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의 조건
」
내가 당면한 특별한 사정이란 공간을 넓히기로 한 결정이 되겠다. 열두 평 남짓한 자리를 더 얻어 한 달 가까이 공사 중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서점은 현재 크기의 두 배가 될 예정인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부수어 비워내고 덧붙여 채워가는 것은 아니나, 마음이 분주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런 주제에 기진맥진한 까닭은 무엇인지. 이제는 후회마저 사치다. 그저 서둘러 이 모든 일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나의 결정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점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축하가 아니라 위로이다. 고정비용이 두 배가 되었고, 공사를 하는 데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 넣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랬어, 하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서점의 조건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꽤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서점을 하기 전 나는 회사원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회사 근처에는 작은 꽃집이 있었다. 한 서너 평쯤 되려나. 작은 면적에 비해 층고가 유독 높았던 그곳을 난 용무도 없이 자주 기웃거렸다. 딱 요만한 서점 하나 했으면 싶었다. 시집은 작고 얇으니 그리 큰 공간은 없어도 괜찮겠지. 높은 서가를 놓아두고 사다리를 하나 놓으면 근사하겠다. 아예 복층을 만들어두고 창문을 만들면 어떠려나.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창문을 열어두고 시를 낭독하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이다. 마음에 들면 서점에 들어와 그 시가 담긴 시집을 구매하기도 하겠지. 밤이면 등불같이 희미한 빛을 내놓을 것이다. 지친 이들이 깃들 수 있도록. 거기서 시집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공간인 만큼 조금만 있어도 가득 찰 것이며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은 시를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작은 꽃집에 대입한 상상 속 서점은 내게 서점의 원형 같은 곳이다. 정말 내 서점을 갖게 된 지금, 나는 그 서점과 지금의 서점을 견주어보곤 한다. 거기엔 있고 여기엔 없는 것. 여기엔 있고 거기엔 없는 것. 그것을 찾아내면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삶에 보다 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보상 심리일 수도 있겠다. 서점을 해서 돈을 벌기 어려운 이상 그를 대신할 만한 기쁨.
아닌 게 아니라,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 사 년째 접어들어 나는 많은 것에 시들해져버렸다. 지쳐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쉼 없이 아낌없이 이 작은 공간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이러스가 돌아 찾아오는 이도 줄어버리니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쯤이다. 서점 앞에 임대인 공지가 나붙은 게. 내 서점의 옆 가게가 빠진 모양이었다. 로터리 쪽으로 창문이 나 있는, 늘 탐을 내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공지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계약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몇 달이 되어도 떼어지지 않던 공지. 그럼에도 임대에 관심을 갖고 문의해 오는 사람들. 어떤 일이든 돕겠다며 등을 떠미는 지인들. 아니, 어쩌면 단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 상상 속의 서점, 바로 그곳. 계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어느 밤, 나는 분명 그 서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서점은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책을 읽으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서점이란 그저 책을 주고 돈을 받는 가게가 아니라는 ‘낭만적 착각’이 내 상상 속에서는 현실이었다. 그런 일이 여기서 일어나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옹송옹송 모인 사람들이 시집을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풍경을 곁에 둘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서점을 더 지켜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는 공간을 넓히는 일이겠지만, 한편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작은 꽃집을 보며 꿈꾸었던 서점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짝 곁을 주는 그런 서점 말이다. 더는 망설이고 싶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임대인 구인 게시물을 슬쩍 떼어버렸다.
이 공간의 이름은 ‘사가독서賜暇讀書’라 지었다. ‘독서를 위해 휴가를 내주다’라는 뜻이다. 세종대왕이 성균관 학자들을 위해 제공했다는 독서 휴가 제도의 명칭에서 빌려왔다. 사람들에게 독서 휴가를 줄 입장은 되지 않지만, 이곳이 그런 시간을 위한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는다. 곧 모든 공사가 끝이 날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모른 척해버릴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서점의 조건. 그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이 달의 시집
」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최현우, 문학동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