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맛을 상상하기 힘들 파스타 4종

외양이나 재료 설명만으로는 맛을 상상하기 힘든 파스타들. 그 생경함 뒤에 숨은 셰프의 설계 의도.

BY오성윤2021.09.29
 
 

오징어 먹물 키타라+소라+콘 퓌레 

이 파스타를 처음 주문하게 되는 동기는 누구나 다 비슷할 테다. ‘옥수수 퓌레에 먹물 면, 소라의 조합이라니 대체 무슨 맛이 날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디핀옥수의 메뉴판에 쓰인 해당 파스타의 이름은 그중 어느 요소도 품고 있지 않다. ‘홍합 키타라 파스타.’ 혼란을 야기하지 않도록 만든 이름이라고 했다. 손님들이 상상할 수 있는 맛 위주로 심플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이렇게나 독특하지만 콘셉트로 승부를 보는 메뉴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 모든 요소 중 어느 하나가 주인공이라고 말하기 어렵거든요. 홍합 주(jus)가 내는 바다 내음, 콘 퓌레의 짭조름하고 달큰한 맛, 오징어 먹물 키타라 면, 소라, 샬롯 피클… 제가 양식을 할 때 꼭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이 이런 거예요. 첫맛, 중간 맛, 끝 향의 레이어가 있어야 하고, 한 입에도 두세 가지 질감이 있어야 해요. 혀가 느끼는 부분과 코가 느끼는 부분이 따로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정갈하고 깔끔해야 하죠.” 최상현 셰프의 설명에는 그의 이력을 더듬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는 프렌치 요리 전공으로 미국, 독일, 호주, 태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다. 그야말로 대륙을 넘나들며 요리를 해온 셈. 옥수수와 해산물의 궁합을 알게 된 것도 태국에서였다고 했다. 다만 파스타의 개발 과정을 보면 셰프의 이력보다는 그의 성격, 혹은 지향점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Mussel Chitarra Pasta by 디핀옥수 @deepin_oksu
모던 프렌치를 선보이는 디핀 본점에서 ‘파스타 위크’ 이벤트를 했고, 다 같은 면을 쓰면 재미없으니까 변주를 하다 먹물 키타라 면을 만들었으며, 비스크 소스는 식상해서 홍합 주를 사용하게 됐고, 프렌치 베이스의 요소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퓌레를 가미했는데, 완두콩 퓌레를 넣다가 제철인 옥수수를 한번 써본 것이다. “파스타는 어떻게 보면 심플하고,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오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이탈리아 요리만 10년 넘게 하신 분들보다 제가 클래식한 파스타를 잘할 순 없겠죠. 그래서 저는 새로운 조합과 신선한 맛을 시도하는 거예요. 그게 더 낮은 레벨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요리가 바로 그런 거거든요. 디핀에만 존재하는 음식,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
 
 

 

파프리카 페투치네+단새우+비스크 소스

한국 사람이 단새우라는 식재료를 접하는 경로는 십중팔구 일식집일 테다. 조지현 셰프도 마찬가지, 신메뉴인 ‘감베로니 타르타르’의 영감을 일식집에서 얻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맛본 아마에비 특유의 ‘달달한’ 맛에 감명을 받아 그걸로 새우 파스타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 요리와 일식은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특히 ‘식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요리’라는 기본 접근법이 같기 때문에 이탤리언에 프렌치나 한식을 접목할 때보다 훨씬 용이한 부분이 있죠.” 물론 그의 설명은 큰 흐름 차원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단새우도 양식으로 옮기기 쉬운 식재료가 아니다. 단맛이 강한 데다 익히면 금방 퍼석해지고, 작고 부드러워서 오버쿡 되기도 쉬우니까. 조지현 셰프는 통발로 잡은 단새우를 타르타르 형태로 만들어 파스타 위에 얹기로 했다. “면도 차갑게 해서 콜드파스타로 만들었다면 좀 더 쉬웠겠죠.” 그 역시 사람들이 차가운 부재료와 따뜻한 면이 섞인 메뉴를 어색해할 수 있다는 걸 안다고 했다. 다만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최근 손님들의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피치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고. 그는 단새우의 머리와 껍질, 내장으로 낸 비스크를 소스로 사용해 면이 타르타르와 어우러지도록 했고, 동시에 파프리카를 넣고 달걀노른자 함량을 높인 고소한 페투치네 생면으로 비린 맛이 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다. 조리에 가미된 브랜디와 화이트 와인, 맨 위에 올라간 레몬 폼 역시 비스크 특유의 감칠맛과 향은 증폭시키고 비린 맛은 잡아주는 요소다.
 
Gamberoni Tartare by 피치 @pici_seoul 
“사실 비스크는 누구나 좋아할 맛의 소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산물, 특히 갑각류를 즐기는 부류가 아니면 싫어할 확률이 높죠. 그래서 저는 이걸 최대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한 거예요. 사실 요즘 국내에서 파스타의 입지가 많이 달라지고 있잖아요. 파인다이닝 콘셉트의 파스타바도 여럿 생기고, 사람들이 파스타에 기대하는 바도 많이 달라진 것 같고요. 피치도 그 흐름 안에서 파스타를 하려는 곳이죠. 다만 좀 천천히 가려고 해요. ‘이 정도는 짜야 돼’, ‘이게 맛있는 맛이야’ 만들어놓고 강요하는 대신에요.”
 
 

 

타야린+금태찜+사프란 우마미 소스

금태 파스타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를 물었을 때, 이태우 셰프는 메신저로 답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카톡에 도착한 건 엑셀 파일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쉰 개가 넘는 셀에 재료 이름이 하나하나 들어차 있었다. 소스에 들어가는 재료만 30여 가지. 그러니 그걸 본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파스타 레시피라고?’ 프렌치 퀴진이라면 모를까. “파스타는 원래 팬 한 개로 조리하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가정식이잖아요. 접근성이 뛰어나고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계도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섬세한 조리가 필요한 재료를 곁들일 수 없으니까요. 생선 파스타만 해도 살을 으깬 고등어나 삼치, 정어리 같은 걸 많이 사용하고요. 하지만 에비던스는 모든 재료를 각자 섬세하게 조리해서 조합하는 식으로 파스타를 만들죠. 이 편안한 음식, 파스타를 신비롭고, 새롭고, 우아한 다이닝 장르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금태 파스타는 이런 섬세한 구성을 갖고 있다. 사프란과 생선뼈를 졸여 만든 소스에 우마미 스톡을 섞고, 달걀노른자로만 만든 타야린 생면에 곁들인다. 메인이 되는 맛은 쪄낸 금태. 슴슴하지만 기름지고 캐릭터가 확실해 이태우 셰프가 특히 좋아하는 생선이다. 이렇게 따로 조리한 소스, 면, 금태를 하나로 묶어주는 건 아래에 숨겨진 마요네즈다. 감자와 토마토로 만든 마요네즈가 묵직한 베이스가 되어주는 것이다. 금태 위에 뿌리는 파래김 파우더는 바다 향을 선사하고, 가니시로 얹은 베이비 고수 잎은 간간히 색다른 재미를 준다.
 
Tajarin with Steamed Seaperch and Saffron Sauce by 에비던스 @evidence_seoul  
“영감의 출발점은 부야베스(프랑스식 생선 스튜)였어요. 훌륭한 음식을 먹으면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죠. ‘아, 이건 우리 식으로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하고요. 절반 정도는 아예 제로 베이스에서 나오기도 해요. 어떤 때는 그냥 특정 사물이나 빈 그릇을 보다가도 새로운 파스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거든요.” 그는 에비던스를 찾는 사람들이 역으로, 앞에 놓인 조합을 해석하면서 호기심과 재미까지 충족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에비던스는 파스타로만 구성된 ‘오마카세’ 코스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 아무렴 재미를 기대하고 간다면 부족할 일은 없을 테다.
 
 

 

바롤로 트러플 타야린+레지아노 치즈+블랙 트러플

“저희는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남들이 안 하는 걸 하죠.” 도웅희 셰프가 설명하는 첸트로의 정체성에는 역설적인 구석이 있다. 요는 지금껏 존재치 않았던 무언가를 내놓겠다는 욕심은 없고, 다만 그저 ‘관심’이 많다는 것. 그 관심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뿐이다. 첸트로는 좋은 식재료, 제철 식재료를 공수해 활용하느라 2주가 멀다 하고 메뉴판이 바뀌며, 파스타 한 접시에 10만원 가까운 가격을 매겨야 타산이 맞아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재료라면 사용하고 본다. (“안 팔리면 그냥 제가 다 먹어요.”) 바롤로 와인과 블랙 트러플을 넣어 만든 독특한 타야린도 첸트로에서 발견해 독점 수입해온 면이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생산된 면이에요. 거기가 와인이랑 트러플 산지로 유명한 지역이잖아요. 사실 처음 테스트했을 때는 바로 포기했어요. 비싼 데다 맛의 개성은 너무 강하고 면은 새빨갛고… 안 될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우연히 면 맛을 본 단골이 메뉴로 고정해달라고 졸랐고, 결국 ‘타야린’은 그때부터 2년여 간 첸트로의 메뉴로 올랐다. 끝없는 레시피 수정을 거치고 몇 번이나 탈락하면서. 호주의 윈터 트러플을 사용할 수 있는 여름 시즌이 끝나고 현재는 또 빠진 상태인데, 아쉽게도 더는 선보이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그럼에도 소개하는 이유는 대신 이제 해당 면을 시중에서 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반응이 나빠서는 아니다. 재고의 거의 전부를 도웅희 셰프가 먹던 시기도 있었지만, 또 어떤 때는 하루 10접시씩 나가기도 했으니까. 결별의 이유는 식재료 맛을 살리는 ‘셰프로서의 기준치’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Tajarin by 첸트로 @centro_307
“사실 삶는 과정에서 와인의 맛과 향, 트러플 향의 40~50%는 날아간다고 봐요. 그냥 안 익힌 면을 씹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는 것 같거든요.” 무수한 수정을 거친 첸트로 타야린의 최종 버전 레시피가 삶은 면을 버터와 레지아노 치즈로 조리한 후 트러플을 갈아 올린 형태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렇듯 간단한 조리가 이 면을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다만 오래 볶은 양파로만 만든 신메뉴 파스타 치폴라를 설명할 때,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제가 이것저것 정말 많이 해보다가, 요즘은 자꾸 다시 심플한 걸 추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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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재현
  • PHOTOGRAPHER 황성재/박다빈(플레이팅 컷)
  • FOOD STYLIST 김보선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