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 〈소설문예〉 편집장, 민음사 편집장, 홍성사 대표, 〈중앙일보〉 아트디렉터를 거치며 국내 출판계의 다방면에 족적을 남겼다. 현재 정디자인과 정병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정병규가 출판계에 발을 들인 건 1975년이다. 정부의 긴급조치로 그가 부득이 학교를 떠나야 했던 해. 〈고대신문〉 편집장이자 ‘와리스께'(당시 표현으로 ‘레이아웃’)를 잘하기로 소문이 나 이전부터 교내외 온갖 출판물을 만들어온 그는 곧 〈소설문예〉의 편집장 자리를 제의받았다. 문학도를 꿈꾸던 청년이 시대 상황에 떠밀려 얼결에 출판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대목을 더듬을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식으로 결정이 되는 거죠.” 하지만 또 그의 다른 이야기들 속에는 마치 그보다 더 옛날부터 이런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만 같은, ‘운명’의 뉘앙스가 배어 있기도 했다. “만드는 것의 재미는 중학생 때부터 느꼈던 것 같아요. 교지 만들 때는 표지나 안에 들어가는 컷 생각하느라고 뭐, 잠이 안 왔으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네.” 그와 책 사이의 운명에서도 짚을 지점이 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배우기 전에 책의 세계를 통해서 세상과 먼저 만났던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건 그가 여담처럼 꺼내놓은 자신의 조카 이야기와 잘 붙는다. 조카 하나가 최근에 하던 공부를 멈추고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했고, 그는 이야기 끝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그걸 이해 하겠어요. 뭔가를 좋아하면 곧 직접 만들어보고 싶게 되는구나, 하고.”
여타 분야에 비해 한국의 북디자인 분야에서는 ‘누가 1세대인가’ 하는 사안에 대해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다. 민음사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자신의 출판사인 홍성사까지 차려 병행하던 정병규는 선언하듯 ‘북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다. 그때 주위 반응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게 뭔데?” 1982년, 결국 그는 만사 제쳐두고 파리 에콜 에스티엔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얼마나 제쳐뒀는지, 유학 기간 동안 가족이 먹고살 돈을 깜빡하고 챙기지 않아 민음사 박맹호 회장에게 돈을 꾸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1984년 정병규출판디자인(통칭 정디자인)을 차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말이 붙는 회사는 전부 광고 회사였고, 국내에서 시각디자인 분야의 회사는 아마도 정디자인이 최초였을 거라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아요?” 그는 자신이 자리를 잡도록 도왔던 선배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대뜸 질문을 던졌다. “돈을 달라고 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당시 사람들 생각에는 그냥 뭐 잘라서 붙이고 적당히 해서 표지 자리에 뭐 하나 넣으면 되는 거니까. 디자인 피(design fee)를 준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지난 50여 년간 정병규가 디자인한 책은 약 3000권. 알려지기로, 아마도 그중 3분의 1 정도는 비용을 받지 않고 한 일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럼 그는 보수도 없는 일을 대체 왜 했던 걸까? 그것도 그렇게 열심히? “어떻게 안 하겠어요. 그걸 하지 않으면 우리 책의 문화적 구색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걸 빤히 아는데.” 그가 담담히 답했다. 최근 출간된 〈정병규 사진 책〉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형태와 구조의 책을 만들기 위해 작업비를 포기하는 일도 잦았다”고도 전해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가 북디자인 분야의 선구자이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단순히 해외의 스타일을 국내에 도입하는 대신 자신만의 뚜렷한 디자인 철학을 개진했고, 그의 책은 국내 출판계의 역사에서 꾸준히 신선한 충격과 질문이 되어왔다. 역시 〈정병규 사진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초입에 소개된 〈한국의 굿〉(1984~1993) 시리즈에 정병규가 ‘디자이너가 책에 실리는 이미지를 크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 김수남 사진가와 다투었다는 일화가 나오는데, 후반부의 김수남 작가 사진집 〈아시아의 하늘과 땅〉(1995)에서는 촬영 사진을 수평으로 절반 가까이 잘라내자는 정병규의 말에 김수남 사진가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알아서 해. 그게 좋겠네.” 정병규의 생각은 이렇다. 저자라고 해서 그 책이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까지 다 아는 건 아니다. 책의 주인은 저자이기도 하지만 편집자, 북디자이너, 출판사 사장, 독자이기도 하다. 정작 사무실에서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가벼운 비유로 웃어넘겼지만 말이다. “논에서 쌀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그게 어떻게 요리되어야 하는지도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도 지금껏 살아오며 너무 많이 했던 이야기인 탓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의 생각을 오해할 여지가 있다. 디자이너가 저자를 제치고 마음껏 자신의 창작 세계를 펼쳐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로. 하지만 그렇게 해서 김수남 사진가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운구, 구본창 같은 역시나 걸출한 사진가들을 비롯해 건축가 김중업, 예술가 백남준, 영화감독 임권택 같은 문화예술계 거장들의 신뢰도. 오히려 그는 ‘감각’ ‘아이디어’ 같은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북디자이너다. 그가 든 ‘쌀의 비유’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쌀로 밥도 만들고, 떡도 만들고, 술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외의 먹거리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래야 하는 맥락과 쌀이라는 식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감각이나 반짝하는 아이디어만으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북디자인이라는 건 아이디어의 신선함과 높이를 재는 게 아니에요. 내용이 있으니까. 책을 디자인하는 건 그 내용에 맞는 ‘격을 만드는’ 일이에요. 제가 디자인계에 들어오면서 만든 슬로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랬죠. ‘From Decoration to Communication’. 장식에서 소통으로, 나아가 관계로. 그렇잖아요. 광고 디자인은 수명이 짧지만, 책은 그걸 만든 나보다 오래 살아요. 좋은 디자인, 좋은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가 미처 생각하지 않았고 어쩌면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를 삼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거죠.”

정병규의 북디자인 세계를 다룬 첫 서적 〈정병규 사진 책〉.

〈정병규 사진 책〉은 지금껏 정병규가 디자인한 3000여 권의 책 중 사진을 위주로 한 책 31권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지난 50여 년간 그가 한국 출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사전 취재 때 〈보스토크〉 발행인 김현호 대표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있다. 본인이 사진 잡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이들이 우려를 표하거나 반대를 했다고. 하지만 단 한 사람, 정병규 디자이너만은 격려와 응원을 했었다고. 결국 정병규 디자이너는 〈보스토크〉 의 편집인으로 참여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김현호 대표는 이번 책 〈정병규 북 디자인〉에 정병규 디자이너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실었는데, 제목은 다음과 같다.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적절한 환기였다. 이 책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점은, 이것이 국내 1세대 북디자이너의 아카이브, 출판 디자인의 역사라는 ‘유산’이기도 하지만, 현업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북디자이너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벌써 50년 가까이 책을 만들고 있지만 정병규 디자이너는 여전히 배운다. 자신의 디자인 언어가 언제 정립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하고(“시대가 바뀌잖아요. 책은 계속 죽고 끊임없이 새로운 탄생을 하니까 나도 그걸 끊임없이 해야죠.”), 책의 위기를 묻는 질문에는 독립출판물 페어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느낀 희망으로 답한다(“책의 내용보다 형식과 형태에 빠져서 책의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는 독립 편집자와 독립 디자이너들이 굉장히 많아요. 깜짝 놀랄 정도로.”). 국내 출판의 역사를 관통한 거장이면서 여전히 넘치는 호기심을 품고 있는 이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예정한 시간을 2시간이나 넘겼다. 한낮에 자리에 앉았으나 어느덧 창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고, 사무실 중앙 테이블에는 다음 손님이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산더미처럼 남은 질문들을 제쳐두고 끝맺음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다음 행보로 기약하고 계신 것이 있을까요?” 그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게 다 되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한글문자학’을 정립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이런 화두 하나만 나누어 가집시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매뉴얼’을 가진 한글의 특수성에 대해서, 그것이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정리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말 위에 강조 표시의 구두점을 찍듯 몇몇 대목에서는 움켜쥔 손으로 가슴께를 두드리면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는 뜻이다. →
한일교류이천년
한일 관계 호전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 선물한 책으로, 앞표지와 뒤표지에 양국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나란히 넣는 등 파격적 구성으로 메시지를 담았다. 1984년 출간.

흐르는 섬
정병규가 기획한 ‘비주얼 메시지’ 시리즈의 첫 권으로, 사진식자 기술이 도입됐던 당시 사진과 글이 만나 이루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85년 출간.

경주남산: 신라정토의 불상
사진가 강운구, 열화당 발행인 이기웅, 정병규까지 함께 여러 차례 현장을 답사하며 촬영했고, 정병규는 현장의 경험이 디자인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1986년 출간.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쓴 원고와 스틸컷을 받은 정병규는 책이 감독의 영화적인 전모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세운상가에서 찾은 테이프들을 일일이 캡처하고 보정해 작업했다. 2007년 출간.

누드
책에 실린 이미지는 이창남이 하와이, 애리조나 등지에서 촬영해온 원본 사진을 절반 이상 크롭한 것으로, 정병규의 제안에 이창남 사진가는 얼마간 숙고한 후 받아들였다고 한다. 1987년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