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자랑스러운 한국의 콘텐츠, 웹툰에게는 꽃길만 기다리고 있을까?

웹툰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콘텐츠다. 세계 시장에 안착하며 구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한 해 수십 개 작품이 국내외 플랫폼에서 영화화, 드라마화 되고 있다. 시장이 커지는 것은 물론 고무적인 일. 그러나 과연 이 축제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네 명의 전문가가 웹툰과 웹툰 시장을 둘러싼 네 가지 문제의식을 내놓았다.

BYESQUIRE2021.03.04
 
 

당신이 스크롤하는 동안에

 
 
오늘날 웹툰의 입지를 설명하려면 ‘대세’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웹툰은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소비되어왔다. 특정 문화에 익숙한 세대와 집단이 소비하는 문화로 여겨지던 웹툰은 이제 TV를 틀어도,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에도 웹툰 원작 작품이 즐비하다. 한국 작품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3위를 장식한 것은 〈스위트홈〉이고, OCN의 역대 시청률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것도 웹툰이 원작인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웹툰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런 흥행이 물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한편으론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걱정을 짚어보려면 도대체 웹툰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10년 전인 2011년 전 세계 만화 시장 규모는 약 90억 달러로, 한국 원화로 환산하면 10조원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웹툰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웹툰은 그 당시 유료화 모델이 막 도입되던 시기였는데, ‘툰도시’ 등의 일부 서비스에서 유료화 모델을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수준이었다.
 
2013년만 해도 1500억원이었던 국내 만화산업 규모는 2014, 2015년에 2100억원에서 4200억원으로 두 배 성장했다.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2019년에는 9000억원을 달성했으며, 2020년에는 1조원을 달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웹툰이 ‘하드캐리’한 결과다. 성장세는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 플랫폼들은 단순히 웹툰만이 아니라, 웹툰을 시작점으로 영상, 캐릭터 상품,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전반으로 이어지는 IP(지식재산, Intellectual Properties) 확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네이버 웹툰은 영상 전문 제작 스튜디오인 스튜디오N을 설립, CJ와 디즈니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권미경 대표를 영입했고, 캐릭터 상품 판매를 위한 ‘웹툰프렌즈’도 운영 중이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을 합병,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IP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히 스크롤로 넘기는 만화보다 더 많은 일이 그 너머에서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플랫폼은 마치 행성계처럼 더 큰 업체가 더 강력한 중력을 가지고, 그 안으로 모든 사용자를 빨아들이는 효과를 낳는다. 초거대 플랫폼은 갈수록 더 많은 사용자를 보유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을 쓰며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기 어려워하기를 바란다. 이를 ‘록인(Lock-in)’ 효과라고 한다. 웹툰 플랫폼들은 ‘기다리면 무료’ 모델로 록인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품을 무료로 보려고 기다린 사람에게는 이미 기다린 시간이, 결국 못 기다리고 결제해서 감상한 사람에게는 그 결제 비용이 매몰 비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엔 광고도 붙는다. 결국 사람이 머무르는 시간은 돈으로 환산되고, 그들이 결제하면 즉시 매출이 된다. 때문에 거대 플랫폼에서는 더 많은 독자를 록인시키기 위해 작품 숫자를 늘리고, 작품의 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상업성 높은 작품의 비중을 늘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만화에 ‘자본’이라 할 만한 돈이 유입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거대 플랫폼에 이용자와 자본이 몰리면서 플랫폼의 중력장이 확대되고 있다. 다수의 중소 플랫폼에서 연재했던 작품들이 비독점작으로 유통되면서 거대 플랫폼에 올라오고, 작가나 제작사들은 거대 플랫폼을 목표로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말하자면 콘텐츠 생산자까지 록인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플랫폼들은 이제 오리지널 콘텐츠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자회사 레이블 ‘연담’을 만들었고, 다양한 제작사에 투자해 ‘카카오페이지 오리지널’을 선보이고 있다. 네이버 웹툰 역시 인기 작가들이 세운 스튜디오에 투자하는 한편, 자회사 LICO를 통해 네이버 웹툰에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플랫폼이 원하는 록인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이 시장을 양분하는 지금, 플랫폼이라는 공간 안에서의 경쟁과 압력이 더욱 높아졌다. 지금의 웹툰 시장은 경계 없는 초경쟁 시장이다. 북미 1위 작품이 한국에서 연재되고, 한국 1위 작품이 일본의 황금시간대 광고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플랫폼과 그에 속한 작품을 실제로 ‘만나는’ 공간은 5인치 남짓한 스크린이다. 작품을 모을 수 있는 공간에는 물리적 한계가 없지만, 작품이 보여지는 공간에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계는 플랫폼에게 ‘프로모션’이라는 권한과 ‘조회순’이라는 핑계를 만들어주었다. 프로모션은 플랫폼이 고른 작품을 메인에 오르게 만들고, 조회순은 플랫폼이 간섭을 하지는 않지만, 플랫폼의 상단에 작품이 노출되도록 한다. 그리고 작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경쟁하는 사이 플랫폼은 돈을 번다.
 
개인 작가들은 이 과정에서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영상화로 프로모션을 받아 메인에 한 번이라도 더 걸리고, 가장 먼저 화면에 포착되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다. 결국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뒤로 미루게 된다. 독자는 비슷한 장르의 작품밖에 없다며 불평을 하고, 작가는 계약서에 담기 힘든 작품 노출 빈도 등을 고민하게 된다. 플랫폼은 이 과정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상업적 성공에서 이어지는 영상 제작도, 출연하는 배우의 소속사도, 그리고 영상이 배포되는 곳까지 모두 플랫폼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플랫폼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존재가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괜찮을까?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선 물론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대안을 내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글 내내 설명했듯, 플랫폼이 모든 키를 쥐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작품을 만든다. 출판사는 작품을 다듬어 시장에 팔리는 상품으로 만든다. 작품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작가와 업체는 함께 명예와 소득을 얻는다. 출판업계나 콘텐츠업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이자 ‘희망 편’ 시나리오다. 가장 기본적인 설명이 희망 편이 될 만큼 이 바닥에는 ‘절망 편’이 흔하다. 과거에는 편집자가 신인의 장편 데뷔 전 최소한의 트레이닝을 해주는 역할까지 했다면, 오늘날 편집자의 역할을 하는 PD는 신인을 가르치긴커녕 작품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콘티도 제대로 못 읽는 경우까지 있다. 실력 있는 신인을 데려다가 한두 편 만에 그 역량과 체력을 소진시키고 내팽개치는 것도 예사다. 작가에게 연출이나 스토리의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것은 PD 본연의 업무지만, 이를 빌미로 업체 대표가 자신이 원작자라며 작가의 저작권을 빼앗으려들기도 한다. 매출 보고서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거나, 별별 핑계를 대어 지불을 미루거나, 오히려 작가에게 계약에도 없는 지각비를 징수하는 경우도 있다. 말도 안 되는 계약을 강요하고, 심지어 성추행을 하기도 한다. 과거의 일도 아니고, 매우 운이 나쁜 일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금 현재, 업계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과거 만화 작가들은 잡지 게재에 대한 고료를 받고, 단행본에 대해서는 인세를 받았다.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도 이를 따라 작품 게재에 대해 고료를 지불하고, 유료 연재나 미리보기 수익은 작가와 일정 비율로 나누고 있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MG(최소 수익 선지급)는 이와는 다른 계약 방식이다. 사실 이 방식은 전혀 기반이 없는 작가에게는 당장의 생활비를 해결할 방법이 되고, MG를 순식간에 떨어버릴 수 있을 만한 업계 최고의 인기 작가들에게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소득을 올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인기 작가는 공공연히 MG 제도를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MG 제도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MG는 작가의 작품을 게재할 권리를 빌려오면서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는 ‘고료’가 아니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돈을 주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향후 소득을 당겨서 주고, 업체가 지불해야 할 마케팅 비용까지 작가에게 떠넘기며 생색만 내는 것이다. 업체는 마케팅을 위해 독자에게 무료 공개분을 제공하는데, 여기에서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부분의 MG는 고스란히 작가의 부담이 되는 셈이다.
 
MG 제도의 가장 큰 문제를 감당하는 이들은 신인과 고소득 작가 사이, 이제 신인을 벗어나 중견으로 성장하는 작가들이다. 슬금슬금 비율이 조정되고, 계약서상의 모호한 조항들이 악용되며, 심지어 정산 과정에 중간 업체들을 더 끼워 넣어 부당하게 수수료를 더 차감하는 경우도 있는 상황에서 MG는 이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이 된다. 게다가 원래 MG는 유료 결제에 대한 계약이므로 그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지만, 일부 플랫폼은 통합 MG라는 명목으로 해외 수출이나 2차 저작권 대금까지 MG를 갚는 데 차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막 신인을 벗어난 작가들이 허덕이는 동안 업체는 이미 각종 수수료를 제하고도 흑자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작가도 돈을 벌어야 더 좋은 장비를 사거나 어시스턴트를 쓰고 작품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착취는 그 중간 과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많은 작가가 중견으로 성장하기도 전에 건강을 잃거나 차기작을 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 2차 저작권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작품을 좀 더 장기적으로, 2차 저작권까지 손에 쥐려고 하는 업체들이 늘었다. 최근 출판계 주요 단체는 2차 저작권까지 10년 이상 업체가 확보하기 위한 ‘출판계 통합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작가들과는 일체의 협의 없이. 웹툰업계의 경우 계약 기간은 20년이나 되는 데다, 계약 기간에 비례해 원고료가 많은 것도 아니고, 추가 수익 셰어조차 없는 희대의 악덕 계약서를 제시한 업체까지 있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그 화살을 작가에게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사인하는 작가가 잘못이며, 계약 전에 조정했다면 문제없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신인이라 몰라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데뷔를 못 할 것처럼 절실해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 더 절박한 이유도 있다. 생계 문제다. 특히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위기를 겪었고, 작가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쌀이 떨어지고 집세를 낼 돈이 부족한 작가들은 부당함을 알면서도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처지를 알고 배짱으로 계약서를 내미는 업체들이 있는 상황에서 부당한 계약의 책임을 작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문제는 한두 곳에서 이런 계약을 성공시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악덕 계약이 ‘업계 관행’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 MG 제도가 등장하고  3년도 지나지 않아 웹툰업계 전반에서는 MG 계약이 대세가 되었다. 작가에게 더욱 불리한 온갖 형태로 변형되어서. 이 관행은 출판만화 쪽으로도 번져서, 만화 잡지들도 꾸준히 함께 일해온 작가들에게 고료가 아닌 MG로 계약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업계 관행의 문제는 MG뿐만이 아니다. 노동 강도 자체도 문제다. 잡지 시절 월간 또는 격주간 연재, 흑백, 16~24페이지였던 만화의 연재 기준은 웹툰으로 넘어오며 주간 연재, 컬러, 최소 60컷 이상(잡지 기준 20~24페이지)으로 바뀌었다. 연재 시작 전에 20편 이상 세이브를 해야 하고, 그중 10편 이상을 무료로 풀어야 한다. 최소 두세 달, 많게는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 작가의 노동을 업계는 마케팅 명목으로 혹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창조력은 흔치 않은 자원이다. 특히나 웹툰 같은 업계의 미래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를 양성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를 쓰고 버리는 자원 취급하며 노동력과 수익 양쪽을 착취하는 형태로 굴러가는 업계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1970년대 독점적으로 대본소용 만화를 찍어내던 출판사 ‘합동’은 만화가들을 착취하고 만화계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횡포를 부리다가 결국 그 악명만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날이 작가에게 불리한 새로운 조항들을 개발해내는 이 업계는 과연 그 전처를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로 나가는 웹툰’ ‘MZ세대에게 사랑받는 웹툰’ ‘웹툰 원작 드라마와 영화 넷플릭스 석권’, 이런 기사가 종종 보도된다. 증권 애널리스트 리포트에서도 웹툰 산업을 다룬다. ‘떠오르는 웹툰, CP사도 기회 있다’(미래에셋대우, 2020년 4월 7일)라고 시장을 분석한다. 2021년 1월에는 ‘차세대 한류 성장 산업’(유안타증권, 2021년 1월 15일)으로 규정한다. 보도 기사와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표현의 언어만 다르지 동일하다. 웹툰 시장은 한국에서 1조원대 시장으로 성장했고, 만화 종주국 일본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했으며, 북미와 유럽에서는 MZ세대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로 부상하는 중이다. 글로벌 OTT 서비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넷플릭스의 〈스위트홈〉처럼 웹툰 IP의 영상화가 각광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빅테크(Big Tech)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가 웹툰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움직이고 있으니 웹툰 작가들 앞에는 꽃길만 깔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러 소셜 미디어나 커뮤니티를 보면 꽃길만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겨레〉(2020년 11월 11일)는 “그곳은 ‘개미지옥’이었다”는 제목으로 프리랜스 웹툰 작가들의 삶을 보도했다. 기사에는 하루 최대 14시간에 달하는 작업을 소화하며 한 달에 고작 이틀밖에 못 쉬었지만 제대로 된 수익 배분을 받지 못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런 기사를 보면 불안해진다. 최근 노블 코믹스라고 불리는 웹소설 원작 웹툰이 인기를 얻으며 제작 편수가 늘어나고 있다. 노블 코믹스는 론칭 초반에 안정적인 순위에 올라가기 위해 분량을 늘리고, 화려한 후반 작업을 동원한다. 분량과 작화 모두 작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작가 한 명이 온전히 모든 과정을 전담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투자, 기획, 제작, 배급, 마케팅이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투자와 기획부터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회사도 있고, 투자와 기획만 담당하는 회사도 있고, 제작만 담당하는 회사도 있다. 특별한 정보가 없는 작가는 빠른 변화 앞에 당혹스럽다. 신인은 더 막막하다. 계약을 조심하라고 하는데 경험이 없으니 무얼 어떻게 검토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당장 먹고살 일도 걱정이니 자칫 개미지옥에 빠질 수도 있다. 아니 그전에 이 계약이 꽃길인지 개미지옥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정보의 불균형이 문제다. 웹툰 산업에 대한 정보 중 투자 정보는 다양하게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작업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콘텐츠진흥원이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 공공기관에서 실태 조사를 발표하고, 법률 지원도 하지만 작가 개인에게 최적화되기는 어렵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다 보면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혼란을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은 매체의 변화다.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고 했다.(〈축음기, 영화, 타자기〉, 문학과지성사, 2019) 출판만화는 신문, 책,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했다. 신문, 잡지는 편집자에게 청탁을 받아 원고를 마감하고, 원고료를 받는다. 신문, 잡지는 저작자가 여러 명이기 때문에 판매 수량에 따라 수익을 책정하지 않고 작가의 인기와 경력 등을 포괄해 원고료를 책정해 지급한다. 책은 판매 수량에 따라 일정 비율로 수익을 지불한다. 작가도 매체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독자도 매체를 통해 작품을 소비한다. 작가-매체-독자의 흐름을 통해 콘텐츠가 흐르고, 반대 흐름으로 비용이 지불된다. 독자는 작품을 보기 위해 매체가 발행되는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넘어오며 매체성이 변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터넷이 공적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과거에 구축한 장벽들이 많이 해체”되었고,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내가 통제하고 내가 주인이며 내가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액체세대〉, 이유출판, 2020) 웹툰은 독자가 댓글, 별점, 퍼나르기 등의 행위로 트래픽을 만든다. 도전만화, 베스트 도전만화 게시판을 두어 누구나 작품을 대가 없이 투고할 수 있도록 했다. 웹툰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는, 심지어 작품을 읽는 구독 행위조차 순위로 집계되며 ‘콘텐츠’가 된다. 플랫폼에 접속해 웹툰을 즐기는 모든 행위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시대에는 ‘노동’의 개념도 구체적인 생산물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무형 노동’으로 확대된다.(오쓰카 에이지 〈감정화하는 사회〉, 리시올, 2020) 댓글, 별점, 구독 등의 행위를 통해 무상 노동을 제공하는 유저들은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온갖 요구를 한다. 유저의 무상 노동은 플랫폼에 ‘가치’로 환원되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는 아무 보호막 없이 댓글에 노출되고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유저의 무상 노동에 대한 반작용 혹은 대가를 작가가 오롯이 감당하는 상황에 플랫폼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매체성이 변하고, 무상 노동이 포괄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웹툰은 출판만화 시대의 논리를 그대로 대입해선 안 된다. 원고료, 인세 같은 전통적인 저작권 사용료 체계는 익숙하긴 해도 달라진 매체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작가가 수행하는 유무형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좀 더 정교하게 책정해야 한다. 개인 작업, 팀 작업, 저작권 배분에 따른 수익 분배,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가 혼자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변화와 행동 없이 작가 개인이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개미지옥이 된다.
 
매체 변화는 플랫폼과 사업자가 주도한다. 작가는 익숙한 과거의 것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매체 변화를 틈타 과거에도, 지금도 좋지 않은 계약과 노동을 강요하는 악덕 기업이 등장하기도 한다. 웹툰 산업이 차세대 한류 성장 산업으로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새롭게 발생하는 노동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노동 환경을 플랫폼, 사업자가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보를 공개하고, 가치를 나누고, 위험을 나눠 가져야 한다.
 
 
만화 잡지 편집부의 일상을 담은 만화 〈중쇄를 찍자!〉에서 부편집장은 이렇게 말한다. 작품을 가장 높은 퀄리티로 끌어올리는 게 우리 편집자의 일이다.
실제로 일본 만화계는 편집부 시스템을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 편집자들이 작품에 참여하는 영역은 굉장히 넓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건 물론이고, 기존 작가들과 캐릭터, 스토리 구성, 연출 등을 놓고 회의를 거듭한다. 작품에 따라 한 작품에 두세 명의 편집자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옛날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디지털 콘텐츠가 수없이 범람하는 지금도 고단샤 등 일본 출판사는 여전히 이 방식을 꿋꿋하게 고수한다. 플랫폼 시대의 출판사의 전략에 대해서 고댠사 총괄이사는 “좋은 작품을 골라내는 편집자가 좋은 수준의 좋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게 대응책"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고단샤는 〈진격의 거인〉 등의 작품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2019년에 '21세기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오늘날 한국 만화계의 사정은 다르다. 고단샤는 현재까지도 매월 출판되는 만화 잡지를 여러 종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은 웹툰 시장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이 잡지를 대신한다. 각자가 지닌 고유의 콘셉트에 따라 작품을 선정하는 만화 잡지와 달리, 플랫폼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특별히 구성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입점시킨다. 만화 잡지는 잡지 자체의 수익보다도 연재를 통해 작품의 원고를 확보하여 이를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플랫폼은 플랫폼 자체의 트래픽과 만화에 싣는 광고 등의 수익을 중요시한다. 이런 구조적 차이 때문에 작품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만화 잡지 체제에서는 잡지 연재분부터 완성된 책까지 모두가 상품이므로 작품 전체의 수준 높은 완성도가 요구되는 반면, 플랫폼 체제에서는 아이디어와 소재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는 이유는, 바로 웹툰 내 혐오 표현 때문이다. 웹툰 내 혐오 표현 문제는 2020년 웹툰 〈복학왕〉 〈헬퍼〉로 다시 뜨겁게 이슈가 됐다. 특히 이 두 작품은 이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고, 네이버 웹툰 연재작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 큰 논란으로 점화됐다. 작가의 윤리의식 부재에 대한 지적에서 플랫폼 책임론으로 논의가 번지자 결국 네이버 웹툰도 사과문을 냈다. 국내 웹툰 트래픽 점유율 1위인 네이버 웹툰에서 반복적으로 혐오 표현 문제가 가시화되는 것은 플랫폼 체제에서 작품의 퀄리티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사실 네이버 웹툰의 주요 수익처 중 하나인 광고와 IP산업 자체도 만화의 작품성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성 자체보다는 설정과 세계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품성이 플랫폼의 브랜딩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작품성이 하락한다고 해도 플랫폼의 이미지가 저하될 우려도 없다.
 
이러한 플랫폼 특성을 반영하듯, 네이버 웹툰에서 '만화 편집자'는 그 호칭부터 다르다. '편집자'는 없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을 '웹툰 담당자' 또는 '피디'라고 부른다. 이들도 신진 작가/작품을 발굴하기는 하지만, 업무의 중심은 기존 작가군을 관리하고 작품을 업로드하는 등의 활동에 있다. 웹툰이 업로드되는 심야 시간에 일하는 건 물론, 작가들의 작업 시간에 맞춰 새벽 미팅을 감행하기도 한다. 밝혀진 수치는 없지만, 플랫폼에서 수백 개의 작품이 동시에 연재되는 것을 감안할 때 적은 인원이 턱도 없이 많은 수의 웹툰을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 웹툰 김준구 대표는 2012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웹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파격적인 무언가다. 옛날에는 그림, 연출, 드라마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을 해내야 했지만, 웹툰 시장에서는 모두 0점이라도 딱 하나만 120점이면 된다." 김준구 대표의 인터뷰는 현재 네이버 웹툰의 성격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그의 말처럼 10여 년 전 웹툰은 '파격적인 무언가'를 향해 갈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주 1~2회 연재, 회당 60컷의 연재 분량, 전회 컬러 작업 등도 웹툰 시장을 처음 만들어나가던 때에 필요했던 연재 조건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것인지는 분명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성차별적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연출과 서사를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작가에게 충분한 창작의 시간을 줄 순 없을까? 작가와 편집자가 작품성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며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연재 환경이 될 순 없을까?
 
다행히 이 질문을 실험하는 플랫폼이 있다. 2019년 배달의 민족에서 론칭한 만화 플랫폼 〈만화경〉이다. 만화 잡지를 본떠 만든 〈만화경〉은 주 1회 연재가 아니라 격주 1회 연재를 시도한다. 작가들의 소진과 이에 따른 작품의 퀄리티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만화경〉에는 '웹툰 피디'가 아니라 '편집자'가 있다. 이들은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와 함께 작품에 대해 논의한다(〈만화경 편집부는 9층입니다〉). 물론 모든 플랫폼이 〈만화경〉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다. 하지만 〈만화경〉같이 만화계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미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한다. 어느 생태계든, 그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에 '정답'은 없으니까. 지금 당장 정답으로 보이는 것이라도 영원한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찾아내야 한다. 더 다양한 구성원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