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행으로 제격인 몰디브 여행 리뷰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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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행으로 제격인 몰디브 여행 리뷰

<에스콰이어 UK> 기자 핀레이 렌윅이 몰디브로 럭셔리한 혼행을 떠났다. 불과 석 달 전의 경험을 읽으며 '언제 적 얘기야'라고 느낀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ESQUIRE BY ESQUIRE 2020.06.14
 

Lonely  Planet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어 소리가 들려온다. 이른 아침의 잔잔한 바다에 부드럽게 물결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미친 듯이 펄떡펄떡 뛰는 게 보인다. “아… 젠장.” 상어의 것이 틀림없는 등지느러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며 나는 혼잣말로 욕을 뱉는다. 들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2300만 년에 걸쳐 완성된 최고의 포식자, 완벽한 연골어류라는 운명의 칼이 불과 5m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눈앞에 포털 사이트의 뉴스 헤드라인이 보이는 것 같다. ‘홀로 열대 관광하던 영국인, 상어에 물려 사망’. 기사 아래에는 “휴가 가서 상어에게 먹히는 사람도 있다니!”라는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엔 ‘좋아요’가 438개나 된다.
 
상어가 더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제 조물주에게 갈 때가 되었나 보다. 그나마 계단에서 구르거나 갑자기 폐동맥이 막혀 죽는 것보다는 나은 걸까? 넓은 고대 바다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게 그보다는 훨씬 드라마틱하긴 할 테니까 말이다. 나를 거두러 온 바다의 저승사자가 드디어 제대로 형상을 드러낸다. 상어! 상어…이긴 한데, 크기가 송어 정도다. 기껏해야 1m 정도 될까. 크기가 작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검은꼬리상어다. 이젠 펄떡거리지도 않아서 나는 축소 버전의 위대한 포식자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완벽한 형태의 곡선을 이룬 지느러미 끝은 검고, 노란빛 피부는 매끈하며, 눈은 안이 빈 유리알 같다.
아름답다. 상어는 이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푸른 물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진다. 눈앞 풍경은 몰디브의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물결이 이는, 매끈한 오팔빛 바다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됐으며, 다행히 허벅지나 팔목도 멀쩡하다.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들어줄 사람만 있다면 말이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렇게 쓴 적 있다. “고독은 괜찮다. 하지만 고독이 괜찮다는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 일생 최고의 열대 섬에 여행 온 지 오늘로 사흘째다. 인도와 스리랑카 남서쪽에 걸쳐 펼쳐진 1200개에 달하는 산호초 섬으로 구성된 나라, 몰디브에 와 있다. 나는 갑자기 남의 몸에서 깨어난 타인이라도 된 양 새삼 ‘내가 어쩌다 이곳에서 이러고 있나’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그리고 부정적으로. 대체 어떤 복된 인간이 일이랍시고 이런 지상낙원에 보내진단 말인가? 그런데 그 지상낙원에 어쩌다 친구도 없이 혼자 오게 됐단 말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 질문이 바로 답이다. 나는 파라다이스로 홀로 떠나는 여행이 어떤지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이곳에 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라다이스에 혼자 남겨지면 어떤지 알기 위해서.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면,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스리랑카의 가느다란 소나무 숲을 뚫고 이리저리 달리는 낡고 푸른 기차 안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리마의 인터넷 카페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매연에 질식할 것 같고, 어지럽고, 시끄러웠다. 거기서 느낀 외로움은 그 크기가 너무 커서 기쁨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무렵의 베를린에서 숙소에 틀어박혀 창 너머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소리만 들은 적도 있다. 아마존의 흙탕물 위를 기어가는 화물선에 히치하이크를 한 경험도 있다. 어두워지자마자 테니스 공 크기만 한 딱정벌레들이 내 해먹 위의 깨진 전구 속에 들어가 덜그럭거렸다. 하지만 탐험과 휴가는 다른 개념. 내가 궁금했던 건 혼자 한 장소에 머물며, 긴장을 풀고 세상일을 잊고 여유롭게 보내는 감흥이었다. 해변과 수영장, 그리고 생김새는 좀 이상하지만 왠지 입맛을 다시게 되는 과일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을 터였다.
 
 
 
작년 영국여행사협회(ABTA)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여행자 6명 중 1명이 혼자 휴일을 보냈다고 한다. 2011년에 비해 세 배 늘어난 수치다. (편집자주- 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클룩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93%가 홀로 떠나는 여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슬프고 외로운,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은 이상한 사람의 전유물로 여겨진 때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유행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테크놀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죠.” 세계 최대의 여행 가이드북 출판사 론리 플래닛에서 발간한 〈솔로 트래블 핸드북〉의 필자 새라 레이드의 설명이다. 오늘날은 모바일 앱을 통해 트렌디한 레스토랑을 예약할 수 있고, 틴더를 통해 그날 저녁 데이트 상대를 찾을 수 있으며, 구글 맵을 이용해 낯선 골목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인 게 내키지 않을 때면 인스타그램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 말이다. “이런 변화가 여행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거죠. 혼자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에요.” 혼자일 때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과 더 연결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말이다.
 
레이드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제 딱하게 여기기보다 대담하다고 생각할 거라고. 나도 여기로 오기 전에 비공식적 설문 조사를 해봤다. “혼자인 게 좋고, 혼자 여행했을 때 그 장소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전혀 느끼지 않고요.” 홀로 자주 여행하는 직장 동료의 말이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의 차크라(chakra)를 재조정하는 행위죠.” 다른 동료가 이렇게 받아쳤다. 그러고는 곧장 정정했다. “농담이고요.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친구 하나는 감상 대신 조언을 남겼다. “책 한 권 챙겨 가. 두 권이면 더 좋고!”
내 경우에는 두 가지 이유로 꾸준히 혼자 여행을 다녔다. 내가 원해서, 그리고 내게 필요해서. 혼자 떠돌아다니는, 매혹적이면서도 어느 곳에서든 잘 녹아드는 그런 영화 속 청년 캐릭터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서른 살의 독신자로서 인간관계가 ‘진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들 바빠지고, 오래 사귄 파트너들이 생기고, 이해하기 어려운 모기지 상품에 저축하고, 휴가를 떠나고, 숙취는 더 심해지고, 도시에서 살다 보니 만나기는 더 까다로워졌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을 6개월에 한 번씩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우리는 이기심을 자아실현이라 부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만약 단체 대화방 안의 누군가가 리스본 단체 여행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굳이 타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은 20대 중반부터 친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살다 보면 다른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나는 요즘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게슴츠레한 눈으로 몰디브의 가장 큰 섬에 위치한 수도 말리에 도착했다. 말리는 14만3000명이 사는, 모스크와 시장이 고층 빌딩과 해변 아파트와 공간을 놓고 다투는 조그맣고 수수한 메트로폴리스다. 눈앞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푸른 바다만이 이곳이 파라다이스임을 암시한다. 아마 당신도 어느 사진에서 본 적이 있을 그 바다. 그러나 수면 부족 때문인지, 나는 흥분과 동시에 묘한 불안감도 느낀다. 내가 정말 여기에 왔다니. 내가 이 여행을 하고 있다니.
벨라나 국제공항 밖으로 나서니 전투복과 베레모 차림에 수술용 마스크를 쓴 군인 한 명이 느슨한 포즈로 기관총을 들고 있다. 그는 반짝이는 가죽 부츠 발로 햇볕에 익어 열기를 뿜어내는 갈라진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벽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경고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다. 공항 직원과 여행자들은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 사이에서 나도 괜히 스스로를 의심해본다. 내분비샘이 평소보다 부어 있나? 등에 통증은 없나? 호흡은 어떤가? 잠깐, 내 쪽으로 기침하지 마세요!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 위치가 어디쯤 되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따가운 햇볕 속으로 나선다. 깔끔한 흰 유니폼을 입은 남성이 미소 지으며 나를 에어컨이 나오는 승합차로 안내한다. 차는 바닷길을 따라 새로 깔린 흠집 없는 차도로 들어서고, 그는 정면을 주시한 채로 말한다. “그리 멀지 않습니다.” 수상비행기 터미널을 향해 속도를 높이자 다양한 빛깔의 고층 건물들이 흐릿해진다. 여행사 건물 벽에 붙어 있던 꿈의 백사장에 가려면 프로펠러가 두 개 달린 조그만 8~15인승 수상비행기를 타야 한다. 색이 바랜 부두에는 선명한 붉은색 에어 택시가 끊임없이 넘실거리고, 그 위로 하와이안 셔츠와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커플들이 기어오른다. 백사장으로 가는 길이다.

 
반바지에 반팔 셔츠, 에이비에이터 선글라스 차림의 수상비행기 기장이 엔진을 켠다. 이륙하자 곧 말리는 지도상의 빽빽한 작은 점으로 줄어들었다가 이내 사라진다. 파란 하늘과 부동액 빛깔의 바다가 적도를 향해 펼쳐진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구글에 ‘혼행’을 쳐 넣고 주요 연관 검색어가 무엇인지 살폈다. ‘혼행은 안전한가요?’ ‘혼행은 재미있나요?’ ‘혼행은 이상한가요?’ ‘혼행은 외롭나요?’ ‘혼행이 나와 잘 맞을까요?’
비행기가 바다 위에 쿵 내려앉았다. 육지에 다다르자 우리는 곧바로 빌라로 안내받았다. 빌라는 하얀 리넨 옷을 입은 커플이 손을 맞잡고 건강하게 태닝한 피부로 미소 짓고 있는, 그런 팸플릿 사진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곳이었다. “즐겁게 묵으십시오.” 문이 닫힌다. 이제 여기에 나 혼자다. 지금껏 내가 묵어본 숙소 중 가장 근사한 곳이다. 완벽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보다 크다. 나는 숙소를 어슬렁거리며 가끔 미친 듯이 웃어댄다. 그걸 들을 사람도 없다.
 
물을 틀고 TV를 켠다. 오후의 어른거리는 햇빛과 바다가 보이는 야외 데크로 나간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열 장도 더 찍는다. 하나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끝내주네!” 몇 분 만에 댓글이 하나 달린다. 기분이 좋다. 여긴 파라다이스다. 나는 다시 걸어 다니다 또 사진을 찍는다.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나?
 
10여 년 전에 체코의 억만장자 지리 스메첵은 열대에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구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몰디브의 섬을 사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섬은 살 수는 없고 정부로부터 임차하는 것만 가능하다. 둘째, 빌린 섬도 온전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관광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와 몰디브의 노동시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리조트나 호텔을 만들어야 한다(몰디브 최대 사업은 관광업이고, 두 번째가 어업이다). 스메첵은 완벽한 휴양용 섬을 만드는 데 2억 달러를 썼다.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운 좋고 돈 많은 손님들을 위한 곳이었다.
그렇게 2013년 누누 환초(Noonu Atoll)에 벨라 프라이빗 아일랜드가 개장했다. ‘벨라’는 당신이 익히 들어 익숙한 그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현지 디베히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다. 말리에서 수상비행기로 45분 거리에 있다. 초가지붕에 고상하고 값비싼 북유럽풍 인테리어, 와인 셀러까지 갖춘 레지던스와 빌라 45채로 이루어져 있다. 레스토랑도 몇 곳 있다. 코펜하겐의 유명 레스토랑 노마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 가우샨 데 실바가 만든 레스토랑 아라구(Aragu), 정글 속의 외계인 소굴처럼 야자수 위로 우뚝 솟은 높은 곳에 위치한 누에고치 모양의 일식풍 레스토랑 타바루(Tavaru) 같은 곳. 조식 메뉴에는 프랑스산 버터와 좋은 와인, 캐비아가 나온다.
 
아무리 더운 날도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바닥에는 요르단에서 수입한 포장석이 깔려 있다. 지붕이 있는 테니스장과 스쿼시장, 클라이밍 월, 몰디브에서 가장 다양한 셀렉션을 갖췄다는 와인 셀러, PGA 승인을 받은 나인홀 골프장(잔디를 가꾸는 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제트스키, 개인 요트, 잠수함까지 있다.
 
“만약 셀린 디온이 손님이 묵는 빌라에서 공연해주길 원한다면 저희가 준비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 매니저 리사 제이콥슨의 말이다. “물론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요.” 역시 CEO와 협상가, 재력가, 출세 지향적인 신혼부부 등 국제적 제트족이 휴가를 보내는 섬다운 스케일이다. 셀린 디온에겐 다행스럽게도, 내 지갑 사정에 그녀를 초빙하는 건 조금 무리다. 대신 첼시 FC를 좋아하는 체코인 코치가 테니스를 함께 쳐달라는 내 부탁을 흔쾌히 받아주어 땡볕 아래에서 엉망진창으로 한 시간 동안 공을 주고받았다. 그는 내 형편없는 지구력도 유머러스하게 받아주었다. 레스토랑 타바루에서는 조라는 이름의 솜씨 좋은 데판야키 셰프가 칼을 휙휙 돌려가며 와규를 구워준다. 맛있다. 개인 요트는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었고, 잠수함도 물 위에 떠 있다. 암벽을 타는 사람도 없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단체로 와야 할 수 있는 활동이겠거니 생각해본다.
 
 
 
혼자라서 기뻐하고 또 혼자라서 짜릿해하던 나는 문득 명랑한 갈망을 느낀다. “저거 봤어?”, “믿어져?” 같은 질문은 그저 과장으로 들릴 것이다. 함께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순간을 목격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이곳에 오면 꼭 골프를 쳐보라는 추천이 있었다. 몰디브 최고의 코스라고. 골프를 치는 대신 코스만 조금 둘러본다. 수많은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려대고 있는 아름다운 녹색 잔디의 부조화에 감탄한다.

 
태곳적부터 현실과 예술 작품 속 사람들은 홀로 여행을 떠났다. 스스로를 시험하고 고귀한 고통을 느껴보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는 페르시아와의 싸움에서 원군을 요청하느라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뛰어간 뒤 죽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외딴섬에 떨어져 미쳐갔다. 프라이데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뵈르겐 오우슬란은 최초로 단독 남극 횡단에 성공했다.
트위터 CEO이자 순자산이 42억 달러에 달하는 부자, 잭 도시는 2018년 마음을 안정시키겠다며 미얀마로 여행을 떠나 굶주리며 묵언 수행을 했다. 비록 당시 가장 큰 이슈였던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고난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네티즌의 분노를 사긴 했지만(“마음을 안정시키려거든 배나 한 척 사거나 하지 그랬어요, 잭”). 나는 이 영혼을 찾는 남자들의 판테온에 나 자신을 추가했다. 손끝에서 마법이라도 부릴 듯한 행색의 마사지 테라피스트 노이가 내 어깨의 뭉친 부분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긴장 푸세요.” 그녀가 말한다. 나도 알아요, 노이. 노력하고 있어요.
 
혹시나 이곳을 여행하는 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봐 가명 몇 개를 만들어뒀다. 괜히 정체를 밝혔다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나는 가상 화폐 시장의 큰손이다. 석유 화학 재벌가에서 쫓겨난 상속자일 수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나 자신에 대한 책을 써서 대단한 인기를 모은 사람이다. (요즘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이 또 뭐가 있을까?) 하지만 곧 여기서는 그런 가명이 별 쓸모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개인 섬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르는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투숙객들과는 짧고 의례적인 교류만 나눈다. 자전거를 타는 프랑스인 커플이 내 옆을 지나가며 손을 흔든다. 기름을 바른 듯 매끈한 비늘을 가진 물고기 떼와 오리를 발견한 어린 소년이 기쁨에 찬 환호를 지른다. 혼자 있으니 이런 경험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는 즐거이 이들에게 집중하고, 사소한 친절함을 계속 곱씹는다.
 
아침 식사 때마다 눈부시게 멋진 베르사체 실크 셔츠에 반바지만 매일 바꿔 입은 차림으로 등장하는 남성이 있다. 나는 어느새 그의 등장에 집착하게 됐다. 그는 해변에 선 바로크 시대의 왕이다. 한 남자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파트너를 여러 포즈로 공들여 촬영하는 걸 지켜본다. 직원 세 명이 근무를 마치고 해 질 녘에 노를 젓는 것도 본다. 저녁을 먹다가 혼자 식사 중이던 다른 여성과 몇 초 정도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곧 다시 묵묵히 각자 먹던 구운 참치를 먹었다. 그 후로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몰디브는 가라앉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인 몰디브의 평균 해발 높이는 채 2.5m가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에 낸 보고서에 의하면 몰디브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다. 산호 백화 현상과 해수면 상승 때문이다. 몰디브 정부는 모래를 뿌리고 새로운 섬을 만들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문제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섬들이 조류에 영향을 미쳐 기상 시스템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벨라 프라이빗 아일랜드는 해양생물학자로 구성된 팀을 꾸려 연약한 산호초를 보충하고 복원하고 있다. 섬 자체에 지속 가능한 물병 공장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 빨대는 물론 종이로 만든 걸 사용한다. 이야기가 이런 화제로 흐르자 한 직원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돈이 있는 한 모래는 있는 법이죠.” 누군가는 이 섬들이 고가의 모래와 관광산업의 욕망을 뭉쳐 만든 완벽한 신기루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다.
 
저녁 햇빛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조용히 날아다니는 과일박쥐들의 날개에 스며든다.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낀 DJ가 텅 빈 바에 부드러운 하우스 음악을 튼다. 자전거를 타고 느긋하게 섬을 빙 돌아본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에는 저기 먼 곳에 있는, 매연이 가득한 항구로 향하는 화물선들이 수평선에서 서서히 움직였다.
책을 읽어보려 하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해변 한쪽 구석을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촬영해 햇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기록한다. 2월. 해는 매일 오후 6시 20분에 진다. 핏빛 오렌지색의 원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이 장관이다. 혼자 저녁을 먹으며 흰 도자기 그릇에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어둠 속의 데크 가장자리에 앉는다. 빛이라곤 해변에 떠 있는 개인 요트에서 새어 나오는 것과 별이 전부다. 오리온자리를 구성하는 별 세 개가 방금 닦아낸 것처럼 환하게 빛을 발한다.
조금 취했다. 이 커다란 규모 안에서 나는 작고 하찮다. 내가 얼마나 더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뒤죽박죽된 생각 속을 헤집어본다. 검은 물이 빌라의 콘크리트 기둥에 찰싹인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났다. 성능 좋은 에어컨과 한 병에 10파운드나 하는 하이네켄 때문에 입안이 바짝 말라 있다. 상어의 등지느러미가 있나 싶어 바다를 살펴보지만 그저 부드럽게 출렁일 뿐이다. 발가락 하나, 그리고 또 하나를 집어넣고 어색하게 얕은 물로 들어간다. 발 바로 옆에서 작은 게가 수정 같은 심연으로 기어 들어간다. 산호초 끝에서 20m 떨어진 곳까지 걸어 들어간다. 팔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 돌을 짚는다. 만져보니 미끄럽다. 여기까지 온 스스로의 용기가 자랑스럽다. 소금물과 아드레날린 덕에 술이 좀 깬 듯하다. 오늘이 바로 골프를 쳐야 할 날인지도 모른다. 내 모든 두려움을 정복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진다.
해변 저편에서 몸에 딱 붙는 붉은색 수영복을 입은 덩치 큰 대머리 남자가 야자수 틈에서 나와 바다로 걸어가는 걸 지켜본다. 해가 더 높이 떠오르고, 바닷물은 부두에 나른하게 부딪친다. 야자수는 산들바람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산호초 속 어딘가에서는 상어가 아침 식사 거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 딱 붙는 수영복 남자도 고개를 까딱인다. 우리는 둘 다 자신만의 작고 개인적인 파라다이스 속에 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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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오성윤
    WRITER & PHOTOGRAPHER FINLAY RENWICK
    ASSISTANT 윤승현
    TRANSLATOR 이원열
    DIGITAL DESIGNER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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