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현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 part.2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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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현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 part.2

김정현에게 철종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승준, 천수호, 강동구, 고만수에 대해서도. 그는 그 어디에도 미련이나 영광을 남겨두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배우 김정현에게는 오직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며.

ESQUIRE BY ESQUIRE 2021.02.25
 
 

김정현의 잔상들

 
스스로의 연기에서 거리를 두고 작품으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가끔 술 마실 때, 친구들이 놀린다고 〈으라차차 와이키키〉 틀어서 같이 보기는 해요.(웃음)
저는 며칠 전에 재택근무를 해야 해서 화상 카메라 켜놓은 채로 잠깐 그걸 봤거든요. 와, 그런데 노는 것처럼 보일까 봐 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몰라요.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 드라마는.
네, 그랬습니다. 치열했었죠.
 
셔츠, 팬츠 모두 벨루티.

셔츠, 팬츠 모두 벨루티.

치열했었다?
치열했었죠. 보는 분들에게는 웃긴 장면이지만 그 상황 속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절박함이 있잖아요.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찾다가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마주치는 장면이나, 저승사자 분장을 하고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는 거야” 읊조리는 장면에서도?
아주 뚜렷한 목표가 있잖아요. 지금 생리적 현상이 너무나 급하고, 그걸 해결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고, 그런데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맞닥뜨렸고.(웃음) 그게 어떤 장면이 될 거라고 결과를 생각하고 연기하는 것보다 그 상황, 그때의 진심과 절박함을 제대로 담아냈을 때 즐겁게 봐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승사자 분장의 경우에는 그게 중기의 상상 속 모습이었잖아요. 그래서 ‘이 상상이 중기에게 심어주는 두려움이란 과연 뭘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고요.
장르가 코미디라고 해서 배우까지 유쾌한 마음으로 임할 수는 없다는 거군요.
저는 사실 장르라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보는 사람에겐 웃긴 장면일지언정 그 코미디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분노, 슬픔, 기쁨… 명확하고 정확한 연기가 상대에게는 웃기게 다가갈 수 있는 것뿐이지, 웃기려고 웃긴 연기를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으라차차 와이키키〉 〈사랑의 불시착〉 〈철인왕후〉 같은 작품들이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김정현 배우가 이제 로맨틱 코미디나 코미디에는 자신을 갖게 되었으려나 했는데, 장르는 큰 의미가 없는 거군요.
장르는 보는 분들이 쉽게 다가가기 위한 분류일 뿐이지, 구분해서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어요. 인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본질적인 것 같아요.
그래도 더 희극적인 작품, 더 비극적인 작품은 있잖아요. 드라마 〈시간〉이라든가, 영화 〈기억을 만나다〉, 드라마 스페셜 〈까까머리의 연애〉같이 페이소스가 절절히 묻어나는 작품을 김정현 배우의 진면목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그런 작품이라고 해서 다르게 접근한다거나 제 안에 더 깊이 남지는 않는 것 같아요. 대신 작품에 보여주시는 반응을 마음 깊이 담아두는 편인 것 같고요. 그게 어때서 좋았다, 어떠한 상황에서 위로를 받았다, 힘이 났다, 용기를 얻었다. 저한테는 작품보다 그걸 즐겨주신 분들의 반응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게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아까 영상 인터뷰 하면서 ‘김정현’ 앞에 떠오르는 수식어를 붙여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답했어요. “믿고 보는 배우, 연기를 보는 맛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어떤 책임감에 대한 표현인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는 다 각자의 몫이 있잖아요. 감독님은 연출을 하시고, 작가님은 극본을 재미있게 쓰시고, 제작부는 촬영 현장을 세팅하고. 제가 배우로서 질 수 있는 가장 큰 책임은 연기인 거죠. 자신감은 아닌 것 같아요. 수십 년 연기를 한 최민식 선배님도 ‘연기가 어렵다’고 하시는데 저야 뭐 항상 두렵고 떨리죠. 연기를 안다, 자신 있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이 아마 제가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갇히지 않고, 계속 발전하겠다는 책임감으로 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한 게 고등학생 때죠? 계기가 뭐였어요?
중3 때 마지막 축제에서 목소리 연기 같은 걸 했어요. 친구들이 앞에서 무언극을 하면 저희가 거기에 맞춰서 더빙을 해주는 거였거든요. 그때 애들이 되게 재미있어 했고, 그때 처음 관심을 갖게 됐죠. ‘어 저렇게 재미있어 한다고? 이게 뭐지? 이 일은 어떤 일이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다가 연기라는 게 뭘까, 문득 궁금해졌던 거죠.
배우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연기라는 행위에서 출발한 거네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아예 직접 연극부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네. 저희 학교에 연극부가 없었어요. 그래도 선배들이 있어야 동아리를 만들 수 있고 선생님도 생기니까, 같이 만들어서 시작하게 됐죠. 저희 학교 연극부의 시초, 창립 멤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아리 이름도 있었어요?
이름이 있었어요.
뭐예요?
제가 지은 건 아니고, 어떤 선배가 ‘나르시스’라고 그냥 툭 던졌는데요. 자아도취, 자기애 뭐 이런 뜻의.
왜 이렇게 머뭇거리시나 했는데, 머뭇거릴 만한 이름이네요.(웃음)
그때는 별생각 없이 ‘네 좋아요’ 했는데… 네 그렇습니다.(웃음)
그러다 본격적으로 연기학원을 다니게 됐고, 한예종 연기과까지 가게 된 거군요.
맞아요.
 
재킷 디올 맨.

재킷 디올 맨.

한예종의 커리큘럼이 그 당시 정현 씨에게 끼친 영향이 있었을까요?
학교가 저한테는 큰 터닝 포인트였죠. 물론 다른 학교의 커리큘럼은 제가 모르지만, 제가 고3일 당시에는 유일하게 실기 위주의 학교였거든요. 거기서 새로운 도전도, 시도도 많이 했고요. 많이 깨지기도 했고,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를 깨닫기도 했어요. 거기서 배운 게 지금껏 제가 해올 수 있었던 거의 대부분인 것 같아요.
그때 독립 영화도 많이 하셨고, 찾다 보니까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셨더라고요.
연극이나 뮤지컬을 그다지 많이 하진 못했어요. 〈초인〉이라는 영화가 영화제에 초청됐고, 그때부터 영화와 드라마 쪽으로 길이 풀렸거든요. 사실 운이 되게 좋았죠. 제가 그 당시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니까. 〈초인〉 찍고 나서 그냥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영화를 좋게 본 조감독님이 연락을 주셔서 드라마를 하게 되고, 그게 다음 작품으로 또 연결되고,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무대에 선 정현 씨가 선뜻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크고 강렬하게 전달하기보다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는 아주 섬세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있었나 봐요, 저한테.
그런데 저 연극할 때는 연출이 저한테 그랬거든요. “너는 카메라 연기 못 한다. 너처럼 에너지 뻗치는 애는 그거 못 한다. 봐라. 너는 무대에서 제일 빛나.”
와, 그래요?
운이 좋게, 아니, 운이 좋은 건지 아무튼 방향이 다른 쪽으로 잡혀서 이렇게 흘러왔죠. 근데 뭐 제가 큼직큼직하게도 합니다, 연기를.(웃음) 잘한다고 할 수는 없는데, 무대 위에서는 또 큼직큼직하게 연기하기도 해요.
하긴, 연출자들이 배우 김정현을 좀 ‘연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드라마 〈시간〉에서 롱테이크로 촬영한 인터뷰 장면이나, 〈빙구〉에서 여자 친구의 집 앞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장면이나, 영화 〈기억을 만나다〉나.
맞아요. 〈기억을 만나다〉는 특히 그랬죠. 카메라만 세워놓고 좀 길게 갔으니까. 저 그런 거 좋아해요. 많이들 시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준비 열심히 해서 갈 테니까.(웃음)
그런 구성은 배우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시도겠죠.
저는 연기의 뿌리가 연극에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극 경험 없이도 연기를 잘하는 분도 많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인데요. 음, 연극이라는 게 카메라 시점이나 컷이나 이런 게 없이 그냥 ‘통째로’잖아요. 모든 게 오픈되어 있는 상태에서 온몸으로 표현하는 장르, 예술의 형태가 연극인 것 같아요. 한번 시작되면 중간에 끊는 것도 없고, 인터미션이 없으면 쭉 원테이크로 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할 때에도 장면을 구상하면서 호흡을 길게 가져가려고 해요. 물론 촬영은 중간중간 끊어서 가지만, 그래도 저는 전체적인 호흡을 파악하고 가는 거죠. 가끔 감독님이나 카메라 감독님이 그걸 좋게 보면 팔로우해주시는 것 같고, 그래서 결과물도 잘 전달됐다면 저야 감사한 일이죠.
 
*김정현의 화보와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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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현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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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EATURES EDITOR 오성윤
    FASHION EDITOR 고동휘
    PHOTOGRAPHER 김참
    PRODUCTION 장재영(그림공작소)
    STYLIST 이민형
    HAIR 문현철
    MAKEUP 오은주
    ASSISTANT 이하민/ 윤승현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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