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5000억짜리 묘한 땅, 경복궁 돌담 속 송현동의 이면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그 돌담이 부서진다면.



그 돌담이 부서진다면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내가 고미술을 좋아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중학생 때 장래 희망은 늘 고고학자였다. 잊힌 유산을 발견하고 유물에 얽힌 이야기에 파고드는 상상은 짜릿했다. 대학 다닐 때는 평일마다 고궁을 참 많이 갔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덕수궁을 쏘다니며 호사스러운 위안을 얻었다. 폭설 내린 다음 날 찾아간 종묘 정전의 아름다움은 평생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경복궁과 안국역 사이의 거대한 돌담이 눈에 들어온 게.
처음에는 경복궁의 일부인 줄 알았다. 경복궁 담이 꺾이는 동십자각 건너편 사진관부터 안국역 초입인 안국빌딩까지 율곡로를 따라 돌담이 블록 전체에 서 있었다. 300m에 가까운 길이, 3m는 족히 넘을 높이로 촘촘히 쌓은 돌담은 그 비례와 양식이 조선 시대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재개발 구역의 담장으로 치부하기엔 만듦새가 옹골졌다. 이곳에 늘 있을 것만 같은 영속성이 느껴질 정도로. 당시만 해도 경복궁 근처에는 국가 기밀 시설과 외교 시설이 상당히 많았다. 자료와 각종 소문을 확인할 방법이 요원했다. 주한미국대사관과 관련된 정황만 포착하고 리서치를 그만뒀다. 다만 궁금했다. 돌담 안 모습이. 서울의 가장 중심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용도를 모르는 공간에 분명 수십 년은 족히 쌓였을 세월의 지층은 무엇일까. 포털 지도의 인공위성 사진을 봐도 그 부분만 흐리멍덩했다. 면적만 보면 서울광장의 3배, 덕수궁과 맞먹는 이 땅은 대체 무엇을 품고 있는 걸까. 만일 돌담이 무너진다면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2013년에 기사를 하나 접했다. 한진그룹이 추진하는 경복궁 옆 호텔 사업을 서울시가 최종 불허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쪽에 호텔 지을 땅이 없을 텐데’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바로 그곳이었다. 나의 밀지. 땅 이름도 그제야 알았다. 송현동(松峴洞). 예부터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 그리 불렀단다. 바로 신들린 리서치가 시작됐다. 예전에 비해 자료가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인지라 각종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송현동은 과거 순종 황제의 장인이자 친일 세도가였던 윤덕영의 사저가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이 매입해 직원 숙소를 지었다. 해방 후에는 미국이 양도받아 대사관 직원 숙소로 썼다. 어렴풋이 느꼈던 영속성의 비밀이었다. 2002년에는 삼성생명이 매입하고, 2008년에는 한진그룹이 사들여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 했지만 당시 부지와 맞닿아 있는 풍문여고, 덕성여중, 덕성여고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이 침해된다는 이의 때문에 호텔 건립에 대한 행정소송이 대법원까지 갔고 결국 한진그룹이 패소하면서 땅의 미래가 아득해졌다.
여기서 나를 사로잡은 건 한옥 호텔이 아니라 바로 삼성생명이다. 아니, 왜 여기서 삼성이 나와?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사실 삼성생명보다 몇 년 먼저 송현동 부지에 눈독을 들인 곳이 있었다. 삼성문화재단이다. 삼성문화재단은 1997년에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송현동 부지를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현대미술관을 짓기 위해서였다. 1995년 1월 홍라희 여사는 호암미술관장에 취임하면서 운현궁과 지근거리에 있는 부지에 현대미술관을 세운다고 공표했다. 지금의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과 가든타워 사이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택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를 맡았고 게리는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처럼 금속 패널이 생동감 있게 물결치는 디자인을 제안했다. 하지만 생각해둔 부지에 미술관 짓기는 난항을 겪었고 결국 새로운 종착지가 바로 송현동이었다. 나의 밀지, 송현동에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들어설 뻔한 것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1997년 말 IMF 외환 위기가 터지고 환율이 두 배 가까이 폭등하며 당시 삼성문화재단이 주한미국대사관과 계약한 금액이 1400억원에서 1000억원 넘게 상승했다. 결국 삼성 측은 위약금을 감내하며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삼성생명에서 다시 사들였지만 건축 규제가 심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결국 한진에 넘긴 것이다.
만일 게리의 뮤지엄이 실제 세워졌다면 어땠을까? 처음에는 고궁 옆에 괴상한 건물이 생긴다고 난리가 났겠지만 결국 랜드마크라는 이름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도시 재생이 부각되면서 자하 하디드의 DDP가 먹던 온갖 쌍욕이 제곱수로 내리꽂혔을 테다. 어쩌면 부숴버리자는 폐기론까지 제기됐을지도. 고요한 경복궁에서 길 하나 건넜는데 금속 패널이 반짝이며 물결치듯 춤추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완전 헛말도 아니다. 그러다 지금에 와서는 DDP가 서울 명소가 된 것처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힙한 도시 서울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핫스폿으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게리의 회고전을 통해 파악한 ‘The Samsung Museum of Modern Art’ 프로젝트는 독창성과 감각 면에서 그의 전성기 특성이 고루 망라된 완성도 높은 건물이었다. 21세기 서울 풍경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올해 다시 송현동 소식이 벼락처럼 날아왔다. 한진그룹이 송현동 부지를 공개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각종 규제 때문에 상업성이 바닥인 ‘계륵’ 같은 곳이라 재무 개선을 이유로 판다는데, 시가 5000억원짜리 묘한 땅을 누가 살까 했더니만 서울시가 ‘갑툭튀’ 했다. 서울시에 판다는 소리도 안 했는데 송현동 부지를 공공 시설로 개발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송현동 부지에 대한 온갖 시나리오를 돌리던 서울시는 최종적으로는 녹지 시설을 조성하고 국립 문화 시설을 ‘데려와’ 국고 지원을 받기로 결정한 듯 하다. ‘납치’ 대상은 국립민속박물관이다. 현재 경복궁 안에 자리 잡은 건물이 향후 궁 복원 사업으로 인해 해체되면 박물관은 세종시로 옮겨가게 될 운명인데, 그렇기에 국립민속박물관을 20년간 빈 땅으로 굴리던 송현동 부지로 모시고 녹지 시설까지 조성하자는 게 서울시 아이디어다. 이는 서울시의 뮤지엄 벨트와도 연관이 있다. 지척에 있던 국군기무사령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바뀌었고, 바로 옆에 있던 풍문여고가 강남으로 이사 가면서 그 부지에 현재 서울공예박물관을 건립 중이다. 두 뮤지엄 사이에 존재하는 송현동 부지에 국립민속박물관을 짓고 녹지 시설을 크게 조성하면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갤러리 거리, 북촌, 인사동이 뮤지엄 세 곳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경복궁 앞에 있던 옛 조선총독부 철거를 마무리하던 1996년 12월, 나는 부모님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갔다. 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돌을 시민에게 나눠주는 이벤트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저걸 꼭 갖고 싶었다. 그냥 보면 화강암 한 덩이지만 내게는 엄청난 역사의 파편이었다. 이사 몇 번을 하며 사라진 덕에 마음이 허했는데 또 다른 역사의 흔적이 기다린다면 할 말 다했다. 만일 송현동 부지가 개발되어 그 옹골진 돌담이 무너진다면 나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돌담 조각을 주워 올 거다. 돌담 조각을 손에 들고 잡초와 건물 기단부가 정신없게 지배하는 황폐한 풍경 또한 눈에 또렷이 담을 거다. 돌담이 무너지며 드러난 그곳은 어쩌면 요즘 보기 힘든 도심 속 천연 녹지이려나.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송현동의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이곳을 가득 채울 녹음을 상상해본다. 동네 이름처럼 소나무 숲이 생기면 좋겠다. 소나무 하면 역시 금강송이지. 국가가 관리하는 최상급 금강송 군락지인 울진 숲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조선 왕릉에서 나를 맞이하던 거대한 소나무 군락, 그 고요하고 강골한 기질이 구현됐으면 좋겠다. 이리저리 걷다 보면 낮은 건물이 있겠지. 개성적인 건물보다는 부드럽고 섬세한 건물이 나를 안아주면 좋겠다. 어떤 건축가가 어울릴까? 오랜만에 김칫국 마시며 들뜨기로 기분 좋은 날이다.

Who’s the writer?
해리 전(전종현)은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다. 〈월간 디자인〉과 〈SPACE〉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활동했고 〈브리크〉 부편집장을 거쳐 현재 편집위원으로 있다.
그 돌담이 부서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