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뒤흔든 전 세계 나라별 모습, 런던편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팬데믹 시대에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From LONDON


writer 김세정
3월 2일 런던 지하철 피커딜리 라인에 탄 여성 승객의 모습. 이때쯤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3월 2일 런던 지하철 피커딜리 라인에 탄 여성 승객의 모습. 이때쯤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나는 런던에서 일하는데 주요 클라이언트는 영국에 있는 한국 기업들이다. 여기서 한국 기업이란 본사가 한국에 있고 영국이나 유럽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를 말한다. 남편이 햄프셔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딱 이런 한국 기업이다. 본사는 서울에 있고 공장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에 있다. 딸은 켄트의 기숙학교에 다닌다. 굳이 위치를 설명하자면 이 세 곳은 영국의 남동쪽 아랫부분에 있다. 런던이 삼각형의 꼭짓점에 해당하고 햄프셔가 왼쪽, 켄트가 오른쪽이다.
딸이 다니는 학교의 500여 명 학생 중 영국인을 제외하면 가장 큰 에스닉 그룹은 중국인이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마자 아이 학교에서는 매우 신속하게 대응했다. 기숙학교에서 전염병이란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영국 학교는 학기를 셋으로 나눈다. 학기 사이에 1~2 주 정도 짧은 방학을 두는데 이를 ‘하프 텀’이라고 한다. 이때 보통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아직 영국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하기 전이었음에도 아이 학교에서는 이메일을 보내 중국이나 홍콩 출신 아이들은 하프 텀에 본국에 있는 집에 다녀오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알렸다. 그럼 집에 못 돌아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묵을 곳을 찾아야 한다. 부득이 중국이나 홍콩의 집에 가야 하는 경우 영국으로 돌아오면 2주일이 지난 후에야 학교에 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국이나 홍콩에서 온 부모가 아이 학교를 찾아가려 해도 영국에 2주간 머문 후에야 학교를 방문할 수 있다.
학교의 이러한 조치는 곧 일본과 한국, 싱가포르 등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온 학생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다시 말해 나나 남편이 한국에 다녀오면 2주일 동안은 아이 학교에 갈 수가 없다. 학교뿐 아니라 회사 등도 비슷한 권고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3월로 예정되었던 남편의 서울 출장이 취소되었다. 그 기회를 이용해 시어머니표 김치를 공수해 오려던 찬란한 계획도 덩달아 사라졌다. “공장 쪽은 괜찮아?” 하고 새삼 남편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듯 물어봤더니 인도네시아는 아직 괜찮다고 한다.
결국은 사람 만나는 것이 나의 일인데 전염병이 거의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자 미팅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피차 선뜻 만나자는 소리를 꺼내지 못한다. 같은 한국인 처지에 “저기, 한국엔 언제 다녀오셨어요? 혹시 가셨다가 중국은 안 들렀다가 오셨어요? 그럼 못 만나요”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차라리 아예 미팅을 안 잡고 말지. 게다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확진자 수가 확연히 늘어나자 이제는 한국이나 중국이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2월의 하프 텀은 스키 여행 시즌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현재 확진자로 판명된 사람 중에는 이때 이탈리아에 다녀온 사람이 많다. 영국의 확진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영국인들의 불안감도 급격히 높아졌다. 급기야 사무실의 변호사 하나는 본인이 임신 초기라는 ‘커밍아웃’을 하더니 “임산부의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외부인과 미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회사 입장도 난감할 수밖에없다. 문제없다고 장담을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만일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나. 그런 이유로 한동안 한국에 가보지도 못했고 최근에는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다는 한국 기업의 법인장과 나는 미팅 룸에, 미팅 거부를 선언한 변호사는 같은 건물의 다른 방에서 콘퍼런스 콜로 회의를 진행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유럽의 상황이 나빠지는 마당이니 코로나19의 전염에 대한 걱정 역시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은 의료 서비스가 느리기로 소문난 나라다. 특히 전문의는 쉽게 만날 수가 없다. 영국에서는 ‘전문의를 만나 병의 원인을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더 불안한 건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대구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들었다. 영국 역시 상황이 더 급박해지면 의료 서비스에서 외국인을 어떤 식으로든 배제할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코로나19에 전염된다면? 그런데 ‘한국인이 병에 걸렸다’, 더 나아가 ‘한국인이 이 병을 전파했다’는 식의 소문이 돈다면? 전염보다 더 걱정되는 건 런던의 한국인으로 내가 맞닥뜨릴 상황들이다 .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차별과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법이다. 집 밖을 나서는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스름할 때 펍에 들러 맥주 한잔하려다가도 망설인다. 병이 옮을까 겁이 나기 이전에 무슨 일을 당할까 더 걱정된다. 설마 병에 걸리지는 않겠지, 설마 아픈 사람을 두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는 않겠지, 설마 영국인들이 공공연하게 차별을 하지는 않겠지, 영국인들이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맞지 않기를 바란다. 코로나19는 사회의 수준을 시험하는 중이다. 의료 수준뿐 아니라 의식 수준까지도.
팬데믹 시대에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