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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에서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Part.1

펜트하우스에서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로건 리나 구호동이 아닌, 진짜 박은석을.

BYESQUIRE2021.01.22
 
 

박은석의 사생활

 
(마스크 매무새를 고치고 소파에 앉으며) 무슨 이런 시절이 다 있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요. 인터뷰도 마스크 끼고 해야 하고…. 그래도 저는 이렇게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펜트하우스〉 촬영은 그래도 다른 드라마에 비해 수월한 편이죠? 로케이션이 거의 정해져 있고, 밀실에서 작당 모의하는 신이 많고. 아, 출연진이 많아서 더 힘들려나?
저희도 중간중간 촬영이 멈추기도 했어요. 제가 검사를 받느라 촬영에 못 나간 시기도 있었고요. 아무튼 그것도 감사한 일이죠.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시즌1의 긴 촬영을 마쳤으니까요. 그건 정말 저희 〈펜트하우스〉 식구들 전체의 운이라고 생각해요.
 
벨벳 로브 김서룡. 티셔츠 벨루티. 팬츠 미스터 피. 슈즈 에디터 소장품.

벨벳 로브 김서룡. 티셔츠 벨루티. 팬츠 미스터 피. 슈즈 에디터 소장품.

 
그냥 탈 없이 끝나기만 한 정도가 아니었잖아요. 반응이 정말….
그쵸.(웃음) ‘그래도 기본은 하겠지’ 하는 생각은 다들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곤 아무도 예상 못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시청률이 20%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23, 24%까지 나오고, 마지막엔 거의 30%가 나왔고요. 아, 정말 대단한 드라마다 싶었죠.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은석 씨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죠. 첫 상(SBS 연기대상 남자조연상)을 안겨준 작품이에요.
맞아요. 재작년에 신인상 후보까지는 올라갔지만 못 받았죠. 이번에 더 큰 상을 받게 됐으니까, 지난해에 못 받은 것까지 한 번에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상 욕심이 있어요?
평소에요? 없는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이 미국에 계시다 보니까 다른 종류의 욕심은 있었죠. 연말 시상식에 나가서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말을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이제 한번 해봤으니까 됐어요. 상은 주시면 감사한 거지만, 열심히 하면 또 자연스럽게 따라오겠죠.
저는 이민자 가정을 그린 책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아요. ‘아 저들이 가진 서로에 대한 마음은 내가 평생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겠다’.
맞아요. 남다른 애틋함이 있죠.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이 또 굉장히 화목하거든요.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고요.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긍정적이고 화목하게, 저희 가족 네 명이 서로를 살펴주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게 은석 씨가 일곱 살 때였죠. 제가 아동 발달 단계를 잘 몰라서 그런데, 일곱 살이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때 간 건가요?
미국에 가서야 한창 언어 발달 시기가 왔어요. 덕분에 영어를 빨리 배웠어요. 제가 언어 습득력이 좀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2년짜리 ESL 클래스를 거쳐야 하는데 1년 만에 졸업을 했거든요. 그래서 바로 일반 학생들과 수업을 들었죠. 다시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도 빨리 배웠던 것 같고요.
연기는 어머니 권유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특히 어머니가 항상 그랬어요. 이 아이의 주체할 수 없는 이 에너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정말 많았대요.
사고뭉치였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사춘기도 좀 심하게 왔었고. 인종차별과 싸워야 했던 시기에 사춘기까지 겹치다 보니 사회에 대한 반항심 같은 것도 있었어요. 학교에서 애들이랑 싸우기도 했고, 가출도 했었고.
가출해서 어디 갔어요?
그때 친구 집에 갔었는데.
아, 그런 가출.(웃음)
아니 그런데 전화도 안 오더라고요. 찾지도 않아요, 저희 부모님은. 그래서 혼자 슬퍼서 “왜 나 안 찾았어!” 이러면서 울면서 집에 들어가고.(웃음) 저희 부모님이 기본적으로 좀 풀어놓고 키우는 타입이셨어요. 되게 인자하시고, 개그 욕심도 많으시고. 그런 분들이신데 제 에너지에 대해서는 좀 걱정을 하셨던 거죠. 그런 게 길을 잘못 타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가 제가 좀 안 좋았던 시기에 어머니가 신문에서 기사를 발견하고선 저한테 알려주더라고요. 맨해튼에 한국 사람이 연기학원을 오픈했다는 기사가 났었거든요.
안 좋았던 시기란 어떤 걸까요?
거의 6개월 동안 집 밖을 안 나갔어요. 그때 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거든요. 집에 불도 났었고, 세금을 못 내서 정부에서 차도 압류했고… 나쁜 사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던 거죠. 어린 나이에 그걸 감당하지 못했던 거고요. 그러다 연기학원에 다니게 된 건데, 아니 그런데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나중에는 토요일만 기다릴 정도로요. 일주일에 딱 한 번, 2시간 수업했거든요.  연기학원이 맨해튼 34번가였으니까 저희 집인 롱아일랜드에서 기차 타고 왕복 2시간 거리였어요. 그 2시간 수업을 위해 왔다 갔다 해도 귀찮은 줄도 몰랐고.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요?
남들 앞에 처음 섰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되게 힘든 일들이 겹치면서 언제부턴가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지고 그랬거든요. 그런 저한테 ‘스파크’가 되어준 거죠. 아마 처음으로 꿈이라는 게 펼쳐진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제가 그 전에 패션 공부도 했고, 그림도 그린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연기는 달랐던 게, 지금껏 싫증 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신기하게도요.
인터뷰 보면 어머니가 뿌듯해하시겠네요.
이미 제가 이런 이야기 한 걸 어디서 많이 찾아 보신 것 같긴 한데.(웃음)
생색도 내세요? 내 말 듣기 잘했지 않느냐고?
저희 엄마가 그런 성격은 아니에요. 그냥… 엄마는 항상 그랬어요. 네가 아니면 누가 연기를 하냐고. “혼자 보기가 아깝다, 내 아들.” 제가 어릴 때부터 늘 그러셨죠. 그런 말들이 제 자존감을 많이 높여줬을 테고, 그게 지금 저를 버티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이가 배우를 한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듣고 말리는 부모도 있을 거잖아요.
 
벨벳 재킷 김서룡. 턱시도 셔츠 미스터 피.

벨벳 재킷 김서룡. 턱시도 셔츠 미스터 피.

 
그죠. 자식이 배우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그 업계가 어떻다는 둥 주변에 쓸데없는 풍문 늘어놓는 사람도 많을 테고.
맞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했어요. ‘넌 무조건 잘될 거다, 넌 된다, 네가 아니면 누가 하냐’ 항상 그런 얘기들만 해주셨죠.  
자존감을 높여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 ‘잘한다 잘한다’ 성장한 친구들이 사회의 벽에 부딪혀 상처를 받기도 하잖아요. ‘내가 특출난 인물이 아니었다니’ 하고.
그런 게 있죠.(웃음) 저도 세상 물정 모를 때는 상처도 많이 받았고, 많이 무너지기도 했고요. 엄마는 ‘괜찮아, 잘할 거야’ 하시지만 그 얘기조차도 사실은 부담이 될 때가 있잖아요. ‘내가 엄마의 기대만큼 못 해내면 어떡하지?’ 아이러니인 거예요. 엄마는 믿음을 주고 싶은데 저한테는 그게 또 다른 트라우마나 결핍이 되는 거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각자가 풀어야 할 숙제인 거지. 다행히 저는 그 안에서 연기라는 끈을 놓지 않았던 거고요.
누군가가 아무리 진심으로 생각해준다고 해도, 자기가 직면한 삶의 무게는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거니까요.
그래서 엄마가 저를 대견해하면서도, 또 슬퍼하기도 하세요. 내가 혼자 한국에 와서 15년 동안 혼자 힘으로 이렇게 일을 해왔다는 거에 대해서. 가끔 그렇게 말씀도 하세요. 제게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고 힘들었을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한다고.
그런 고충을 잘 알기 때문에 더 깊이 느끼는 걸지도 모르죠. 어린아이들 데리고 이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군 분들이라서.
저는 저희 부모님을 정말 존경해요. 저희 부모님이 저를 대견해하는 것처럼.
배우가 되려고 혼자 한국으로 왔는데, 무명 생활이 꽤 길었어요. 그걸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뭐였을까요?
일단은 가족들의 무한한 믿음이죠. 그리고 인터뷰를 많이 봤어요. 배우들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 꿈을 꾸고,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인터뷰요.
예를 들면요?
음… 윌 스미스가 그랬어요. ‘정말로 당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누군가가 성공하는 걸 먼저 도와주라’고. 오프라 윈프리는 ‘감사할 줄 알아야 앞으로 더 감사할 일이 생기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불평할 일들이 생긴다’고 했고요.
아, 그런 격언들.
그런 말을 진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 거죠. 진부하다는 건 그만큼 많이 사용된 말이라는 거잖아요. 그만큼 보장된 말이라는 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공식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마냥 ‘아 무슨 아재 같은 소리야’ 하는 식으로만 받아들이면 안타까운 거죠.
하하하.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는 그런 것들이 저를 지탱해줬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가다듬지 않고 매일 TV만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저 역할 내가 하면 잘했을 텐데’ 그런 생각만 했다면 제가 지금쯤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꿈을 이룬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방식으로 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TV를 끄고, 술자리 안 가고….
술 안 마셔요?
집에서 와인은 좀 마셔요. 술자리를 잘 안 가죠. 물론 그런 데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도 많겠지만, 이젠 이상한 소리 하다가 집에 오면 다음 날 기억도 못 하는 그런 나이가 됐잖아요.(웃음) 그런 건 어릴 때 많이 해봤으니까요. 이젠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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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EATURES EDITOR 오성윤
  • FASHION EDITOR 윤웅희
  • PHOTOGRAPHER 김참
  • HAIR & MAKEUP 장해인
  • ASSISTANT 이하민 / 윤승현
  • LOCATION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