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한국과 중국 사이 벌어진 '김치 전쟁'이 무의미한 이유

어쩌다 양쪽은 서로를 ‘도둑’이라 부르는가. 한국과 중국 사이, 아무 의미 없는 김치 전쟁이 벌어졌다.

BYESQUIRE2021.03.03
 
 

DEEP DIVE INTO KIMCHI WAR

 
야, 이거 너무 허수아비 때리기 아니냐?
처음 '중국 관영 매체발 김치 종주국 논란'을 주제로 기사를 쓰겠다고 했을 때 디렉터 선배는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허수아비 때리기'란 취약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주장을 펼치는 소수의 상대를 놓고 조롱한 뒤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선배는 그런 글을 싫어했다. “제발 이런 주제 좀 고르지 말아줘.” ‘에디터’라는 직함을 처음 단 순간부터 오랜 시간 따랐던 선배지만, 이번만큼은 선배의 말을 무시하고 사전 취재를 시작했다. ‘김치 전쟁’의 이면에 다른 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이경영이 속삭였다. ‘진행시켜!’.
 
지난해 11월 말부터 수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한 ‘김치 종주국 논란’은 중국의 관영 매체로 알려진 ‘환구시보(環球時報)’에 실린 글, 아니 정확하게는 환구시보에 실린 글을 보도한 언론에서 시작됐다. 많은 매체들이 환구시보를 인용해 중국의 김치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표준을 취득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한국인의 상징과도 같은 김치를 중국이 국제표준으로 등록한 것도 황당한 일인데, 환구시보의 멘트는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중국 김치가 국제 김치 시장의 기준이 되었다. 김치 종주국 한국은 굴욕을 당했다.’
 
앞서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가 한국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한복이었다. 샤이닝니키는 한국 서버에 한복 의상을 추가하고 ‘한국의 전통의상’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대해 일부 중국 유저들이 ‘한복은 명나라의 한푸(漢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발하자 샤이닝니키는 한복 콘텐츠를 삭제해버렸다. 이번에는 한국 네티즌들이 비판을 쏟았다. 그러자 한국 서비스는 중단돼 버렸다. 한복 논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환구시보의 김치 종주국 논란까지 터지니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제2의 동북공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 만했다.
 
그러나 ‘김치 종주국 논란’은 일부 사실이 아니었다. ISO에 등록된 것은 김치가 아닌 중국 쓰촨 지역 절임채소의 일종인 ‘파오차이(泡菜)’로, 김치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관련 보도가 나왔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정부가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국 파오차이에 관한 국제표준 제정과 한국 김치는 전혀 연관이 없다"라며 이번에 인증받은 ISO 파오차이 문서에 ‘해당 식품 규격은 김치(Kimchi)에 적용되지 않음'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또 김치는 이미 2001년에 국제연합(UN)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산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국제표준으로 정해졌으며, ISO는 비정부 민간 기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분노의 불길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번엔 중국 요리 유튜버 리쯔치가 문제가 됐다. 갑자기 김치를 만들고 김치찌개를 끓이는 콘텐츠를 만든 것이다. 영상에는 ‘Chinese Food(중국 요리)’라는 해시태그가 붙었다. 한국 네티즌들이 달려갔다. 중국 네티즌들도 달려왔다. 리쯔치의 댓글창은 흡사 살수대첩을 방불케 했다. 끝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활동하는 한국 유튜버 햄지가 ‘중국놈들이 쌈도 자기들 전통문화라고 한다’는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중국인들이 분노했다. 그녀는 사과 영상에서 “쌈과 김치가 한국 음식인데 뭐가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고, 햄지의 중국 소속사는 “중국에 대한 모욕을 반대한다”며 계약을 해지했다. 또 한 번 전쟁이 벌어졌다. 일부 중국 네티즌은 햄지의 과거 ‘마파두부 먹방’ 영상에 ‘Korean Food’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점을 문제 삼았다. 논란이 커지자 햄지는 "김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 발단은 어떤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기 때문"이라며 "중국에서 봤을 땐 한국에서 중국인을 욕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감정이 악화돼 있는 와중에 장쥔(張軍) UN 주재 중국 대사가 갑자기 김치를 담갔다. 그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한국 네티즌들이 달려갔다. 장 대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환구시보 보도 인용에서 시작된 제1차 김치 대전이 이렇게 석 달 가까이 진행 중이다. 그사이 언론은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시시콜콜 기사나 유튜브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 공급했다. 분노를 키우며 조회수를 먹었다. 현재 한국과 중국은 서로를 향해 ‘도둑’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김치와 한복을 다 빼앗아가려 했던 중국은 도리어 한국인들을 향해 “중국 것을 다 빼앗아가려 한다"며 “도둑국"이라고 화를 내고 있다. 애초에 ‘김치 종주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더욱 황당할 뿐이다. 생각해보니 조금 재밌다. 2019년 홍콩 사태 당시 ‘프리 홍콩’을 외치는 한국 네티즌들을 향해 “김치나 먹어라”며 한국이 김치 종주국임을 누구보다도 세계 만방에 알린 게 중국의 네티즌들이었으니까. 세대가 바뀔 만큼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김치를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기더니 이제는 한국을 도둑 취급한다는 그 전개가 이상했다. 정말일까? 정말 중국인은 김치가 중국의 것이라고 우겼을까?
 
그 연결고리를 찾던 중 이 주제에 대해 이리저리 조사해온 문화운동가 손이상 씨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일단 한국에서 환구시보에 올라왔었다는 그 글은 정식 보도가 아니었다. “해당 글은 환구시보의 정식 보도가 아니었으며,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풍문사구(風聞社口) 게시판에 장자오둥이라는 중국 네티즌이 쓴 글입니다. 그냥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올라오는 수많은 게시글 중 하나와 같다고 봐도 좋습니다.” 손 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다. 그의 말대로 풍문사구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이데일리 중국 특파원의 기사에 따르면 환구시보는 이 네티즌의 글을 공식 바이두 계정에 ‘퍼갔다.’ 한국으로 치면 언론사 공식 트위터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을 공유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한국 매체는 해당 글을 환구시보의 공식 보도로 오인했다. 그렇다면 이를 언론사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이두가 중국 SNS의 일종이라고 소개가 돼서 혼선이 빚어진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바이두는 한국으로 치면 포털 사이트에 가깝거든요. 공식 계정에 논란의 글을 퍼오는 건 해석의 여지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중국 출신으로 IT 전문 매체 〈아웃스탠딩〉에서 일했던 이송운 전 기자의 설명이다. “게다가 환구시보도 한국에서는 굉장히 주요 매체인 것처럼 언급되는데, 맹목적인 민족성에 호소하고 자극적인 보도를 자주 내기 때문에 그다지 권위 있는 매체라고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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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중국의 한 네티즌이 쓴 원문 글은 애초에 논리적으로 오류가 많다. “중국이 파오차이의 국제 규정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한국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거든요. 근데 파오차이 규정과 한국 김치는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이렇게 말하며 그가 웃었다. 그것은 마치 나폴리 피자에 대한 규제를 만드는 데 중국이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다며 비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긴 하다.
‘김치 종주국의 굴욕’ 같은 표현도 그 사람이 쓴 게 아니에요. 2017년 한국의 김치 무역에서 수입이 수출의 10배에 달한다는 내용을 연합뉴스가 보도하면서 그런 말을 썼어요. 그 글은 한국 내에 이런 보도가 있었다고 인용했을 뿐인 거죠.
 
즉 2017년의 한국 기사를 인용해 중국 네티즌이 쓴 글이 환구시보의 바이두 계정을 타고 퍼졌다는 이야기. 이걸 국내에 퍼 나른 건 한국 언론이다. “중국 매체, 한국에 ‘김치 종주국의 굴욕’”이라는 기사로 말이다. 그렇다면 파오차이 관련 글이 어째서 김치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게 된 걸까. “용어의 혼란이 있었던 거죠. 넓게 봤을 때 김치는 파오차이에 포함되지만, 모든 파오차이가 김치는 아니거든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통번역학과 임대근 교수의 설명이다. "중국에서는 채소를 소금물에 절여 만든 음식을 일반적으로 ‘파오차이’라고 합니다. 김치 같은 경우 중국어로 쓰기에 마땅한 말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비슷한 단어인 파오차이를 김치의 중국어 번역어로 쓴 겁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김치를 ‘한국식 파오차이’ ‘매운 파오차이’라고 부른다. 미국 식으로 따지면 김치는 피클의 일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피클이 김치라고는 할 수 없다.
 
손 씨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번역 오류에서 시작된 오해라고 봤다.
한글은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외래어를 발음대로 쓰면 되지만, 한자는 표의문자라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면 매번 새로운 단어를 발명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김치의 고유명사화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죠. 김치를 '한국식 파오차이’라고 소개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더 남는다. 이 전 기자가 지적했듯, 파오차이의 규정과 한국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파오차이 얘기를 하다가 ‘김치 종주국’ 한국이 튀어나온 걸까? 사정이 복잡했다. “애초 글을 올린 이는 ‘김치 종주국’이 아니라, ‘파오차이 종주국’이라고 썼어요.” 손 씨가 내 표현을 정정했다. 이 전 기자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김치처럼 염장 식품인 파오차이도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설레발’을 친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중국의 파오차이도) 염장 식품 종주국인 한국을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설레발이랄까요.”
 
종합해 보자. 파오차이의 ISO 국제표준 취득 소식을 접한 한 네티즌은 파오차이가 김치를 능가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별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그는 2017년 한국 언론이 ‘김치 종주국의 굴욕’이라고 쓴 기사를 슬쩍 인용해봤다. “중국 파오차이가 ISO 국제표준을 취득했다. 한국 언론도 염장 식품 종주국 한국의 굴욕이라더라”라고 썼다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 이를 환구시보가 ‘퍼가요~’ 했고, 이를 최초 보도한 언론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여기 쓰인 ‘파오차이’라는 표현을 모조리 ‘김치’로 번역했다. ‘중국 김치가 ISO 국제표준을 취득했다. 이는 김치 종주국 한국의 굴욕’이라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 다른 매체들이 이를 전부 받아쓰며 ‘중국이 김치를 빼앗아가려고 한다’는 주장이 기정사실화됐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팩트는 중국은 ‘김치’를 ISO 국제표준에 등재하지 않았고, 김치가 중국의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오류가 많은 중국 네티즌의 원본 글에서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역 오류는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중국에서도 한국의 반응이 잘못 번역돼 ‘김치는 한국 것’이라는 말이 ‘파오차이는 한국 것’이라는 말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염장 식품이 다 한국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죠.” 손 씨의 설명이다. 이 정도면 한 편의 소동극이라 봐도 무방하다.
 
“샤이닝니키 사건도 중국 네티즌들이 언급한 건 한복 전반이 아니라 ‘곤룡포’였거든요.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나무위키’ 설명에도 나와 있는데, 곤룡포는 명나라 의복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그 무렵 일부 한국인들도 ‘고려양’이 중국 옷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한복을 중국이 빼앗아가려고 한다’고, 중국에서는 ‘한국이 중국 의복을 자기네 것이라고 한다’고 오해를 빚은 거예요.” 이 전 기자의 말이다. 양국이 서로를 ‘도둑’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렇듯 복잡한 오해의 단계가 산처럼 쌓여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적대가 과도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동북공정에 대한 기억이 매우 안 좋게 남아 있으니까요. 한복이나 김치에 대한 논란은 그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론의 침소봉대도 있고요.” 이 전 기자의 설명이다. 손 씨는 동북공정 이후에도 지속된 여러 가지 한중 간 갈등을 언급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일으켰을 때를 기점으로 감정이 틀어졌습니다. 곧바로 홍콩 사태와 위구르 탄압이 이어지기도 했죠.”
 
임 교수는 한국 언론이 다소 과민하게 대응하는 부분이 있지만, 중국 정부도 민간에서 빚어진 이런 논란을 방기하는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내부의 코로나19 문제가 종식되지 않았고,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별 성과 없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며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아진 상황이거든요. 중국 공산당은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문제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민족 단결,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선전 사업을 진행하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외부의 적이고요.” 외부의 적이 필요한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다. 굳이 중재에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UN 중국 대사의 김치 사진에 대해서도 ‘맥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이런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치를 담그고 굳이 자세한 설명도 붙이지 않았죠. 충분히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거예요.
복잡한 과거에 한국 언론의 호도와 중국 정부의 방관이 더해진 만큼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감정적인 대응만으로는 꼬인 실타래를 풀기 힘들다. 손 씨는 양국 간의 이해가 부족한 상황을 짚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일어난 입양아 학대치사 사건에 대해 중국에서도 동정 여론이 일어나 추모 운동이 크게 번졌습니다. 아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감정을 그들도 똑같이 갖고 있으니까요. 여기 동참하는 중국인이 소수 과격한 중화주의자보다 많습니다.” 그는 있지 않은 사실로 불필요한 마찰을 빚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의견이 국경을 건너 다수의 의견으로 둔갑하고, 정당한 비판과 이해를 전제로 한 대화 대신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기반한 혐오가 쌓여간다. 애초에 기획을 냈을 때 ‘허수아비 때리기’라며 짜증을 부린 선배의 말은 옳았다. ‘중국이 김치를 빼앗아간다’고 주장하는 언론들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 그런데 허수아비를 때리는 보도가 잘못됐다고 밝히는 건 허수아비 때리기가 아니지 않을까? 허수아비를 때리는 사람을 말리는 건 허수아비 때리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선배는 섣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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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 게티이미지스 코리아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