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자꾸 '요새 음악은 후지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노래.

BYESQUIRE2020.07.13
 
 

아무 노래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래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듣는 말이 있다. “요즘 음악은 너무 가벼워.” 유사한 표현으로는 “요즘 들을 만한 음악이 없어”, “요즘 음악은 음악 같지가 않아” 등이 있다. 취미로나 일로나 거의 평생 음악을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 동안 나는 언제 어디서고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국내 음악 시장의 주류가 팝에서 가요로 급격히 변해가던 시절에도, 1990년대 중반 댄스음악이 가요계를 집어삼켰을 때도, 싸이월드 BGM과 통화 연결 음의 유행으로 중독성 높은 후렴구에만 집중하는 후크송이 유행할 때도,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기 전 아이돌 팝을 즐겁게 들을 때도, 누군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요즘 음악’에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누군가’가 이제는 내 곁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그들이 지금의 음악 시장을 본다면 아마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로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요즘 음악은 음악도 아니야.” 왜 아니겠는가. 2020년은 음악이 음악만으로 소비되지 않는 시대니까. 최근 대중음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챌린지송을 보자. 리조의 ‘Truth Hurts’, 드레이크의 ‘In My Feelings’ 등으로 슬슬 분위기를 타던 챌린지송 유행은 2019년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 (Feat. Billy Ray Cyrus)’로 마침내 잭팟을 터뜨렸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노래는 무려 19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차지했는데, 카우보이 콘셉트를 차용한 ‘이랴 챌린지’(#yeehawchallenge)의 전 세계적인 유행이 인기의 원동력이었다.
벼락처럼 등장한 챌린지 붐은 한국 음악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올 상반기를 대표하는 바로 그 노래, 지코의 ‘아무노래’가 주인공이다. 1월 13일 발매된 노래는 이후 3월 중순까지 일간 1위를 총 52회나 달성하며 소녀시대의 ‘Gee’(2009) 이후 가장 많이 1위에 오른 곡이 되었다.(멜론 기준) ‘아무노래’ 붐의 시작은 간단했다. 틱톡 등 쇼트폼 플랫폼을 통해 인기몰이를 노리는 여느 노래가 그렇듯 지코는 음원 발매 전 마마무의 화사, 청하 등과 미리 노래에 맞춘 간단한 안무를 선보였다. 쉽고 유머러스하며 무엇보다 짧고 중독성 있는 영상은 삽시간에 대중 사이로 퍼져나갔고 발표 한 달 만에 관련 영상 조회 수 8억 뷰를 돌파했다. 거대한 유행의 물결이었다.
나는 내가 음악이 빠른 속도로 밈의 세계에 편입되는 장면을 목격 중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잘라 ‘짤방’을 만들고 이 짤방을 묶어 또 다른 짤방을 만드는 현상은 이미 익숙해졌다. 음악은 달랐다. 비록 앨범의 시대는 지났으나 음악만은 곡 단위의 감상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그 음악마저 더 짧은 단위로 쪼개지고 이미지와 영상이 더해져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며 때로는 오감을 자극하는 무엇이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궤를 함께하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다. 이쯤에서 또 누군가는 옐로카드를 꺼내고 싶을 것이다. 이래서야 음악을 음악답게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느냐며 말이다. 그렇지 않다며 그 누군가의 서운한 마음을 일방적으로 다독이기도 어렵다. 실제로 세상은 음악을 놀이로 소비하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챌린지 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세계 음악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흥미로운 국내 시장의 동향이 있다. 2010년대에 들어 매해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연간 음반 판매량은 2016년 1000만 장을 넘어섰고 2018년에는 2300만 장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다. 고작 3년 사이 두 배가 넘는 고속 성장을 이룬 원동력은 아이돌 팝을 중심으로 한 케이팝의 급격한 팽창이다. 시장 확대는 반가운 일이지만 확대의 이유가 영 탐탁지 않았다. 단기간 내에 급격히 증가한 음반 판매량의 기저에는 팬덤의 자발적인 희생이 있었다. 예를 들면 팬 사인회 등 팬 이벤트에 당첨되기 위해 앨범을 수백 장씩 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 장에 하나씩 할당된 추첨권을 모아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 아이돌 인기의 척도라는 발매 첫 주 음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팬들이 음반을 무더기로 공동 구매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명 ‘뉴트로’ 붐을 타고 LP, 테이프 등 올드 미디어의 판매가 늘기는 했으나 여기서도 음악은 소외당하고 있다. 이런 피지컬 형태의 올드 미디어를 구매하는 이들 가운데 그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기를 소유한 경우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LP나 테이프는 음악의 전달 매체가 아닌 머천다이즈의 일종이다. 디지털 음악 시장과 무제한 스트리밍 정액 요금제의 등장 이후 소비자들은 유료로 음악을 듣는다는 개념을 거의 상실했다. 앨범 단위가 아닌 차트 모음이나 추천 플레이리스트 위주로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당연해진 이들에게 음악은 애정이나 취향의 영역이 아닌 일상의 빈자리를 습관적으로 채우는 큰 의미 없는 소리 덩어리다.
그렇게 음악은 2020년을 맞이하고 있다. 유행 따라 팬심 따라 킬링 타임 따라 멋대로 흘러 이곳에 당도한 음악은 그래서 얼마나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찢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들여다본 음악의 얼굴은, 그러나 생각보다 평온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몇 번을 다시 돌아봐도 여전히 그대로인 데면데면한 얼굴에 당황하며 멈칫하려는 찰나, 역사적 사실 하나가 번개처럼 뇌관을 스쳤다. 우리가 음악을 저장해 듣거나 그것을 소유하기 시작한 지, 여러 곡을 한 장의 음반에 담아 서로 간의 유기성을 따져가며 전체적인 완성도를 논하기 시작한 지 고작 한 세기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음악이 언제부터 무거워졌고, 언제부터 들을 만해졌고, 언제부터 음악다워졌을지를 생각했다. 물론 음악이 앨범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30초, 15초짜리 BGM으로 파편화 내지는 도구화되어가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음악은 이미 우리 시대의 인류가 세상에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시대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또 바뀌어오지 않았나. 어쩌면 우리는 꽤 오랜 시간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음반의 헤게모니와 이를 둘러싼 각종 담론이 해체되고 있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먼 훗날 음악의 역사책에는 음반이라는 형태로 음악을 소비했던 지난 100년이 매우 특이한 시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WHO’S THE WRITER?
김윤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케이팝에서 인디까지 좋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자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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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은희
  • WRITER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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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