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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네시스 G80의 여유있는 시승기

제네시스는 ‘기원’이란 뜻이고 제네시스의 기원은 G80이다. 새로운 G80, 제네시스의 신기원을 타고 이포보로 달렸다.

BYESQUIRE2020.05.02
 
 

기원의 기원 

 
첫 시승차를 기다리던 기자 초년 시절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왔구나.’ 내 눈앞에 그동안 모니터로만 봤던 신형 G80이 있었다. 모든 신차에 이렇게 들떠서는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사하라 사막의 고운 모래를 뒤덮은 듯한 색상의 이 신형 G80을 내가 그만큼 기다려왔다는 이야기다. 2015년 11월 현대차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했다. 당시 ‘제네시스’라는 이름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독립 브랜드가 아닌 현대차 세단의 모델로 이미 익숙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가 모델이 아닌 브랜드로 승격되니 세대교체를 하며 출시할 차에 달 모델명이 필요했다. ‘G80’은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표방하고 내놓은 첫 차의 모델명이다. 브랜드 ‘제네시스’의 기원인 셈이다. 이번 신형 G80은 제네시스가 두 줄로 된 헤드램프를 처음 적용해 헤리티지로 천명한 모델이다(적용은 G80이 먼저였으나 GV80이 앞서 출시됐다). 제네시스 헤리티지의 신기원인 셈이다. 
 
 
제네시스의 디자인은 어렵다. 현대차의 다른 세단과 차별점을 드러내면서 독자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유형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G80은 비례와 균형이 잘 잡힌 디자인이다. 면을 가로로 쭉쭉 늘이고 대부분의 선을 옆으로 길게 펼쳤다. 유려하게 휘는 곡선 대신 직선을 단호하게 그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출시 전에 본 렌더링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눈에 익을 정도로 봤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다. 외관 디자인의 백미는 지붕에서 트렁크 리드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패스트백 스타일의 라인이다. 특히 뒤 유리를 타고 내려가는 선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헤드램프, 측면 램프, 테일 램프에 두 줄로 연속성을 준 점이다. 머릿속으로 외부 디자인의 다른 선과 면을 지워 렌더링을 돌려보면 세 개의 램프가 가상의 선 위에 정렬한다.
시동 버튼을 눌러 잠자던 V6 3.5리터 트윈 터보 엔진을 깨웠다. 진동과 소음, 회전 질감, 뭐 하나 거슬리는 게 없다. 탄력이 느껴지면서도 매끈한 떨림이 조용히 내 몸의 근육에 전달된다. 이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물리고 네 바퀴에 그 동력을 옮긴다.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을 실행하려는 순간,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맞다. 이 차는 제네시스다. 값비싼 수입차를 타더라도 우리는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을 이용하지만 G80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 실정에 아주 잘 맞는 내비게이션이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경기도 여주 이포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별내 IC로 진입했다. 진출로인 북여주 IC까지 약 60km가 곧게 뻗어 있어 중고속 주행을 테스트하기에 아주 좋은 코스다. 시승 전부터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무브먼트였다. G80은 이미 출시된 G70과 G90 사이에 포지셔닝한 만큼 이 둘 사이에서 콤팩트 세단의 스포티함과 플래그십 세단의 진득함을 어떤 비율로 매만졌을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G80의 움직임은 G70보단 G90에 가깝다. 크기와 무게 때문에 초반 가속 반응을 걱정했지만 1300rpm에서부터 최대 토크를 쏟아내 초반 반응이 의외로 경쾌하다. 중고속으로 오르자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더니 바퀴에 꿀을 바른 것처럼 매끈하게 앞으로 나간다. 물론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서스펜션이나 엔진 반응이 조금 바뀌긴 할 테다. 그러나 디폴트 설정은 부드럽고 여유로운 주행을 추구한다. 가속페달에 올린 발에 힘을 주자 엔진이 즉각 반응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올린다. 최고 출력 380마력, 최대 토크 54.0kg·m의 힘이 5m에서 단 5mm 빠지는 전장 4995mm의 덩치를 이끈다. 처음엔 적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예단을 후회했다. 차를 모는 사람은 안다. 엔진의 힘이 적소에 정확하게 분배되는 느낌을. G80이 그런 차다. 실린더 안 벽에 묻어 있는 기름까지 알차게 사용하는 느낌이랄까? 380마력을 염두에 두고 그 급의 차가 발휘할 수 있는 한계를 생각하며 달리다 보면 선을 넘는다. 선을 넘는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운전대는 여유롭게 반응한다. 이리저리 촐싹거리며 돌려보려 해도 경거망동을 할 수가 없다. 압권은 정숙성이다. 시속 100km로 달릴 때도 조수석 동승자의 숨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다. GV80에 들어간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기능(실내로 유입되는 소음을 반대 파형의 음파로 상쇄하는 기술)은 없지만 이중 접합 유리를 사용하고 도어와 차체 사이에 웨더 스트립을 두툼하게 두른 덕분이다. 바깥에선 G80 람다 엔진이 엄청난 소음을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가 차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승차감마저 정숙하다. 얕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를 달리듯 울퉁불퉁한 노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충격이 서스펜션을 통해 세련되게 걸러진 후 요추에 전달된다.
 
 
요즘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기술도 중요한 덕목이다. 브랜드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과 속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있는 종로로 돌아올 때는 7번 국도를 지나치며 고속도로 주행 보조 장치를 켰다. 고속도로도 아닌데 왜? 제네시스의 고속도로 주행 보조 장치는 여느 자동차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처럼 차가 멈추면 기능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다. 멈춘 차가 알아서 다시 출발할 만큼 똑똑하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국도에서 쓰기에 알맞다. 급작스럽게 내 차로로 끼어들거나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잡는 차만 없다면 이포보에서 종로까지 가속페달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기능은 14.5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들어간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다. 길을 안내할 때 차 앞에 붙어 있는 카메라로 촬영된 도로 영상을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띄우고, 그 위에 주행 경로와 거리 등을 그래픽으로 표시한다. 고속도로 진·출입로에서도 쓰임이 쏠쏠하겠지만 구도심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G80의 가격은 5907만원에서 시작한다. 이 가격이면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렉서스 ES 등이 경쟁 상대다. 일단 내부 공간에선 G80의 승리다. 프리미엄 E 세그먼트 중에서는 유일하게 휠베이스가 3m가 넘는다. 1열과 2열 공간이 넉넉하고 여유롭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 탓에 뒷자리 머리 공간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뒷자리 승객 머리 위 천장을 움푹 파서 쿠페형 모델의 단점을 상쇄했다. 편의 장비도 우위에 있다. 18방향으로 조절 가능한 시트, 오토매틱 도어 클로징, 고속도로 주행 보조 시스템, 3-존 에어컨, 뒷좌석 듀얼 모니터, 렉시콘 18 스피커 시스템 등 독일 브랜드 플래그십 모델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옵션을 G80에서 경험할 수 있다. 6기통 가솔린 엔진을 얹은 독일 차의 기본 모델은 9000만원대에서 시작하고 G80의 풀 옵션 가격은 9000만원에 조금 못 미친다. 뒷자리 옵션만 살피면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제네시스는 쇼퍼드리븐까지 사정권에 두고 G80을 개발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뒷자리 승객을 위한 안락함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대를 거머쥔 이가 즐거워할 생동감이 충분하다. 나라면? 운전대를 쥐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G80은 이렇게 좋은 국산 차를 만난 적이 있었는지 지난 시간을 곱씹게 만든다. 하지만 제네시스의 눈은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G80은 해외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을 해야 한다. 고무적인 사실은 G80의 주요 판매 시장인 미국 언론 매체들이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내심 기대가 된다. G80이란 제품의 가치는 이미 충분해 보이니까.
 
 

실내에 스며든 여백의 미 

 
‘디자인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다.’ 많은 요소를 집어넣어 화려하게 부풀리는 디자인보다 덜어낼 수 있는 한 모든 요소를 덜어내면서도 핵심 관념을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다. 자칫하면 허전하고 실속 없어 보이며 차별성을 담보하기가 힘들다. 제네시스가 G80 실내를 ‘여백의 미’로 채운 이유다. 억지로 공간을 채우지 않고 오히려 비워둬 여운을 남긴다.
수평선이 주는 안정감과 유려한 곡선이 우아한 무드를 완성한다. 넓고 완전하게 기울어진 대시보드가 이에 합을 맞춰 여백의 미를 드러낸다. 간결한 구성은 이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러나 여백의 강조는 스타일만 위한 것이 아니다. 얇은 A필러, 테두리가 없는 룸미러 등은 운전자의 시야를 넓히고 개방감을 높여 안정적인 주행에 도움을 준다. 조작 버튼 역시 최소화했다. 사용 빈도가 잦은 에어컨 조작 버튼과 비상등 버튼만 대시보드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입주시켰다. 언뜻 불편할 것 같았는데, 직관적이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소재는 가죽, 나무, 알루미늄을 썼다. 천연 재료지만 그렇다고 화려하게 뽐내지도 않는다. 은은해야 고급이니까. 확연하게 구분되는 물질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방식이 혀를 내두를 만큼 세련됐다. 특히 대시보드 상단 패널과 송풍구에 쓰인 알루미늄, 나무 장식이 맞닿은 부분이 그렇다. 세 가지 소재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비상등 버튼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나무를 깎아 비상등 버튼을 만든 것처럼 연결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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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LANCE EDITOR 김선관
  • PHOTOGRAPHER 정우영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