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가장 서울다운 의자의 추억

서울다운 의자의 추억.

BYESQUIRE2021.06.12
 
 

서울다운 의자의 추억

 
자국에서보다 타국에서 보낸 세월이 더 길다는 건, 자국을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주자는 갖기 어려운 적당한 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한 비교를 통해 벼려지는 객관성으로 태어나고 살았던 나라를 바라보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몇 년에 한 번 한국에 가면 외국인 관광객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고궁이며 절에 간다. 비 내리는 인사동 뒷골목의 간판이나 뒤죽박죽 뒤섞여 복잡하기 그지없는 을지로, 평범하고 이름 없는 동네의 오래된 문방구, ‘대왕판교로’ 같은 재미난 지명이 쓰인 표지판을 사진으로 남긴다. 한국에 살던 시절에는 좀체 하지 않았던 일이다. 비가 오는 일요일 아침 7시에 정동 돌담길 초입에 당도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무수한 로맨스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람에 식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동 돌담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샛길이다. 마음의 지극한 중심을 뜻한다는 ‘사방석’이 기하학적인 선을 만들어내는 돌담에 고아하게 뻗은 서까래와 장구한 세월을 담은 검은색 기와, 그리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고궁의 나무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의 조화까지.
 
정동길에는 서울에서 가장 ‘서울다운’ 의자가 있다. 최병훈 목공예 작가가 만든 이 의자들의 공식 명칭은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지만, 보통은 ‘예술 벤치’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사실 최병훈 작가의 의자를 처음 본 건 2006년 파리에서였다. 샤를로트 페리앙드나 장 푸르베의 컬렉션용 가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디자인 갤러리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갤러리 다운 타운의 세련된 공간에 그의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애프터이미지’(Afterimage)라는 이름을 단 이 시리즈 의자들은 카본 파이버, 유리섬유, 레진 같은 산업 소재에 손으로 깎은 돌이나 나무를 결합한 모델이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질 정도로 정적이었다. 불국사의 다보탑이나 석가탑이 의자가 된다면 이런 느낌일 듯했다. 동양에서 온 조각품 같은 그의 의자들은 번잡한 파리 안의 숨겨진 시골처럼 비밀스러운 정원이 딸린 18세기 저택을 가진 파리지엔이나 전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초현대식 집을 소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자연히 전 세계 디자인 갤러리의 격전지인 바젤 아트 페어나 마이애미 바젤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최병훈 작가의 의자가 가장 돋보이는 곳은 화이트 큐브로 대변되는 국제적인 갤러리의 차가운 공간이나 컬렉터들의 달뜬 열망이 자본주의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아트 페어, 입이 벌어질만큼 고고한 아트 컬렉션으로 가득 찬 컬렉터의 집이 아니다. 정동길에 놓인 의자는 작가가 직접 손으로 호두나무와 돌을 깎아 만든 것인데 사방석 돌담 앞에서는 태초의 신비한 유적 같은 느낌이 선명해진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듯,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 손으로 깎은 나무 시트나 조약돌 같은 대리석 시트에 다리로는 돌을 괸 모습이 고인돌을 닮았다. 이 모양을 두고 굳이 전통과 역사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각종 유적지를 두루 끼고 있는 돌담길에서 이 의자들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오늘, 앞으로 올 미래의 서울까지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전달해준다.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의자들을 오래 바라보며 깨달았다. 정동길의 느슨하게 휘어진 거리를 따라 음표처럼 놓여 있는 의자들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가면 그 걸음걸음이 바로 음악이 된다. 손을 잡고 산책을 나온 노부부도, 깔깔 웃는 여고생 무리도, 떨림이 전해져 오는 데이트 커플도 이 의자들과 함께 그들만의 음악을 연주한다. 그건 타인은 나눌 수 없는 고유한 추억이다.
 
대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미지는 많다. 홍콩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마천루와 놋쇠, 티크나무, 캔버스로 이루어진 오래된 배인 스타페리, 수천만 개의 간판이다. 뉴욕은 가장 현대적인 대도시이지만 동시에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자유의 여인상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20세기 초의 디자인으로 고전적인 느낌이다. 파리는 어떨까. 파리 하면 누구나 에펠탑을 떠올리지만 정작 파리의 거리를 걸어본 사람들에게 파리는 민트 올리브색 철제 공원 의자로 기억되는 도시다. 다들 19세기 무렵 만들어진 오래된 의자로 믿고 있지만 실은 1920년대에 만들어졌고, 현재 공원에 놓여 있는 것은 1920년대 모델을 복제해 정원 가구 전문 업체인 페르모에서 재생산한 것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공원 의자는 공짜가 아니었다. 당시 파리 공원의 명물은 산전수전 다 겪은 깐깐한 의자 대여상이었다. 팔걸이가 달린 우아한 안락의자를 빌리는 파리지엔이라면 멋깨나 부리는 주머니 넉넉한 부르주아였던 시절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니까 그 시절은 이미 지났어도 파리 공원 의자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리 공원의 여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자는 그곳을 상징하는 강력한 매개물이다.
 
서울은 어떨까. 외국의 트렌드와 문물에 촉수를 곤두세우는 도시답게, 서울은 전 세계의 의자를 모두 볼 수 있는 의자의 천국이기도 하다. 1859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토네트 14번 의자가 빈티지풍의 카페에 놓여 있고, 사원증을 찍어야만 통과되는 게이트가 딸린 대기업 사옥 로비에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와 미스 반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가 자리한다. 북유럽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은 서울에는 알바 알토 카페도 있다. 알바 알토의 디자인을 관리하고 생산하는 아르텍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카페에는 파이미오 암체어와 L레그 시리즈가 가득하며 천장은 알바 알토의 화병 모양이다. 황두진 건축가를 필두로 서촌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지켜낸 통의동 마을 마당에는 해리 베르토이아의 와이어 체어가 놓여 있기도 하다. 서울의 힘은 1952년 미국에서 태어나 국제적인 가구 제작사인 놀(Knoll)에서 생산하는 의자가 동네 작은 주민센터 마당에 놓여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흡인력’에서 나온다. 화창한 봄날 오전, 이 의자에 앉아 경복궁을 바라보며 서울 시민들의 음료라 할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커플(서울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소비하는 도시일 거다)을 보았을 때 그게 바로 오늘의 서울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빨리 트렌드를 감지하고 흡수해 소비하는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서울의 의자라면 바로 정동길의 의자일 것이다. 한국 작가가 한국 문화의 배경을 녹여 만든 의자여서가 아니다. 디자인에서 배타성이 강한 언어인 민족을 찾는 건 촌스럽고 좀스럽다. 그 뜻을 몰라도 정동길 초입 아스팔트에 쓰인 ‘자전거 우선도로’라는 한글의 조형성이 그 길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옹기 단지를 본뜬 화분이 그 길의 특별함을 알려주는 것처럼, 전 세계에 오로지 창덕궁은 거기에만 있는 것처럼, 오로지 그곳에서만 그곳의 온건한 독자성을 발산하는 의자라서 그렇다. 흔히들 이런 독자성을 오리지낼리티라고 부르는데, 오리지널은 다름 아닌 이런 것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갈 수 있는 그곳에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기억들을 함께한 것. 웃고 울고 슬퍼하며 정동 돌담길에 인생의 한때를 묻은 이들과 함께했던 그리고 함께한, 함께할 의자다. 그래서 이 의자는 유일무이하며 고유하다. 어디를 가도 서울이라고 하면 떠오를 가장 서울다운 의자다.
 

 
Who's the writer?
이지은은 사물의 이력에 천착하는 장식미술사학자다. 〈오브제 문화사〉와 〈사물들의 미술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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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현유
  • Illustrator 이은호
  • WRITER 이지은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