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형 '이규형 만의 헤드윅'을 만들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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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이규형 만의 헤드윅'을 만들다

이규형은 이번엔 형들의 헤드윅을 보지 않았다. 그가 완성한 헤드윅은 오로지 이규형만의 헤드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1.09.27
 
 

그는 다르다 

 
저 공연 때 규형 씨가 등장하는 통로 자리에 앉아 있었거든요. 방역수칙 때문에 소리는 못 지르고 손만 열심히 흔들며 알은 체했어요.
아, 기자님 공연 보셨구나. 원래 다른 배우들은 객석 쪽에서 등장할 때 마스크를 쓰는데, 저는 술을 마시는 게 콘셉트라 술병에 투명 가리개를 붙여서 입을 가리고 등장해요.
술 마시는 게 규형 씨만의 콘셉트였군요.
맞아요. 알코홀릭은 아예 제 헤드윅만의 특징이에요. 어떻게 보면 헤드윅에 대한 저의 해석인 거죠.
모든 헤드윅이 그 정도로 다르군요.
정말 심한 경우에는 공연 시간이 2시간 가까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화이트 티셔츠, 레더 팬츠, 블랙 워커 모두 알렉산더 맥퀸. 실버 브레이슬릿, 레더 브레이슬릿, 블랙 원석 링, 실버 링 모두 에디터 소장품.

화이트 티셔츠, 레더 팬츠, 블랙 워커 모두 알렉산더 맥퀸. 실버 브레이슬릿, 레더 브레이슬릿, 블랙 원석 링, 실버 링 모두 에디터 소장품.

그게 무슨 말이죠?
대략 앙코르를 제외하면 보통 한두 시간에서 2시간 10분 정도거든요. 그런데 예전에 승우형이 4시간 반을 한 적이 있어요. 인터미션도 없는 공연에 4시간 반이라니요. 아니, 본인은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있지만, 관객들은 못 가거든요.
으하하. 예전에 싸이 씨가 그렇게 관객을 볼모로 잡아두고 공연을 즐기셨다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
하하하. 맞아요. 그래서 승우 형 공연 보려면 기저귀를 차고 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죠.
저도 이번에 규형 씨 공연 보면서 느꼈어요. 체력이…와…이 공연은 일단 체력입니다.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그 방방 뛰어다니는 정도도 배우들마다 정말 달라요. 예를 들면 ‘앵그리 인치’라는 노래를 할 때 저는 정말 분노에 차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고함을 치잖아요. 그런데 그걸 차분한 방식으로 표현하시는 헤드윅도 있긴 하거든요. 특히 제가 표현하는 방식이 체력 소모가 좀 있더라고요. 무릎 연골 소모도 있고요.(웃음)
아이고, 게다가 술 취한 헤드윅이라 많이 넘어지잖아요. 슬랩스틱까지 하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도 술을 콘셉트로 잡은 게 저는 좋아요.
저는 이 공연 보면서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가 떠올랐습니다. 손열음 씨의 재능 중 하나가 음악을 외우는 거래요. 규형 씨도 그 어마어마한 대사 분량을 단 한 번도 어색한 순간 없이 다 외워서 내뱉더라고요.
다른 무대 위의 역할들은 등장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고, 등장을 해도 대사가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잖아요. 근데 헤드윅 얘는 2시간 내내 혼자 떠들잖아요. 대사가 없는 순간이 없잖아요. 전 이번이 두 번째 헤드윅이라 좀 낫긴 하지만, 처음 맡았을 때는 정말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았어요. 관객들이랑 중간에 호흡 좀 주고받으며 하하호호 깔깔거리다 어느 순간 ‘다음 대사 뭐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블랙아웃이 오면 온몸에 소름이….
어우, 너무 끔찍해요. 그만 얘기하세요. 제가 알고 있는 헤드윅 버전과 비교하면 애드리브가 꽤 많은 것 같더라고요.
아마 다 애드리브는 아닐 거고, 대부분은 버전 차이일 거예요. 이규형 버전의 헤드윅 대본이 따로 있거든요. 조승우 버전, 오만석 버전 등등 다 따로 있어요. 정확한 페이지는 모르겠지만, 분량이 엄청나요.
이번 헤드윅에서 요새 표현으로 하면 좀 ‘규며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관객들도 빵빵 터지더군요. 이규형만의 ‘끼’가 있어요.
더 할 수도 있어요. 원래 헤드윅은 중간중간 객석에 나가서 의자 위에 술 달린 스커트를 입고 올라가서 거의 랩댄스를 추듯이 끼를 부리는 그런 신들이 있죠. 관객들이 정말 좋아해요. 함성이 나오고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죠.
저 역시 존 캐머런 미첼(헤드윅의 원작자인 배우)의 연기로 본 기억도 있어요.
맞아요. 존 캐머런 미첼이 예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을 관객으로 앉혀 두고 헤드윅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죠.
 
블루 니트 점프슈트, 블랙 터틀넥, 네이비 스트라이프 팬츠, 블랙 로퍼 모두 프라다. 블랙 원석 실버 링 에디터 소장품.

블루 니트 점프슈트, 블랙 터틀넥, 네이비 스트라이프 팬츠, 블랙 로퍼 모두 프라다. 블랙 원석 실버 링 에디터 소장품.

그런 식으로 관객들과 놀아나는 노래 중에 가장 유명한 게 ‘슈거 대디’잖아요. 이번 공연에선 그걸 못 봐서 좀 아쉬웠어요.
맞아요. 그런 장면도 사라졌고, ‘윅 인 어 박스’(Wig in a box)에서 막판에 분위기를 확 바꾸며 객석을 휘젓고 다니는 장면도 없어졌죠.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헤드윅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해졌어요. 이 정도면 프로그램이 아니라 거의 플랫폼 아닌가요? 예전엔 배우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소극장에서 시작한 공연이잖아요.
네 맞아요. 이번엔 대극장에 올라갔잖아요. 예전엔 100석 미만의 소극장에서 시작한 공연이 1000석이 넘는 충무아트홀 대극장 규모로 커진 거죠.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느낌이에요.
‘헤드윅’이라는 공연이 갖는 네임 밸류에 저도 놀랐어요. 다른 뮤지컬은 일반인 친구들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이건 ‘헤드윅이야’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해결되더라고요. 이게 무슨 작품인지, 어느 정도의 위상인지 뮤지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한테 말해도 다 알아들어요.
맞아요. 저도 이번에 어떤 작품으로 이규형 인터뷰를 하냐고 누가 묻기에 ‘이번에 이규형이 헤드윅이야’라고 한마디를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거대한 브랜드이자 하나의 기업이고, 그래서 무대 위에서 만들어내는 그 스펙터클도 예전이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죠.
그쵸. 지금은 뭐 〈분노의 질주〉 세트장이라면서 차를 몇 미터 높이로 쌓아놓았으니까요. 영상도 화려하게 쓰고요.
전 세계적으로는 지난해가 헤드윅 탄생 20주년이었죠. 한국 헤드윅으로 따지면 올해가 16주년이고요. 20주년 때는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와, 세종문화회관. 말만 들어도 참 거대하게 느껴지네요. 3000석인가, 거기가? 3000석짜리 극장에서 석 달을 하면…대체 그게 몇 명인가요?
공연이 커지니까 마치 공연예술의 모든 걸 모아둔 놀이동산에 온 기분이 들었어요.
참 감사한 말씀이네요. 아마 제작진들도 극장 사이즈가 커지면서는 영상과 음향 분야에서 테크니컬한 요소들을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걸로 알아요.
 
 
*이규형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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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참
    STYLIST 임하영
    HAIR 재황
    MAKEUP 누리
    ASSISTANT 윤승현/ 이하민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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