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어쩌면, 라스트 V8

V8은 곧 멸종할 것이다. 기후변화를 견뎌내지 못하는 변온동물처럼, 전동화 시대의 바람에 밀려 사라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V8의 계보 끝자락에 있는 4대의 자동차를 기록했다.

BYESQUIRE2021.08.02
 
 

ENDANGERED SPECIES 

 

BENTLEY FLYING SPUR V8

낯설다. 겉보기엔 분명 고급 대형 세단인데 달릴 때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GT(Grand Tourer) 같다. 플라잉스퍼는 나긋나긋한 승차감과 매콤한 달리기 실력을 동시에 지녔다. 속도를 올리면 보닛 아래의 V8 엔진 소리가 슬금슬금 운전석으로 넘어온다.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꽤 중독성 있다. 사실 벤틀리의 핏속에는 모터스포츠 DNA가 담겨 있다. 르망24시 내구레이스에서 수차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래서 같은 럭셔리 브랜드일지라도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르다. 롤스로이스는 쇼퍼드리븐, 벤틀리는 오너드리븐에 더 가깝다. 플라잉스퍼 V8은 최고 출력 550마력을 뿜어내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1초면 충분하다. 무시무시한 성능이지만, 함께 모인 다른 V8 모델들과 비교하면 가장 약한(?) 기록이다. 출력을 잃은 대신 토크를 얻었다. 78.5kg·m의 최대 토크는 2417kg이나 되는 플라잉스퍼를 시원시원하게 밀어낸다. 먼 거리를 오랫동안 빠르게 달리기 위해선 높은 엔진 회전수로 출력을 쥐어짜는 것보다 저속부터 두터운 토크가 터져 나오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디자인은 두말할 것 없이 화려하다. 눈 닿는 곳마다 전부 가죽이다. 시트 위 한 땀 한 땀 수놓인 스티치는 잘 만든 명품 가방 같다. 장갑을 끼고 만져야 할 것 같은 반짝이는 기어 레버와 그 위에 자리 잡은 아날로그 다이얼은 이 차가 얼마나 비싼 차인지 잘 보여준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같은 폭스바겐 그룹인 포르쉐의 것과 닮았다. 차체가 낮은 편이라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파워트레인 3996cc V8 가솔린 트윈터보, 듀얼 클러치 8단 자동
최고 출력 550마력
최대 토크 78.5kg·m
가속력(0→100km/h)4.1초
가격(VAT 포함) 3억2000만원
 

 

AUDI RS Q8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빠르건 느리건 우수한 주행 성능과 승차감을 보장한다.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작은 파워트레인이다. RS Q8의 V8 엔진은 가솔린 엔진인데도 최대 토크가 81.6kg·m나 된다. 토크가 높으면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 세다. 게다가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 시작점이 2200rpm부터다. 즉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을 때 어마어마한 힘이 왈칵 터져 나온다는 뜻이다. 이때 아우디의 전매특허 네 바퀴 굴림 시스템인 ‘콰트로’가 빛을 발한다. 급가속을 여러 번 반복해도 휠스핀(타이어가 접지력을 확보하지 못해 헛도는 현상)이 나는 법이 없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온 힘을 노련하게 앞뒤 바퀴로 고르게 분배한 덕이다. 살짝 아쉬운 건, 다운시프트에 보수적인 변속기다. 엔진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패들시프트를 연신 까딱였지만 변속기는 쉽사리 낮은 기어를 체결하려 하지 않는다. ‘이 차는 스포츠카가 아니야’라는 무언의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만약 스포츠카 같은 SUV를 찾는다면 RS Q8과 플랫폼을 공유한 람보르기니 우루스로 눈을 돌리면 된다. 단, 8000만원이 더 필요하다. 실내외에 아낌없이 사용한 카본 파이버보다 더 반가운 녀석이 있다. ‘올 휠 스티어링’이다. ‘후륜 조향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능은 뒷바퀴를 최대 5도까지 회전시킨다. 저속에서 진행 방향과 반대로 뒷바퀴를 돌려 회전 반경을 줄이는데 길이가 5m, 폭이 2m인 RS Q8에겐 단비와 같은 존재다. 더 이상 좁은 골목길이나 유턴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파워트레인 3996cc V8 가솔린 트윈터보, 8단 자동
최고 출력 600마력
최대 토크 81.6kg·m
가속력(0→100km/h) 3.8초
가격(VAT 포함) 1억7202만원
 

 

FERRARI PORTOFINO M 

V8 엔진 맛집이 있다면 여기다. 페라리는 남들이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올해의 엔진상’을 4년 연속 차지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성능은 터보 엔진인데 반응이 자연흡기 엔진 같아서다. 터보차저는 공기를 압축해 엔진으로 빠르게 주입해 엔진 출력을 높인다. 하지만 구조적 특성상 작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를 ‘터보랙’이라 한다. 터보랙이 발생하면 운전자는 가속페달을 밟았는데도 차가 튀어 나가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런데 페라리 V8 엔진은 터보랙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와 터보차저 속 터빈을 모니터링하는 ‘터보 센서’의 공이다. 자연흡기 엔진처럼 높은 RPM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덤이다. 포르토피노 M은 시속 45km로 달리면서도 14초 만에 하드톱을 완전히 열어 젖힌다. 지붕이 열고 닫힐 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귀가 들어맞는 걸 보고 있으면 새삼 "역시 페라리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트 포지션이 매우 낮아 지붕을 열고 달리더라도 바람에 스타일이 망가지지 않는다. 물론 포르토피노 M을 빠르게 운전할 때 신경 써야 하는 건 옷매무새 따위가 아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앞차를 피해 가기 위해선 들끓는 V8 엔진과 독심술사 같은 신형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 한다. 다행인 건, 단단해진 하체와 개선된 브레이크 모듈이 고속 주행의 불안감을 덜어준다. 보통 오픈톱 모델을 소개할 때 ‘살랑이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주는 여유’를 강조하곤 했다. 포르토피노 M은 예외다. 한계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차의 성능을 만끽하며 맹렬하게 달릴 때 가장 즐겁다.
 

파워트레인 3855cc V8 가솔린 트윈터보, 듀얼 클러치 8단 자동
최고 출력 620마력
최대 토크 77.5kg·m
가속력(0→100km/h) 3.45초
가격(VAT 포함) 3억원부터
 

 

BMW M8 COUPE COMPETITION 

우아하다. 잘 매만진 조약돌처럼 옹골진 보닛을 지나 날렵하게 솟구친 후 느슨하게 이어지는 루프 라인이 유려하다. ‘쿠페 한 스푼’ 넣고 쿠페라 우기는 여느 세단이나 SUV와 격이 다르다. 쿠페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차의 루프 라인을 예로 들어도 될 정도다. 실루엣과 달리 디테일은 스포티한 요소가 가득하다. 차 높이의 절반은 되어 보이는 20인치 경량 휠, 다운포스 향상을 위한 카본 파이버 리어 스포일러, 근육질의 리어 범퍼와 디퓨저가 그렇다. 참고로 M8은 4도어 모델도 있다. 엔진은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 힘이 넘쳐흐른다. 웬걸, 힘만 센 줄 알았더니 반응 속도까지 빠르다. 게다가 8단 M 스텝트로닉 자동변속기는 엔진 회전수를 최대한 쥐어짠다. 그렇게 뿜어져 나온 힘을 도로에 쏟아내면 고작 3.2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거기서 7초 정도 더 가속페달을 밟고 있으면 속도계는 200을 가리킬 것이다. 이렇게 달리면 SF 영화에서 웜홀을 통과할 때 보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물론 커다란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뛰어난 제동 성능을 담보로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운전자가 M8 쿠페 컴페티션의 엔진, 변속기, 섀시, 스티어링, 브레이크, 구동 배분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다. 그 경우의 수가 무려 324가지다. 어떤 세팅이 본인의 운전 스타일과 가장 잘 맞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알맞은 조합을 찾았다면 운전대 좌우에 위치한 빨간 ‘M1&M2’ 버튼에 설정을 저장한 후 손쉽게 불러오면 된다. 버튼을 활용하면 도로 위 양의 탈을 쓴 늑대 타이틀은 따놓은 당상이다.
 
파워트레인 4395cc V8 가솔린 트윈터보, 8단 자동
최고 출력 625마력
최대 토크 76.5kg·m
가속력(0→100km/h) 3.2초
가격(VAT 포함) 2억397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