등 기술, 주행 감성, 안전 등 무형의 가치가 헤리티지일 수도 있다. 이상엽 전무가 앞서 언급한 헤리티지는 무형이 아닌, 무형의 가치를 상징하는 유형의 아이덴티티를 말한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정체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멀리서도 둥근 헤드램프의 실루엣만으로 포르쉐 911이라고 즉각 알 수 있는 브랜드만의 ‘외모 유전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렉서스의 스핀들 그릴과 롤스로이스의 코치 도어, 애스턴마틴의 반대로 열리는 보닛 등이 좋은 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국내 유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에는 가계가 공유하며 대를 이어오는 확연한 디자인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GV80부터는 다르다. GV80은 제네시스 유전자 언어의 씨앗이다. GV80이 내세우는 핵심 형질은 크게 두 가지다. 크레스트 그릴, 그리고 두 줄로 된 헤드램프다. 그런데 왜 하필 두 줄일까? 오각으로 된 크레스트 그릴은 이미 G90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두 줄로 된 헤드램프는 조금 뜬금없어 보였다. 이미 G90에서 한 줄짜리 헤드램프를 봐서 그런지 오히려 한 줄짜리 헤드램프를 패밀리 룩으로 선택해도 큰 상관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두 줄을 선택한 비밀의 열쇠는 엠블럼에 있다. 제네시스 엠블럼은 5년 전인 G80 BH 때부터 사용한 날개 문양이다.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방패 모양의 문양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날개가 펼쳐진 모양이다. 그러니까 GV80의 앞모습을 엠블럼에서 가져왔다는 이야기다.
GV80의 헤드램프가 두 줄이라는 점을 빼면 전체적인 생김새가 G90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크레스트 그릴 프레임은 오각형으로 그 모습이 비슷하고 안쪽에 있는 지-매트릭스 패턴은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GV80에는 소소한 변화와 섬세함이 엿보인다. 디자이너들은 크레스트 그릴의 오각의 변을 조금 줄이고 뚜렷한 각을 만들었다. 또한 범퍼와 공기흡입구를 확연하게 구분했다. 세단과 SUV에 같은 얼굴을 사용하면서도 디테일로 차별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특히 그릴 양쪽 끝에 자리 잡은 헤드램프에서 시작해 펜더 위를 지나는 측면 방향지시등을 거쳐 테일램프까지 도달하는 두 줄의 간결한 선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장악한다. 현대 측 설명에 따르면 ‘역동적인 우아함’이고 내 표현으로는 ‘정제된 고급스러움’이다. 전자든 후자든 럭셔리 SUV 이미지에 멋지게 들어맞는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네시스의 두 줄 헤드램프 관련 댓글을 살펴보니 그 반응이 아주 활발하다. 호평이든 악평이든 사람들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린다는 건 제네시스 입장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그만큼 두 줄 헤드램프가 제네시스의 디자인이라는 걸 소비자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니까. 특정 디자인 요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헤리티지의 완성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GV80만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이야기하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제네시스가 현대차에서 빠져나와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지는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GV80 출시 이후 두 줄 헤드램프에 대한 호오의 추이를 두고 봐야 한다. 제네시스 측에서는 확신이 있다. 제네시스는 행사장에서 GV80 말고도 G80 완전 변경 모델과 G70 부분 변경 모델, GV70 신모델 등 올해 선보일 신차들의 실루엣을 함께 공개했다. 제네시스는 GV80 이후 출시 모델에도 두 줄 헤드램프를 적용한 점을 강조하며 걱정과 우려를 잠재웠다.(아쉽지만 크레스트 그릴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제네시스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에센시아(콘셉트카)와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은 신차의 공개된 실루엣을 보면, 차 앞면 모서리에 두 줄이 선명하다. 영광스러운 과거는 없지만 찬란한 미래로 꾸준히 밀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이런 행보를 보며 브랜드 ‘제네시스’가 내세우는 헤리티지의 미래에 희망을 품어본다.
 
 

람보르기니 각과 쐐기

 
다른 슈퍼카들이 직선을 버리고 유려한 곡선을 찾아갈 때 람보르기니는 각과 쐐기로 직선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슈퍼카는 람보르기니뿐이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다른 슈퍼카들이 직선을 버리고 유려한 곡선을 찾아갈 때 람보르기니는 각과 쐐기로 직선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슈퍼카는 람보르기니뿐이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지금의 람보르기니 디자인을 정립한 건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다. 그는 미우라를 비롯해 쿤타치, 디아블로 등 수많은 걸작을 디자인하며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스타일을 선보인 것으로 명성이 높다. 간디니는 미우라를 내놓으면서 슈퍼카라는 장르를 처음 경험했다. 그의 첫 슈퍼카인 미우라는 우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이었지만 쿤타치 이후에 내놓은 자동차는 달랐다. 대부분 직선을 사용하고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여전히 차체를 볼륨감 있게 부풀려 역동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페라리나 맥라렌의 디자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직선이 아닌 면과 면이 만나는 선에 날을 세워 존재감을 강조하고 다부진 인상을 만든다. 그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각과 쐐기(윗부분이 넓고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 형태다. 우루스도 람보르기니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여느 람보르기니 모델과 다르게 높이가 껑충 뛰어 조금은 어색하지만 옆으로 뻗은 Y자 주간주행등과 테일램프,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강렬한 캐릭터 라인과, 도어 손잡이 바로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는 쐐기가 드러나는 옆모습은 영락없는 람보르기니다. 처음 만든 SUV인데도 브랜드 헤리티지를 잘 녹여내 보통 SUV가 아닌 슈퍼 SUV의 모습을 갖췄다. 이게 람보르기니 헤리티지의 힘이다. 

 
 

아우디 LED 헤드램프

 
아우디의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길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글과 그림으로 감정을 표시할 수 있다. 아우디 A6.

아우디의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길을 비추는 데 그치지 않고 글과 그림으로 감정을 표시할 수 있다. 아우디 A6.

아우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LED 장인(匠人)’이다. 아우디는 2004년 A8 W12 양산차에 LED 주간주행등을 처음으로 도입한 브랜드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LED 주간주행등을 활용했다. A3의 ‘다이내믹 컷’, TT의 ‘아이코닉 스포티니스’ 등 모델마다 특정 모양과 디자인 철학을 결합했다. 주간주행등에 쓰는 LED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드램프로 옮겨갔다. 양산차에 상향등과 하향등 모두 LED를 넣은 풀 LED 헤드램프를 도입한 브랜드 역시 아우디가 처음이다. 2008년 R8 V10이 그 첫 역사의 주인공이다. 이후 아우디의 눈은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로 향했다.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의 핵심은 프로젝터에 쓰는 디지털 마이크로 미러 디스플레이(DMD) 기술을 헤드램프에 접목한 것이다. 100만 개가 넘는 마이크로 미러가 초당 최고 5000회까지 제각각 기울어진다. 그러니까 100만 개가 넘는 마이크로 미러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도로 위에 빛의 그림을 그려낸다는 뜻이다. 설정에 따라 빛의 영역을 가리거나 도로에 직접 쏘거나 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지금의 모습도 놀랍지만 마음만 먹으면 헤드램프로 도로에 무늬나 문장 등 다채로운 그래픽을 그릴 수도 있다. 헤드램프로 배트맨이나 슈퍼맨 로고를 도로에 그리며 달리는 날을 상상해본다. 이 기술은 무척 실용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헤드램프로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내거나 프러포즈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는 곧 나올 아우디의 전기 SUV 쿠페 모델인 e-트론 스포트백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헤리티지가 아우디를 장인으로 만들었다.
  
 

BMW 키드니 그릴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 키드니 그릴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BMW는 3D 패턴의 패널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BMW 7시리즈.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 키드니 그릴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BMW는 3D 패턴의 패널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BMW 7시리즈.

키드니 그릴은 자동차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디에이터 그릴이자 BMW의 상징이다. 콩팥 두 개가 나란히 놓인 것 같다고 해 ‘키드니’라는 이름이 붙은 이 그릴을 처음 적용한 것은 1933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공개한 303이다. 당시에는 엔진 룸이 크고 높았기에 두 개의 직사각형을 세로로 세운 디자인을 채택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엔진이 점점 작아져 높이와 너비가 더욱 작아졌다. 그런데 요즘 키드니 그릴이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에 선보인 7시리즈와 X7의 키드니 그릴은 보닛 끝 선까지 높이를 끌어올리고 양옆으로는 헤드램프와 맞닿을 정도로 너비를 늘렸다. 특히 명확히 두 개로 나뉘던 과거와 달리 가운데가 완전히 붙어 있다. 요즘 나온 키드니 그릴은 생김새만 멋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요긴한 기능까지 담아 이름이 더 길어졌다. ‘액티브 에어 스트림 키드니 그릴’이다. 주행 상황에 따라 그릴을 여닫을 수 있다. 그릴 안쪽에 액추에이터가 달려 있어 고속으로 주행할 때는 그릴을 닫아 공기 저항을 낮춰주고, 엔진 열이 과도하게 올랐을 때는 다시 열어서 엔진 룸의 온도를 낮춘다. 얼마 전 키드니 그릴에도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 시대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키드니 그릴이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무용론이 돌기 시작한 것. 하지만 BMW가 지난해 공개한 콘셉트카 비전 i넥스트를 통해 키드니 그릴을 없애는 대신 오히려 그 형태를 살리고 그 안을 3D 패턴의 패널로 막았다. 공기 흡입 대신 다양한 지능형 센서 하우징을 담당한다. BMW처럼 80년 동안 하나의 디자인을 고수하면서 점점 그 생김새를 발전시키고 기능까지 챙기는 자동차 브랜드는 흔치 않다.
 
 

볼보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볼보의 헤리티지는 북유럽을 기반으로 한다. 헤드램프에는 신화가, 리어램프에는 스칸디나비아의 지형이 보인다. 볼보 XC60.

볼보의 헤리티지는 북유럽을 기반으로 한다. 헤드램프에는 신화가, 리어램프에는 스칸디나비아의 지형이 보인다. 볼보 XC60.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다. 그것만으로도 헤리티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안전은 볼보에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동안 ‘안전한 차’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한몫한 각진 디자인이 볼보를 투박하다고 여기는 요소로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 이후 세계 자동차 디자인의 트렌드는 직선을 버리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을 미적 기준으로 삼는 트렌드가 자리 잡자 ‘가장 안전한 볼보’는 ‘안전하기만 한 볼보’가 됐다. 중국 지리 자동차에 인수된 후 폭스바겐에서 토마스 잉겐라트를 영입하는데, 이것이 볼보 디자인에 신의 한 수가 됐다. 잉겐라트는 신화 속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연상시키는 T자형 헤드램프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피오르 지형을 형상화한 리어램프로 북유럽 스타일을 더했다. 게다가 90, 60, 40 순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착실하게 일관된 헤리티지를 전달하면서도 차체에 맞게 크기와 형태가 다르다는 점이 놀랍다. 클러스터별로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를 완벽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 헤리티지 덕분에 볼보가 추구해온 안전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안전, 품위, 박력 등 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려면 눈에 보이는 디자인으로 먼저 구매자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 도로에서 배지나 로고를 보지 않고도 볼보를 골라내기는 어렵지 않다. 같은 볼보라면 크기를 비교하지 않아도 어떤 모델인지 구별해내기도 어렵지 않다. 공통 형질과 고유 형질의 유기적 조화다. 볼보의 헤리티지는 성공적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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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LANCE EDITOR 김선관
  • PHOTOGRAPHER 정우영
  • COOPERATION 윤현상재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