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요즘 군용차

군용차가 타보고 싶어질 줄은 몰랐다. 안전벨트도 없이 짐칸에 올라타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BYESQUIRE2021.04.04
 
 

I Protect You 

 

이거 험비 아니에요?

헐리우드 밀리터리 영화를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차가 있다. 험비다. ‘고기동 다목적 차(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을 줄여 부르다가 생겨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어디서 총탄이 날아들지 모르는 시가전에 대비해 차체 전부를 방탄 소재로 덮었다. 지뢰나 대전차포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갑차에 비해 운전이 쉽고 활용 방식이 다양하다는 이유로 현대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것이 생겼다. 소형전술차(Light Tactical Vehicle) ‘K-151’이다. 국방부의 요청으로 기아가 개발했다. 이름에 소형이 들어가지만 결코 작지 않다. 길이가 4900mm 폭은 2190mm다. 높이도 2m에 육박한다. K-151은 지휘관 차량이란 의미의 ‘1호차’ 또는 ‘레토나’라고 부르던 K-131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K-131과 K-151의 크기 차이는 소형 SUV와 대형 SUV의 차이보다 더 크다. 즉 K-151은 한국형 ‘험비’다. 국방부는 중대급 규모의 부대까지 차를 배치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트랜스포머 같은 자유자재 변신이 특징이다. 인력 수송을 위한 모델 외에도 총 13가지의 파생 모델이 있다. 전부 같은 플랫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품 공유나 정비가 용이하다. 급박한 경우 운전병 또는 정비병이 직접 정비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한 것이다. ‘방호 키트’를 상황에 따라 탈부착 할 수 있도록 한 점도 흥미롭다. 평상시에는 연비 향상과 관리 유지를 위해 섬유강화 플라스틱(FRP)과 합금을 이용해 만든 방호 패널을 적용하지 않다가 적의 위협이 예상될 때 장착한다. 마치 전쟁에 나가기 전 방탄조끼를 입는 것처럼 말이다.
 



나 때는 말이야

에어컨과 히터가 나온다. 운전석은 물론 2열과 3열에도 송풍구가 있다. 군필자라면 ‘나 때는 말이야’가 목구멍에서 간질간질하겠지만, 아직이다. 변속기가 자동이다. 모하비에 쓰이는 파워텍 8단 자동 변속기가 들어갔다. 사륜에서 이륜으로 혹은 그 반대로 구동 방식을 바꾸려면 차를 멈춘 후 조작해야 했던 예전 군용차와 달리 K-151은 일반 승용차처럼 달리는 중에도 버튼 하나만 돌리면 된다. 후방카메라도 있다. 후방카메라가 있다는 건 디스플레이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내비게이션은 덤이다. 기아에서 사용하는 전장 부품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편의 사항을 강조하긴 했지만, 군용차로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신속한 이동과 방어다. K-151은 최고 225마력을 뿜어내는데 모하비에 쓰였던 V6 디젤 엔진을 개량해 사용했다. 5톤이 훌쩍 넘는 차체를 밀어내려면 초반 토크가 우수한 디젤 엔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네바퀴 굴림과 420mm의 최저 지상고, 62도의 접근각을 무기로 한 K-151이 가지 못할 길은 거의 없다. 성인 남성의 허벅지 높이쯤 되는 760mm 깊이의 물웅덩이도 거뜬히 통과한다. 참고로 오프로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 G 63의 최저 지상고가 241mm다. 1회 주유 시 최대 640km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게 기아 측 설명이다.
 
K-151은 소총은 물론 경기관총의 공격으로부터도 탑승객을 완벽히 보호한다. 차의 문짝과 유리의 두께만 한 뼘이 넘는다. 발로 차기만 해도 찌그러지는 승용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단, 방탄유리는 창문을 열 수 없다. 환기가 필요할 땐 창문 아래 위치한 작은 송풍구를 수동으로 연다. 전복이나 강한 충격으로부터 탑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하부 프로텍터와 폭압 완화 시트를 넣었다. 안전벨트 역시 포뮬러 1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방식의 5점식 안전벨트를 사용한다.
 

 

K-Military

같은 사진을 보고도 반응이 갈렸다. “우아, 이게 군용차라고?”와 “이거 20년 전 차 아니에요?”였다. 어느 쪽이 군필자의 대답일진 굳이 말하지 않겠다.

같은 사진을 보고도 반응이 갈렸다. “우아, 이게 군용차라고?”와 “이거 20년 전 차 아니에요?”였다. 어느 쪽이 군필자의 대답일진 굳이 말하지 않겠다.

지난 2월 21일, 기아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UAE IDEX 2021’ 글로벌 방산전시회에 참가했다. 2015년 첫 참가 후 네 번째다. 군수산업 후발 주자인 기아가 노리는 건 ‘군용 카고 트럭’ 시장이다. 카고 트럭은 소형전술차에 비해 방어력은 떨어지지만, 적재공간이 넓어 필요에 따라 무기와 물자를 장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중동에선 픽업트럭을 개조해 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4인승 카고 콘셉트카는 완전 무장한 병력 8명과 4톤의 물자를 적재할 수 있다. “경쟁 모델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다”는 관계자 말을 비추어볼 때 방탄 성능이 들어간 모델 기준 1억5000만원 전후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산 험비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아프리카에 수출된 K-151이 테러 집단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탑승객 전원이 무사했다고 전해진 바 있다.
 



안 팔아요 

경사도와 경사각은 다른 개념이다. 31°는 60%의 경사도를 갖는다. 상급자용 스키 슬로프의 최대 경사도가 60~70% 정도다.

경사도와 경사각은 다른 개념이다. 31°는 60%의 경사도를 갖는다. 상급자용 스키 슬로프의 최대 경사도가 60~70% 정도다.

어느 유명 자동차 리뷰어가 K-151을 시승한 후 이렇게 말했다. “이거 민수용은 안 나오나요? 나오면 진짜 한 대 사고 싶은데.” 지금은 단종됐지만 험비를 모티브로 만든 차가 있었다. ‘허머(Hummer)’다. 허머는 대형차가 즐비한 미국에서도 ‘큰 차’로 손꼽히던 차다. 혹시 기아도 K-151을 민수용으로 만들 계획이 있을까? 공식적인 대답은 ‘아니오’다. 수요가 너무 적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설사 출시된다 하더라도 슈퍼카 뺨치게 낮은 연비(리터당 2~7km)와 2m가 넘는 너비 탓에 일상적인 운행이 어렵다.
 
주행 감각도 사뭇 다르다. 얼마 전까지 K-151을 몰다 제대한 운전병 출신에 따르면 변속이 일반 SUV에 비해 반 박자 느리다고 한다. 시속 60km만 넘어도 차체가 흔들린다고 덧붙였다. 사각지대가 많다는 것도 K-151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각지대가 많은 건 차체가 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출력 전달과 변속이 다소 느리다고 느낀 부분은 기아가 의도한 설정이다. 5톤이 넘는 군용차가 일반 SUV처럼 재빠르게 기어를 올렸다간 힘이 모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탈길에 차가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운전자는 길의 경사도와 길이를 눈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변속 타이밍을 가늠하지만 차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저단일 때 변속 타이밍을 늦추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한다. 연비와 승차감을 손해 보더라도 차가 뒤로 밀리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고속으로 갈수록 차체가 흔들리는 건 차체보단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