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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라는 게임을 완전히 바꿀지도 모르는 물리학 골퍼의 비밀

어쩌면 골프라는 게임을 송두리째 바꿔버릴지도 모를 골퍼에 대하여.

BYESQUIRE2020.12.09
 
 

Ultimate game changer

 
 2015 US Amateur Championship 90kg

2015 US Amateur Championship 90kg

 
물리학 헐크, 세상을 바꾸다
골프계에서는 2020년을 A.D. 1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브라이슨 디섐보(27)라는 괴짜 선수가 물리학 혁명을 일으킨 ‘After Dechambeau’의 원년이니 말이다. 세기를 가른 순간은 10월에 열린 2020년 US오픈이었다. 코스는 US오픈을 개최하는 코스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뉴욕시 인근 윙드풋 골프클럽이었다. 이곳에서 열린 다섯 차례의 US오픈에서 언더파로 우승한 선수는 딱 한 명(1984년 퍼지 졸러)뿐이었다. 디섐보는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4라운드 내내 오버파 기록 없이 6언더파로 6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US오픈 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업적이라고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최종 라운드에서 출전 선수 평균 스코어보다 8타, 4라운드 전체로 보면 25타 앞섰다. 그러나 물리학 괴짜의 우승엔 기록을 넘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라이더컵 유럽팀 주장을 맡은 토마스 비요른(덴마크)은 “디섐보가 게임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대체 뭐가 바뀐 걸까?
 
디섐보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것을 빼면 아주 특별한 선수는 아니었다. 2017년인 프로 2년 차에 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US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 등 아마추어 때도 잘했지만, 동년배 중 ‘최고’는 아니었다. 디섐보가 스타로 거듭난 건 2018년이다. 그해 4승을 거두며 스타 자리에 올라섰다. 그러나 응당 신성에게 쏟아져야 할 눈부신 조명은 비추지 않았다. 이전까지 지나치게 느리게 치는 ‘슬로 플레이어’, ‘이기적인 선수’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그해 말 매우 ‘영리한 선수’로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9년부터 핀을 꽂고도 퍼트를 할 수 있게 규칙이 바뀌던 시점이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디섐보는 달랐다. 그는 “깃대의 굵기가 얇거나 재질이 부드러우면 꽂고 퍼트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황에 따라 깃대를 꽂거나 빼고 퍼트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핀의 직경과 재질의 반발계수까지 고려해 득실을 따져놓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디섐보의 진짜 내공 중 일부가 드러난 셈이다. 2019년을 우승 없이 잠잠히 보낸 디섐보가 세계의 이목을 다시 끈 건 2020년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전면 중단됐던 프로 골프 투어가 재개되자 변한 외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국 팬들은 트위터에 ‘마치 헐크처럼 디섐보의 옷이 찢어질 것 같다’고 썼다. 잠잠하던 몇 개월 새 온몸을 근육으로 무장한 디섐보는 드라이버로 360야드를 밥 먹듯 쳤다. 눈으로 보이는 변화가 너무도 확연했다. 4개 대회 연속 5위 이내에 들더니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어쩌면 이후에 이어진 US오픈 우승마저 디섐보 골프 완성의 길에서는 작은 이정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2020 US OPEN 100kg

2020 US OPEN 100kg

 
디섐보의 변화
2019년 가을 디섐보는 자신의 몸으로 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근육 활성화 기술(Muscle Activation Technology) 프로그램을 밟으며 아침에만 달걀 4개와 베이컨 5장, 토스트 등 5000kcal 이상의 음식을 먹었다. 단백질 음료도 하루에 6개 이상을 마셨다. 대학 졸업 후인 2015년 185cm에 약 90kg이던 그의 몸은 2020년 여름 108kg이 됐다. 대부분 근육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미디엄 사이즈 셔츠를 입던 그가 엑스트라 라지를 입고 나타났는데, 그것마저도 타이트해 보일 정도다. 불어난 몸이 내는 괴력은 고스란히 공에 전달됐다. 볼 스피드가 여름엔 시속 203마일(약 326km)이 나오더니, 11월엔 213마일(342km)까지 찍었다. 그는 로킷 모기지 클래식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우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바이슨(버펄로), 디 인크레더블 벌크, 미친 과학자, 디슬램보 등으로 불렸다.
 
힘이 바뀌면 이 힘을 전달하는 장비도 완전히 바뀌어야 하기 마련이다. 그는 17세 때 길이가 같은 아이언을 직접 만들었다. 지금도 6번 아이언부터 피칭 웨지까지 모두 길이가 똑같은 ‘원 렝스(One length) 아이언’을 사용한다. 드라이버 샤프트 길이는 45.5인치인데 마스터스를 위해 규정이 허용하는 최대 길이인 48인치를 실험 중이라고 한다. 드라이버 로프트 각도(드라이버 헤드의 클럽페이스가 위쪽을 바라보는 각도)는 5.5도다. 다른 선수들의 절반 정도다. 그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 로프트가 낮을수록 유리할 수도 있다. 앞으로 내 드라이버 로프트는 0도 혹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웨지와 퍼터를 포함해 모든 클럽에 그라파이트 샤프트를 쓰는 얼리어답터이기도 하다. 헤드 토 쪽 뒤가 움푹 들어간, 보기엔 흉한 웨지를 주문 제작한 뒤 오랫동안 사용했다. 디섐보는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하지 못한 분야가 웨지인데 드라이버 등의 실험이 끝나면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3번 우드는 11.5도와 13.5도 2개다. 남들이 쓰는 장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장비를 활용하고 그린 핀 위치를 재는 컴퍼스를 이용하는 등 끝없는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힘과 장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동작은 바로 스윙이다. 당연히 스윙도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변해가고 있다. 디섐보는 〈더 골핑 머신〉이라는 스윙 이론서의 추종자로 유명하다. 15세 때 선물을 받고 이 책에 푹 빠진 이후, 거의 외울 정도로 팠다. 책은 길이가 똑같은 클럽과 싱글 플레인 스윙 등을 주창한다. 싱글 플레인 스윙은 현대골프에서 정통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상현 SBS골프 해설위원은 “팔과 샤프트를 1자로 만드는 스윙이다. 일반 스윙에서는 팔을 늘어뜨리고 손목이 꺾이면서 코킹을 하는데 싱글 플레인 스윙은 코킹이라는 변수 하나를 지워 훨씬 정교하게 칠 수 있다. 그 대신 코킹이라는 지렛대가 없어지기 때문에 힘이 덜하다. 가장 공을 똑바로 친 것으로 유명한 모 노먼이라는 사람도 싱글 플레인과 유사한 스윙을 했는데 정교한 대신 샷거리가 짧았다. 디섐보가 몸을 키운 이유는 이 정교한 스윙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종의 엔진 출력을 키워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디섐보의 실험은 끝이 없다. 홀을 정면으로 보고 퍼트를 하는 사이드 새들 자세를 쓰다가 규제를 받기도 했다. 또한 젊은 선수들은 약간 창피하다고 여기는, 샤프트를 팔에 붙이고 스트로크하는 암락킹 퍼트 그립을 쓴다. 물리학 용어인 벡터 퍼팅이라 불리는 퍼트 연습을 통해 거의 꼴찌이던 퍼트 능력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진짜로 바꾼 것
그러나 그가 바꾼 건 몸과 장비, 스윙처럼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골프의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검증하는 중이다. 일반인은 샷 거리를 타깃이 10m 위라면 10m를 더하고, 바람이 강하면 두 클럽 더 길게 잡는 정도, 즉 대략적인 감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디섐보가 샷을 할 때면 거리 외에도 명료한 숫자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공기 밀도, 샷 지점과 타깃의 고저 차(헤드 로프트에 따라 다른 방정식을 쓴다), 바람(구질과 바람의 방향·세기 등에 따라 다르다), 공이 놓인 라이 경사, 공 떨어지는 곳의 경사 등이다. 일반 투어 프로들과 비교하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과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일 정도의 차이다. 코스 전략에서도 기존의 상식을 망치로 부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US오픈을 앞두고 선수들은 “러프가 워낙 길어 반드시 페어웨이를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디섐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최대한 티샷을 멀리 보내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 러프든 어디든, 짧은 클럽으로 그린을 공략하겠다”고 했다. 멀리 치니 당연히 페어웨이 안착률은 높지 않았다. 이번 US오픈의 파 4나 파 5홀 56개 중 디섐보가 페어웨이에 안착시킨 건 23차례(41%)밖에 되지 않는다. 페어웨이 안착률 41%는 역대 US오픈 챔피언의 기록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강력한 파워로 웨지 샷을 하기 때문에 그린에 공을 올릴 수 있었다. 최대한 멀리 때려놓고 러프에서 빼내는(Bomb and Gouge) 전략이다.
 
디섐보는 10월 열린 슈라이너스 병원 오픈  1라운드에서는 9언더파 62타를 쳤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이글 퍼트를 다섯 번 했다는 점이다. 파 5홀에서 모두 투온(두 번 쳐서 올리는 것)을 시켰고 381야드의 파 4인 7번 홀에서는 티샷을 그린에 올렸다. 이글 퍼트는 단 하나도 넣지 못했지만, 이 다섯 홀에서 그는 모두 버디를 잡았다. 디섐보는 “이글 퍼트 기회를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홀의 파가 1타 줄어드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골프장의 파를 67(보통 골프 18홀의 파는 72)로 만들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69타를 친다면 2오버파를 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그가 헐크로 변신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정복하기 위해서였다. 이 코스는 거포들의 지옥 중 하나로 불린다. 장타족의 질주를 막는 벙커가 그린과 페어웨이를 단단히 지키고 있어서다. 360야드씩 치는 헐크에게 벙커의 수비는 통할까? 이번 마스터스를 앞두고 디섐보는 오거스타를 방문했다. 짧은 파 4홀인 3번 홀에서 우드로 쳤는데도 그린을 넘겨버렸다. 8번 홀은 570야드의 오르막이라 보통은 그린에 투온을 하기가 힘든데, 디섐보라면 320야드 앞에 있는 벙커를 넘겨버리고 미들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헐크에게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파 5홀 4개가 모두 파 4홀로 변한다. 그중 2개는 쇼트 아이언을 사용하는 비교적 쉬운 파 4가 될 것이다. 짧은 파 4인 3번은 이 헐크에겐 원온이 가능한 거리다. 이 거리면 내리막 450야드의 7번 홀은 그린 근처에 티샷을 보내 칩샷으로 버디를 잡겠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바람과 비 등 날씨에 따라 변수는 있겠지만 일단 전략은 그랬다.
 
자존심 센 오거스타 내셔널의 방어도 주목을 받았다. 타이거 우즈가 1997년 엄청난 장타를 때리면서 12타 차로 우승한 후 골프장은 전장을 늘려 대항했다. 호랑이를 막아낸 오거스타가 헐크도 막아낼 수 있을지 관심을 끌었다. 지난 11월 12일(한국 시간)부터 16일까지 열린 제84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디섐보는 2언더파 34위에 그쳤다. 지나친 관심에 따른 부담감과 어지럼증이 이는 등의 컨디션 난조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파워는 골프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골프라는 스포츠 전반의 변화
어쩌면 디섐보 이후의 세계에는 골프라는 게임이 완전히 바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는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다. 선수가 체격을 키우면 상대 선수도 따라서 몸집을 불린다. 선수가 커졌다고 야구장이나 축구장 사이즈를 키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골프는 인간과 코스의 대결이다. 선수들이 멀리 치면 골프 코스도 커져야 한다. 그러나 오래된 코스는 사이즈를 키우는 게 불가능하다. 디섐보의 보디 혁명은 너무나 강력해 골프 코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각국 골프협회에서 주장하던 프로용, 아마추어용 장비 이원화 주장이 디섐보 덕에 힘을 받을 것이다. 공의 탄성을 두 가지로 하든, 야구처럼 방망이(드라이버)를 나무(프로)와 금속(아마추어) 두 가지로 하든,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골프 규제기관은 본다. 규칙이 이원화되면 장기적으로 프로 골프와 아마추어 골프는 뿌리는 같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스포츠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동안 감에 치중했던 골프의 시대가 저물고, 숫자와 데이터 골프의 시대로 변모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종교의 시대가 과학의 시대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길이 올바른지 확신할 수는 없다. 나상현 SBS 해설위원은 “디섐보가 안 그래도 복잡한 골프에서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사람에 따라 성향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TMI)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디섐보의 아이돌은 타이거 우즈가 아니라 벤 호건이다. 차가운 태도로 완벽한 골프 스윙을 추구한 인물이다. 디섐보는 “만약 호건이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나보다 더 많은 발전을 이뤘을 것이다. 호건의 시대인 1940년대보다 지금 기술이 훨씬 발전했기 때문에 내가 돋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숫자가 골프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박원 JTBC 골프 해설위원은 "골프 스윙은 클럽을 통한 힘의 전달이기 때문에 물리학이며 클럽이 어느 위치에서 어느 경로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힘의 유효성이 달라지기에 기하학이다. 결국 골프는 생체역학 이외에도 물리학, 기하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다학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중 특정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도그마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의 90%는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결국 멘탈 게임이라는 얘기다. 디섐보가 미묘한 마음까지 과학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너무 빠른 몸의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경쟁 선수들은 “디섐보의 몸이 너무 빨리 커졌다”라며 금지 약물인 스테로이드 복용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디섐보는 정상적으로 도핑 테스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적발되지 않는 비밀 약물을 쓰다가 뒤늦게 들통 난 선수들의 예는 흔하다. 박원 해설위원은 “금지 약물이 아니더라도 단백질 음료를 과다 섭취하면 신체 기능이 더 빨리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 “몸을 확 불리는 디섐보 방식을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대세는 대세다. 미국 골프 해설가 브랜들 챔블리는 “만약 이런 상황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두고 볼 일이다. 2020년은 A.D. 1년이 될 것인지를.
 
Who’s the writer?
성호준은 중앙일보 사회부와 스포츠부를 거쳐 골프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중앙SUNDAY, 네이버에 ‘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진품 명품’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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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박세회
  • WRITER 성호준
  • PHOTO GETTY IMAGES KOREA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