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디지털 시대에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이끈 푸드 채널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음식의 세계.

BYESQUIRE2020.08.15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음식의 세계 

 
SOOBINGSOO TV

SOOBINGSOO TV

원래부터 음식 프로그램을 즐겨 보곤 했다. 그 수많은 음식 관련 방송 중에서도 몇 년 전 종영한 〈시골밥상〉을 제일 좋아한다. 양희은 씨가 시골에 가서 할머니가 알려주시는 레시피를 배우는 포맷이었다. 언뜻 〈6시 내고향〉류의 프로그램 같지만 새벽 조업 나가는 어선을 얻어 타는 수다스러운 리포터도,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을 가진 대박 집 식당 주인도 없다. 시골에 가서 할머니와 밥상을 차리는 내용이 전부였다. 특히 텃밭에서 재료를 따서 음식을 만들고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먹고 마지막 설거지하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그 완결성을 좋아했다. 보다 보면 나도 같이 한 끼 잘 만들어 먹고 깨끗이 정리까지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이라는 애매한 편성 시간 때문에 대개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시청했다. 그래도 잘 모르는 재료에 대한 정보도 얻고 지역 특유의 레시피도 배울 수 있었다. 비싸고 화려한 재료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주재료의 빈곤함을 깨, 참기름, 방앗잎, 제피 가루 같은 토속적인 부재료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내가 먹어보지 못한 재료의 향이라든가 완성된 음식의 맛을 상상하다 보면 조금씩 숙취에서 깨어나 다시 입맛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감각이 제한되면 그만큼 상상력이 늘어난다. 음식의 핵심은 맛과 향인데 영상이나 글은 정작 이 핵심적인 감각을 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식욕을 되찾고 책을 보며 음식에 대한 향수를 달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상상력 덕분이다. 오래전부터 상상력은 맛과 향을 전달하는 매개체였고 실제로 음식을 더 풍요롭게 즐기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어릴 적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먹어본 적 없는 홍차와 마들렌의 맛을 상상했고 오즈 야스지로의 〈오차즈케의 맛〉을 보며 녹차에 만 밥의 맛이 어떨지 떠올렸다.
 
최근에는 유튜브 덕분에 상상의 소재가 훨씬 많아졌다. 외국살이에 해산물이 그리워지면 〈수빙수TV〉를 본다. 생선을 잡아 회를 뜨거나 요리를 하고 적절한 술을 매칭해서 먹는 포맷이 매회 반복되지만 코믹한 진행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고 귀한 생선도 자주 나와 꾸준히 보게 된다. 한국의 지방 도시를 여행하고 싶어질 때는 유튜브 채널 〈어시장 Fish Market TV〉를 본다. 특별한 편집이랄 것도 없이 매회 각 지역의 어시장을 다니며 시장 상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마치 여행을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으로 옆에서 대화를 엿듣는다. 그러다 보면 지구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올해는 동해에서 오징어가 많이 잡혀 시세가 좋다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문득 부산에 가고 싶어 검색을 했더니 그 뒤부터 〈사먹사전〉이 추천 영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만나면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게 서글서글하게 생긴 친구가 부산의 노포를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방송이다.
그렇게 여느 주말처럼 소파에 누워 유튜브에 몸을 맡겼다. 화면 속에서 1m가 넘는 대물 민어가 각 부위별로 해체되는 영상을 보고 나니 쯔양이 앉은자리에서 바닷가재 30마리를 먹고 있었다. 10kg이 넘는 30만원짜리 귀한 자연산 대광어로 생선가스를 튀기고, 소 짝갈비에서 그대로 잘라낸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그릴도 없이 숯불 위에 올려 굽는다. 보고 있으면 영상 속 자극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다.
 
그 큰 고기를 썰지도 않고 뼈째 들고 먹고 있는 사람은 가수 성시경 씨였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발라드 가수가 〈산적TV 밥굽남〉에 출연해 소 갈비뼈를 들고 고기를 뜯고 소주를 글라스로 원샷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전에 대체 이 영상이 왜 나에게까지 왔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저렇게 거칠게 고기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적당한 두께의 고기를 충분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도록 굽고,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신중하게 고른 음료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먹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런 나를 산적 콘셉트의 유튜브 채널까지 인도한 걸까?
 
사실 유튜브 알고리즘의 목적은 투명하다. 나를 더 오랜 시간 영상 속에 머물게 해서 광고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그 목적을 구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다음 영상을 클릭하고 있는 것을 보면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알고리즘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디지털 시대의 존재론적 질문이다.
유튜브는 ‘음식이 먹고 싶다’는 식욕 이전에 ‘음식을 보고 싶다’는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만으로 나의 식욕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치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목마름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결국엔 더 큰 갈증을 불러온다. 이 욕망은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글이라는 매체의 미덕이 언제나 절제였다면 유튜브 세계의 미덕은 과잉과 속도다. 많은 채널이 화려한 섬네일로 클릭을 유도하고 비싼 식재료를 낭비하는 플렉스로 시선을 끈다. 15분 남짓 되는 영상에서 여백은 사치다. 사람들이 채널을 떠나지 못하도록 빠른 호흡으로 편집된 화면이 끊임없이 전환된다. 물론 이런 과잉에서 얻어지는 재미와 쾌락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주어지는 영상을 수동적으로 주워 삼키다 보면 상상력이라는 매개체를 거치지 않은 욕망에 직접적으로 전염될 뿐이다.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럼 나는 네가 누군지 알려주겠다”라는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은 우리에게 하루에 몇 번씩 숙명처럼 찾아오는 식욕이라는 욕망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선언이다. 21세기에 이 선언은 이제 ‘나는 이미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영상을 보여주마’라는 알고리즘의 선언으로 대체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내적 비명을 지르며 유튜브를 종료했다.
 
WHO’S THE WRITER?
신현호는 뉴욕의 다국적 기업 본사에서 전략 부문 업무를 한다. 스스로 “주 40시간은 회사에서 가격과 가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주 80시간은 레스토랑을 다니고 요리를 한다”라고
말할 만큼 미식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