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 대팽창의 이면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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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시장 대팽창의 이면

미술 시장이 대팽창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박세회 BY 박세회 2021.09.26
 
 

THE GREAT EXPANSION

 
아트 시장이 폭발 중이라고 다들 말한다. 사람들이 손에 돈을 쥐고 갤러리나 경매 시장으로 달려가 그림을 사고 있다고. 심지어 너무 과열되어서 무섭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숫자는 무슨 말을 할까? 숫자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지난 1998년부터 한국 내 미술품 경매가를 추적해 아카이브화하고 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9개 경매업체에서 거래된 총 경매가는 1139억원 정도다. 2018년 사상 최초로 2000억원을 넘겼던 시장이 여러 요인으로 인해 잠시 수축됐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상반기에만 1448억원이 넘었다. 즉 상반기 낙찰총액이 지난해 낙찰총액의 127%에 달한다. “200% 이상 성장한다고 봐야죠. 하반기에도 비슷한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예술경영지원센터 김봉수 팀장의 말이다. 1~3월 1분기 낙찰총액은 527억여 원에 그쳤으나 4~6월인 2분기엔 낙찰총액이 920억원에 달해 한 분기 만에 74%가 넘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잘하면 올 한 해 경매 시장이 3000억원을 넘기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예전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아트 시장의 성장이 일부 블루칩 작가에게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
 
처음 미술 작품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박서보, 이우환의 작품을 살 리가 없잖아요. 아트 토이나 중견 작가의 판화 작품을 처음 사는 사람들이 많죠. 그렇게 여러 작품을 모으다 결국 신진 작가의 유니크 피스(원화)에 관심을 두는 거거든요.
 
한 아트 마켓 관계자의 말이다. 작품 구매자 입장에서 가격 접근성을 고려하면 저 단계를 거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의 특징은 예술품 구매의 루트를 타고 수많은 인구가 유입되며 ‘미술 시장’에 포함되는 거의 모든 영역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을 이끌고 있는 단색화가들의 가격 상승은 여전하고, 아트 토이와 판화 시장 역시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신진 구상화가들에게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도 종종 들린다. 업계에 따르면 그렇다. 글로벌 미술 거래 플랫폼 ‘아트시’가 한국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이 미술 열기의 방증이다. “80여 개의 국내 갤러리가 이미 아트시의 파트너로 활발하게 작품 홍보, 판매를 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의 파트너십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아트시의 첫 국내 직원인 김예지 디렉터의 말이다.
 
폭발하고 있는 2021년의 미술 시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몇몇 장면이 생각난다. 지난 6월에 있었던 ‘더 프리뷰 한남’에서 있었던 일이다. 32개의 갤러리 128명의 작가가 참여했던 아트페어에서 하나의 회화 작품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목하. 판넬에 면포를 배접하고, 마치 잉크젯 프린터가 CMYK 컬러를 여러 겹 쌓듯 면포 위로 분주하게 여러 번 오랜 기간 붓을 움직여 그려냈다는 설명을 들었다. 현실의 눈으로 본 이미지가 아닌 사진에 포착된 모양새와 구도, 빛과 어둠을 강조한 그의 그림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포토 페인팅이 던진 ‘회화에 대한 사유’의 연장선으로 보였다. 당장 사고 싶었지만, 역시나 좋은 걸 보는 사람의 눈은 다 비슷했다. 그날 전시된 그의 그림 옆에는 모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한편 합정동 거리를 산책하다 별생각 없이 들렀던 한 갤러리에서 본 전혀 다른 의미의 사건도 생각난다. 귀여운 인물화 시리즈가 전시된 그 갤러리에 들어서자, 작가 본인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메이저 갤러리의 작가 전시회와는 다른 가족적인 분위기가 포근했다.
 
그런데 요새 정말 그림을 사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막 무슨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인스타그램 때문인지 오자마자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이 그림 팔렸어요?’라고 묻고 급하게 사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중 작가가 말했다. “요새는 남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고 갖고 싶으면 그냥 사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지난 7월 열린 한 경매사의 옥션에서는 아직 30대인 한 작가의 회화 작품이 7000만원 넘는 금액에 낙찰됐다. 호당 가격으로 따지면 약 70만원이 넘는다. 하긴 또 다른 40대 작가의 경우엔 호당 가격이 이미 200만원에 달하니, 아주 깜짝 놀랄 일까지는 아닐 수도 있다. 지난 2019년 홍콩 세일에 나와 50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에 팔렸던 이 작가의 100호짜리 작품은 곧 있을 올가을 경매에 다시 나온다. 한 작가의 작품이 2년 만에 옥션 시장에 다시 등장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신호’다. 추정가는 2000만~3000만원이지만, 요새 이 작가의 작품에 매겨지는 호당 가격을 생각하면 저렴하게 매긴 편이다. 방금 나는 ‘저렴’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여러 번 고개를 저었고, 두세 번쯤 눈을 질끈 감았다. 미술 작품에 ‘저렴’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우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하튼 지금은 불장이다.
 
미술 시장밖에 없으니까요.
 
미술 작품을 꽤 오래 꾸준히 모아온 30대 후반의 헤비 컬렉터 A씨가 말했다. “아주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도 우리도 양적 완화 정책을 써왔죠. 금리를 낮추거나 돈을 계속 찍어서 시장에 유동자금을 풀었어요. 돈은 그냥 쥐고 있으면 손해거든요. 어디든 가치가 올라가는 것에 투자해야 하는데, 주택 시장은 거래세에 발목이 잡혔고, 주식 시장은 2020년에 한창 오르더니 주춤하고 있거든요. 그 돈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거래세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아트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고 모두가 하는 얘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란스런 수평선(Noisy Horizon)’, 이목하 2021, 면포에 유채, 100x200cm

‘소란스런 수평선(Noisy Horizon)’, 이목하 2021, 면포에 유채, 100x200cm

문제는 이 시장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고 뛰어든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2007년의 아트 시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미술 시장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옥션하우스와 갤러리로 접근하죠. 거기서 뭘 봐야 할까요? 가격이 오르는 작품을 산다? 그건 마치 펀더멘털을 따지지 않고 차트만 보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실수거든요.
 
그의 말을 들으니 〈개미는 뚠뚠〉이라는 카카오 TV의 주식 투자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주식의 고수들이 초보 개미들을 교육하는 내용의 이 프로그램은 매번 같은 말을 한다. “우량주에 투자하세요.” 그러나 초보 개미들은 절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우량주에 투자해서 언제 돈 벌어요”라며 주가가 요동치는 압타바이오나 삼풍제약의 차트를 보고 들어가 단타로 수익을 내려 한다. 아까 ‘저렴’이라는 단어를 쓸지 말지 고민한 것과 같은 이유로 ‘단타 수익’이니 ‘우량주’니 하는 단어를 쓸지 망설였지만, 쓸 수밖에 없다. 주식 투자의 시각을 가지고 예술품을 컬렉팅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는 돈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세계이기도 해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을 차익만 노리고 사는 행위는 정말 조심해야 해요. 작전주가 어느 날 갑자기 상장 폐지되듯이 어느 순간 시장에서 사라지는 작가들이 있거든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2008년에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떴던 작가들이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세요.
 
한 미술계 관계자가 업계의 어두운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말했다. 나는 몇 년 전 비가 장대처럼 내리던 날 한 갤러리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일을 떠올렸다. 하필 비가 와서인지 그날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다. 임의로 이 작가를 B라고 하자. B는 2008년에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고, 이게 시장에 먹혔다. 대략 2008년 이 작가의 작품은 17개가 경매를 통해 팔렸는데 낙찰 총액은 8억원이 넘었다. 작품당 평균 가격은 5000만원이 조금 안 됐다. 신진 작가의 50호짜리 작품이 대략 200만~500만원 선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가격이다. 젊은 그는 그야말로 록 스타였던 셈이다. B만 있는 것이 아니다. B와 비슷한 당시의 록 스타급 작가 두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C와 D라고 하자. B와 C와 D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작품이 거래된 데이터는 남아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케이아트마켓 DB를 바탕으로 추적해보니 2008년 1차 경매 시장 폭발 당시 14억7000만원에 달했던 이들의 거래 총액은 2021년 3차 경매 시장 폭발 때는 93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누군가 시장에 내놓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2021년에 시장에 나온 B작가의 작품은 절반 가까이 유찰됐고, C는 석점 중에 두 점이, D는 석 점 중에 한 점이 유찰됐다.
 
나는 2차 시장의 ‘화이트 히트’가 이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와 자본 시장의 관계를 촘촘하게 짚은 다큐멘터리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The price of everything)〉에는 메릴린 민터가 등장한다. 민터는 습기 찬 샤워 부스를 통해 바라본 여성의 누드를 하이퍼리얼리스틱하게 그린 시리즈로 유명하다. 1948년생인 그는 일련의 연작으로 자신의 미술 언어를 확립했다. 영상에서 민터가 말한다. “’화이트 히트’를 받은 작가가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겠어요?” 카메라를 든 사람이 “화이트 히트가 뭐냐”고 묻는다. “자기 작품이 경매에서 100만 달러에 팔리는 걸 보는 거죠. 살아서요” 뒤이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화이트 히트는 위험해요. 사람을 미치게 만들죠.” 이 지점에서 갤러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술 시장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작가에게 갤러리는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제대로 된 작가와 제대로 된 갤러리가 만나면, 작품의 아이디어 단계부터 기획의 구체화, 전시의 흐름까지 함께 상의한다. 이에 더해 갤러리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판매하며, 작가가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물심으로 돕는다.
 
‘산울림 19-II-73#307’, 김환기 1973, 캔버스에 유채, 264x213cm

‘산울림 19-II-73#307’, 김환기 1973, 캔버스에 유채, 264x213cm

화이트 히트는 작가의 멘털을 헤집어놓고 가끔은 시장을 망친다.
 
과거에 자기 작품의 경매가가 오르자 갤러리를 안 거치고 직접 판매했던 작가가 몇 있었어요. 그렇게 여러 점을 판매하게 되면 당연히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판매한 작품들이 우르르 경매에 쏟아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경매 시장은 철저한 자본 시장이니 갑자기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겠죠. 그렇게 가치가 떨어진 작가는 커리어를 회복하기 힘들어요.
 
한 미술 관계자가 익명을 요구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갤러리가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특정 작가의 작품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고 해서 그 작가의 소속 갤러리가 당장 그 가격대로 상향해 조정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요.”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서울 이태원동의 갤러리 P21 최수연 대표가 말했다.
 
갤러리의 역할에는 작가가 시장에 휘둘리지 않게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는 거죠. 가격을 잘못 정해 그 작가의 작품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어요. 갤러리는 상업적 판단도 해야 하지만, 작가를 지켜야죠.
 
뜨거운 시장일수록 작가를 지키기 위한 갤러리의 노력은 정밀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이목하 작가의 협업 갤러리는 한남동에 위치한 디스위켄드룸이다. 이 갤러리를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희 갤러리도 신생이고, 함께하는 작가들도 신예죠.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어요.” 디스위켄드룸의 김나형 대표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당장의 이익보다는) 작가의 생애전주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더군요. 일정 기간 작가의 작품을 리셀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조항이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로컬화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어요.” 어쩌면 김 대표는 운이 참 좋은 경우인지도 모른다. “저희 소속 작가들 중 일부의 경우 작품을 구매한 분들이 내년에 작품을 양도받는 조건에 다 동의를 했어요. 전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김 대표와 컬렉터들은 지혜로운 것이다. 전시는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2차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작품들이 거래될 때는 갤러리가 고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미술관이다. “특히 젊은 작가의 경우, 초석을 다지려면 대표가 되는 작품들은 미술관에 소장되도록 노력해야 하죠. 작가의 작품을 미술관이 소장한다는 건 마치 보험 같은 거예요. 위기의 순간 시장이 이 작가를 버릴지라도 이 작가에겐 ‘모마 소장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라는 거대한 이력이 남지요.” 올 10월 초 서울 한남동에 개관을 앞두고 있는 타데우스 로팍의 황규진 디렉터가 이 책에 같이 실린 〈에스콰이어〉와의 지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는 작가들의 순수한 바람과도 결이 같다.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에는 1983년생 나이지라 출신 작가 응지데카 아쿠닐리 크로스비(Njideka Akunyili Crosby)도 등장한다. 그는 영상에서 자신의 작품이 90만 달러에 낙찰되는 걸 화면으로 지켜본다. 영상을 찍기 몇 년 전에 열린 전시회에서 그녀의 작품을 산 한 고객이 크로스비의 작품을 옥션에 내놓은 것이다. 크로스비는 이 장면을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말한다. “(제 작품은) 미술관에 걸고 싶어요. 미술관은 문화의 보루니까요.” 개인 컬렉터의 수장고는 작품에게 있어서는 무덤일 수 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감정과 사고의 파장을 만들어낼 목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저택의 수장고에서 잠들어 경매에 부쳐질 때까지 깰 줄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작품이 깨어 있길 바라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은 종종 제품이나 상품을 거래하는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이라면, 다시 냉철한 자본 시장의 하이에나로 돌아와보자. 그래서 이 뜨거운 시장에 문제는 없나? “전 지금이 정말 한국 미술에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서 언급한 헤비 컬렉터 A씨가 말했다. “지금 미술 시장에 투입되는 자금들이 제대로 된 작가들에게 투자된다면, 이건 기회죠. 그런데 만약 이번에 처음 관심을 갖고 옥션 시장이나 갤러리에 접근한 초짜 수집가가 거품이 잔뜩 낀 작품을 샀다고 생각해보세요. 비싼 돈을 주고 산 작품의 가격이 헐값이 되는 걸 보고도 미술에 계속 관심을 가질까요? 한번 발을 돌린 컬렉터는 절대 돌아오지 않아요.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작품을 사려면 전시 약력을 보고, 그의 작품이 어디 소장되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펀더멘털이 중요해요. 지금 시장이 과열되었고, 곧 그 거품이 사라진다고 해도 가치가 있는 작품은 살아남을 테니까요.”
 
‘해리되는 기억’, 이은실 2021, 장지에 수묵 채색, 31x46cm

‘해리되는 기억’, 이은실 2021, 장지에 수묵 채색, 31x46cm

물론 보통의 미술 감상자가 해야 할 걱정은 따로 있다. 바로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우리 모두의 수장고다. 시장 가격이 너무 올라 이 수장고에 넣을 좋은 작품을 더는 구매할 수 없다면 어쩔 것인가? 또다시 떠오르는 한 장면. 지난 7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건희 컬렉션 공개에 앞서 진행한 기자간담회 현장이었다. 당시 김환기의 전면 점화 ‘산울림 19-II-73#307’(1973)을 소개하던 학예연구사가 “1년 예산이 48억원이라, 그동안 김환기의 점화도 이중섭의 황소도 소장하지 못해 그 서러움을 작품 구입 심의 때 털어놓은 적이 있다”며 갑자기 웃기고 슬픈 고백을 했다. “드디어 저희도 김환기의 점화가 있습니다.” 별 중요한 얘기가 아닌 것 같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동안 김환기, 이중섭의 주요 작품을 소장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희 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하는 데 제대로 예산을 배정받기 시작한 것이 1986년입니다. 이미 그 당시만 해도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은 저희 예산으로는 살 수가 없을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죠. 그래서 저희가 산 작가들이 윤형근, 박서보, 이우환이에요. 작품 구입비를 올려 받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조금 더 받아낸 예산으로 시장을 쫓아갈 수는 없는 거죠.”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근대미술팀장이 말했다. 김 팀장은 단색화 열풍의 한복판인 2018년, 윤형근 회고전을 기획한 학자다.
 
시장에 관심이 쏠릴 때일수록 미술관이 아직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에, 새로운 흐름에, 장래성 있는 작가에게 눈길을 돌려야 하는 이유죠.
 
그가 말했다. 가치가 있으나 시장이 몰라주는 작가, 가능성이 높으나 토대가 부족한 작가를 발견해 대관식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국공립미술관이 가진 가장 합리적인 특권일지 모른다. 시장을 살피려고 취재를 시작했으나 마지막에 남은 질문은 전혀 달랐다. 건강한 미술 환경이란 뭘까? 건강한 미술 환경이란 한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며,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성숙해가는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할 수 있도록 컬렉터, 갤러리, 인스티튜션이 받쳐주는 환경이 아닐까? 이런 말을 했을 때 한 큐레이터가 보여준 반응이 정말 멋졌다.
 
당연하죠. 그게 가장 근본이 되는 마음가짐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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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 국립현대미술관/ 디스위켄드룸/ P21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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