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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성철이 매체, 장르, 캐릭터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이유

배우 김성철의 발걸음이 떨어질 때, 그의 얼굴에 표정이 번질 때, 그의 입이 열릴 때. 거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가 없다. 그 자신도.

프로필 by 오성윤 2022.02.24
 
도트 패턴 셔츠, 데님 팬츠, 로퍼, 롱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블랙 앤 화이트 펄 네크리스 포트레이트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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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실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데요.
아, 그랬나요?(웃음)
오늘 종일 뮤지컬 연습을 하다가 바로 와서 화보 촬영이랑 영상 인터뷰까지 끝냈잖아요. 이제 밤 10시가 넘었고. 성철 씨가 스태프들을 웃겨주는 것 같던데, 원래 기력이 넘치는 편이에요?
그렇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돋워주려고 하는 부분도 있어요. 저는 근무 환경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야 기본적으로 행복한 편이지만 누군가한테는 오늘이 아주 피곤한 날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저도 너무 피곤하면 가만히 있어요. 매니저 친구랑 다닐 때는 몇 시간 동안 말도 안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기본적으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라는 마인드가 있죠.
오랜만에 뮤지컬로 다시 돌아오게 됐는데, 어때요? 연습해보니까? (김성철은 4월 1일부터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데스노트>에 탐정 L 역할로 출연한다.)
음…저는 ‘돌아온다’는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데요.(웃음) ‘공연으로 돌아온다’는 기사도 나고 하는데, 사실 떠난 적이 없거든요. 저한테는 공연이든 드라마든 다 똑같은 작품이니까. 임하는 자세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도 드라마랑 뮤지컬은 워낙 현장 자체가 다르고, 성철 씨도 뮤지컬 작품 들어갈 때마다 그간 쉬었던 노래를 보완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잖아요.
완전 다르죠. 맞아요.
그렇게 오가면서 활동하는 배우가 많지 않은 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일 거고, 그래서 성철 씨에게 뮤지컬이 어떤 의미인지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음악이 주는 감동과 연기로 주는 감동은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뮤지컬은 연기로도 전달할 수 있고 노래로도 전달할 수 있는 장르잖아요. 거기에 필요한 기술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연기를 공부하고 싶어서 전공까지 했고 연기라는 기술, 연기라는 예술을 계속 익히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대 공연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힘든 건 맞아요. 다른 작품 하는 동안 노래를 오래 쉬었으니까 다시 트레이닝해야 하고, 그런데 또 성대가 상하지 않도록 많이 쉬게 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도 저는 둘 다 하고 싶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노래가 주는 감동이 다르기 때문에.
듣고 보니 그렇게 활동하는 게 힘든 이유 중에 짧은 적응 기간 동안 스스로를 100%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겠네요.
물론 저도 오랜만에 노래를 해야 하면 되게 두렵죠. 오늘도 연습하면서 ‘큰일 났다’ ‘이거 이렇게 가면 정말 큰일이다’(웃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워낙 노래 잘하는 선배님들과 함께 하니까 더 부담되는 것도 있고. 그런데 또 저는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연습하면 다 잘될 거라고. 다른 분들도 제가 해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맡겨주신 것일 테고요.
 
 메시 하프 슬리브 셔츠, 패턴 셔츠, 쇼츠, 니트 삭스 모두 디올 맨. 로퍼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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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는 측면은 어때요?
사실 제가 기존에 제시된 모델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보여드리는 게 처음이에요. 저는 연기에 대한 접근이, 대본을 보고 느낀 감정에 되게 충실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원작 캐릭터가 있으니까 제가 느끼는 것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느꼈을까’가 더 중요해지고, 그 감정을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접점을 찾아서 최대한 표현하는 게 목표예요. <데스노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느낄 수 있었던 L의 분위기를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싱크로가 맞을지도 계속 생각하고 있고요.
이번 <데스노트> 공연은 국내 최초의 논레플리카 버전(각본이나 연출 측면에서 원작과 일부 다르게 진행할 수 있는 버전)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오는 즐거움이나 어려움도 있을까요?
우선 지금까지 제가 한 작품 중에 기존에 했던 작품을 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요. 새롭게 만드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창작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제 공헌도가 있을 수 있으니까. 이번 <데스노트>도 대본이나 노래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논레플리카라서 창작 공연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저만의 L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모델이 존재하는 캐릭터, 전례가 존재하는 작품은 잘 하지 않았군요.
네. 모르겠어요. 뭔가 정해진 틀이 있으면 저는 그걸 부수고 싶나 봐요. 무의식적으로. 제가 그렇다는 걸 다들 아시는 건지 레플리카 공연은 저한테 제안을 많이 안 해주시는 부분도 있고요.(웃음)
화보 시안에도 써서 전달드렸는데, 기사에 미리 붙여본 가제가 ‘무궁무진 김성철’이었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렇게 봐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느 감독님이 저한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묻길래 제가 “백지 같은 배우가 꿈입니다” 그랬거든요. 그때 그 감독님이 이런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미지가 있는 것도 중요해요.” 백지 같은 배우도 이미지가 있어야 될 수 있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면 백지 같은지 어떤지 누가 알아주겠냐는 얘기였죠. 그래서 저도 한동안 ‘나도 이미지 구축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했고요. 그런데 또 지금은 그래요. ‘그래, 나는 백지가 더 나은 목표인 것 같아.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잘하고 싶고, 이 색깔 저 색깔 다 소화해보고 싶어.’ 물론 오늘 촬영 때 보셔서 알겠지만 저한테 어울리는 색깔은 따로 있거든요. 그래도 저는 빨간색도 입어보고 보라색도 입어보고 싶은 사람인 거예요. 그 와중에 무궁무진하다는 말씀을 해주시면 뭐, 너무 좋죠.
 
스카프 디테일 재킷 Y project by 지 스트리트 494 옴므 플러스. 실크 셔츠, 실크 팬츠 모두 김서룡.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 윌리엄케이파크. 로퍼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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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라는 표현이 와닿네요. 성철 씨는 매체나 장르, 배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을 해왔고 그러면서도 늘 기대 이상의 뭔가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김성철이라는 배우가 뭔가를 도드라지게 보여주려고 애쓴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개성 있는 연기나 기교 같은 것 없이, 늘 담백한 정공법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죠.
기교는… 제가 정말 싫어하는 단어이고 기피하는 대상이에요. 저는 기초, 기본을 되게 중시하거든요. 그래서 작품에서 특수한 직업을 맡을 때 좀 힘들기도 해요. 저는 뭘 배우든 기초부터 해야 하는데, 작품 준비 사정에 따라서 흉내를 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평소에 많은 걸 배워놓으려 하고,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최대한 기교를 안 부리는 선에서 하려고 하죠.
어떤 일을 맡든 대충은 못 하는 성격이라고 했죠. 그런데 또 그런 강박에 비하면 쉴 틈 없이 작품을 하는 것 같아요. 틈틈이 이런저런 제안도 수락하고.
이런 거예요. 대본을 받아서 처음 딱 보잖아요. 그러면 보통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감정으로 읽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제 캐릭터가 되고, 대사를 입으로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거기 적힌 대사를. 그러면 하는 거죠. 그런 작품은 지금껏 거의 다 했어요. 반면에 대사가 안 나오고 그냥 읽히는 대본은 다 떠나서 ‘내 것이 아닌가 보다’ 하고요.
‘내 것’인 작품. 그게 김성철의 작품 고르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런데 또 제 한계도 고려해야죠. 저는 백지가 되고 싶은 사람이지 백지는 아니니까요. 저라는 얼굴이 있고, 제가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연기에도 폭이 있잖아요. 스펙트럼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일곱 살짜리 아이를 연기하거나 할아버지를 연기할 수는 없는 거죠. 제가 또 굉장히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부담도 많이 느끼지만, 대사가 입에 맴돌고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판단이 들면 그냥 하는 편이에요.
이상하네요. 극단적인 예를 든 건데 왜 들으면서 성철 씨가 일곱 살짜리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죠? 가능하지 않을까요, 할아버지는 몰라도 일곱 살짜리는?
(웃음) 아이, 팔자주름이 너무 심해서 안 돼요. 누가 CG로 없애주면 할게요.
작품에서 배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물론 주연과 조연이 동시에 들어왔는데 둘 다 캐릭터가 좋다면 주연을 택하겠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고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많으니까. 하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캐릭터가 확실하고 작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저는 수락해요. 캐릭터가 매력 있다면 역할의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저한테.
피하는 캐릭터도 있어요?
있어요. 저는 비호감인 캐릭터는 싫어요.
악역도 여럿 하셨잖아요.
악역이라고 다 비호감인 건 아니잖아요. 드라마 <플레이어>의 지성구가 비호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하면서 느꼈어요. ‘아 나는 이건 안 될 것 같아.’ 제가 워낙 긍정적인 데다가 사고방식도 ‘행복하자’ ‘나쁜 짓 하지 말자’ 이런 게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캐릭터에는 아예 이입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네요. <빈센조>의 황민성도 악역이면서 호감이 가는 캐릭터였죠.
맞아요. <스위트홈>의 정의명 같은 경우에도 어찌 됐건 보는 사람을 시원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제가 또 먼치킨(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을 좋아하거든요. 고구마 따위 없이 그냥 계속 사이다, 싹 다 응징하고 그러는 거. <스위트홈>은 그런 측면에서, (제가) 진짜 센 놈이기 때문에 좋았어요.
 
[관련기사]
배우 김성철은 <그 해 우리는>의 김지웅을 연기한 후로 MBTI까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규원
  • STYLIST 김영진
  • HAIR 이민아/김민지
  • MAKEUP 은경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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