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SM에 대한 3가지 오해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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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SM에 대한 3가지 오해

21세기판 킨제이 보고서라 불리는 <현대인의 성생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어쨌든 우리는 같이 사는 가족, 매일 만나는 친구, 친척들의 성생활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는 것, 여기서 모든 오해가 시작됐다. 롤플레잉 섹스, 그중에서도 BDSM에 대한 세 가지 거대한 오해에 대해 말하려는 이유다.

ESQUIRE BY ESQUIRE 2021.07.04
 
 

BDSM에 대한 3가지 오해 

 

BDSM

속박(Bondage)과 훈육(Discipline), 지배(Dominance)와 굴복(Submission), 가학(Sadism)과 피학(Masochism)으로 대립되는 세 가지 대표적 형태의 롤플레잉 성향을 ‘BDSM’이라 묶어 부른다. 이 역할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을 ‘에세머(SMer)’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트라우마가 에세머 성향을 만든다?

우리는 BDSM을 잘 모른다. 잘 몰라서 매체에서 그리는 에세머의 모습만을 받아들이며 편견을 키웠다. 영화 〈펄프 픽션〉의 김프(The Gimp, 극 중 전당포 주인이 가죽 마스크를 씌워 지하실에 가둬둔 남자), 엉덩국의 만화에 나오는 슬링 비키니를 입은 남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클리셰다. 식인을 하거나, 신체 절단 같은 엽기적인 사건을 뉴스에서 사디즘과 엮어 다루는 방식도 흔한 일이다. 때리고 맞는다는 행위 자체가 폭력을 범죄화하는 사회의 룰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룰을 벗어나는 걸 무서워한다. 그래서 BDSM은 야릇하고 궁금하지만, 쉽사리 물어보지도 못하는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세계다. 그렇게 에세머의 말을 직접 듣지 못한 채 소비되는 이미지만 접하며 오해는 점점 커졌다.
 
BDSM에 대한 오해 중 대표적인 것은 어릴 때 받은 학대와 애정 결핍 등의 트라우마가 에세머를 만든다는 속설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상처 입어 비뚤어진 사람들만 BDSM을 즐긴다는 오해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주인공 크리스찬 그레이의 BDSM 성향이 어린 시절 겪은 애정 결핍과 성적 학대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려지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한 편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최근의 연구를 보자. 작년 앤트워프 대학교에서 에세머와 비에세머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트라우마가 BDSM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1000명이 넘는 인원을 상대로 한 연구다. 결과는 어린 시절의 신체적 학대를 포함한 모든 트라우마의 존재 유무가 BDSM 성향을 갖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반박한 또 다른 오해는 에세머들이 성적 자극에만 집착한다는 것. 연구에서는 에세머들이 비에세머들보다 오히려 안정적인 관계와 애정에 집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연구자들은 에세머들의 애착 관계를 애착 이론에 따라 유형을 나누기도 했는데, 주로 도미넌트가 ‘안정형 애착 유형’이고, 서브미시브는 ‘불안-회피형 애착 유형’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선호하는 성향과 마찬가지로, 애착 유형 또한 서로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즉 에세머들의 상성(相性)은 성향이 서로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애착 유형의 충족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해당 연구는 BDSM은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일탈적인 행동보다는 본인 취향에 맞는 자유로운 성생활에 가깝다고 결론 내린다.
 
연구뿐 아니라 에세머들의 자기 기술 역시 오해를 불식한다. 〈S&M 페미니스트〉의 저자 클라리스 쏜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상담을 통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부모는 예상과 다른 반응을 한다. 자신들에게 이미 BDSM 성향으로 인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도 BDSM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신상담사는 모녀의 성향이 100% 유전이라 장담한다. 많은 에세머에게 지배에 대한 최초의 흥분을 물으면, 유아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애정 결핍과 학대를 겪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도미넌트와 사디스트 성향을 가지고 있는 20대 A씨의 경우, 최초의 흥분을 초등학교  때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바비 인형의 옷을 벗기고, 두 바비 인형을 SM 플레이를 하는 구도로 진열한 것이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SM에 대해 전혀 몰랐던 때부터 줄곧 지배에 대한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SM 커뮤니티에도 선천적으로 BDSM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성향을 깨닫는 경우는 트라우마 때문일까? 뒤늦게 SM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 호기심에 한번 시도해보며 시작하는 식이 일반적이다. A씨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SM 플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섹스에 플레이를 곁들이다 입문하는 건 SM 커뮤니티에서 흔한 일이라고 한다.
 

 

BDSM은 정신장애다?

미국정신의협회(APA)는 1952년부터 정신질환 진단의 기준이 되는 서적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을 출판했다. 말 그대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이다. 협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다섯 번째 개정판인 〈DSM-5〉를 출판했다. 이 개정의 가장 큰 변화는 동성애에 대한 판단이다. 이전까지는 동성애를 ‘성정체감 장애’로 분류했으나, 〈DSM-4〉부터 이를 정신장애에서 삭제했다. 에세머들은 〈DSM-5〉가 나올 때엔 이와 같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바랐다. BDSM이 책에서 삭제되길 고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성적 피학 장애’와 ‘성적 가학 장애’는 여전히 진단 가능한 정신장애로 남았다. 이 조항이 모든 BDSM이 정신장애라는 오해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DSM-5〉에서 성적 피학 장애의 진단 기준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공상이나 성적 충동, 행동이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사회적·직업적, 또는 기타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손상을 일으킨다’.
‘강간을 당한다는 내용이 흔하다’, ‘자신을 묶거나 자신을 핀으로 찌르거나 자기에게 전기쇼크를 가하거나, 자신의 신체를 절단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에세머들이 롤플레이에서 용인하는 BDSM의 바운더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즉 〈DSM-5〉는 BDSM 자체를 장애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가학성이 두 사람의 합의는 물론, 사회가 용인하는 틀을 벗어날 때만을 정신장애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다수의 에세머는 〈DSM-5〉가 장애로 규정한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BDSM 플레이는 세 번째 개정판인 〈DSM-3〉에서 규정한 성적 가학 장애의 특징에 가깝다. 당시의 기준 일부는 다음과 같다.
 
‘동의하는 성 파트너와 반복적으로 또는 배타적으로 선호하는 시뮬레이션 또는 가벼운 고통을 주는 것’.
 
BDSM 중 사디스트의 성향을 거의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DSM-5〉로 개정되며 이 기준은 삭제되었다. 즉 절대다수의 BDSM 성향은 정신장애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부 유럽 국가는 정신 진단 기준 매뉴얼에서 BDSM에 대한 언급 자체를 삭제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미 2013년 BDSM이 사이코패스는 물론 정신장애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오히려 기사에서는 에세머들이 정신 건강을 측정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과 ‘모험적인 요소’, ‘거부감’의 지표에서 비에세머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BDSM에 가지고 있는 이 편견은, 사드의 문학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병적인 심리 상태로 규정한 프로이트의 원죄와 같은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BDSM은 위험하다?

때리고 맞고, 묶고 채찍질하는 BDSM은 위험한가? 언뜻 보기에 SM 플레이는 강간, 납치 감금, 학대와 같은 가학성 범죄와 그 방향이 같아 보여 오해를 받는다. BDSM과 학대의 가장 큰 차이를 모르기에 생기는 오해다. A씨에 따르면 피가학이라도 ‘자신이 선호해서’ 이루어지면 플레이라고 말한다. BDSM의 위험성을 보기 위해선 실제 에세머들의 플레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세머들이 플레이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수고가 많이 드는 일이다.
 
예를 들어 도미넌트가 서브미시브와 플레이를 하고 싶다면 ‘구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위터 또는 온라인 SM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간략한 프로필, 좋아하는 플레이 방식, 원하는 플레이 등을 올리는 게 보통이다. 상대에게 연락이 온다면 어느 정도 채팅으로 대화를 한 뒤, 만나볼지 고민한다. 일이 잘 풀려서, 그 상대가 마음에 든다고 가정하자(임모 씨에 따르면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한다). 혹시나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모르니 오픈된 공간인 카페에서 만나, 선호하는 플레이와 싫어하는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합의를 한다. 여기서 합의점이 맞은 경우에야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즉 합의하기까지 양쪽에게 무척 조심스러운 탐색 과정과 거절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제 플레이를 하게 됐다. 플레이를 할 때 가학(S성향)이나 지배(D성향) 쪽에서 가장 주의하는 것은 상대방의 상태다. 모든 놀이의 목적은 참여자 모두의 즐거움이다. 이를 위해 육체적·정신적으로 견딜 수 있는 한도를 넘지 않도록 집중하며 플레이를 이끈다. 그럼에도 SM 플레이에선 폭력이 행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장치’들을 준비한다. 상대의 피부를 손바닥 또는 채찍으로 때리는 플레이를 한다면, 플레이 전 젖은 물수건을 얼려놓는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찜질하기 위해서다. 구급 조치를 할 수 있는 간단한 구급함도 필수로 준비한다.
 
그럼에도 플레이에 심취해 상대의 경고를 무시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없애기 위해 ‘세이프 워드’를 미리 정해둔다. 세이프 워드는 즉각적으로 플레이를 멈출 수 있는 단어다. 신호등의 삼색처럼 단계를 두고 정하기도 한다. 플레이를 무사히 마무리한 후도 중요하다. 육체적·정신적인 피로감은 크기 마련이다. 특히 지배 또는 가학을 당한 입장은 피로감이 심하기 때문에, ‘애프터 케어’가 필요할 수 있다.
 
다수의 성향자들은 상대를 위한 애프터 케어 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정해진 단계나 절차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나는 여기 있고, 당신을 보살피고 있어. 지금은 안전하고, 당신이 필요한 만큼 나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BDSM은 여러 단계와 안전장치를 갖춘 하나의 합의된 게임이다. 특히 이 게임에서 섹스를 하지 않는 경우는 비성향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다. 심리학 잡지인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에 한 정신의학 전문가는 BDSM 성향을 갖게 되는것에 이러한 가설을 제안했다. 극도로 매운 고추 등의 고통스러운 맛을 즐기는 사람이 있듯이, 고통을 찾고 그 고통을 견디며 보람을 느끼는 인간의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운 고추를 먹는 것처럼, 그 고통이 영구적인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위험하다고 오해받는 BDSM이 오히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 다수의 해외 매체들은 BDSM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BDSM 테라피’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서브미시브의 경우 상대가 시키는 것만을 복종하기 때문에 판단하는 일이 줄어들어, 뇌의 일정 부분 활용이 줄어든다. 이는 신체 감각과 현재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 명상과 비슷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자신을 속박하고 구속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가 상대를 신뢰하는 과정이기에 관계에 도움이 된다. 이를 하나의 주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진실은 살아남는다. BDSM의 여러 성향이 얽혀 있는 관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안전하며, 그 플레이의 매력과 효용은 비성향자들이 짐작하기 힘들 만큼 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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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윤승현
    PHOTO 게티이미지스 코리아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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