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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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를 모를 리 없다. 쟁쟁한 슈퍼카를 마음껏 골라 탈 수 있는 게임 속 세상이지만, 경쟁자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을 땐 항상 919를 골랐다. 2014년 데뷔 후 3년 연속 ‘르망 24 내구 레이스’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레이스카이기 때문이다. ‘녹색 지옥’으로 악명 높은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최고시속 369km로 달리며 5분 19초라는 범접할 수 없는 랩타임을 기록한 바로 그 차다.
919 스트릿은 919 하이브리드의 엄청난 퍼포먼스를 일반도로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한 모델이다. 차체 크기와 휠베이스를 레이스카와 똑같이 만들었다. 디자인은 그대로 두고 레이싱 데칼과 스폰서 래핑만 걷어냈을 뿐인데 ‘하이퍼카’ 분위기를 자아낸다. 2017년 클레이 모델로 만들어졌으나 개발은 중단된 상태다. 시동을 거는 데만 45분이 소요되는 919 하이브리드의 엔진을 양산차에 탑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매번 다른 브랜드보다 반 발자국 앞서 미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포르쉐는 과거의 영광을 재해석하는 것에도 능숙하다. 그 증거가 2019년 제작된 ‘비전 스파이더’다. 제임스 딘의 차로 유명했던 포르쉐 550 모델을 모티브로 했다. 납작한 차체와 한껏 부풀린 앞뒤 펜더에서 1950년대 포르쉐 디자인이 묻어난다. 판금에 각을 내어 구부리지 않고 둥글게 마감한 뒷모습은 클래식 포르쉐 마니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대조적으로 헤드램프는 미래적이다. 디자인을 총괄한 마이클 마우어는 비전 스파이더의 네모난 헤드램프가 차세대 포르쉐 모델에 적용될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포르쉐는 2019년부터 포뮬러 E에 참가하고 있다. 포뮬러 E는 모터스포츠의 최상위 클래스인 포뮬러 1의 전기차 버전이다. 여담이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5월 우리나라에서도 포뮬러 E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비전 E’는 포뮬러 E에 출전하는 ‘99X 일렉트릭’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운전석이 차의 중앙에 위치한다. 차의 전체적인 실루엣과 컬러 역시 99X와 흡사하다. 운행이 불가능한 샘플 모델이기 때문에 주행 성능 수치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천문학적인 돈을 포뮬러 E에 쏟아붓는 이유는 다가올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포뮬러 E에서 얻은 수많은 데이터를 이용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양산차에 적용한다.
포르쉐는 포뮬러 E에서 얻은 800V 충전 기술과 같은 노하우를 자사의 첫 전기 스포츠카인 타이칸에 적극 활용했다.

랠리 레이싱을 본 적 있나? 도로는커녕 가드레일도 없는 산길을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린다. 드라이버는 팀 보이스에 의존해 차를 운전하는데 절벽 위 블라인드 코너를 곡예에 가까운 운전 실력으로 돌아 나간다. 매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자동차 경주 중 하나다. 그런데도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랠리에 도전하는 이유는 랠리를 무사히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차의 내구성과 성능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911 비전 사파리’는 1978년 아프리카 랠리에 출전했던 ‘911 사파리’를 계승하는 모델이다. 2012년 시운전이 가능한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졌다. 991 모델 베이스에 서스펜션과 범퍼, 휠 하우스를 오프로드용으로 다듬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트 뒤에는 사막을 달리며 뜨겁게 달궈진 헬멧을 올려놓을 수 있는 수납공간까지 마련해놓았다.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포르쉐의 집념이 엿보인다.

지붕이 없다. 지붕이 없다는 건 일반도로 주행용 차가 아니란 뜻이다. 981 박스터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박스터 베르크스파이더’는 힐 클라임 레이스카다. 1950년대에는 엔진 성능이 지금처럼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길고 가파른 언덕을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는지가 차의 성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중력을 거슬러 달려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야 했다. 실제로 1967년 ‘유러피안 힐 클라임 챔피언십’에 출전했던 ‘909 베르크스파이더’ 레이스카는 무게가 고작 384kg로그램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현재까지도 포르쉐가 만든 가장 가벼운 레이스카로 꼽힌다.
박스터 베르크스파이더는 최고출력 393마력을 발휘하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탑재했는데 마력당 무게비가 2.8kg에 불과하다. 참고로 국내 판매 중인 모델 중 마력당 무게비가 2.8kg보다 가벼운 차는 10대가 채 되지 않는다. 2014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졌던 이 차는 2019년 오스트리아 ‘가이스버그 힐 크라임 레이스’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현재는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기 위해선 레이스카 말고도 다른 차들이 필요하다. 레이스카를 서킷까지 옮기는 트레일러나 세이프티 카 같은 것들 말이다. 레이스 서비스 카는 서킷에서 많은 이들의 발이 되어주는 일종의 셔틀 같은 개념이다. 미니밴 모델이 없는 포르쉐는 폭스바겐의 미니밴을 개조해 사용했었다.
‘이참에 우리도 미니밴 한대 만들자!’라는 생각이었을까? 2018년 ‘포르쉐 레이스 서비스’가 공개됐다. 최대 6명까지 탈 수 있다. 운전석이 F1 레이스카처럼 1열 가운데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마이클 마우어 수석 디자이너는 레이스 서비스를 두고 “우리는 미니밴에도 예외 없이 동일한 디자인 언어를 담습니다. 레이스카를 연상케 하는 운전석, 타이칸과 닮은 얇은 헤드램프, 볼륨감이 느껴지는 실루엣 등이 그렇죠.” 모델카가 공개된 후 꽤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아쉽게도 양산 계획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