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alist Low Top Sneakers 단정한 스니커즈가 하나 필요하던 참에 길고 긴 리서치를 거쳐 구매했다. 디자인은 심플하되 흔하지 않고, 단정하게 가다듬은 가죽과 헤리티지까지 있으면 좋겠다는 까다로운 조건.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신발이 오트리의 메달리스트였다. 빈티지하게 빛바랜 듯한 색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신으면서 자연스러운 오염과 상처도 생겼는데,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함께한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훈장 같아서.
샌프란시스코마켓 압구정점 매니저 고승균 MA-1 Sneakers 일본 오카야마에서 산 캐피탈 운동화. 말고기에 소주를 마시고 취해 기념품 삼아 샀는데, 술김에 하는 일들이 대개 그렇듯 이튿날부터 후회했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신었을까? 지퍼로 여닫고 단추로 고정하는 형태. 아래쪽 단추에 지퍼를 채우면 신발이 찢어진다며 “스미마셍”을 연발하던 판매 직원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근마켓에 올려야지 싶다가도 이게 다 업보 같아 그냥 짊어지고 산다.
〈에스콰이어〉 디지털 디렉터 임건 Lace Up Derby Shoes 2019년 런던에서 활동할 때 스테판 쿡의 샘플 세일이 있었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면 충분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추운 날씨에도 이미 줄이 길었다. 앞선 사람들이 많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명처럼 이 신발이 남아 있었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이즈로 딱 한 켤레.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쇼피스라는 사실이 더욱 매력적이다.
모델 박경진 Chain Derby Shoes 라프 시몬스의 2012년 컬렉션 슈즈. 사회 초년생이 사기엔 꽤 비싼 신발이었는데, 신발 둘레에 두른 볼드한 골드 체인이 좋아서 눈 딱 감고 질렀다. 엄마는 이런 구두를 어디에다 신겠냐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생각해보면 이 신발을 신고 회사도 가고, 출장도 가고, 심지어 클럽도 갔다. 체인 사이에 지저분하게 낀 때를 닦아내던 일요일 아침이 선연하게 기억난다.
〈에스콰이어〉 패션 에디터 윤웅희 Spectator Loafers 톰 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시절의 구찌를 좋아한다. 그 덕분에 패션에 눈뜨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구찌 런웨이에 등장한 스펙테이터를 보고 홀딱 반했지만 당시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런던의 빈티지 숍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이 신발을 운명적으로 마주했다. 이 신발과 함께한 지도 벌써 10년.
에스코티지 비주얼 디렉터 이태헌 Python Pattern Loafers 2019년 홍콩 출장에서 구매. 촬영 도중 하버시티의 편집매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던 이 로퍼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정신없이 촬영하던 와중에도 계속 아른거리길래 모델이 옷 갈아입는 사이 매장으로 헐레벌떡 뛰어가 1분 만에 결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딱 두 번 신었다. 가끔 패션 행사에 갈 때 신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더더욱 신을 일이 없다.
스타일리스트 이민규 Out Of Office ‘OOO’ Sneakers 오프화이트 아웃 오브 오피스 스니커즈에 드로잉 작가 성립의 ‘LIL MOSHPIT’ 레터링을 더한 신발. ‘LIL MOSHPIT’은 내가 만든 멀티 페르소나, 쉽게 말해 요즘 대세인 ‘부캐’의 이름이다. 이 스니커즈를 신을 때마다 나의 본캐와 부캐가 합쳐져 더 강인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루비룸 프로듀서 휘민 SB Dunk High Sneakers 나이키 SB 덩크의 황금기를 일으키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고 할 수 있는 스니커즈. 2003년에 발매한 제품인데 운 좋게 중고로 구매해 지금까지도 잘 신고 있다. 얼마 전 로 버전으로 재발매돼서 가치가 더욱 상승한 모델. 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다.
래퍼 레디 Horsebit Loafers 여름에는 옷차림을 담백하게 하고 대신 과감한 액세서리나 슈즈로 포인트를 주는 편이다. 이때 구찌 호스빗 로퍼는 고민 없이 단번에 신고 나설 수 있는 신발. 톤이 다른 블루 컬러의 조합은 흰색 티셔츠나 데님 팬츠와도 굉장히 잘 어울린다. 페이턴트 가죽을 사용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도 걱정 없다.
카멜커피 브랜드 매니저 박종진 Penny Loafers 인생 첫 비스포크 슈즈. 가봉 샘플이 나오기까지 1년, 가봉 후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또다시 6개월. 피렌체를 두 번이나 방문한 수고와 1년 6개월이라는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신발이다. 거의 매일 신어서 찢어진 어퍼를 꿰매고, 또 수선하고를 반복해 함께한 지도 벌써 7년이 됐다. 비스포크 슈트를 다루는 내가 처음 경험한 비스포크 슈즈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비앤테일러 이사 박창우 Belgian Loafers 보두앙 앵 랑은 클래식 패션을 좋아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이름 높은 브랜드. 피티 우오모에서 처음 알게 됐고 편집매장 E. 나폴리에서 다시 만났다. 홀린 듯 구매했는데, 정작 자주 신진 않는다. 매일 신을 만큼 튼튼하지 않아서. 대신 많이 걷지 않는 날, 좋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가는 날 신는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을 아직 믿고 있으니까.
프리랜스 에디터 박정희 Air Jordan 1 High Sneakers 2019년에 로스앤젤레스로 출장을 갔다가 신발 편집매장 풋라커에서 구입했다. 인기 있는 조던 모델도 많았지만, 눈길이 더 간 건 바로 이 운동화. 군더더기 없는 귀여운 색 조합에 보송하게 가공된 가죽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키가 2m는 족히 돼 보이는 직원에게 바로 ‘체크 플리즈’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포토그래퍼 채대한 Road Bike Shoes 몇 년 전, 출퇴근할 때 타려고 로드바이크를 한 대 구매했다. 모터바이크를 살까 하다가 건강을 생각하면 자전거가 나을 것 같아서. 그리고 본격적인 라이딩을 해볼 요량으로 페달에 연결하는 클릿 슈즈까지 구비했다. 순발력과 운동 센스가 있는 사람에겐 이 신발이 꽤 유용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있을 때마다 나는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고꾸라졌다. 하도 넘어지다 보니 오히려 라이딩에 대한 흥미도 식었다. 결국 로드바이크는 친구에게 중고로 넘겼고, 이 신발만 남았다.
모델, 87MM 대표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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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HARD WILLHELM × CAMPER
High Top Sneakers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스타일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 스니커즈는 내 인생의 패션 격변기를 함께한 신발로 스트리트 웨어를 입다 클래식 슈트와 재킷에 빠져들 무렵 구매했다. 당시에도 자주 신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귀여운 로프 디테일에 반해 출시되자마자 샀던 기억이 있다. 그저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서. 신발장에서 마주할 때마다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에스코티지 비주얼 디렉터 이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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