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어퍼하우스 남산', 남산 부동산이 흔들리고 있다

남산에 살어리랏다.

BYESQUIRE2020.07.15
 
 

남산에 살어리랏다 

 
주거 공간을 다루는 매체의 편집위원을 맡다 보니 새로운 집에 대해 파악하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얼마 전에도 내 지식 더듬이에 한 초고가 빌라 분양 소식이 포착됐다. 한 채에 기본 수십억원인 그 이름은 ‘어퍼 하우스 남산’. 본디 어퍼 하우스는 양원제 의회에서 상원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상류층을 의미하는 단어 ‘어퍼 클래스’처럼 ‘어퍼’가 지닌 의미와 묶어 ‘좀 더 높은, 위 단계의 집’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홍콩에서 유명한 최고급 부티크 호텔 ‘디 어퍼 하우스(The Upper House)’처럼. 무엇보다 대지 위치가 궁금했다. 남산이 녹지 공간으로 철저히 관리되는 지금 시점에 집 이름에 당당히 ‘남산’을 넣다니! 네이버 지도에 위치를 찍는 순간, 기가 막혔다. 스무 살 적 ‘웃픈’ 추억의 장소에서 도보로 단 10초 거리였기 때문이다.
 
내겐 꾸준한 취미가 있다. 취미인지 습관이지 경계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 정체는 바로 ‘미래 예측’이다. 매년 나오는 올해의 트렌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주역, 사주, 풍수, 자미두수, 신점, 무당, 타로, 별점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석하는 사람의 노하우와 영성이 만나는 신묘한 예측에 하염없이 빠져드는 나의 개인적인 관심을 말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고등학생이 동네를 떠나 점집에 침투하기란 빡 센 수험 생활 중에는 불가능했기에 물리적 자유를 얻은 20대부터 서울 곳곳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남산의 무당집이었다. ‘남산도깨비예언궁’이란 어마어마한 이름이 붙은 그곳은 소월로에 있었다. 숭례문에서 시작해 밀레니엄 힐튼 서울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지나 남산으로 올라가는 소월로는 오른쪽으로 후암동, 이태원동, 한남동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는 울창하고 기분 좋은 산림이 가득한 남산의 주요 등산 코스다. 아마 그랜드 하얏트 서울 올라가는 길이라고 하면 다들 ‘아하!’ 할 테다.
 
호텔과 지근거리에 있던 무당집에 들어가 마음 졸이길 10여 분,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무당집은 처음인지라 이리저리 구경하며 내부로 들어가는데 저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 기분이 어때?” 입술이 두껍고 눈이 크게 튀어나와 두꺼비를 닮은 도깨비 무당이었다.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감회를 밝히니 무당이 웃으면서 이리 말했다. “지금 주변 귀신들도 너 왔다고 다들 좋아해.” 순간적으로 반응해버렸다. “저도 좋아요. 귀신이 안 보여서 인사를 못 하네. 반갑다고 전해주세요.” 그때부터 무당 표정이 굉장히 밝게 변하면서 초특급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늘이 내린 천재’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취향이 아주 좋아서 마음 가는 것을 모아 팔면 대박이 난다고 했다. 게다가 기가 맑고 좋으니 이번 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팔각정에 놀러 오라는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오다 맥이 끊긴 목멱제(목멱은 남산의 옛 이름 중 하나로, 목멱제는 목멱산 대천제라고도 한다)를 자기가 맡고 있는데, 와서 사과를 정성스레 닦으면 복이 온다는 팁이었다. 그날부터 목멱제가 기다려졌다. 사과를 어떻게 닦는지도 궁금하고, 굿하는 걸 본다는 생각에 호기심 만발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토요일, 부푼 마음으로 남산 정상의 팔각정에 간 나는 ‘역대급’으로 열정이 짜게 식었다. 젠장, 두꺼비 무당이 날 보고도 알아보지를 못하는 거다. 사과 닦으러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 이후 무당집은 찾지 않는다.
 
지금은 도깨비문화원으로 바뀐 무당집 바로 근처에 초고가 빌라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으니 남산과 관계된 신묘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로 풍수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풍수라는 게 꼭 미신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겨울이면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는 극동아시아반도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산의 역할은 무척 중요했고, 가까운 곳에 흐르는 물은 생존과 직결됐다. 집 뒤에는 산이, 집 앞에는 물이 있는 배산임수의 요건이 풍수의 기본으로 떠오른 이유다. 이후 음양오행설과 엮이면서 분지를 감싸는 여러 산과 지형, 물줄기에는 내청룡, 내백호, 외사산, 외당수 등 갖가지 수식이 붙으며 굉장히 복잡해졌다. 남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풍수적으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천하 명당인 한양에서 남산은 안산(案山) 역할을 맡는다. 경복궁에 임금이 앉아 남쪽을 바라볼 때를 중심으로 뒤편엔 가장 중요한 주산인 북악산이, 왼쪽엔 낙산이, 오른쪽엔 인왕산이, 앞쪽엔 남산이 자리한다. 이를 내사산(內四山)이라 불렀는데 이 중 안산(案山, 집 앞의 산) 격인 남산은 재물과 후손의 풍요로움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라 조선왕조는 남산의 산신에게 목멱대왕이란 이름까지 봉하고 정성껏 보살폈다. 지금은 인왕산으로 옮겨진 국사당이 원래 남산 정상의 팔각정에 있었고 태조 이성계와 풍수의 대가 무학대사의 위패를 봉안한 후 매년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던 성지였다. 그렇다. 내가 사과 닦으러 간 제사의 전신이다.
 
이런 남산의 기운을 받으려는 시도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아래에 자리 잡은 수많은 최고급 단독주택에서 잘 드러난다.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속하는 이곳은 풍수지리학상 서울에서 최고의 명당 중 하나로 꼽히는 주거지다. 이 지역의 배산을 이루는 남산은 바위를 강하게 드러내는 골산이 아닌 흙산으로, 이는 서울에선 유일하며 살기가 없어 재물의 기운을 품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의 임수인 한강은 그 옛날 한양으로 천도할 때 꼽은 풍수적 이점인 현량함, 인재의 산실, 재물운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남산에서 뻗어온 맥이 한강을 만나 땅의 기운이 응집한 곳으로 일명 신령한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길지로 꼽힌다. 이 지역에 집터를 닦으면 거북이는 재복을, 거북이가 낳는 많은 알은 가문의 번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대대로 부를 축적할 것이라고 봤다. 이처럼 명당으로 꼽히는 남산 자락에는 지금의 전쟁기념관 자리에 있던 육군본부와 가까워 1960년대 군부의 권력 실세들이 터를 잡았고, 1970년대 고성장 시대 이후에는 재벌과 부유층이 본가를 형성했다.
 
물론 풍수에 대한 믿음만으로 남산 남쪽 기슭의 주거 환경을 판단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산을 끼고 있어 친자연적이고 고도가 높아 풍광이 아름다우며 소음 없이 고요한 특성은 서울 한복판의 거주지로 탁월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살기 좋은 동네에 최근 아무도 예상 못 한 변수가 생겼다. 작년 말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홍콩계 사모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에 매각된 것이다. 지분 100%를 소유한 하얏트 그룹 본사에서 현금 유동성을 확충하기 위해 5000억원 중.후반대로 완료한 이번 딜에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매각 대상에는 호텔 건물과 함께 8757㎡(약 2649평) 규모의 토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법적인 대지 용도가 상업용이 아닌 주거용이란 사실이다.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최고급 주거 단지의 개발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부지 안에 생긴다는 점에서 호텔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기존 초호화 단독주택을 내려다보는 지리적 특성을 생각해보면 아직 계획도 잡히지 않은 이 가상의 집이 어떤 슬로건을 내걸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2020년대에 새롭게 불타오르는 ‘남산에 살어리랏다’ 소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WHO’S THE WRITER?
전종현은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다. 〈월간 디자인〉과 〈SPACE〉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활동했고 〈브리크〉 부편집장을 거쳐 현재 편집위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