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19가 뒤흔든 전 세계 나라별 모습, 서울 편

팬데믹 시대에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BYESQUIRE2020.03.30
 

 

From SEOUL

 
writer 박세회
3월 9일 한국 의료진이 확진자를 앰뷸런스에서 병상으로 이송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2월 23일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바 있다.

3월 9일 한국 의료진이 확진자를 앰뷸런스에서 병상으로 이송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2월 23일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바 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다운타운에서 호손 스트리트로 가기 위해 14번 버스를 탔다. 아직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16명밖에 없었던, ‘코로나19’ 하면 모두가 중국을 떠올리던 불과 한 달 반 전의 얘기다. 아내와 내가 자리를 잡은 버스 중간 2인석 바로 옆자리에 부랑자 한 명이 앉았다. 알코올과 마리화나 냄새가 코끝을 강하게 스쳤다. 남자가 갑자기 우리를 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심하게 혀가 꼬여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아시아계라는 사실만으로 무시당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나이는 40대 중반에 키는 최소 185cm는 되어 보였다. 아담한 동양인 남자의 남성성이 불끈하려는 찰나에 아내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뒷자리에 앉아 그 남자의 동태를 살폈다. 다음 정거장에서 백인과 히스패닉계 중년 남녀가 버스에 탔다. 부랑자가 우리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크기의 목소리로 이들 커플에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싸움이 났고, 결국 운전사가 버스를 세우더니 조용히 하지 않으면 강제 하차시키겠다고 시비를 건 부랑자에게 으름장을 놨다. 호손 스트리트에서 빈티지 쇼핑을 끝내고 한미 국제결혼을 한 기자 선배와 만나 태국 음식점 ‘폭폭’에 갔다. 선배의 미국인 남편 제러미에게 버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래도 다행이야, 그 부랑자가 그냥 나쁜 놈이라서”라며 “나쁜 놈이지만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제러미가 말했다. “부랑자가 다 나쁜 놈은 아니야. 나는 부랑자랑 만나면 가끔 얘기를 주고받는데, 그들이 그렇게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나는 이 얘기를 듣던 여자들과 한편이 되어 제러미에게 말했다. “그건 네가 196cm의 백인 남자니까 가능한 일이고!”
포틀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는 대유행으로 번졌다.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 수가 엄청난 기세로 치솟으며 ‘중국인 관광객도 한국에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택시가 창덕궁을 지나 고희동 가옥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사님이 말했다. “그래도 중국인들 안 오니까 좀 낫죠? 여기 사는 사람들은 중국인 관광객들 시끄럽다고 난리던데.” 갑자기 웬 중국인? 방금 전까지 기사님은 코로나19 유행으로 손님이 얼마나 많이 줄었는지 상상도 못 할 거라면서 신세 한탄을 늘어놓던 차였다. 나는 그 순간 포틀랜드의 부랑자에게 당했던 유사 인종차별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인종차별이라고 느꼈을 때의 그 더러운 기분이 떠오르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여기 뭐 중국인만 오나요? 미국, 캐나다, 태국 사람도 많이 와요. 게다가 중국인 없으면 여기 가게 다 망해요”라고 살짝 노기를 실어 말했다. 기사님이 흠칫 놀랐다. “아니, 그건 가게 주인 사정이고, 여기 주민 입장에서는 중국인 안 오면 좋은 거 아녜요? 중국인들 엄청 시끄럽잖아.” 내가 중국인 관광객을 딱히 엄청나게 사랑하는 건 아니다. 사실 나 역시 아내에게 주말 단체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말 아침이면 십수 대의 관광버스가 수천 명의 글로벌 관광객을 동네에 부리고 인근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좁은 구도심의 2차선 도로 중 한 차선을 거대한 관광버스 행렬이 차지한 동네의 자가 운전자는 화가 날 수밖에. 그러나 포틀랜드 사건 이후 나는 바뀌어 있었다. 나는 마치 중국몽에 빠진 중국인처럼 중국인 관광객을 두둔하고 나섰다. “저 여기 주민인데 중국인 관광객들 안 싫어해요. 중국인만 시끄럽나요? LA 공항 가면 한국 사람 목소리만 들려요.”
 
3월 11일 한국의 방역 요원들이 지하철 내부 방역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3월 11일 한국의 방역 요원들이 지하철 내부 방역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다음 날 회사 게시판에 공지가 떴다. 재택근무 전환 전에 임시방편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한다는 내용이었다. 출근 시간이 11시로 2시간 늦춰졌다. 원서동 집에서 오전 10시 30분께 출근하려고 계동 길을 걸어 내려왔다. 계동 길을 내려오는 동안 관광객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관광객을 구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둘이나 셋이 모여 걸으며,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관광객이다. 포토 스폿으로 유명한 중앙고등학교에서 가회동 길로 넘어가는 언덕에도 사람 하나 없었다. 글로벌 장터 같던 시끌벅적한 풍경이 너무도 그리웠다.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면, 관광객 안내 자원봉사에 꼭 지원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에스콰이어〉에 입사한 지 2주쯤 지났을 무렵 확진자가 2000명을 돌파했다. 확진자가 2000명을 돌파했다고 점심을 안 먹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나는 용기를 내어 아직 데면데면한 팀 후배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말했다. 곤드레 정식을 파는 식당 상차림에 된장찌개가 올라왔다. 우리는 된장찌개를 무시하고 서로 다른 반찬만 집어 먹었다. 결국 후배가 이모님을 찾더니 국자와 국그릇 두 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나는 미안했고 동시에 고마웠다. 밥을 같이 먹기도 눈치가 보이는데 술자리라고 무사할 리가 없다. 지난 한 달 거의 모든 술자리 약속이 파투가 났다. 〈감기〉 〈컨테이전〉 〈킹덤〉 등 전염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넷플릭스와 왓챠의 실시간 인기 콘텐츠에 올라왔다. 그러나 가상을 그린 이야기 중에 보통 사람이 느끼게 될 외로움을 다룬 작품은 없었다. 나는 대유행이 이렇게 외로운 사건일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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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박세회
  • WRITER 박세회
  • PHOTO ⓒ GETTY IMAGES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