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2> TOP4 윤성과 박현규의 하루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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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게인2> TOP4 윤성과 박현규의 하루

음악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만이 jtbc <싱어게인-무명가수전 시즌 2>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유명 가수’ 김기태, 김소연, 윤성, 박현규는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자신의 삶, 그대로를 노래한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3.22
 
레더 재킷 렉스 핑거 마르쉐. 플라워 프린트 저지 톱 티크. 레더 팬츠 클루드클레어. 레더 부츠 73아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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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적절한 윤성

 
여러 장르 중에서도 록이 특별한 건, 말 그대로 밴드가 한 배로 밀고 나간다는 점이죠. 〈싱어게인 2〉는 보컬만 돋보이는 경연인데 참여할 때 고민은 없었나요?
저희 ‘아프리카’가 1998년에 결성됐고 저는 2002년에 입단했으니 밴드 멤버만으로도 20년이 넘어요. 아프리카 밴드가 음악 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졌지만 대중에게는 계속 무명이었죠. 그만한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드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그만둬야 하나 그런 거죠. 멤버들이 정말 고마운 게 자기들이 보기에 우리 보컬이 정말 괜찮은데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생각했대요.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거니까 제발 잘되라고, 기회가 왔을 때 잘되는 걸 보고 싶다고 밀어줬어요. 먹고사는 건 알아서 해결한다면서요. 그래서 〈싱어게인 2〉에 들어설 수 있었죠.
심사 과정에서 다들 맑고 곧은 고음 처리에 놀라곤 했어요. 로커로선 드문 경우인데, 다른 로커들처럼 거친 소리로 바꾸려고 한 적은 없었나요?
저도 로커니까 그런 생각을 했죠. 고등학생 때 우연히 길에서 해골 그려진 헤비메탈 밴드 ‘브레이크’ 포스터를 보고 반해서 록을 알았고, 본격적으로는 대학 가서 스쿨밴드부터 했거든요. 20대 초반에는 다른 로커들처럼 크고 강한 소리를 내고 싶어서 억지로 목을 갈며 불러보기도 했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고등학생 때 선생님 권유로 소프라노로 성악을 전공하려고 준비했던 적이 있어요. 그만큼 원래 목소리가 높고 맑아요. 이게 스트레스였거든요. 매일  8시간 이상, 하루에 4시간도 못 자고 연습을 해봤는데 결국 성대결절이 왔어요. 병원에서 앞으로 노래  5년도 못 할 거라고 했죠.
어떻게 하셨어요.
결론은 내가 남처럼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있는 그대로 노래를 부르자 생각하면서 창법을 바꿨죠. 당시에 남은 스케줄을 다 해야 해서 한 달 이상 완전히 쉬지는 못했지만, 1년 걸려 회복했어요. 이후로 계속 관리하면서 살았죠. 그런데 2019년 코로나19가 막 시작될 때쯤 재발했어요. 성대결절은 완치가 안 돼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정말 힘들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회복 기간을 갖게 됐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목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부르는 여성 로커들을 참고 삼아 찾아봤어요. 타고난 그대로 하드록을 하되,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과하게 발성하지 않아야겠다 싶었죠. 괜찮아졌어요.
17호 가수로 김광석의 ‘일어나’를 불렀을 때 김이나 심사위원이 듣는 귀가 힘들지 않은 로커라고 ‘친절한 가정식 로커’라 평가했죠. 괜찮았나요? 하드록을 하는 사람인데요.
저는 괜찮았어요. 밴드 멤버들도 공감했고요. 저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20년 해온 일을 한마디로 표현해준 것이니까요. 물론 댓글 보면 어떤 록 마니아들은 자존심 상해하는 분들도 있어요. 보통 록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공식이 있잖아요. 가죽 재킷에 청바지, 날카로운 보컬. 저는 사람들이 그런 로커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느낌에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갖고 있거든요. 어렵게 보여서 들어볼 생각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밴드 하면서도 내내 그 장벽을 허무는 데 집중했어요.  
어떤 방식으로요?
유명한 곡을 커버하기보다는 우리가 만든 음악을 가지고 포크로 편곡해서 콘서트를 연 적도 있고, 밴드 ‘크림’ ‘고니’와 같이 편곡해서 투어 공연을 한 적도 있어요. 록을 잘 모르는 분들도 콘서트에 와서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새롭다!’ 할 수 있었으면 했죠. 동두천 록페스티벌이나 전주 ‘점프(JUMF, 전주얼티밋뮤직페스티벌)’ 무대 등을 돌면서 애쓰다 보니 일반 가요만 듣던 분들도 팬이 되기 시작했어요. 저희 밴드가 만든 ‘내가 가진 건’ ‘바보’ ‘나나나’처럼 비교적 대중적인 멜로디를 가진 곡들을 주로 소개해요. 어떻게든 뭘 해도 록이니까 저희 색깔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었고요.
5라운드 때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를 불렀죠. 많은 시청자가 가장 소름 돋는 장면으로 꼽은 무대예요. 초반에 가사를 잊었는데 끄떡없이 곡을 마무리하는 걸 보고 오랜 실전의 저력이 느껴졌어요.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바로 그때로 가고 싶어요. 영상은 영원히 남으니까.(웃음) 실수한 그 순간엔 ‘나는 졌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곧이어 든 생각은 이렇게 바보같이 끝내면 안 된다는 것뿐이었죠. 17호 가수가 아니라 제 이름 윤성을 단 첫 무대였잖아요. 승패보다는 이 무대를 완벽하게 끝내고 싶다가 목표가 됐어요. 실은 끝까지 너무 떨렸는데요, 그 간절함이 에너지를 줬는지 무대 자체는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 대결했던 밴드 ‘로맨틱 펀치’ 배인혁이 그랬어요. “누나, 오늘이 제일 누나 같았어, 로커 같았어.” 어쩔 수 없이 고음 능력자 대결 구도로 만났지만 배인혁 씨도, 나겸 씨도 서로 다독여주고 인정해주고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경연에서 그런 침착한 모습은 순발력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평소 특별한 루틴이 있어요?
매일 연습실에 가요. 집에 고양이 미오가 새벽 4~5시면 저 보라고 깨우거든요. 그럼 일단 나가는 거예요. 놀든 쉬든 아무것도 안 해도 일단 연습실에 늦어도 오전 중에는 나갑니다. 연습실에도 고양이 세 마리가 있어서 밥 주러라도 가야 해요. 스트리트 출신인데 다들 정말 예뻐요.
보통 가수들은 오전 인터뷰를 힘들어하는데 이른 시간에 할수록 좋다고 해서 놀랐어요.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죠? 밤 11시쯤이면 자요. 완전 집순이에요. 일이 없으면 연습실 말곤 잘 안 나가요. 지금 밴드 리더인 드러머 정현규도 연습실 다니면서 만난걸요. 서로 다른 밴드였는데 기웃거리다 그쪽 밴드로 입단하고 같이 살고 있죠. 인간 윤성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파트너이자 남편, 존경하는 음악 선배, 멘토예요. 그분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싱어게인 2〉 에피소드 방송에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분들께 힘내란 말을 하고 싶다”고 했죠.
제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남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음악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으니까요. 제 주변의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 사실을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요. 경연을 하면서 다들 정말 잘하니까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느샌가 잊어버렸어요. 이건 다 간절한 사람들이 나오는 〈싱어게인 2〉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눌러야만 올라가는 곳은 아닌 거죠.
가수 윤성에게 모든 게 좋은 때인 것 같아요.  3위로 〈싱어게인 2〉를 마친 지금 어때요? 인생의 절정기일까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 절정은 언제나 오늘이죠.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쓸쓸하고 허전할 것 같아요. 견디는 것밖에 안 될 것 같고요. 오늘이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면 늘 절정에 있습니다. 만약 30대에 이런 기회가 왔어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지금이니까, 이 정도 삶의 궤적이 쌓였으니까 노래로 울림을 줄 수 있었을 것 같고, 저도 감당할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아요. 제 자신에게 늘 확신이 없었는데 ‘바로 이때다!’ 싶은 순간에 도착했어요.
 
레더 재킷 앤드로스. 레오퍼드 프린트 셔츠 올세인츠. 데님 팬츠 코스. 벨트 가윤.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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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울 틈 없는, 박현규

 
자신을 ‘막차 탄 가수’로 소개하며 〈싱어게인 2〉를 시작했습니다. 왜 막차예요?
〈싱어게인 2〉를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시작했거든요. 대학도 재수해서 늦게 갔고, 군대까지 일하다 늦게 갔는데, 가기 전에 고민이 많았어요. 음악 말고 뭘 해야 하나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경연 참가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이라 ‘막차’란 표현을 쓰게 됐어요.
그룹 ‘브로맨스’로 데뷔하고 음악 신을 떠난 건 아니었잖아요. 유명 가수의 가이드 보컬이자 트레이너로 활동했다고 들었거든요.
가수 외의 일들은 연습생 때부터 했던 거고요. ‘브로맨스’가 보컬 그룹이니까 처음부터 노래하는 기술적인 면을 훈련하기보다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같이 배웠어요. 그리고 가수로서 활동을 아주 안 한 것도 아니니까 더 늦기 전에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것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죠.
고마운 일이지만, 냉정하게는 무대에서 내려와 보컬 트레이너나 전문 코러스로 일하기엔 지금까지 이룬 게 좀 얕은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더 집중해야죠. 남들이 보기엔 아직 어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서른쯤 되니까 취업하고 결혼하는 주변 친구들 보면서 나도 늦기 전에 다른 분야로 새 출발을 해야 하나 싶고. 장남으로서 집에 보탬도 되고 싶고 그랬어요.
쉬지 않은 덕분일까요? 처음부터 기세가 좋았어요. ‘가왕의 하관’이다, ‘보컬 타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고요.
다른 일을 하며 보낸 시간이 10년쯤 됐으니까요. 곡 커버뿐 아니라 노래를 새롭게 편곡하고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게 사실이고 그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그런데 실은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가수 마마무 친구들이 저 너무 떨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 연락은 따로 할 정도로요. 원래 제가 아주 작은 일에도 긴장해요. 그래서 준비할 때 엄청 디테일하게 준비해요. 〈싱어게인 2〉 담당 작가님만 아시는 얘긴데, 저는 ‘이 구간에서 떨리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 이 정도 가면 흥분하겠지, 틀이 갖춰져야 실수를 안 하겠지….’ 계속 생각해요. 플랜 C가 있다면 F까지 준비해야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거든요.
2라운드 팀 대항전에서 탈락했다가 이해리 심사위원의 ‘슈퍼어게인’으로 부활했죠. 마침내 그 선택을 후회 없이 만들어준 가수가 됐고요.
그래서 이후 3라운드에서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를 때는 너무 절박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성, 톤, 다 때려 넣은 것 같아요. 원래 이 곡은 담담히 위로하는 노래잖아요. 그래서 여러 사람을 대변하고 싶었어요. 정말 우리 브로맨스 멤버들에게 불러준다고 생각하면서요. 또 장현이 형, 은오, 현석이(브로맨스의 멤버들)…, 이 사람들이 지금 같이 부르면 어떤 감정으로 부를까 떠올리면서요. 실은 방송 전까지 멤버들한테 참가한 것도 말을 못 했거든요. 남자들끼리 실제로는 부끄러워서 이런 이야기를 못 해요.
만약 그때 슈퍼어게인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요?
한 달간 힘들어하다가 〈싱어게인 2〉에서 보여드린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힘들어서 소고기도 먹고.(웃음) 가수로서 이게 제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은데, 저는 장르 제한이 없어요. 경연에서는 가창력이 돋보여야 하니까 발라드만 보여드렸는데요. 편안한 이지 리스닝 음악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이 말을 직접 듣지 않았다면 다들 당연히 발라드 가수라고 짐작했을 거예요.
그게 콤플렉스였어요. 박현규는 무슨 장르를 가지고 있는 가수일까요. 음악은 할수록 점점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다 보니까, 제가 ‘오르막길’을 부르면서 그렇게 김범수 같은 제스처를 하는지도 몰랐어요.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이란 말에 희열을 느꼈어요. 발라드도 계속할 거지만, 목 풀 때는 원슈타인, 자이언티의 힙합을 틀거든요. 댄스도 좋아해요.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마룬파이브 같은 팝밴드를 하고 싶어요. 지금 가장 큰 로망이 밴드예요. 예능 방송이든 뭐든 다 욕심이 있어요. 어떻게 온 기회인데요. 시간은 정해져 있고, 하루는 24시간이고, 제가 음악에만 집중하고 산다는 건 거짓말 같아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군요?
그게 참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어릴 때는 친구들이 잘한다고 해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엔 경연이 거듭될수록 자기 확신이 더 없어졌어요. 잘하는 걸 보여드리러 나간 게 맞지만 ‘내가 이렇게 노래를 해도 되나’ 싶은 거죠. 평가받으러 나간 자리니까 당연히 여러 피드백이 오거든요. 가수로서 정말 도움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특히 무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귀한 레슨을 받는 셈이에요. 그중에서 이선희 심사위원이 항상 저한테 “1%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경연에만 신경 쓰니까 그 부족함을 채우기가 어려웠어요. TOP 6 결정전에서 ‘천일동안’을 부를 때 이번만큼은 멋이 좀 없더라도 울면서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해보자 싶었죠. 덕분에 시청자 평가는 좋았지만 저는 오버한 것 같아 아쉬웠어요. 그런데 그걸 아시더라고요. 심사평에서 이선희 심사위원이 “노래 자체는 무너졌을지 몰라도 좋았다”고 해주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천일동안’을 불렀을 때 그 곡이 별로였다는 댓글에 누군가 대댓글을 달았다고 하더라고요. “박현규는 실용음악과에서 1200:1로 뽑힌 보컬”이라고요.
학교 동기가 악평에 속상해서 달아준 거예요.(웃음) 직접 말하긴 좀 낯간지러운데, 아니라고 하면 학교 동기들이 같이 낮게 보이니까 그러지 말라고 해서 말하는 건데요. 가수 오디션 보면서 재수도 했는데 수시를 서울예술대 한 군데만 썼거든요. 그때 남자 부문은 딱 한 명 뽑았는데 제가 들어갔어요. 원래 입시 때는 고음이 강한 노래를 선택하는 편인데,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어요. 면접관들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좀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래가 따로 있겠지만 그때도 나한테 와닿으면 남들에게도 닿지 않을까, 그럼 잘하지 않을까 확신하고 불렀어요.
이제 박현규는 유명 가수가 되었어요. 어떻게 만끽할 거예요?
〈싱어게인 2〉를 마치고 가장 기분 좋은 건 제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됐다는 분들이 계시다는 거예요. ‘들을 준비가 됐다.’ 가수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거든요. 예전부터 좋아해주신 팬들도 계시고 감사한 분도 많아요. 서른이라는 나이도 가수로서 막차를 탄 나이가 아니라, 보여줄 게 많은 나이 같고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꾸준히 보여드릴 거예요. 4월 초쯤을 목표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발라드일 것 같은데 빠른 템포 음악도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게 지금 남은 제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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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ASHION EDITOR 고동휘
    FREELANCE FEATURES EDIOTR 김미한
    PHOTOGRAPHER 채대한
    PRODUCTION 장재영(그림공작소)
    STYLIST 이선화
    HAIR 김귀애
    MAKEUP 오가영
    ASSISTANT 이하민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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