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은희경이 말하는 '소설가의 일'

은희경의 일과 오해와 위기.

BYESQUIRE2020.09.24
 
 
 
 

은희경

1959년 출생.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던 그해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그 여행이 뭔가를 ‘끊었다’고 말한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이중주〉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① 출발

근작인 〈빛의 과거〉는 역작이에요. 읽고 나서 혼자 ‘대단하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어요. 화자인 희진과 얄미운 소설가 친구 유경 모두에게 본인을 닮은 모습이 있어요.
1977년에는 유경이 제 모습과 더 닮았고, 2000년대에는 아마 희진의 모습이 저일 거예요.
하긴 희진이 늦게 등단한 작가로 나오잖아요. 근데 또 희진이 여러 번 작품을 내놓고도 큰 노력 없이 한 번에 등단한 작가처럼 굴잖아요. 그것도 혹시 작가님의 모습인가요?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웃음)
실제로는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등단작인 〈이중주〉를 쓰셨죠?
맞아요. 그때, 그해에 너무 힘들었어요. 직장도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고. 술꾼 남편도 참아줄 수 있는 인내의 한계까지 간 것 같았고요. 그전엔 그냥 열심히 살았는데, 그해엔 정말 딱 멈추게 된 것 같아요. 왜 갑자기 멈추고 돌아볼 때가 있잖아요. 이게 뭐야. 내가 이 그림자를 끌고 내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길이 맞는 걸까?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자, 내 인생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뭘 하고 싶은 걸까. 지금까지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서 내 몫을 하려고 한 게 다인데, 나는 앞으로 어떤 육체적인 노동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을 좀 해보려고 휴가를 내서 혼자 여행을 다녀왔죠. 그게 저한테는 뭔가 끊는 거였어요. 맥을 끊는 거였죠.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처음이고, 집을 그렇게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요. 남들 볼 때 당연한 것만 해왔던 사람이 당연하지 않은 걸 처음 한 거죠.
여러 소설에 술꾼 남편 모티브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제 보니 취재원이 바로 곁에 있었네요. 그래도 가족이라 다행이에요. 소설로 써도 되잖아요.
’술꾼 남편’이라는 게 저의 환경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쓰면 아무래도 여러 가지가 조심스럽잖아요. 악역은 무조건 기자에다 술꾼! 기자라는 직업을 악역으로 쓰면 사람들이 그냥 남편 얘기라고 여길 테니까, 그렇게 많이 썼어요. 그래서 남편이 ‘내가 한국 문학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여를 많이 했는 줄 아느냐, 내가 살신성인을 했다’고 큰소리 칠 때가 있어요.(웃음)
사실 소설가 중 많은 사람이 자신과 주변에 국한된 상태로 극을 꾸리죠. 일부 소설가들에 대해 ‘인간 내면을 꿰뚫어본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어쩌면 작가가 다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만 쓰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도 그렇네요. 저도 쓰다 보니 딸, 아들, 남편, 딱 그렇게만 등장하는 거예요. 물론 얘기를 쓰다 보면 다른 인물에게서 받은 인상이 캐릭터에 조합되기는 해요. 그렇지만 실제 에피소드는 그냥 가족이 겪은 걸 써요. 굳이 남의 에피소드를 가져와서 쓰면, 쓰는 제가 오히려 좁아지거든요. 그래서 가끔 앨리스 먼로 소설을 읽다 보면 한번 만나서 물어보고 싶어요. 앨리스 먼로는 한 마을에 살면서 평생 주변 사람 얘기만 썼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계속 마을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앨리스 먼로의 소설에도 종종 무심한 남편이 등장하죠.
그쪽도 아마 남편의 살신성인일 거예요. ‘내 얘기는 맘대로 나쁘게 써’라고 허락해줬을 수도 있죠.
저는 지금까지 단편소설을 3개 발표했는데, 그중 두세 번째 작품은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그렸어요. 쓸 때 너무 괴롭더라고요. 동떨어진 사람의 얘기를 쓰려니까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겠고, 막막하고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맞아요. 작가의 경험이라는 게 결국 남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남 얘기를 전혀 안 쓸 수 없지만, 결국 그 사람이 실재하는 특정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내 캐릭터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해요. 예전에 남편이랑 저랑 어떤 사람이랑 셋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같이 있으니까 관찰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캐릭터를 소설에 썼어요. 써놓고는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남편과 그 사람의 캐릭터를 섞었어요. 그러고도 불안해서 남편한테 그 사람이랑 만나서 술 마시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나다’라는 암시를 주라고 시켰어요.(웃음)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소설 〈빛의 과거〉는 후기 은희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소설 〈빛의 과거〉는 후기 은희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② 일

요새 네이트판을 보면서 소설 쓰기의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글쓴이의 개인사를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심판받고 싶은 욕망이 보이거든요. 근데 그대로 올리면 자기 신분이 탄로 날 수 있으니까 각색을 하죠.(웃음)
주작이죠.(웃음)
그게 약간 〈빛의 과거〉의 주제 의식과 닿아 있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이 자기가 편집한 세상을 본다는 점에서는 그래요. 그런데 자기가 편집해서 보는 세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너는 지금 네 인생을 편집해서 보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게 소설 같아요.
맞습니다. 그렇죠. 그렇게 층위를 하나 더 만들면서 구조가 생기죠. 다만 그 질문을 던지려면 독자가 작자, 화자, 작가라는 소설 속 서술의 레이어를 이해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시대 흐름에 따라서는 작품의 안에 있는 화자와 작가 사이를 너무 가깝게만 읽어내게 되기도 하죠.
제가 작가가 된 지 25년이 됐잖아요. 그동안 트렌드에 맞춰야 되나, 생각했던 시기가 몇 번 있었어요. 〈중국식 룰렛〉을 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못 느꼈는데, 그 이후 3~4년 사이에 어떤 경향성이 생긴 거 같아요. 내가 실감 나는 이야기,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많이 맞추죠. 작가마다 소설을 쓰는 방식은 물론 달라요. 하지만 저는 공감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소설을 쓰거든요. 내 이야기를 모으고 거기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과정이 공감이라면 그다음엔 이걸 다른 방식으로 보는 시각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악과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분명하게 가르고 거기에 맞는 소설은 좋은 소설, 아닌 소설은 나쁜 소설로 치부하는 흐름에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해요. 그렇긴 하지만 저는 이 시기도 지나갈 것 같아요. 제가 데뷔했을 때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어요.
사회 참여의 목소리가 강했죠.
그때는 1980년대 문학에서 이어진 1990년대 문학의 흐름이 있었어요. 저도 되게 가벼운 작가로 평가받았어요.
〈새의 선물〉 나왔을 때요?
네, 그것도 그랬고 〈타인에게 말 걸기〉 같은 단편집은 주로 여성 주인공이 본인이 주도하는 인생을 살려는 이야기거든요. ‘여성의 일탈은 너무 작은 이야기니까 좀 큰 철학을 다루라’고 충고하는 분도 많았고요. 그런데 저는 가볍고 무거운 걸 떠나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인간이 대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연구하고 쓰고 싶었거든요. 작가로서의 그런 제 태도는 지금도 똑같아요. 심지어 제 소설을 두고 “그렇고 그런 연애소설은 이제 그만. 그렇고 그런 불륜 소설은 이제 그만”이라고 비판하는 신문 타이틀도 있었어요. 여성들이 자기한테 주어진 틀을 벗어나려는 걸 전부 일탈로 본 거예요. ‘자기가 자신을 찾는 게 겨우 다 가정을 벗어나는 일이냐?’라는 비판도 있었는데, 당연하잖아요. 제도를 깨야 되니까요. 그때는 그걸 그냥 다 불륜으로 본 거죠. 근데 또 지금의 트렌드에선 제 소설이 굉장히 무겁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선생님은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고 질문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죠. 돈을 내고 책을 사서 시간을 투자해 읽으면서까지 ‘불편하고 싶진 않아’라는 게 꽤 큰 시대적 흐름이기도 해요. ‘너의 의견 따위는 궁금하지 않아’라는 자세가 팽배해 있기도 하고요. 기사를 쓰는 에디터 입장에서도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SNS 중독이거든요. 특히 트위터요. 글을 올리진 않지만 하루에 몇 시간씩 봐요. 거기서 한 일본 사람이 올린 짤을 봤어요. 한국 책방에 있는 에세이 코너를 보니까 표지에 사람들이 전부 편하게 누워 있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소위 ‘힐링’이더라는 거였어요. 그런 경향에 대해 제가 좋다, 나쁘다 할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필요하니까 소비가 되는 거겠죠. 다만 제가 쓰려는 소설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는 어차피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첫 장편인 〈새의 선물〉이 25년 동안 70만 부가 넘게 팔렸죠?
부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올해 아마 100쇄를 찍을 거예요.
불편하면서도 은희경의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는 그 유머 때문인 것 같아요. 〈새의 선물〉의 화자가 12세라는 걸 생각하면 불편하면서도 계속 웃게 되는, 그런 ‘단짠’ 같은 유머요.
네, 유머를 하려고 애쓰죠.
저는 주로 고전을 즐겼지만 최근에는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꽤 읽는 편인데요, 요새 소설을 읽으면 패닉에 빠지는 느낌이 들어요. ‘이거 뭔데 재밌지? 이렇게도 해도 돼?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아요.
긍정적으로 보면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세계문학 전집을 읽는 독자층이 있고, 별다른 구상 없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재적인 소설에도 독자층이 있는 거죠.
 
 
 

③ 오해

딱 맞지 않아서 써지지 않는 그 상태가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그게 소설가의 일인 거 같아요.
네, 맞아요. ‘나 이 이야기를 쓰겠어’ 하고 시작하잖아요. 보통 첫 문장이 너무 멋지게 나오죠. 그럼 또 그 문장에서 시작해서 조금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 얘기가 나오거든요. 그다음에는 처음에 나온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를 둘 다 살리려고 애를 쓰죠. 그 경우엔 대부분 처음에 나온 얘기를 버려야 해요. 처음에 나온 얘기는 나의 진짜 생각으로 가기 위한 사다리예요. 근데 이게 진짜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제 오랜 경험으로 보면. 그래서 이걸 끌고 가려다 보면 이야기가 풀리지 않거든요.
아까 울었다고 하셨는데요, 조금이지만 써보니 알 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렇죠. 어떨 때는 그냥 있을 수 없으니까 뭐라도 시작을 하는데, 이걸 안 쓸 거를 알면서도 그 문장을 계속 다듬고 있어요.
(웃음) 맞아요.
어차피 맘에 안 들어서 안 쓸 부분인데 계속 다듬고 있어요. 이게 근데 거의 보편적인 작가들의 예열 과정일 거예요.
그걸 안 하면 또 안 되잖아요.
안 돼요.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또 같은 과정을 거쳐요.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그런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과정에 시간을 쏟기 위해 규칙적으로 책상에 앉죠.
작가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여러 가지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 작가는 규칙적으로 일을 해야 되는 직업이에요. 근데 영감이 떠오르면 하루 밤새 막 써서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녜요. 규칙적으로 하루 몇 시간 동안 일을 해야 돼요. 게다가 몸을 쓰는 일이라 운동과 자기 관리도 해야 돼요. 몸의 컨디션이 좋아야 좋은 소설이 나오니까요. 소설가들이 술 먹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영감이 떠오를 때 쓴다고 생각하는 건 현실과는 정말 거리가 먼 얘기죠.
의식적인 인풋도 있어야 되지 않나요?
소설가라고 하면 좀 한적하게 사색하고 산책하는 걸 연상하는데 소설가는 되게 시간이 없어요. 왜냐하면 읽어야 하잖아요. 일단 읽는 것도 혼자 해야 되고, 쓰는 것도 혼자 해야 되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느라 힘들죠. 그런데 또 소설이라는 게 고립된 작업이 아니잖아요. 공예가 아니니까. 세상을 알아야 하니까요. 세상에 관심도 둬야 하고, 남들이 다 하는 일상적인 것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혼자만의 시간도 만들어야 하죠. 그렇게 시간을 확보하려면 되게 바빠요.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녀도 뭐랄까, 그런 활동이 전부 ‘근무 중’인 셈이에요.
 

④ 위기

2년 넘게 책이 안 나온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2002년에서 2005년 〈상속〉이랑 〈비밀과 거짓말〉 사이, 2016년에서 2019년 〈중국식 룰렛〉이랑 〈빛의 과거〉 사이더라고요.
저는 그냥 제 속도를 유지하면서 계속 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좀처럼 못 하지만, 예전에 작업실이 호수공원 앞에 있을 때는 호수공원에 가서 달리기를 자주 했어요. 한 바퀴 돌면 4km가 좀 넘고, 두 바퀴 돌면 약간 10km가 안 되는 거리죠. 참 재밌는 게 사람들은 누가 뛰면 자기도 뛰고 싶은가 봐요. 따라 뛰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또 가끔은 이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막 빨리 뛰어와서는 절 따라잡거든요. 근데 조금 가면 제가 다시 그 사람을 앞질러요. 저는 그냥 똑같은 속도로 뛰었을 뿐인데요. 소설 쓰기도 같아요. 저는 그냥 똑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해온 건데, 어느 시대에는 이게 가볍다고, 어느 시대에는 무겁다고 말하죠. 그런 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행운, 행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제가 한 일은 운이 왔을 때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했다는 거라고 봐요. 지금 25년 전에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 중에 지금 뭐, 많이 안 쓰는 동료도 있고 여러 가지 행보가 바뀐 사람도 있지만, 제가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것, 저에게 아직도 지면이 주어지는 것은, 저도 많은 부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제 몫이 없는 게 아니라, 그 행운을 계속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제가 성실하게 써왔다는 거? 제가 한 건 그 정도.
데뷔한 1990년대에는 소설가로 누가 제일 유명했나요?
그 당시에 황송하게 문단의 3대 여성 작가로 신경숙, 공지영 씨와 저를 꼽아줬죠. 그건 좀 대중적인 분류고요, 전경린, 이혜경, 김인숙, 배수아 작가 등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죠.
아까 행운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과는 좀 달랐을 거 같아요. 지금은 굉장히 많은 소설가들이 등단하지만 지면을 얻지 못해서 두 번째 소설을 내는 비율이 무척 낮아요.
맞아요. 그때는 사실 베스트셀러에 몰리는 경향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훨씬 더 소설이 다양해지고 좋은 소설도 많이 나오지만 그만큼 지면 경쟁이 심하죠. 젊은 작가들이, 신인 작가들이 느끼는 바를 저도 실감해요. 사회 전반이 다 그러니까요. 그때도 경쟁이 심하긴 했지만 그건 좀 다른 의미죠. 다만 지금은 작지만 다양하게 풀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해요.
제가 지겨워하는 말 중 하나가 ‘불경기’예요. 태어나서 한 번도 경기가 좋았던 적이 없는 거 같거든요. 소설도 비슷해요. ‘문학의 위기’, ‘소설의 위기’라는 말도 매년 들어본 것 같아요.
1999년인가 2000년인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문화관이 오픈을 했어요. 거기서 세미나가 열렸는데, 저도 가고 김영하 씨도 가고 오정희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이 거기서 하룻밤을 묵은 아련한 추억이 있어요. 행사 다음 날 아침엔 박경리 선생님 댁에서 박완서 선생님, 오정희 선생님하고 아침을 먹었어요. ‘와, 나한테도 이런 날이 있구나.’ 그날 나눴던 잡담까지 다 기억날 정도예요. 하여튼 제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그 세미나의 주제가 뭐였느냐면 ‘문학의 위기 어떻게 극복하나’였어요. 또 소주제 중 하나가 ‘영화의 부흥. 이 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되나’였어요. 그 시절부터 벌써 문학이 위기고 독자들이 책을 너무 안 본다는 얘기를 계속해온 거죠. 그때 저는 사람들이 문화를 충족하는 매체가 다양화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이전엔 책이 다 누렸지만 이제는 좀 다른 매체가 생긴 거죠. 근데 그때는 그걸 위기라고 생각한 거예요. 사람들이 영화만 보고 책을 안 본다고.(웃음)
(웃음) 그때가 한국 영화의 부흥기기는 했어요.
맨날 위기를 진단하고 바깥으로부터 오는 불안감에 대해 얘기하는 건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도 좀 있었던 거 같아요. 책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권위 같은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콘텐츠 문제라고 생각해요. 콘텐츠가 좋으면 다른 장르로 살아남을 테니까요.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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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이기석
  • ASSISTANT 윤승현
  • DIGITAL DESIGNER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