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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롱리스트 노미니, 소설가 박상영이 말하는 '두 번째 시즌'
소설가 박상영을 얘기할 때 우리는 퀴어, 자전적, 당사자성 등의 단어를 꺼내 설명하려 애를 쓴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시즌은 이런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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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뭘 하고 있었나요?
헬스장에 있었어요.(웃음) 영국과 우리나라의 시차가 반나절 정도 나려나요? 헬스장에서 스테퍼를 밟고 있는데, 제 책의 영국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에서 “콩그레추레이션!”이라는 메일이 왔어요. 들어가서 천천히 읽어봤죠. 제가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 롱리스트에 올랐다는 거예요.
놀랐겠어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믿기지 않았고요. 제 작품을 출품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었거든요. 정말 많은 출판사가 여러 문학상에 수많은 작품을 출품하니까요. 제 작품 역시 여러 다른 문학상에 이미 출품된 상태였고요. 출판사에서도 ‘이번엔 전미도서상에 당신 작품을 출품했다. 다수의 작품이 이런 식으로 출품되는 것이니 너무 기대는 말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하죠.
사실… 상상도 할 수 없죠.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 롱리스트라니요. 누구한테 가장 먼저 알렸어요?
연락을 받고 난 후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직 공식 발표 날짜까지 2~3일 남았더라고요. 그걸 확인한 직후에 ‘이거 비밀이야. 유출되면 리스팅이 취소될 수도 있어’라는 메일이 다시 날아왔어요.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놨지요. 그 며칠을 혼자 즐기고 후보 발표 당일이 되어서야 한국 출판사에 얘기했어요.
비록 쇼트리스트엔 오르지 못했지만, 롱리스트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놀라운 일이죠. 전 말보로와 블루베리가 그려진 <Love in the City>의 영국판이 갖고 싶었는데, 이 미국판 밖에 안 팔더라고요.
맞아요. 그 판은 수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영국 출판사인 틸티드 액시스와 그로브 애틀랜틱이 동시 출간했어요. 영미권은 그런 식으로 출판사끼리 협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요.
영국 출판사인 틸티드 액시스는 데보라 스미스가 대표로 있는 회사죠?
맞아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그 번역가가 대표로 있는 회사죠. 출간까지의 과정이 좀 길어요. 제 책의 번역가인 안톤 허 씨가 제 소설집 제목이기도 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단편을 읽고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너무 재밌다고, 미국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고, 자신이 번역하고 싶다고요. ‘내가 소설가 박상영을 미국에 데뷔시키겠다’는 제안이었죠. 실제로 안톤 허 씨가 번역한 그 작품이 영어로 비영어권 문학을 소개하는 WWB(Words Without Borders)라는 웹진에 소개됐어요. 얘기로는 그 웹진 사상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대요. 그 소설들을 보고 데보라 스미스가 안톤 허를 통해 제게 연락해왔어요. 장편 나온 게 없냐고요.
생각해보니 영문판은 단편집(short stories)이 아닌 소설(novel) 타이틀을 달고 나왔죠.
제가 마침 창작과비평사와 계약한 연작 소설집을 묶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이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는 이야기다”라고 말해줬지요. 그 얘기를 듣더니 영미권에선 그걸 장편으로 소개하자며 미리 계약하자고 하더군요. 그런 과정이 있어서 출간하자마자 번역 작업에 들어가 작년에 영문판을 출간할 수 있었어요.
롱리스트가 발표되고 어떤 변화를 느꼈나요?
정말 많은 전화를 받았고, 첫 주에는 제 책의 판매 점수가 많이 올랐죠. 에세이집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판매도 늘더라고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도 늘었어요.(웃음)
솔직히 <대도시의 사랑법>이 정말 재밌잖아요. 전 이 책을 읽으면서 ‘현웃 폭발’을 참을 수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요.
아아, 웃기죠. 근데 저는 <1차원이 되고 싶어>가 더 많이 팔릴 줄 알았어요. 엄청난 기대에 부풀어서 ‘아 이거 너무 많이 팔리면 어쩌나’ 행복회로를 돌리며 걱정했지요.(웃음) 쓸 때 정말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도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연재작이었잖아요.
전반부 2장까지 연재했었고 3장부터는 혼자 썼어요. 어떤 식으로든 희망회로가 돌아가지 않으면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래서 별별 생각, 이를 테면 50만 부나 팔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다 했지요.(웃음)
장편을 연재한다는 건…. 그것만으로 대단한 겁니다.
주간 연재는 진짜 ‘원수한테 권하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웃음)
게다가 주간 연재라니요…(웃음)
편집자님이 주당 원고지 100매씩 달라고 그랬거든요. 처음에는 150매씩 드렸으나 나중에는 그 양이 점점 줄어들었죠.
주당 100매를 쓰는 게 가능한가요?
연재에 익숙하신 숙련된 작가들은 초고를 대략 완성해놓고 연재를 시작하신다고 해요. 그걸 혼자 초고도 없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한 제가 참으로 무지했습니다.
남들은 다 넷플릭스 시스템이었는데, 혼자 옛날 MBC 드라마 초치기 대본 시스템으로 쓰셨군요.
진짜 그랬어요. 수요일이 연재일이었거든요. 수요일 오후 1시에 업로드인데, 수요일 12시에 겨우 마감한 적도 있어요. 퇴고도 힘들었죠. 초고를 완성했는데, 1650매더라고요. 지금 최종본의 분량이 대략 1300매인데, 그 300매를 줄이며 다시 쓰느라 편집자와 제가 머리를 쥐어뜯었죠.
줄여서 그 길이였군요. 요즘 소설들은 장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좀 긴 중편인 경우가 많잖아요.
맞아요. 요즘은 장편소설도 길게 잘 안 내거든요.
전 처음에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을 때는 너무 모던하게 생각을 하는 바람에 맘껏 못 웃으며 읽었어요. 4개의 이야기에 나오는 ‘영’이 다 같은 영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믿지 못할 서술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전 처음에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을 때는 너무 모던하게 생각을 하는 바람에 맘껏 못 웃으며 읽었어요. 4개의 이야기에 나오는 ‘영’이 다 같은 영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믿지 못할 서술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고급 독자들이 또 그런 독서를 즐기죠. ‘난 화자에게 속지 않겠어’라면서요. (웃음)
‘이름만 영이고 아예 인종이 다를 수도 있어’라면서 말이죠.
그렇죠. 성별이 다를 수도 있고요. 저도 책을 읽을 때는 그렇게 읽어요. 그런데 이 책은 연결하면서 같은 인물이라는 단서를 많이 달아뒀죠.
그래서 다시 읽었을 때 더 좋았나 봐요.
가끔 ‘두 번 읽으니까 더 좋더라’고 말해주시는 독자들을 만날 때 기뻐요. 제가 상징을 많이 쓰는 편인데, 또 서사의 속도감도 엄청 중시하거든요. 아무래도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다시 읽을 때는 처음에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며 읽을 수 있는 거죠. 가끔 연작소설 중 ‘세 번째 소설은 건너뛰고 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속상해요. 한 번에 ‘후루룩’하고 네 개의 작품을 연달아 읽었을 때만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애써 고쳐 뒀거든요. 그런데 그건 저 혼자만의 어떤 아쉬움이죠, 뭐.(웃음)
전 문학에서 웃음이 눈물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박상영의 노미네이션 소식이 반갑기도 했고요. 웃음의 가치가 인정받은 것만 같았거든요.
안 그래도 심사위원 중에 유명한 영국의 코미디언 겸 작가인 ‘멜 지드로익(Mel Giedroyc)’이 있었어요. 그분이 제 소설을 두고 재밌다고 평하셨다는 얘기도 들었죠. 심사위원 중엔 옥스퍼드대학교의 문학 교수님도 계셨고, 변호사님도 계셨지만 영국의 코미디언에게 인정을 받아서 좋았어요. 기자님이 말한 ‘웃음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았거든요.
<1차원이 되고 싶어> 얘기를 좀 하자면, 글 자체는 위트가 넘치지만, 소설을 굴러가게 하는 주제는 무거웠죠.
그 소설은 좀 더 가볍게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까 진지해진 경우였어요. 폭력과 어떤 고립에 대한 내용이었으니까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제가 쓸 수 있는 멜랑콜리하면서도 매트한 감정의 영역에 대해 많이 썼다고 생각해요. 그런 감정이 <1차원이 되고 싶어>까지 이어지면서 시즌 1을 완벽히 정리한 느낌이 들었어요. 에세이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까지가 앞선 소설들과 함께 20대 청춘부터 30대 직장인까지를 아우른다면, 10대를 그린 <1차원이 되고 싶어>로 세월을 거슬러 종지부를 찍은 셈이죠. 이번에 쓸 책이 시즌 2의 시작일 거예요. 더 사회적인 맥락에서 읽히는 소설일 거고요.
<1차원이 되고 싶어>보다 더요?
사실 이미 다 썼고, 원고도 넘겼어요. 올여름쯤에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개인보다는 세상을 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이를테면 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직업과 제가 다녔던 직장, 잡지사 등의 공간을 다뤘어요. 직업인, 생활인으로서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해요. 또 지금까지 퀴어가 중심인 소설이 많았던 반면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요. 감정으로 보자면, 사랑이 아닌 사회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서사가 많아요. 제가 기능할 수 있는 바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고요.
사회적 효용이 있는 얘기들이군요?
맞아죠. 더 많은 분들이 ‘내 바로 옆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소설들은 취재가 필요할 텐데요.
많이 했어요. 동거 커플을 취재했고, 집을 산 사람들을 취재했고, 아파트 영끌 막차를 탄 사람들을 취재했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을 취재했죠. 코로나19 탓에 폐업하는 분들을 취재하기도 했고요. 식사를 대접하거나, 혹은 바의 사장님이라면 그 바에서 글렌피딕을 한 병 사서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취재를 하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번에 내는 책이 다섯 권째거든요. 이제는 신인 작가라는 마음은 옅어졌어요. 아무래도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소재를 다루는 마음가짐이 예전과는 정말 달라요. 앞서 네 권의 책에서 써놓은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어떻게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또 이 네 권이 단편집, 연작소설, 장편소설, 에세이예요. 사실상 모든 장르로 그간의 인생을 다 털었다고 봐야죠. 전 지금까지 제가 녹아 있는 이야기들이 일종의 살풀이였다고 봐요. 살풀이는 시즌 1에서 끝났고, 작가로서 이제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건 인간 박상영으로서도 마찬가지예요.
살벌하게 했죠. 그 살풀이.
이제는 시즌 2로 넘어가야죠. 좋은 소재와 재밌는 캐릭터를 만들고 잘 굴려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장편소설을 쓰면서 그런 욕구가 더 커졌어요.
작가로서 국면의 전환기에 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그래서 조사를 좀 해봤거든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작가들,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분들이 전부 그런 시기를 한 번씩 거치더라고요. 성공한 작가들은 대부분 초반에 한 번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있고, 5년에서 7년 후에 세계가 한 번 정리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누군가는 전환의 국면에서 다시 한번 튀어 오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런 일 없이 잔잔하게 가기도 하고요. 아예 그 국면을 넘기지 못하고 절필을 하는 경우도 있죠.
지금까지 써오던 글쓰기의 방법론이 바뀌는 대변화니까요.
원래 인정받고 싶고, 세상에 억울한 게 많고, 이 세상이 슬픈 내 마음을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컷어요. 그런 마음 때문에 글 쓰는 게 어려웠죠. 잘 쓰고 싶어서 어려웠던 게 아니라 마음의 문턱이 높았던 거죠. 욕심이 앞서서. 이렇게 방법론을 바꾸고 난 뒤로는 그게 없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생겼다고 볼 수도 있고, 직업적인 스킬이 조금 더 쌓였다고 볼 수도 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이 이제 정말로 시작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스튜디오 플로어에서 의자를 타며 마음껏 포즈를 취해달라 부탁했다.
그런 방식의 글쓰기는 인풋이 필요하지요.
요즘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뭔지도 중요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현실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현실 감각을 키우려고 정말 다양한 것들을 봐요. 넷플릭스도 보고, SNS도 하고, 잡지도 많이 보고, 유튜브도 정말 자주 봐요. 지난 책 내고 나서부터 인풋을 계속 제 안에 쌓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한데, 재밌더군요.
조금만 더 지나면 ‘인풋을 넣으면 어떻게든 아웃풋이 나오는’ 단계가 온다고 하더군요. 함수처럼요.
그럼 너무 좋겠네요. 전 지금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요. 지금은 인풋을 넣으면 제 예전의 경험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것들이 그 인풋과 제 안에서 합쳐지면서 반죽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영어로 번역된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일단 번역의 퀄리티가 정말 높다고 느꼈어요. 안톤 허는 영어권에 번역된 제 소설을 다 옮긴 번역가예요.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어요. 옮겨지기 힘든 한국어 표현도 영어의 방식으로 정말 매끄럽게 바뀌어 있어요.
저도 앞에만 살짝 읽어봤는데,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더라고요. 문장도 정말 쉬워서 이 텍스트로 사람들이 영어 공부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그걸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쓴 소설이니까 내용을 다 알잖아요. 뜻을 다 아는 상태에서 거꾸로 유추해가며 읽다 보니 영어 공부가 되는 셈이죠.
한국어 자막 보면서 미드 딕테이션하는 거랑 똑같은 학습 효과죠.
맞아요. 딱 그런 식이에요.
단순히 문장이 심플하다는 것을 떠나서 안톤 허가 말한 ‘박상영의 산문은 앵글로 색슨적 바이브라 있다’라는 말의 의미와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제 문체에 ‘앵글로 색슨적인 바이브가 있다’라는 건 안톤 허가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에요. 안톤 허는 제 작품을 번역하기 전에 기라성 같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한 경험이 있어요. 제 선배 작가 분들 중엔 시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거장들이 많으세요. 시적인 문장이란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도록 의도한 문장들인데 보통 번역가는 그런 시적 문장을 바꾸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여러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요. 저는 조금 달라요. 전 시적인 표현보다는 논리적인 걸 좀 더 중요시하는 스타일이에요. 산문 분야를 쓰는 작가들은 시적인 문장과 논리적인 문장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서 작가의 정체성이 달라지기도 하죠. 저는 앞에 있는 문장이 뒤에 오는 문장을 끌고 들어오게 하는 ‘똑똑 떨어지는’ 논리적 배합을 좋아해요. 안톤 허의 ‘앵글로 색슨적인 바이브’라는 건 바로 그런 얘기일 겁니다. (이 인터뷰 이후 박상영과 나는 갤러리 리만머핀에서 열린 회화 작가 래리 피트먼의 대담회에서 우연히 만났다. 당시 래리 피트먼은 “스페인어는 매우 시적이죠. 그러나 영어는 그렇지 못해요. 전 이중언어 사용자로 영어를 주로 쓰지만 제가 그리는 회화는 스페인어의 시적인 느낌이 그 바탕을 이룹니다”라고 밝혔다. 래리 피트먼이 말한 영어의 ‘시적이지 못한 느낌’이란 바로 지시와 논리의 기능이 강조된 영어의 언어적 특징을 말한다.)
어째서 그런 바이브가 생겼을까요?
제가 어릴 적에 처음 좋아한 소설들이 다 번역문학이었어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 셜록 홈스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으면서 독서를 시작했고, 영미 문학, 프랑스 문학, 유럽 문학을 읽고 나서야 한국 문학으로 저변을 넓혔죠. 재밌는 사실이 있어요. 안톤 허가 번역에 들어가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볼게요”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번역 끝날 때까지 단 하나도 묻지 않았어요.
그렇겠죠. 난해한 게 없었을 테니까요.
맞아요. 저는 한 칼에 한 명씩만 노리거든요.(웃음)
전 안톤 허가 한 얘기 중에 이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박상영은 자기 비하의 아이러니적 안도감을 곁들인 미친 듯이 투명한 정직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표현이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투명하게 솔직하지?’라는 생각이요. 밑바닥은 누구나 더러운데 말이죠.
그럼요. 우리 본성의 밑바닥은 결코 우아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죠. 그러나 그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했어요. 투명하게 보여주되 마음의 적정선을 잘 맞추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논픽션 크라임 다큐멘터리는 잘 못 보거든요. 특히 끔찍한 사건을 다룬 것들은요. 그런데 같은 끔찍한 사건을 다뤘더라도 픽션이라면 손가락 발가락이 잘려나가는 장면까지 다 볼 수 있어요. 그런 맥락이죠. ‘픽션이 주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생생한 감각을 살리고 싶었다. 진짜 일어난 일처럼 핍진성을 살리면서도 거짓말인 걸 누구나 알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 두 가지를 다 성취하는 건 소설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자기 비하의 아이러니적 안도감에 대해서는요?
결국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무리 막 나가는 것 같고 불안해 보여도 자기들이 파괴하는 건 결국 자신들의 내면일 뿐이거든요. 제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칼을 들고 남을 찌르러 다닐 사람이라면 독자들도 불안해했겠죠. 저 역시 그런 서사를 쓰고 싶지 않았고요.
<대도시의 사랑법>의 영은 자신을 ‘꽃다발 효과나 콩고물 떨어지기를 바라는 기생충’ 정도로 비하하지만, 사실 작가는 영을 엄청 사랑하지요.
그럼요. 사랑하지요. 그런데 오해는 풀어야겠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영을 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쓴 건 절대 아니거든요. 누군가가 독자평에 “이 소설의 화자는 굉장히 뚱뚱한 사람”이라고 써뒀더라고요. 제가 그 소설 속에 176cm에 78kg이라고, 정확한 표준 체형의 남성으로 제시해뒀거든요. 그런데 뚱뚱하다고 얘기하는 건… 그 독자님이 작가인 저를 보고 제 화자인 영이를 떠올린 거잖아요.
으하하하하. 근데 그건 아마도 ‘뚱고’라는 표현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제가 실수했어요. 진짜 뚱뚱한 고양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영은 키 176cm에 78kg의 대한민국 표준 남성이고, 귀엽고 물론 어느 정도 애정할 만한 구석도 있는 그런 아이예요. 소설을 보면 아시겠지만, 영이는 정말 열심히 사는 아이예요. 열정이 많고 노력하는 사람이고요. 외면할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친구와 애인과 또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용기가 많은 건 아니지만, 열정이 많아서 그 열정으로 부족한 용기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오는 모든 인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죠. →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조혜진
- HAIR & MAKEUP 이소연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최지훈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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