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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2600과 플레이스테이션5 사이의 간극

아타리 2600과 플레이스테이션 5 사이의 거리.

BYESQUIRE2020.11.09
 

아타리 2600과 플레이스테이션 5 사이의 거리 

 
소니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5가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1분 만에 품절 안내 문구가 뜨자 예약에 실패한 회사 동료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신형 엑스박스의 예약 판매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발매일에 게임기를 손에 쥐고 싶은 마음과 웃돈을 주고 되팔이 물건을 사기는 싫은 마음 사이에서 나오는 탄식이다. 자식이 있는 부모들은 닌텐도 스위치 때문에 속앓이다. 아이에게 생일 선물로 주고 싶어도 정가에 매물이 나오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으니 예약 판매 정보 사이트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 사람도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하면 한국에서 콘솔 게임의 인기는 모바일 게임이나 PC 온라인 게임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재미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처럼 콘솔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제된 체험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많다. 보통 어릴 때부터 콘솔 게임을 쭉 즐겨온 사람들인데, 게임 회사에 다니다 보니 그런 이들을 종종 만난다. 우리끼리 ‘내 인생 첫 게임기’라는 화제로 잡담을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내 경우가 압도적으로 희소하다. 난 어린 시절 좀 특이하게도 ‘아타리 2600’으로 콘솔 게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타리 2600은 1970년대 말에 미국에서 나온 소위 2세대 게임기다. 1980년대나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세대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수입품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대라 ‘미제’인 아타리 게임기는 흔치 않았다. 1970년대생이라도 집에서 게임을 처음 즐긴 기기는 대부분 재믹스나 MSX였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아타리를 손에 넣었느냐?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1980년대 초반에 미국에 사는 이모부에게서 물려받았다. 워낙 신세계의 문물이다 보니 조이스틱에 버튼이 하나밖에 없는 단순함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오락실에서 무서운 고학년 형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오락 하게 50원만 달라고 했다가 엄마에게 핀잔을 듣거나 오락실에서 귀때기를 잡혀 끌려 나갈 걱정도 없었다. 집 안에 나만의 오락실이 생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도 사이버 범죄와 개인정보 보호를 가르치고, 자녀가 게임을 즐기는 것을 부모가 통제해야 하냐 정부가 규제해야 하냐, 게임에 중독이 되느냐 안 되느냐 등등 말이 많은 시대지만 1980년대 초만 해도 ‘전자오락’에는 ‘지능 개발’이라는 표현이 쌍으로 붙어 다니던 시절이라,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냐는 부모님께는 지능 개발 중이라고 적당히 둘러댈 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천국 같던 시기가 끝났다.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가 “너네 집에는 슈퍼 마리오 없어?”라고 물어본 그 순간이었다. 서울 친구 집에 놀러 가 닌텐도 패미컴 게임기를 처음으로 접하고, 슈퍼 마리오가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람보가 기관총을 갈겨대는 것을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니 사각형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우리 집 게임기는 전혀 슈퍼하지 않았다.
 
“아빠가 어릴 때는 TV가 귀해서 말이야~ 마당에 TV 틀어놓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 와서 TV 보고 그랬어. 그때는 우리 집이 그 정도로 부자였다구.”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TV가 있었으니 TV를 보러 다른 사람 집에 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관심 없었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았다. 닌텐도 패미컴을 하기 위해 친구 집에 가서 게임 화면에 흠뻑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서울 친구의 어머님이 교양 있는 말투로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이제 집에 가봐야 하지 않겠니?” 하시면 그렇게 속상할 수 없었다. 다들 어릴 때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왜 우리 부모님은 오락실 주인이 아닐까?' 왜! 대체 왜!
 
그러던 내가 게임 회사를 다니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빠와 엄마가 모두 게임 개발자이고 갓난아기 때부터 아빠가 게임하는 걸 보며 젖병을 빨던 우리 아이는 말하자면 ‘모태 게이머’ 아닐까? 서너 살에 ‘앵그리 버드’로 본격적인 게이머가 되고, 게임 패드를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소근육이 발달하자 마리오를 시작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도 닌텐도 골수 팬이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게임을 좋아하지만, 아이는 게임을 좋아하는 부모를 둔 덕을 보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없어서 못 판다는 닌텐도 스위치는 일본에서 2017년 3월에 처음으로 출시되었는데, 한국에서는 그해 12월이 되어서야 출시했다. 그 3월부터 12월까지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 아이가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 많았던 시기다. 보통의 아버지와 달리 아직 한국에 출시되지도 않은 게임기를 굳이 웃돈을 써가며 수입판으로 사두었던 아버지를 둔 덕에 자기 반에서 유일하게 닌텐도 스위치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되었던 그 시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에 영감을 받아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직접 영화를 찍는 것이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를 보면 게임 마니아가 되는 단계도 비슷한 것 같다. 아이는 동시대에 나온 게임만으로는 부족해서 그 게임의 이전 시리즈를 찾아 20~30년 전 고전 게임까지 플레이하고, 게임 캐릭터들을 외워서 그림으로 그리고 점토로 만들고 하는 단계를 거쳐 ‘스크래치’라는 아이들용 프로그래밍 언어로 자기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의 타이틀 화면이나 UI를 겉모습만 따라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때는 여러 조작이 필요하고 규칙에 맞게 플레이하면 점수를 획득하는, 제법 게임스러운 것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게임 시간을 제한했더니 제한 시간까지 게임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게임 만들기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이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옆에서 보고 있다가 ‘이럴 때는 캐릭터 이미지를 좌우로 뒤집어주면 더 자연스럽겠지?’ 하는 식으로 훈수를 두면서 잘난 척도 좀 하고.
 
이렇게 아이 앞에서 잘난 척하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한번은 아이와 장난감 가게에 갔다. ‘별의 커비’라는 게임 캐릭터 모형이 보였는데, 본래 캐릭터 생김새에 비해 모양이 영 어색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거 봐, 이상하게 생겼지? 디자인이 이게 뭐니~ 진짜 못 만들었다 ㅋㅋㅋㅋ”라며 웃었는데 아이는 정색하며 “아빠, 이거 클래식 커비라서 그래. 20년 전 초창기 디자인이야”라고 하는 게 아닌가. 졸지에 ‘이런 것도 모르는 아빠’가 되어버렸다.
 
나 어릴 때와 달리 게임을 풍족하게 즐기는 아이를 보며 “야 나도 너 같은 아빠 있으면 좋겠다. 아빠가 어릴 때는 게임기가 귀해서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넌지시 던져봤지만 아이는 ‘어쩌라고?’ 하는 듯한 표정이다. ‘게임 잘 만드는 진짜 비법 알려줄까?’라거나 ‘새로 나온 게임 예고편 보여줄까?’ 이렇게 물어봐야 눈이 반짝인다. 자기가 만든 게임이건 다른 사람이 만든 게임이건, 아이가 앞으로 만나게 될 게임은 아타리 2600과 플레이스테이션 5 사이 등장했던 게임 이상으로 많을 것 같다.
 
WHO'S THE WRITER?
최문영은 2000년에 넥슨에 입사해 '마비노기', '허스키 익스프레스', ‘런웨이스토리' 등의 게임을 개발했다. 현재 게임 회사 데브캣의 PD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