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국내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편집자, 출판사 사장, 신문 아트디렉터까지 했던 이유

한국 북디자인의 역사, 책의 역사, 출판의 역사를 만들어온 남자. 북디자이너 정병규의 책에 관한 책을 들고 그를 만났다.

BY오성윤2021.10.31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 〈소설문예〉 편집장, 민음사 편집장, 홍성사 대표, 〈중앙일보〉 아트디렉터를 거치며 국내 출판계의 다방면에 족적을 남겼다. 현재 정디자인과 정병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 〈소설문예〉 편집장, 민음사 편집장, 홍성사 대표, 〈중앙일보〉 아트디렉터를 거치며 국내 출판계의 다방면에 족적을 남겼다. 현재 정디자인과 정병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마포구 망원동의 정디자인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정병규 디자이너가 처음 던진 질문은 이랬다.
“잡지 일은 재미있어요?”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담배 피워요?”가 첫 질문이었고, 잡지 일의 재미에 대한 질문은 그 후 좁은 골목길에서 담배를 태우며 나온 것이었다. 초면에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기가 멋쩍어 그저 재미있다고 답했더니, 그는 곧 깊고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잡지라는 출판물의 특성과 〈에스콰이어〉의 판형 변화가 업계에 가져온 혁신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날의 출판계에 대해 그가 가진 문제의식에 대해서(축약하면 먼 주제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신기하게도 잘 연결되었다). 반면 에디터가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이랬다.
“제가 호칭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병규는 국내 1세대 북디자이너이자 정디자인의 대표다. 동시에 잡지 〈소설문예〉와 출판사 민음사의 편집장을 지낸 출판 편집자이기도 하고, 한때는 〈중앙일보〉의 아트디렉터이기도 했으며, 2011년부터 정병규학교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미소를 띠며 어떻게 부르고 싶냐고 되물었다. 사전 취재를 한 모두가 선생님이라 불렀으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당하지 않았을까? 그러자 그는 드물게 머뭇거리며, 오래전 본인이 했던 말을 인용했다. “이 말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네. 제가 50이 되어서 전시를 하게 됐을 때(〈정병규 북 디자인 1977~1996〉은 국내 첫 북디자인 전시로 기록되어 있다) 자꾸 한 마디 하라고 그래서 했어요. 그때 그랬죠. 책을 만드는 걸 우리가 편집이라 그러기도 하고 기획이라 그러기도 하고 제작이라 하기도 하는데, 그런 걸 두루 해보다가 어느 순간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러니까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먼저 배우고 ‘뭘 디자인할까’ 하는, 요즘 관점과는 좀 달랐던 거죠. 그 부분을 놓치면 정병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듣고 보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정병규가 출판계에 발을 들인 건 1975년이다. 정부의 긴급조치로 그가 부득이 학교를 떠나야 했던 해. 〈고대신문〉 편집장이자 ‘와리스께'(당시 표현으로 ‘레이아웃’)를 잘하기로 소문이 나 이전부터 교내외 온갖 출판물을 만들어온 그는 곧 〈소설문예〉의 편집장 자리를 제의받았다. 문학도를 꿈꾸던 청년이 시대 상황에 떠밀려 얼결에 출판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대목을 더듬을 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식으로 결정이 되는 거죠.”
하지만 또 그의 다른 이야기들 속에는 마치 그보다 더 옛날부터 이런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만 같은, ‘운명’의 뉘앙스가 배어 있기도 했다. “만드는 것의 재미는 중학생 때부터 느꼈던 것 같아요. 교지 만들 때는 표지나 안에 들어가는 컷 생각하느라고 뭐, 잠이 안 왔으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네.” 그와 책 사이의 운명에서도 짚을 지점이 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배우기 전에 책의 세계를 통해서 세상과 먼저 만났던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건 그가 여담처럼 꺼내놓은 자신의 조카 이야기와 잘 붙는다. 조카 하나가 최근에 하던 공부를 멈추고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했고, 그는 이야기 끝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그걸 이해 하겠어요. 뭔가를 좋아하면 곧 직접 만들어보고 싶게 되는구나, 하고.”
 
여타 분야에 비해 한국의 북디자인 분야에서는 ‘누가 1세대인가’ 하는 사안에 대해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다. 민음사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자신의 출판사인 홍성사까지 차려 병행하던 정병규는 선언하듯 ‘북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다. 그때 주위 반응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그게 뭔데?” 1982년, 결국 그는 만사 제쳐두고 파리 에콜 에스티엔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얼마나 제쳐뒀는지, 유학 기간 동안 가족이 먹고살 돈을 깜빡하고 챙기지 않아 민음사 박맹호 회장에게 돈을 꾸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1984년 정병규출판디자인(통칭 정디자인)을 차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말이 붙는 회사는 전부 광고 회사였고, 국내에서 시각디자인 분야의 회사는 아마도 정디자인이 최초였을 거라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아요?”
그는 자신이 자리를 잡도록 도왔던 선배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대뜸 질문을 던졌다. “돈을 달라고 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당시 사람들 생각에는 그냥 뭐 잘라서 붙이고 적당히 해서 표지 자리에 뭐 하나 넣으면 되는 거니까. 디자인 피(design fee)를 준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지난 50여 년간 정병규가 디자인한 책은 약 3000권. 알려지기로, 아마도 그중 3분의 1 정도는 비용을 받지 않고 한 일이었을 거라고 한다. 그럼 그는 보수도 없는 일을 대체 왜 했던 걸까? 그것도 그렇게 열심히? “어떻게 안 하겠어요. 그걸 하지 않으면 우리 책의 문화적 구색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걸 빤히 아는데.” 그가 담담히 답했다. 최근 출간된 〈정병규 사진 책〉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형태와 구조의 책을 만들기 위해 작업비를 포기하는 일도 잦았다”고도 전해진다.
 
정병규의 북디자인 세계를 다룬 첫 서적 〈정병규 사진 책〉.

정병규의 북디자인 세계를 다룬 첫 서적 〈정병규 사진 책〉.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가 북디자인 분야의 선구자이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단순히 해외의 스타일을 국내에 도입하는 대신 자신만의 뚜렷한 디자인 철학을 개진했고, 그의 책은 국내 출판계의 역사에서 꾸준히 신선한 충격과 질문이 되어왔다. 역시 〈정병규 사진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초입에 소개된 〈한국의 굿〉(1984~1993) 시리즈에 정병규가 ‘디자이너가 책에 실리는 이미지를 크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 김수남 사진가와 다투었다는 일화가 나오는데, 후반부의 김수남 작가 사진집 〈아시아의 하늘과 땅〉(1995)에서는 촬영 사진을 수평으로 절반 가까이 잘라내자는 정병규의 말에 김수남 사진가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알아서 해. 그게 좋겠네.”
정병규의 생각은 이렇다. 저자라고 해서 그 책이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까지 다 아는 건 아니다. 책의 주인은 저자이기도 하지만 편집자, 북디자이너, 출판사 사장, 독자이기도 하다. 정작 사무실에서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가벼운 비유로 웃어넘겼지만 말이다. “논에서 쌀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그게 어떻게 요리되어야 하는지도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도 지금껏 살아오며 너무 많이 했던 이야기인 탓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의 생각을 오해할 여지가 있다. 디자이너가 저자를 제치고 마음껏 자신의 창작 세계를 펼쳐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로. 하지만 그렇게 해서 김수남 사진가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운구, 구본창 같은 역시나 걸출한 사진가들을 비롯해 건축가 김중업, 예술가 백남준, 영화감독 임권택 같은 문화예술계 거장들의 신뢰도. 오히려 그는 ‘감각’ ‘아이디어’ 같은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북디자이너다. 그가 든 ‘쌀의 비유’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쌀로 밥도 만들고, 떡도 만들고, 술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외의 먹거리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래야 하는 맥락과 쌀이라는 식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감각이나 반짝하는 아이디어만으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북디자인이라는 건 아이디어의 신선함과 높이를 재는 게 아니에요. 내용이 있으니까. 책을 디자인하는 건 그 내용에 맞는 ‘격을 만드는’ 일이에요. 제가 디자인계에 들어오면서 만든 슬로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랬죠. ‘From Decoration to Communication’. 장식에서 소통으로, 나아가 관계로. 그렇잖아요. 광고 디자인은 수명이 짧지만, 책은 그걸 만든 나보다 오래 살아요. 좋은 디자인, 좋은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가 미처 생각하지 않았고 어쩌면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를 삼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거죠.”
 
이런 태도 역시 〈정병규 사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의 책을 만들던 당시 그가 남긴 디자인 노트에서. 그는 늘 디자인을 하기에 앞서 한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이 무엇을 의도해야 하는지,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어떤 판형과 구성을 가져야 하며,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고, 자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도출했다. 일찍이 그가 주창했던 ‘페뎀’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다. 기획(planning), 편집(editing), 디자인(design), 마케팅(marketing)을 조합한 이 표현은 책을 만들기 위한 각 단계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출판 문화가 발달하며 각 부분이 전문적 영역으로서 분리되었지만, 오히려 그 탓에 좋은 책이 나오기 힘들어졌다는 문제의식을 품고 있기도 하다.


“편집자들이, 기자, 에디터들이 훈련을 통해 디자인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에도 분명히 암기과목적인 측면이 있거든요. 맞고 틀리는 문제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건축 책 어디에도 ‘무너지지 않게 지으라’는 말은 써 있지 않겠지만, 그건 이견의 여지가 없는 거죠. 반대로 디자이너가 인문학적 기본 소양이 없다,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도 모른다,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디자이너가 편집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디자인을 수행하는 을, ‘컴퓨터 운전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좋은 디자인을 할 수가 없죠.”
 
그는 자신이 설립한 정병규학교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고 했다. 애초에 그의 사무실을 찾은 건 최근 출간된 책 〈정병규 북 디자인〉 때문이었다. 전시 도록을 제외한, 북디자이너 정병규를 다룬 국내 첫 저서. 그의 막역한 후배이자 출판사 사월의눈 대표인 저술가 전가경, 디자이너 정재완은 정병규의 방대한 족적 안에서도 사진책에 주목하고자 했고(여기서 사진책은 사진집과 구분되는 표현으로, 사진이 중심이 된 모든 종류의 책을 아우른다), 결국 ‘활자와 이미지가 어떻게 만나 새로운 힘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 북디자인의 핵심이라 믿는 정병규 디자이너도 흔쾌히 응했다.
 
〈정병규 사진 책〉은 지금껏 정병규가 디자인한 3000여 권의 책 중 사진을 위주로 한 책 31권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지난 50여 년간 그가 한국 출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정병규 사진 책〉은 지금껏 정병규가 디자인한 3000여 권의 책 중 사진을 위주로 한 책 31권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지난 50여 년간 그가 한국 출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둘은 이 거장의 작업 중 31권의 사진책을 추리고, 그 면면이 잘 보이도록 촬영한 후 정병규의 술회를 입말 그대로 옮겼다. 정재완 디자이너가 각 책이 갖는 의의를 정리해 해제로 써 넣었고, 북디자이너 정병규에 대한 에세이,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했던 강좌의 강의록, 〈포토넷〉의 오래된 인터뷰까지 다방면의 자료를 찾아 부록으로 담았다. 〈정병규 북 디자인〉에 대한 질문은 인터뷰 끝 무렵에야 간신히 꺼내게 되었는데, (그의 이야기, 한 남자의 열망과 출판계 역사의 큰 줄기를 고스란히 품은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던 탓이었다고 변명하겠다) 그때부터 그의 말투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책이 마음에 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책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제 나름으로도 생각이 생겼죠. 없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워낙 시간이 걸리니까 잊고 있었는데, 한 1, 2년 지났나? 출력이 온 거예요. 그런데 뒷부분에 옛날 자료도 나오고, 내가 굉장히 당황했어요. ‘에? 이런 게 있었나?’ 이런 책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예요. 그런데 또 내용이 사실인지는 제가 봐줘야 하잖아요. 그 과정이 괴로웠던 거죠. 뭐랄까, 어떤 부분은 막 상처를 이렇게 다시 들추는 기분도 나고.”
 
그는 책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곱씹어 말했다. 정말 괴로웠다고. 그가 그 책에 정리된 자신의 역사 안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기억, 어떤 상처를 더듬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편집자, 북디자이너들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는 사실을 노트에 썼을 뿐. 그런데 또 놀랍게도, 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반대 측면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체 그런 텍스트를 어디서 찾아내고 만들었는지, 그 수사력이 놀라워” 하면서.


“제가 보니까 이게 저의 북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1980년대 한국 문화론이에요. 제가 이 책을 보고 그런 생각이 나서 1980년대에 대한 다른 책들을 좀 찾아봤어요. 전부 운동권 얘기, 민주화, 산업화, 올림픽 얘기밖에 없더라고요. 문화를 다뤄도 결과만 나와 있지 설명이 없어요. 그게 이제 앞으로 해야 할 일 같아.”
 
‘지금 나와야 할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어투는 온전히 예의 호흡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후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는데, 마치 연결된 이야기처럼 그 사이에는 잠깐의 쉼도 없었다. “두 편집자에게 굉장히 고마웠어요. 나한테 그걸 깨닫게 해줬으니. 1980년대는 한국 현대사의 실질적인 출발이자 혁명기였어.” 사전 취재 때 〈보스토크〉 발행인 김현호 대표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있다. 본인이 사진 잡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이들이 우려를 표하거나 반대를 했다고.
 
하지만 단 한 사람, 정병규 디자이너만은 격려와 응원을 했었다고. 결국 정병규 디자이너는 〈보스토크〉 의 편집인으로 참여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김현호 대표는 이번 책 〈정병규 북 디자인〉에 정병규 디자이너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실었는데, 제목은 다음과 같다.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적절한 환기였다. 이 책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점은, 이것이 국내 1세대 북디자이너의 아카이브, 출판 디자인의 역사라는 ‘유산’이기도 하지만, 현업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북디자이너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벌써 50년 가까이 책을 만들고 있지만 정병규 디자이너는 여전히 배운다. 자신의 디자인 언어가 언제 정립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하고(“시대가 바뀌잖아요. 책은 계속 죽고 끊임없이 새로운 탄생을 하니까 나도 그걸 끊임없이 해야죠.”), 책의 위기를 묻는 질문에는 독립출판물 페어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느낀 희망으로 답한다(“책의 내용보다 형식과 형태에 빠져서 책의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는 독립 편집자와 독립 디자이너들이 굉장히 많아요. 깜짝 놀랄 정도로.”).
 
국내 출판의 역사를 관통한 거장이면서 여전히 넘치는 호기심을 품고 있는 이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예정한 시간을 2시간이나 넘겼다. 한낮에 자리에 앉았으나 어느덧 창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고, 사무실 중앙 테이블에는 다음 손님이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산더미처럼 남은 질문들을 제쳐두고 끝맺음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다음 행보로 기약하고 계신 것이 있을까요?”
그는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게 다 되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한글문자학’을 정립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이런 화두 하나만 나누어 가집시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매뉴얼’을 가진 한글의 특수성에 대해서, 그것이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정리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말 위에 강조 표시의 구두점을 찍듯 몇몇 대목에서는 움켜쥔 손으로 가슴께를 두드리면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는 뜻이다.
 

 

한일교류이천년

한국과 일본 간 역사와 문화적 교류를 다룬 책.
한일 관계 호전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 선물한 책으로, 앞표지와 뒤표지에 양국 반가사유상의 이미지를 나란히 넣는 등 파격적 구성으로 메시지를 담았다. 1984년 출간.
 

흐르는 섬

소설가 유홍종의 글과 사진가 김수남의 사진을 어우른 실험적 형식의 책.
정병규가 기획한 ‘비주얼 메시지’ 시리즈의 첫 권으로, 사진식자 기술이 도입됐던 당시 사진과 글이 만나 이루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85년 출간.
 

경주남산: 신라정토의 불상

경주남산의 풍경과 고고미술사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
사진가 강운구, 열화당 발행인 이기웅, 정병규까지 함께 여러 차례 현장을 답사하며 촬영했고, 정병규는 현장의 경험이 디자인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1986년 출간.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

영화감독 임권택의 연출 세계를 다룬 책.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쓴 원고와 스틸컷을 받은 정병규는 책이 감독의 영화적인 전모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세운상가에서 찾은 테이프들을 일일이 캡처하고 보정해 작업했다. 2007년 출간.
 

누드

누드를 주제로 한 사진가 이창남의 사진집.
책에 실린 이미지는 이창남이 하와이, 애리조나 등지에서 촬영해온 원본 사진을 절반 이상 크롭한 것으로, 정병규의 제안에 이창남 사진가는 얼마간 숙고한 후 받아들였다고 한다. 1987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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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규원
  • PHOTO <정병규 사진 책> ⓒ 사월의 눈 / 정멜멜
  • ASSISTANT 송채연
  • DIGITAL DESIGNER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