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부부의 세계'의 후폭풍, '부부'에 대한 통찰력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추천 5

영화감독, 시인, 보스토크 편집 동인, 소설가, 피처 디렉터의 시선으로 바라본 '부부'

BYESQUIRE2020.05.26
 

부부의 세계

 
 

롤랜드 & 바네사 버트랜드 〈바이 더 씨〉(2015)

서로에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도 여전히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사람들. 상상만으로도 숨통이 조여오는 그런 서글픈 운명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운 관계를 내버려둬야 한단 말인가? 그들은 부부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어찌할 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내는 관계. 실상 이런 부부가 지구상에 얼마나 많을까! ‘브란젤리나’ 커플이 이혼하기 직전 그들이 실제 부부로 열연한 영화 〈바이 더 씨〉도 그런 부부를 보여준다. 관계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부부가 집을 떠나 아름다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혹시나’, ‘어쩌면’, ‘마지막으로’라는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좀처럼 관계는 나아지지 않는다. 멀어졌다가도 이내 애틋해지기를 반복하는 두 사람. 그러나 이미 무너진 부부의 세계를 다시 붙일 방법은 요원하다. 지나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단순한 이치와 같이, 이미 변해버린 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 부부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렸다. 서로 할퀴고 피 흘리며 가까스로 얻은 작은 변화. 우리는 일단 이것을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비록 손톱 크기만 한, 미약한 변화일지라도. 자, 이제 이들 부부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이번에는 관계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부가 노를 저어 물결을 타고 바다로 끌려갔다 돌아오듯 부부에게도 그저 흐름에 몸을 맡겨야 살아남는 시간이 존재할 테다. 김초희(영화감독)
 
 

리 & 에블린 애보트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영화를 평하며 현실성 운운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의 장면을 현실에 견주어 곱씹는, 그만의 묘미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실제 부부인 존 크래신스키와 에밀리 블런트가 합심한 작품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어떤가. 한 영화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유저 ‘사장님’은 말한다. “아무리 조용하려고 해도 코골이를 어떻게 막나요?” 코골이가 부부 싸움의 원인이자 심지어 이혼 사유도 되는 마당에, 영화는 코골이를 비롯해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소리 트러블’에 꽤나 관대하다. 어쩌면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점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괴물이 아니리라. 부부 사이에 분명 이미 텄을 방귀 소리나 트림 소리가 잘 다뤄지지 않는 걸지도. 고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부부이기에 보듬어주고 부부라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둘만의 소리, 그 ‘불결함’에 대해 침묵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지점을 흠결로 보고 싶진 않다. 좀 더 들여다보면 영화는 부부만이 주고받는 내밀한 소리에 관해 함구하는 쪽을 택했다. 어쩌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부부가 돈독해지려면 자신들이 살아가는 소리를 주위에 시시콜콜 떠벌릴 필요가 없다고 논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험담을 웃음 재료로 파는 부부 예능 프로그램에 진절머리가 났다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보길 권한다. 이 영화는 공포물이 아니라 서로의 낭만을 지켜낸 한 부부의 로맨틱 드라마니까. 김신식(감정사회학자, 〈보스토크〉 편집 동인)
 
 

헨리 & 올리브 키터리지 〈올리브 키터리지〉(2014, HBO)

매사에 신경질적인 아내와 그것을 묵묵히 견디는 남편. 나는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를 그렇게 읽었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사사건건 화를 내기도 힘들겠다 싶은 아내 올리브에게 질려버렸고, 그럼에도 자신의 일상을 반듯하고 즐겁게 꾸려나가려는 남편 헨리의 노력에 깊이 감응했다. 소설 속에서 헨리는 불행한 가정 대신 일터에서 만난 젊고 생기 넘치는 이성 직원 데니스를 보며 어느 사이 자신이 잃어버렸고 이제는 영영 되찾지 못할 것 같은 인생의 ‘진짜’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올리브와 헨리도 사랑했던 적이 있을까? 한때나마 사랑했다면 언제 끝이 났을까? 사랑이 없는 부부의 삶은 무엇으로 유지될까?
이토록 새로울 것이 없는 부부의 일들. 집도 있고 자식도 있고 번듯한 직업도 있지만 오직 사랑만이 없는 이 세계가 4부작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드라마는 달랐다. 리사 촐로덴코가 연출을 맡았고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매사에 신경질적이며 남편을 경멸해 마지않는 아내를 연기했다. 이 두 여성의 조합만으로도 드라마를 보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문제는 리처드 젠킨스가 헨리 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린 헨리의 모습은 적어도 리처드 젠킨스가 전혀 아니었기에(물론 리처드 젠킨스는 훌륭한 배우이다). 나는 리사 촐로덴코가 어째서 올리브의 남편 역으로 그를 캐스팅한 것인지 의아했다. 그리고 1화가 시작하고 채 5분도 되지 않아 충격에 휩싸였다.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2화를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리처드 젠킨스가 연기하는 헨리가 올리브를 이보다 더 미치게 만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리사 촐로덴코는 원작 소설과 달리 청자가 절대적으로 올리브의 심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게 원작 소설의 모든 것을 뒤집는다. 겨우내 올리브가 정성스레 키워 꽃을 피운 튤립을 자신이 무심하게 꺾을 때 그녀의 마음이 깊게 베어지는 것을 헨리는 알지 못한다. 남편을 잃고 상심한 데니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밥을 떠먹여주는 남편을 보며 올리브는 자신의 몫으로 놓인 경멸을 삼킨다. 나라면 당장에 그 접시를 헨리 얼굴에 집어던져버렸을 텐데. 유진목(시인, 손목서가 대표)
 
 

마티 & 웬디 버드 〈오자크〉(2017~, 넷플릭스)

첫 화를 볼 때는 〈브레이킹 배드〉처럼 스릴 넘치고 피 튀기는 범죄물인 줄만 알았다. 첫 시즌 초반, 웬디 버드가 남편 마티 버드를 두고 바람을 피울 때는 ‘드러그 카르텔 막장 치정물이구만’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시즌이 끝나갈 때쯤엔 내 머리가 이 드라마가 던지는 단 하나의 거대한 질문에 사로잡혔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웬디와 마티를 하나의 운명으로 합쳐지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아이들을 향한, 혹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힘이 아니다. 두 사람을 하나의 육신처럼 묶는 힘은 함께 지은 죄의 역사에서 나온다. 드러그 카르텔의 돈세탁을 맡으며 동료 회계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마티, 남편이 드러그 카르텔의 돈세탁을 하는 줄도 모르고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에 불륜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웬디. 웬디를 죽이려 드는 미치광이 목사를 살해한 마티, 자신의 딸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동업자의 아버지를 청부해 살해한 웬디. 두 사람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버드 패밀리가 겪는 악몽의 완벽한 그림을 속속들이 공유하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서 부부란 그런 것이다. 따로 태어났지만 죄의 압력에 육신의 세포막이 깨지며 붙어서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 누구를 위하여 총이 울리는지, 묻지 않고도 아는 의식의 키메라로 살아가는 존재가 결국 부부인 것이다.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닉 & 오드리 스피츠 〈머더 미스터리〉(2019)

솔직히 말해 진지한 영화가 부부 관계를 긍정적으로 그린다면 나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부부 관계는 판타지이며, 우리에겐 판타지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오직 환상의 영역에 남겨둬야 한다. 제니퍼 애니스턴과 애덤 샌들러가 주연을 맡은 〈머더 미스터리〉 역시 부부에 대한 터무니없는 판타지에 기댄 영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중산층 부부가 결혼한 지 15년 만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우연히 탑승한 대부호의 요트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삼류이거나 좋게 봐도 이류다.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가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하고 애정을 되찾는다는 내용! 무능력한 순경이었던 닉 스피츠는 별안간 FBI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고 삼류 소설에나 빠져 지내던 오드리 스피츠는 히어로 못지않은 과감함과 추리력을 뽐내며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메시지, 다시 말해 판타지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두 사람의 결합이 완벽한 한 쌍을 만든다. 그러므로 더 멋지고 부유한 다른 이성은 필요치 않다.’ 극히 의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환상 또는 믿음 아닌가. 이런 착각이라도 없다면, 누구도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정지돈(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