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홍대 앞, 수상한 음악가의 아지트 '스트레인지 프룻'

넘치는 자유로 홍대스러움을 여실히 가지고 있는 공연장이 바로 여기 있다.

BYESQUIRE2020.09.10
 
 

홍대 앞, 소중하고 이상한 과일 

 
ⓒ Pomme

ⓒ Pomme

홍대 앞엔 이상한 공간이 참 많다. 지하철표 하나 뽑아 들고 순환선을 돌고 돌아 멋도 모르고 처음 발을 내딛은 20여 년 전에도, 홍대역에서 상수역까지 눈 감고도 걸을 수 있게 된 지금도 변하지 않은 몇 가지 가운데 하나다. 그런 홍대 앞 공간의 이상함은 대부분 수상함을 바탕에 두고 있었다. 출입문은 슬쩍 스쳐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흡음재가 듬성듬성 뜯어진 무거운 문을 열면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만 모였는지 모르겠다 싶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만 달라질 뿐 그들은 늘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거나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출입문에서 노는 방식까지 누가 봐도 ‘아는 사람만 취급할 것 같은’ 이 공간들이 실은 누구보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여는 타입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레 겁을 먹는 건 홍대 초심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였다. 우연히 몸으로 부딪친 곳은 대부분 생각보다 쉽고 편하게 낯선 외부인을 공간 속으로 스며들게 해주었다. 어떻게 봐도 수상한 장소와 사람들이 내뿜던 묘한 아우라는 사실 그들이 가진 무정형성과 편견 없음에 기인했다. 한마디로 평생 네모난 틀에 갇혀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도무지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넘치는 자유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세상은 자주 그걸 ‘홍대스럽다’고 표현했다.
 
그 유명한 커피프린스 골목 초입에 위치한 ‘스트레인지 프룻’(이하 약칭이자 단골들의 애칭인 ‘프룻’으로 통일) 역시 그런 홍대스러운 공간 가운데 하나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잘 찾기 어려워진 홍대스러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시작부터가 그랬다. 이제는 홍대를 대표하는 바 겸 공연장으로, 홍대 고인물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필수 코스가 되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프룻은 인디 음악은커녕 일반인을 상대로 한 상업적 목적조차 없었던 곳이다. 2005년 프룻은 커피프린스 1호점은 물론 제대로 된 상점 하나 없던 한적한 골목 입구에 터를 잡았다. 당시 운영하던 독서 소모임인 ‘책 읽는 사람들’ 회원 4명이 ‘모이면 늘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니 술값도 아낄 겸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초기에는 오픈 목적에 충실하게 운영했다. 비치 보이스, 마빈 게이, 롤링 스톤스, 밥 딜런, 버즈 같은 올드 팝, 혹은 록이 매일 공간을 채웠다. 자주 들르는 이들은 집에 있는 LP나 CD를 가져와 틀기도 했다. 장사와 상관없이 운영하는 느슨한 공간이었지만, 아무튼 누울 자리 빨리 찾는 데는 일가견 있는 홍대 사람들 사이에서 음악과 분위기가 좋다는 입소문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음악가 중에서도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서서히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레 교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듣고 싶은 음악이나 마음껏 듣자며 문을 연 작은 공간이 어느새 음악 좋아하는 홍대 사람들의 작은 아지트로 변했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단골들이 주인석에 앉아 대신 주문을 받거나 음악을 트는 풍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프룻을 대표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서면 헬리비전과 까데호의 이태훈이, 또 어느 날은 줄리아 하트의 정바비가 손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 게 당연한 곳이다.
 
친목을 위한 작은 소모임의 공간에서 홍대 음악가들의 아지트로 모습을 바꾼 프룻은 2007년 또 한 번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당시 단골이었던 트램폴린의 차효선이  이 공간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온 것이다.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공간이 전혀 아니었기에 변변한 악기나 앰프 하나 없었지만 좋아하는 음악가이자 단골손님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프룻은 정식 음향 설비 없이 오디오 스피커와 급하게 구한 앰프로 첫 공연을 마쳤다.
 
한숨 돌렸다 싶었지만 한번 물꼬를 트고 나니 이곳저곳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음향에서 구조까지 공연을 하기에 썩 적합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이곳을 특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한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공연이 이어지자, 이게 일이 되면 안 되겠다 싶어 일주일에 2~3회를 넘지 않도록 공연 횟수를 조절하기도 했다. 그게 프룻이 오랫동안 음악 바이자 멋진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비법이라 할 수도 있겠다. 지금은 혼자 공간을 책임지고 있는 박지홍 사장의 말처럼 프룻은 ‘함께 들어야 즐거운 음악과 그런 음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갑작스레 툭 떨어진 보랏빛 포스터는 그런 프룻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주는 인증서와도 같았다. 구구절절 설명도 필요 없었다. 공연 포스터는 ‘15주년’이라는 글자와 2020년 7월과 8월이라는 시간, 그리고 총 40팀에 이르는 음악가들의 이름만으로도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웬만한 록 페스티벌은 명함도 못 내밀 리스트가 묵직함을 전했다. 줄리아 하트,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까데호처럼 프룻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골들부터 갤럭시 익스프레스, 서울전자음악단 같은 최근 보기 힘들었던 이들까지, 그리고 DJ 소울스케이프, 기린, 키라라처럼 잘 어울릴까 싶은 팀들부터 김목경 밴드, 백현진, 로다운30 같은 관록의 형님들까지. 현재 서울의 인디 신을 그야말로 알뜰하게 담아낸 라인업은 그 자체로 프룻이 홍대에서 15년 동안 일궈낸 신뢰의 증표였다.
 
이 기세등등한 2개월짜리 축제를 두고 프룻은 이런 문구를 사용했다. “홍대에서 가장 홍대스러움을 간직한 공연장, 스트레인지 프룻.” 이것은 결코 허세나 과장이 아니다. 주뼛대며 들어갔다가 어느새 너의 친구, 나의 친구가 되어 어깨동무하고 나올 수 있는 곳, 20년 전 홍대 앞 문화가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로 멋지게 남아 있는 소중하고 이상한 과일. 어느 때보다 길고 넉넉한 축제를,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바이러스의 나날 동안 치러낸 후에도 프룻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제가 오늘인 듯 음악과 술과 사람을 기다리며.
 
WHO’S THE WRITER? 김윤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케이팝에서 인디 음악까지 장르 불문하고 좋은 것을 이야기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자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