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페어플레이 위반으로 출전 금지를 당한 맨체스터 시티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재앙이 닥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덕배의 소속 팀인 맨체스터 시티가 ‘재정적 페어플레이 위반’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 2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나의 사랑하는 덕배에게


나는 맨체스터 시티, 줄여서 ‘맨시티’의 팬이기 이전에 세계 최강 미드필더 김덕배의 팬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먼저 밝히자면, 김덕배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우리 덕배는 벨기에 사람으로 케빈 더 브라위너라는 귀족적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다만 한국의 팬들이 그의 이니셜 KDB에서 따온 유치하고 촌스러운 별명 ‘김덕배’로 그를 부를 뿐이다. 금발에 흰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유럽 백인이지만 상관없다. 원래 사랑받는 아이돌은 팬이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불리기 마련이다. 덕배에게 처음 반한 순간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덕배의 맨시티가 손흥민의 토트넘 홋스퍼와 맞붙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017~2018 시즌 18 라운드 경기였다. 전반 22분께, 센터서클 오른편에 있던 덕배가 중앙 혼전 상황에서 흐른 볼을 잡지도 않고 논스톱으로 냅다 전방으로 찼다. 나는 이 공이 당연히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나갈 줄 알았다. 심지어 거기 어딘가에 공격수가 서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이 공은 크게 휘어 한 번 바운드되며 꺾이더니 맨시티의 최전방 공격수 세르히오 아게로의 발 앞에 다소곳하게 떨어졌다. 와, 이건 뭐 마술인가? 내가 축구공을 손으로 던져도 그렇게 예쁘게 공격수 발 앞에 진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경기에서 맨시티는 덕배의 활약에 힘입어 토트넘을 4 대 1로 압도했다. 경기 내내 얼굴이 벌게져서는 막걸리 한잔 걸친 것처럼 미친 듯이 성큼거리며 중원을 뛰어다니는 덕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진은 김덕배의 시야에 놀라며 “더 브라위너는 (경기장 전체를 위에서 바라보는) 중계진보다 시야가 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한국에 있는 다수의 소극적 해외 축구 팬들처럼 가끔 손흥민이 뛰는 경기만 보는 ‘국뽕’파였다. 친구 따라 염따 콘서트에 갔다가 게스트로 나온 더콰이엇에게 반하는 게 이런 심정일까?
그렇게 덕배의 경기를 지켜본 세월이 3년이다. 기간은 짧지만, 바쁜 30대 직장인이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중계하는 잉글랜드 리그의 경기를 빠짐없이 사수한다는 건 꽤 큰 애정이 들어가는 일이다. 덕배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맨시티를 응원하다 보니 자연스레 맨시티 팬이 되었다. 내가 팬질을 시작할 때부터 맨시티는 일부 축구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애증의 역사는 길다. 1990년대에 맨시티는 박지성의 전 소속 팀인 전통의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도시를 연고지로 하며 동네 못난 동생 취급을 받았다. 우승 잘하는 서울 야구팀 두산과 우승 못하는 서울 야구팀 LG와 비슷했다. 2000년대에도 구단주의 부실 방만한 경영으로 태양계의 명왕성처럼 10위권 밖을 떠돌았다. 겨우 빛을 본 건 2010년대에 와서다. 연거푸 우승컵을 거머쥐며 다른 팀 팬들로부터 돈으로 우승을 샀다는 비난을 받았다. 3년 차 팬인 나는 맨시티가 맨유의 못난 동생이던 시절을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마치 20년 차 팬처럼 외쳤다. “20년간 핍박받은 우리 시티즌(맨시티 팬의 애칭)에겐 누릴 권리가 있다”라고.
재앙이 닥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덕배의 소속 팀인 맨체스터 시티가 ‘재정적 페어플레이 위반’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 2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유럽축구연맹(UEFA)에는 ‘재정적 페어플레이’란 규정이 있다. 쉽게 얘기하면 번 돈만큼만 쓰자는 유럽 구단들의 약속이다. 약소 구단이 벌어들인 수입을 초과해 고액의 선수를 사들이는 근시적 투자를 막고, 돈 많은 구단주가 호주머니를 털어 사적으로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 규정에 따르면 3년간 4500만 유로 이상의 적자를 낸 구단은 징계를 받는다. 나는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 돈 있으면 쓰는 거지 있는 돈도 못 쓰게 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그러나 명색이 기자로 합리적 사고를 지향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웬 중동의 왕자님이 갑자기 구단을 통째로 사들이고 사재를 털어 네이마르도 사고, 홀랑드도 사고, 메시도 사서 팀을 꾸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그해에 우승을 하겠지. 우승 상금이랑 중계권 배당으로 더 큰 돈을 벌어 다음 해에도 우승을 하고 또 우승을 할 것이다. 그러면 축구가 과연 재밌을까? ‘재정적 페어플레이’란 결국 리그 전체가 재미없어지는 걸 막기 위한 합리적인 약속인 셈이다. 맨시티가 이걸 어겼다. 분식회계로 후원 수익을 부풀린 게 걸려 유럽 클럽 대항전 2년 출장 정지를 당했다. 구단 측은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며 연맹에 항의했지만 분위기는 험악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나의 팀과 나의 영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유럽 클럽 대항전에 2년간 출장 정지를 당했다는 건 맨시티가 각국 리그 최상위권 중 1위를 결정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뛰지 못하고, 각국 리그 차상위권 팀 중 챔피언을 결정하는 유로파 리그에서도 뛰지 못한다는 의미다. 유럽 축구 클럽 수익의 가장 큰 부분은 중계료다. 맨시티가 챔피언스 리그도, 유로파 리그도 뛰지 못한다면 결국 관객 수입도, 중계료도 꽤 크게 떨어질 것이다. 돈을 못 벌면?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2000년대처럼 10위권 밖으로 나가떨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나는 덕배의 탈출을 꿈꾼다. 나는 외국인이 한국 욕을 해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내가 곧 한국은 아니기 때문이다. 타 지역 사람이 내 고향 서울을 욕하면 심지어 같이 욕한다. 내가 곧 서울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새 각종 축구 게시판에 올라온 맨시티 욕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덕배 때문에 좋아하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맨시티는 내가 사랑하기로 선택한 구단이며, 이미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 내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자택일에서는 팀보다 사람이다. 얼마 전 덕배의 에이전트가 ‘임대 이슈가 불거질까 봐 레알 마드리드와 맨시티의 경기에 불참했다’고 밝힌 기사가 나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미 전통의 강호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자랑스러운 덕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덕배와 레알 마드리드라니, 짜릿해. 멋져. 생각할수록 새로워! 나도 결국 팀보다는 ‘내 새끼’가 우선인 사람이구나. 전통의 레알 마드리드에 비하면 맨시티는 신흥 강자일 뿐. 이날이 되어서야 ‘꼭 대기업 들어가야 한다’는 부모들 심정을 이해했다.
재앙이 닥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덕배의 소속 팀인 맨체스터 시티가 ‘재정적 페어플레이 위반’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 2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