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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에서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Part.2

펜트하우스에서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로건 리나 구호동이 아닌, 진짜 박은석을.

BY김희진2021.01.22
 
 

박은석의 사생활 

 
대신 다른 취미가 있죠. 아웃도어 액티비티. 그것도 좀 거칠게 즐기는 편인 것 같던데요.
익스트림. 약간 익스트림한 걸 좋아해요. 자전거도 생각보다 위험한 스포츠잖아요. 얇은 옷에 헬멧 하나 쓰고 타는 건데 차 쌩쌩 달리는 도로 옆을 달릴 때도 많고 다운힐 같은 건 거의 시속 70~80km 나오니까. 오토바이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서핑도 사실 위험한 스포츠거든요. 물이라는 게 굉장히 힘이 세요. 파도에 한번 잘못 휘말리면 정말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걸 느낄 때도 있어요. 캠핑 같은 경우엔 우리나라 치안이 워낙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제가 노지 캠핑을 추구하기도 하고.
캠핑 하다가 멧돼지를 마주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사실 국내 산림에선 맷돼지가 왕인데.
맞아요. 제가 마주친 게 새끼여서 망정이지, 정말 잘못 걸리면 큰일 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제가 좀 조심성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그런 마인드거든요. ‘그냥 일단 해보자, 가보자, 왜 안 돼? 해보고 판단하자’ 미국에서 한국 올 때도 그랬고, 군대 갈 때도, 연극 시작할 때도 그랬고요.
그렇게 가볍게 시작하시는 것치곤 항상 끈질기게 해오셨잖아요.
그러다가 ‘어? 이거 재미있네?’ 이렇게 되면.(웃음)
 
실크 셔츠 베르사체 by 육스. 반지 에디터 소장품.

실크 셔츠 베르사체 by 육스. 반지 에디터 소장품.

 
재미가 중요한 거군요.
제 목표 중 하나가 카약 들고 몽골에 가는 거거든요. 몽골 투어가 있어요. 카약 타고 200km 쫙 내려가는. 거기서 말도 타고 활도 쏘고… 어떻게 보면 애 같아요, 저는. 아직 성장을 못 한 어린아이가 머리나 가슴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아이랑 제일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제일 친근하고, 걔랑만 놀고 싶고. 모든 게 호기심이고, 모든 게 새롭고, 그런 거 있잖아요.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 하나로도 새로울 수 있으니까. 인생을 더디게 만들고 싶지 않은 그런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카약으로 200km... 아까 서핑 얘기 하면서 물이 무서운 존재라고 하셨지 않아요?  
그렇긴 하죠. 어떤 사람들은 그럴 거예요. 그럼 그렇게 위험한 걸 왜 하느냐고. 그런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이것저것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는다면, 그런 삶이 과연 삶일까?’ 저는 제가 그런 걸 하는 게 심심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이런 것들을 하는 게 연기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 제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산.
우리는 모든 게 정말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모든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사회는 자꾸 자기도 모르게 서로를 비교하게 만드는 것 같고요. 저는 그런 게임을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냥 단절시키고, 바깥에서, 조용한 곳에 가서 내 삶을 조금 더 찾는 거죠. 내가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성격이고, 어떤 성향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거죠. 그럼 이 캐릭터, 이 연기는 제가 가진 뭘 섞어서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스스로를 재정렬하는 시간이네요. 마냥 여흥 같은 활동이 아니라.
그렇죠. 저는 제가 방금 말한 그 시스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방송 일이라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 달에 스물 몇 번씩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서로 경쟁하고, 비교하고… 힘든 삶이거든요. 이게 저한테 스며들어서 ‘나는 배우야’, ‘유명한 사람이야’ 이렇게 되면 곤란하죠. 빨리 벗겨내야지. 삶에 있어서 정말 안 좋은 거잖아요.
오래도록 반지하 생활을 하셨잖아요. 최근에는 부모님께 양평에 전셋집을 얻어드렸다고 했고, 그 집을 정리하면서 요즘 또 캠핑을 많이 하시는 것 같고. 방금 말씀을 들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다시 이해되는 측면이 있네요.
삶에 대한 선택인 거죠. 내 자신이 질질 끌려가면서 계속 진흙탕 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내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거기서 만족을 찾을 것인가. 물론 진흙탕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고 행복을 찾을 수도 있겠죠. 반면에 내 기준으로 만족을 얻는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자꾸 남이 만족하는 것 이상을 가져야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같으니까. 그래도 전 후자를 택한 거예요.
어느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한국의 아파트라는 구조가 서로를 철저하게 비교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중 하나라고. 구조가 비슷하니까 대충 서로 어떻게 사는지 다 알 수 있잖아요. 그걸 또 평수로 계급화할 수 있고. 말씀이 드라마 〈펜트하우스〉와도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맞아요. 몇 층에 사는지가 중요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고. 작가님의 세계관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은석 씨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을까요? 〈펜트하우스〉의 주제 의식이?
〈펜트하우스〉 같은 경우에는 주제 의식보다는 캐릭터에 끌렸던 것 같아요. 만약 로건 역할만 맡았다면 위험했을 것 같은데, 구호동(극 중 로건 리가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분장하고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캐릭터도 있었으니까요.
‘위험하다’는 건 어떤 이야기일까요?
모두가 다 힘든 시기잖아요. 이런 때에 무슨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해 600조 자산을 갖고 있다는 사람이 영어로 말하고 멋있는 척을 하고, 그렇게만 묘사한다면 저는 그게 위험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전에 호동이라는 인물로 먼저 다가갔잖아요. 친근하고 구수하고, 술 한 잔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으로 먼저 다가갔다가 로건 리를 보여줘서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인 것 아닐까 싶어요. ‘저런 사투리에 저런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조만장자 자산가였다고?’ 하고.
얼마나 만족을 해요? 은석 씨가 만들어낸 로건 리와 구호동 캐릭터에 대해서는?
아유, 만족은 할 수가 없죠. 일단은 사투리도 너무 아쉬웠고요.
 
벨벳 코트, 셔츠, 팬츠, 슈즈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벨벳 코트, 셔츠, 팬츠, 슈즈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근데 저는 사투리 꽤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부산 태생인데….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친한 배우 중에 부산 출신 형이 있거든요. 그 형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걸 음률이라고 하나요? 말의 높낮이 변화를 잘 캐치하고 싶더라고요.
특히나 은석 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그럼 한국인 배우가 미국에 가서 남부 토박이인 척 사투리로 연기하는 그런 수준 아닌가’ 하고.
그러네요.(웃음) 그런데 처음에는 저도 경상도 사투리를 잘 구사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호동이의 말투가 된 것 같아요. 이건 뭐 어디 사투리다, 그런 게 아니라.
하긴 토박이인데도 이상한 말씨를 쓰는 애들이 있으니까요, 어느 지역에나.(웃음)
맞아요. 뭐 서울 왔다 갔다, 여기서 2년 살고 저기서 3년 살고 이런 친구들은 정말 이상한 말씨를 쓰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아쉬운 대로 만족하고 있어요.
동생을 잃고 거대한 복수를 계획한 캐릭터였잖아요. 그런데 구호동은 굉장히 천진난만한 사람이었고, 근데 또 한 번씩 뭔가를 숨기고 있는 눈빛을 드러내야 했고. 로건 리는 여유만만한 거부인데, 막판에는 붙잡혀서 처절해지기도 하고요.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캐릭터의 일관성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했죠. 일단 극 중에서 로건이 복수하고자 하는 동기가 많이 설명되지는 않아요. 동생인 민설아와의 좋았던 관계도 정말 짧게 회상으로 지나가고. 그래서 그 감정을 혼자 크게 갖고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야 호동이든, 로건이든 행동에 설득력이 생기고 힘이 생기니까. 나중에는 방영본을 보며 힘을 많이 얻기도 했고요. 민설아 그 친구가 연기를 하도 잘 해줘서요. 제가 로건이었다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장면들이 많았잖아요.
시청자의 자세로 보면서.
사실 영화나 연극은 캐릭터의 감정 디자인을 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이야기의 시작과 끝 지점을 아니까. 그런데 드라마의 경우에는 회차로 끊어서 나오잖아요. 중간중간에 캐릭터가 좀 바뀌기도 하고, 편집을 하다가 촬영한 순서를 바꿀 수도 있고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좀 굵직한 것만 잡아서 갖고 가려고 하죠. 이 신에서는 분노. 그런데 분노 신마다 똑같은 걸 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는 슬픔이 앞선 분노, 저기서는 눈빛으로만 표현하는 분노. 한 가지 감정에 대해서도 정말 다양한 표현법이 있잖아요. 그걸 하나하나 하는 것도 되게 재미있죠. ‘화를 100가지 방법으로 내봐’ 그러면 얼마나 재미있어요.
10여 년을 연기한 베테랑 배우인데, 아직도 연기 이야기를 할 때 제일 신나 보이네요.
아 그래요? 제가 아는 게 연기 이론밖에 없어서.(웃음) 좀 릴랙스할게요.
보기 좋아서 한 말이에요.
그런데 맞아요. 저는 연기 얘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그렇습니다.
〈펜트하우스〉는 특히 캐릭터의 일관성이나 사건의 개연성보다는 박진감에 집중하는 작품이었으니까 더 힘들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중간중간에 신이 잘리는 경우도 많았고. 신이 길어서 중간중간 대사들이 잘려 압축되는 경우도 많았고.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박진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랑받지 않았나 싶어요. 사건 사고가 많고, 한 가지 사건을 두고도 여러 인물들의 색다른 시선이 나오는 게 재미였으니까요.
저는 그래도 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어요. 오윤희 같은 캐릭터는 집 계약하러 가야 하는데도 리어카 끌고 가는 노인을 마주치면 도와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잖아요. 그 사람이 온갖 나쁜 음모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이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지경이 되었는데, 그 변화 과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그걸 좀 더 다뤘다면 작품의 메시지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고요.
만약 오윤희가 원톱 주인공인 드라마였다면 그게 맞겠죠. 하지만 〈펜트하우스〉에서 그걸 설명하려면 길고 지루해졌을 거예요. 이 작품 특징이, 딱 주인공이 없잖아요. 모두가 주인공이고, 반면에 모두가 조연이고요. 그러니까 다들 주인공 역할이 돌아왔을 때는 본인들이 딱 하드 캐리하고, 조연일 때는 완벽한 서포트를 한 것 같아요. 다들 분량 욕심도 없고, 연기 욕심만 있고, 누구 하나 구멍도 없고. 누님 형님들 다 대단하세요. 지금 보면 정말 잘될 수밖에 없는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그걸 알고 잘 살려주신 것 같고요. 제가 뭐 한 가지 의견 내면 다 차려져 있던 세팅을 30~40분 걸려서 바꾸는 분이었거든요. “어떻게 하고 싶어? 아,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다” 하시면서요. 그런 현장이 어디 있겠어요.
굉장히 열린 분이네요.
제가 첫 번째 고정 단역을 맡았던 작품이 〈부탁해요 캡틴〉이라는 드라마였거든요. 그 감독님이 〈펜트하우스〉 감독님이셨어요. 주동민 감독님. 그래서 그게 좀… 간지러웠죠. 감동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감독님, 저 10년이나 걸렸지만, 드디어 주인공 되어서 나타났어요” 하니까 “어, 너 열심히 한 거 내가 알지. 그런데 나도 열심히 살았어” 하시고. 짧은 대화였는데 그게 그렇게 감명 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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