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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이 선배들의 무대를 보지 않은 이유

이규형은 이번엔 형들의 헤드윅을 보지 않았다. 그가 완성한 헤드윅은 오로지 이규형만의 헤드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BY박세회2021.09.27
 
 

그는 다르다 

 
조승우, 오만석은 헤드윅 세계의 레전드잖아요.
그쵸. 그야말로 살아 있는 레전드죠. 그 형들이 없었으면 헤드윅이 이렇게 커질 수 없었을 거예요.
선배들 무대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지난 시즌에 처음 헤드윅으로 투입됐을 때는 너무 급박해서 다른 헤드윅들의 공연을 많이 봤어요. 연습 시간도 짧은데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을 빨리 이해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안 봤어요
 
블랙 슬리브리스 톱 디올 맨. 실버 네크리스 에디터 소장품.

블랙 슬리브리스 톱 디올 맨. 실버 네크리스 에디터 소장품.

어랏? 정말요?
승우 형, 만석 형이 헤드윅의 거대한 산맥 같은 느낌이거든요. 이미 나는 나의 헤드윅을 완성했는데, 무대에 올린 후에 저 선배들의 공연을 본다면? 아…내가 저 선배들의 공연을 봤다가는 나만의 헤드윅을 만들지 못하고 흔들리겠다 싶었어요. 제 헤드윅과는 워낙 다를 게 뻔한 데다 또 워낙 좋을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보자고 생각했어요. 이번 시즌엔 나만의 작품, 나만의 흐름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서 형들 공연을 보자고 다짐을 했죠.
의미심장하네요. 모든 예술이 모사의 단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되고 나서야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받지요.
모두가 똑같은 헤드윅을 하면 그건 헤드윅이 아닐 거예요.
이쯤 되면 헤드윅이 규형 씨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헤드윅을 안 한 이규형이라는 아티스트와, 헤드윅을 해본 이규형이라는 아티스트는 그 색이 완전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뮤지컬을 소극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꽤 오랜 기간 해왔어요. 그래서 영화, 드라마를 하면서도 뮤지컬을 병행하고 있는 거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헤드윅이라는 작품은 완전 다른 무대 경험이에요. ‘내가 가수가 돼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면 이런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해요.
보통의 배우는 정말 느끼기 힘든 기분이죠.
저도 제가 해온 뮤지컬 작품들의 넘버들을 모아서 콘서트 형식으로 꾸며본 적이 있거든요. 헤드윅은 그런 것과 달라요. 정말 차원이 다른 경험이에요.
전 보면서 약간 굿판 같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영적인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을 한 날은 멍하기도 하고 뭔가 그냥 허탈한 느낌도 들고 그래요.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면 위스키 한 잔이 당겨요. 독한 술이요.
그런데 이제 슬슬 헤드윅 아카이브를 누군가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원작 대사가 있을 테고 16년 동안 헤드윅을 담당한 배우들마다 대본이 다 다를 텐데 그것만 모아서 아카이빙 해도 새로운 콘텐츠가 되겠어요.
가장 심플한 원작 대본이 있고, 누군가의 애드리브가 작품과 정말 잘 맞아서 고착화되어 아예 대사로 편입된 것들이 있고, 그 대본에서 시작해 지금 저처럼 각자 배우들이 완성한 저만의 대본이 있죠.
그러니까요. 그런 과정들을 누군가가 영상 다큐멘터리로 찍어두면, 헤드윅의 핸들인 ‘헤드헤즈’(hed-heads)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글쎄요. 헤드윅의 시작부터 브로드웨이 진출 과정까지를 다룬 다큐는 있더라고요. 존 캐머런 미첼이 음악감독인 스티븐 트래스크랑 비행기에서 만나 헤드윅이라는 인물을 구상해내는 순간을 기록했죠.
한국의 헤드윅은 전혀 다른 스토리예요. 빨리 하나 하세요.
제가요? 그런 거라면, 쇼노트(〈헤드윅〉의 한국 제작사)가 마음을 먹어야겠죠.
공연 끝나면 꼭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저 홍콩에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홍콩에 다녀온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던데, 거길 못 가봤어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 미식의 천국이죠.
제가 또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헤드윅 때문에 몸매 관리도 하고 있고, 식단도 열심히 지키고 있지만, 원래 그냥 막 먹는 편이거든요. 라멘을 너무 좋아해서 라멘을 먹으러 일본에 간 적도 있어요. 한때 일이 정말 너무 많았던 적이 있어요. 뭔가 리프레시를 해야 하는데, 스케줄이 너무 몰려 있어 여유가 전혀 없다가 딱 이틀이 빈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냥 바로 그 다음 날 첫 비행기 타고 도쿄로 향했죠. 공항에 내려 긴자로 가니 10시쯤 됐더라고요. 제가 가는 곳이 뭐 아주 특별한 가게는 아니고 아부라소바를 파는 라멘 체인점인데, 11시에 열어요. 1시간쯤 스타벅스에서 기다렸다가 오픈 시간에 그 가게에서 아부라소바를 먹은 기억이 나네요. 고추기름 싹 둘러서 쓱쓱 비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나 봐요.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죠. 이탈리아 베니스 인근에 있는 작은 시 우디네에서 열리는 우디네 극동영화제라는 게 있어요. 영화 〈증인〉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우디네에 가려면 베니스 공항에서 내려서 한두 시간 가야 하거든요. 거기까지 간 김에 베니스 관광을 하려고 들렀다가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님을 만나서 같이 베니스 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이번에 작업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작품에 출연하게 됐어요. 감독님께서 “특별출연 한번 해줘”라고 하셔서 갔는데, 분량은 특별출연 분량이 아니긴 하더라고요.(웃음)
 
레오퍼드 스팽글 셔츠, 데님 팬츠 모두 김서룡. 골드 체인 네크리스 에디터 소장품.

레오퍼드 스팽글 셔츠, 데님 팬츠 모두 김서룡. 골드 체인 네크리스 에디터 소장품.

특별출연이 종종 그렇죠. 그런 인연이 많아서 필모에 이렇게 특별출연이 많군요.
올해 특히 많았죠. 신원호 감독님과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때 연을 맺은 ‘슬기로운’ 패밀리니까 출연했어요. 이우정 작가님, 신원호 감독님이 ‘출동 한번 하자’ 그러면 무슨 역인지 묻지도 않아요. ‘언제 어디로 갈까요’ 하고 가는 거죠.
〈핸섬가이즈〉, 〈서울대작전〉은 주연이잖아요.
아! 〈핸섬가이즈〉도 특별출연.(웃음) 〈서울대작전〉은 단독 주연이 아니라 유아인, 고경표, 박주현, 옹성웅, 저 이렇게 다섯 명이 공동 주연인 셈이죠. 한국판 〈분노의 질주〉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올여름에 이 많은 특별출연과 주연작 제작이 다 몰렸을 텐데, 스케줄 소화가 가능하던가요?
정말 아이돌 스케줄이 이럴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또 저한테 감사한 분들이니까, 이동하면서 잤죠. 〈비밀의 숲〉 감독님도 차기작에 한번 불러주셨어요. 안길호 감독님이 이번에 〈해피니스〉라는 드라마 연출을 맡으셨는데, 콜이 왔어요. 콜이 왔으면 가야죠. 그런데 이게 가서 봤더니 초반에 은근히 분량이 많네? 당시에 영화 촬영하며 여수와 강릉을 왔다 갔다 하는 중에 또 다른 특별출연을 하러 경주에 다녀오기도 했죠. 정말 몸이 한 개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느낌이 왔겠어요.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본인의 배우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느낌이요.
사실 메인 스케줄은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한 작품, 공연 쪽에서 한 작품을 동시 진행하는 게 맥시멈이에요. 다른 건 다 특별출연이라 가능했던 거죠. 저야 뭐 찾아주시니 감사하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직장인이 주말처럼 이틀 정도 푹 쉬어본 게 언제예요? 정말 아무것도 없이, 〈나 혼자 산다〉 촬영 뭐 이런 것도 말고요.
(스케줄을 살피며) 지난 4월? 지난 4월에 제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서 잠깐 입원했었거든요.
아니, 입원 말고는 없나요?(웃음)
없는 거 같은데요? (구글 캘린더를 아주 빠르게 넘기며) 아! 작년 7월에 베스파 타고 양양 갔다 온 게 있네요.
뭔가 그 스케줄러가 이규형이란 배우의 현재 이름값을 대신 말해주는군요.
아유, 자꾸 부끄럽게….
 
*이규형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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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이규형 만의 헤드윅'을 만들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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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참
  • STYLIST 임하영
  • HAIR 재황
  • MAKEUP 누리
  • ASSISTANT 윤승현/ 이하민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