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서점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서점을 운영한 지 4년이 흐른 지금, 서점은 그저 '낭만적 착각'인 것일까.



서점의 조건


서점의 조건을 생각한다. 이는 서점지기의 책무겠으나, 사람이면서도 사람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서점지기 역시 그러해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간신히 본질적 질문에 가닿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나의 서점처럼. 나와 나의 서점은, 그러니까 우리는, 치열하게 자문자답 중이다. 서점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내가 당면한 특별한 사정이란 공간을 넓히기로 한 결정이 되겠다. 열두 평 남짓한 자리를 더 얻어 한 달 가까이 공사 중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서점은 현재 크기의 두 배가 될 예정인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부수어 비워내고 덧붙여 채워가는 것은 아니나, 마음이 분주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런 주제에 기진맥진한 까닭은 무엇인지. 이제는 후회마저 사치다. 그저 서둘러 이 모든 일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나의 결정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점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축하가 아니라 위로이다. 고정비용이 두 배가 되었고, 공사를 하는 데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넣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랬어, 하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서점의 조건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꽤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서점을 하기 전 나는 회사원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 근처에는 작은 꽃집이 있었다. 한 서너 평쯤 되려나. 작은 면적에 비해 층고가 유독 높았던 그곳을 난 용무도 없이 자주 기웃거렸다. 딱 요만한 서점 하나 했으면 싶었다. 시집은 작고 얇으니 그리 큰 공간은 없어도 괜찮겠지. 높은 서가를 놓아두고 사다리를 하나 놓으면 근사하겠다. 아예 복층을 만들어두고 창문을 만들면 어떠려나.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창문을 열어두고 시를 낭독하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이다. 마음에 들면 서점에 들어와 그 시가 담긴 시집을 구매하기도 하겠지. 밤이면 등불같이 희미한 빛을 내놓을 것이다. 지친 이들이 깃들 수 있도록. 거기서 시집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공간인 만큼 조금만 있어도 가득 찰 것이며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은 시를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작은 꽃집에 대입한 상상 속 서점은 내게 서점의 원형 같은 곳이다. 정말 내 서점을 갖게 된 지금, 나는 그 서점과 지금의 서점을 견주어보곤 한다. 거기엔 있고 여기엔 없는 것. 여기엔 있고 거기엔 없는 것. 그것을 찾아내면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삶에 보다 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보상 심리일 수도 있겠다. 서점을 해서 돈을 벌기 어려운 이상 그를 대신할 만한 기쁨.
아닌 게 아니라,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 사 년째 접어들어 나는 많은 것에 시들해져버렸다. 지쳐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쉼 없이 아낌없이 이 작은 공간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이러스가 돌아 찾아오는 이도 줄어버리니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쯤이다. 서점 앞에 임대인 공지가 나붙은 게. 내 서점의 옆 가게가 빠진 모양이었다. 로터리 쪽으로 창문이 나 있는, 늘 탐을 내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공지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계약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몇 달이 되어도 떼어지지 않던 공지. 그럼에도 임대에 관심을 갖고 문의해 오는 사람들. 어떤 일이든 돕겠다며 등을 떠미는 지인들. 아니, 어쩌면 단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 상상 속의 서점, 바로 그곳. 계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어느 밤, 나는 분명 그 서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서점은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책을 읽으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서점이란 그저 책을 주고 돈을 받는 가게가 아니라는 ‘낭만적 착각’이 내 상상 속에서는 현실이었다. 그런 일이 여기서 일어나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옹송옹송 모인 사람들이 시집을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풍경을 곁에 둘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서점을 더 지켜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는 공간을 넓히는 일이겠지만, 한편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작은 꽃집을 보며 꿈꾸었던 서점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짝 곁을 주는 그런 서점 말이다. 더는 망설이고 싶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임대인 구인 게시물을 슬쩍 떼어버렸다.
이 공간의 이름은 ‘사가독서賜暇讀書’라 지었다. ‘독서를 위해 휴가를 내주다’라는 뜻이다. 세종대왕이 성균관 학자들을 위해 제공했다는 독서 휴가 제도의 명칭에서 빌려왔다. 사람들에게 독서 휴가를 줄 입장은 되지 않지만, 이곳이 그런 시간을 위한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는다. 곧 모든 공사가 끝이 날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모른 척해버릴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서점의 조건. 그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달의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최현우, 문학동네, 2020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최현우, 문학동네, 2020

그렇다면, 사람의 조건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사람으로, 사람답게 만드는가. 나는 나를 타자로부터 확인하곤 한다. 그런 일은 퍽 외로운 것이다. 최현우의 첫 시집은 마음을 혼자이게 두는데, 그런 덕분에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다.
서점을 운영한 지 4년이 흐른 지금, 서점은 그저 '낭만적 착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