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파크 서울이 있기 전에 토마스 파크 뉴욕이 있었나요?
토마스 파크는 원래 2013년 서울에서 열었어요. 그리고 2018년 뉴욕에 열었죠. 2020년, 첼시로 공간 을 옮기려 계약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팬데믹이 터졌어요. 불과 전시를 딱 한 달 앞두고 모든 게 록다운이 되었죠. 갤러리 이전은 고사하고, 저 역시 혼자 고립된 채 집 안에 5개월을 갇혀 있었어요. 서울은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뉴욕은 굉장히 심했거든요. 5개월 갇혀 있다가 한국에 한 달만 있으려고 왔는데 다시 못 가겠더라고요. 가기 싫었어요.
한국에 들어와 후암동에서 격리를 끝내고 남산 산책을 나갔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 남산에 살아야겠다’라는 생각. 뉴욕에서 갇혀 지낼 때 동네 공원에 혼자 나가 ‘나 이렇게 자연도 못 보고 죽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남산의 소나무 숲을 보니까 너무 좋아서 못 돌아가겠더라고요.
아뇨, 이젠 좀 더 적극적으로 서울과 뉴욕,두 도 시에 살아볼 작정이에요. 뉴욕에 집도 있고. 앞으로 뉴욕에도 공간을 가질 예정이에요. 두 도시에 모두 피다테르(pied-a-terre)가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이 공간이 참 특이해요. 사진으로 보면 모든 걸 새로 만든 공간 같은데, 막상 군데군데 개보수 전 낡은 공간의 흔적을 남겨뒀어요.
사실 제가 오기 전의 상태가 조금만 좋았더라면 더 많이 남겨두고 싶었을 거예요. 정말 날것 그대로의 콘크리트들은 남겨두고 싶었는데, 이 공간 자체에 데미지가 너무 많았어요.결국 약간 손질을 해야 했죠.
오랜만에 〈나의 사적인 도시〉를 보니 2006년에 이미 ‘서틀’(subtle)이라는 표현을 썼더라고요. 딱 맞아요. 이 공간의 취향이 정말 서틀해요.
‘미묘한’으로 번역되는 서틀은 ‘난해함’과 대조해서 이해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서틀함이란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든 취향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주의 깊게 봐야 보이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요즘엔 세상이 점점 ‘서틀티’를 읽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너무 명확하니까요. 어떤 곳이든 요란하고, 분명하고, 확실해요. 마치 모두 ‘내 취향은 이런 겁니다’라고 샤우팅을 하는 것 같죠. 모든 사람이 각자의 취향을 외치고 있으니까, 좀 조용히 한참 들여다봐야 하는 그런 서틀티가 어딘가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근데 서틀티는 항상 잘 팔리는 퀄리티는 아니에요.
그렇겠죠. 잘 보이지 않으니까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서틀티를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보이는 캐릭터라고 정의하면 되겠죠.
제가 생각하는 모든 아트는 서틀티를 품고 있어요. 그런 작품들을 제대로 느끼려면 좀 주의 깊게 봐야 하죠. 제가 예전에 어딘가에 쓴 표현인데요. ‘조명을 살짝 내리고 오래 두고 보는 상태’ 그런 게 미학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요샌 아무도 미학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죠.
‘클럼지’가 박상미가 이야기하는 미학인 거죠?
일본의 어떤 미의식을 표현하는 단어인 ‘와비사비’처럼 제가 좋아하는 한국의 미의식을 포괄하는 말을 찾고 싶었어요. 여기저기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고, 없는 말을 찾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하자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내가 가진 미의식과 한국이 가진 미학의 공통적인 점을 포괄하는 단어로 뽑아낸 게 바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졸’(拙)이에요. ‘졸한 미학’. 그러나 이 졸함은 서투른 초보자의 졸이 아니에요. 이 졸은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이 뭔가를 내려놓았을 때 나오는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졸을 번역한 영어 단어가 ‘클럼지’고요. 뉴욕에서 갤러리를 하면서 이 졸함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미학에 대해, 또 한국의 미학에 대해 책을 쓰고 싶었어요. 아시아 소사이어티에 가봐도, 서점에 가봐도, 한국 문화에 관한 책은 몇 권 안 돼요. 이제야 한국 소설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긴 하지만요. 지금 제 목표는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서점 스푼빌앤슈거타운에 제가 쓴 ‘클럼지’ 에 관한 책이 놓여 있는 거예요.
방금 들어보니 ‘클럼지’는 어떤 삶의 태도이기도 하군요. 그리고 이 ‘토마스 파크’는 그 ‘클럼지’의 미의식으로 선별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아트 스페이스이고요.
토마스 파크는 클럼지의 모태이자 부캐라고 보시면 돼요. 책 기획에서 시작된 클럼지는 이제 클럼지 플랜이라는 큰 프로젝트가 되었고, 온라인 플랫폼을 clumsy.site, 오프라인 스페이스는 클럼지 플레이스라고 불러요.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작품들이 클럼지 플레이스에 전시되어 있어요.
최근 한국 미술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어요. 아 까 우리가 잠깐 얘기했지만, 젊은 나이에 호당 100만원이 넘는 구상화가들도 등장하고 있고요. 특히 돈을 벌 목적으로 투기하는 시장이 커진 것 같아요.
돈을 목적으로 작품을 사는 것과 작품을 음미하고 감상하고 즐길 목적으로 사는 건 시작부터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가장 좋겠지만 쉽지 않거든요. 작가도 그래요. 자기 작품의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서 비슷한 그림을 기계적으로 그린다면 그건 작품이 아니라 상품을 만드는 거죠. 반대로 작품의 가격에만 관심이 있어서 차익을 목적으로 작품을 사는 사람은 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상품을 산 것이고요. 전 모든 소유엔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어지는 거잖아요. 그냥 소유할 수 있어서 소유하는 것과 사랑해서 소유하는 행위는 전혀 다르죠.
토마스 파크 이태원 시대의 첫 전시는 폴 팩의 〈빠 드 두(pas de deux)〉이지요.
사실 폴 팩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기 위해 여러 번 스튜디오를 방문했어요. 폴 팩의 작품 중에는 대작이 많아요. 그런데 미드 사이즈의 페인팅들을 보니까 두 개의 폼이 한 작품에 포함되는 형상이 반복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마치 두 명이 춤을 추는 것처럼요. 그래서 폴한테 “이 사이즈의 그림에 이렇게 두 개씩 있는 그림이 굉장히 많은 거 알고 있었어?”라고 물었더니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폴이 예전에 발레를 했거든요. 두 명이 추는 발레의 양식인 〈빠 드 두〉가 그렇게 전시 제목이 됐어요.
많은 갤러리가 2차 시장에서의 작품 판매로 돈을 벌지요. 사실 중계상 역할만 하는 갤러리도 많고요. 하지만 1차 시장에서 작품을 사는 게 무척 중요해요. 예를 들어 토마스 파크에 전시했고 전시 중인 그레그 콜슨, 브루스 가니에, 폴 팩, 박성욱 등의 작품을 산다는 건 그 작가들을 직접 서포트하는 일이기도 하죠.
맞아요. 그들은 제가 수표를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다들 팬데믹 때문에 전시가 스톱됐거 든요. 사실 전시를 열고 그 작품을 파는 수익만으로 운영되는 갤러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거예요. 블루칩을 거래할 때 수익이 나지요.
번역가로서 박상미는 아무도 누군지 모르는 줌파 라히리를 2006년에 번역하고, 또 제임스 설터를 2010년에 한국에 소개한 얼리어답터이기도 하죠. 뭔가 해외에 다녀온 사절단처럼 최신 문물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웃음)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제 처음은 〈빈방의 빛〉이에요. 마크 스트랜드가 살아 계실 때 호퍼에 대해 쓴 글이죠. 기획도 제가 했고 지금까지 팔리고 있어서 아직도 자랑스러워하는 책이에요. 제임스 설터 전에 제가 제안한 작가가 있었어요. 바로 앨리스 먼로예요.
맞아요. 그때는 거절당했어요. 그때는 먼로를 정말 아무도 몰랐고 재미없어 했어요. 노벨문학상을 타기 한참 전이었죠. 제가 처음 제안한 때가 2004년이니까요.
그 이후로는 〈킨포크〉와 〈사토리얼리스트〉를 번역했으니 ‘클럼지’가 어쩐지 당연한 스텝으로 느껴지네요.
2008년에 낸 제 책 제목이 〈취향〉이에요. 그때는 사람들이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를 잘 안 썼어요. 지금은 자주 쓰지만요. 전 취향이 파란색을 좋아하는지 빨간색을 좋아하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파란색이 좋다면 왜 파란색이 좋은지, 파란색에 관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거죠. 더 나아가 그 내용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있다면 취향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 공간을 예로 들면 이곳이 어떤 취향의 맥락을 갖고 그 맥락이 다른 사람에게 유의미하게 전달되기를 바라요. 내가 보고, 좋아하고, 애정하는 것들을 모아둔 이 공간의 맥락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로 가닿는다면, 그래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성공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