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박모 씨가 어촌에 정착하려 할 때 생기는 일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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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박모 씨가 어촌에 정착하려 할 때 생기는 일

오성윤 BY 오성윤 2022.05.04
 
 
요란한 새소리에 눈을 뜬 박씨는 소풍 가는 날처럼 마음이 설렜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갯벌에 나가는 날이다. 옆집 할머니가 보름달이 뜨면 물이 많이 빠져 갯벌에서 바지락도 캐고 낙지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젯밤에 감나무 사이로 둥근 보름달을 보았다. 이사 온 지 반년이 되었지만, 아직 갯벌에 나가보지 못했다. 오늘은 옆집 할머니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박씨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다. 학교도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했다. 서울에서 만난 아내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 시골에 집을 마련하기 몇 년 전에 회사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직장생활 하는 아내가 아이와 서울에 머물고 있다. 성격도 취미도 다른 부부지만 전원생활만은 통하는 꿈이었다. 특히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그 꿈은 더욱 절실해졌다. 가능하면 바닷가에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전라도 남쪽 바닷가 ‘동백마을’이었다.
동백마을에 집을 구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귀촌할 마을을 찾아다니다 보니 빈집이 정말 많았다. 개중에는 마음에 드는 집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얻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주민들도 그 집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알아도 사는 곳이나 연락처를 얻기가 힘들었다. 마을과 집이 마음에 들어도 자식이 팔지 않겠다며 반대했고, 부동산을 통해 찾아가면 땅이나 집을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마을 사람들이 빈집의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집을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 한 분을 차에 태워주었다. 그리고 박씨가 집을 찾아 마을을 헤맨 사연을 들은 할머니가 동네에 내놓은 옆집을 소개해준 것이다. 오늘 갯벌에 함께 가기로 한 할머니와의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어촌 주민들은 부동산을 통해 거래하기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해 거래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부동산 비용을 내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 들어오길 원해서였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땅을 구하고 측량을 해보니 실제 집과 도면의 땅이 일치하지 않았다. 박씨가 구하려는 땅의 일부가 마을 안 길로 이용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넓힐 때 이전 주인이 땅을 마을에 내놓았는데, 법적인 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길을 넓히고 담을 쌓은 것이다. 하지만 박씨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동네에 그런 집이 많았다. 박씨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집수리를 마친 후 이사를 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도 하고, 집도 손보고 하는 동안 반년이 훌쩍 지났다. 주말에 내려오는 아내와 아이도 만족했다. 가족은 주중에는 도시에서, 주말이면 시골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웃집 할머니와 바지락을 캐고 나서 생겼다.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 아내와 아이와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어촌계장이 찾아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박씨네는 갯밭에서 바지락을 채취할 수 없다’고 전했다.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어장인데, 왜 하지 말라는 것인가? 박씨는 손님도 아니고, 마을로 이사를 와서 주민등록도 옮기고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어촌계장은 ‘정 바지락 밭을 이용하고 싶으면 어촌계에 가입을 하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황당했다. 이웃집 할머니도 어촌계원이 아니다. 나중에 알았다. 할머니는 대대로 마을에 살면서 갯벌에 의지해 살아온 분이라 마을 어장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을 규범이자 어촌 문화다. 귀촌을 해서 갯벌을 이용하려면 우선 수협 조합원이 되어야 하고, 이후 마을에서 정한 가입 절차에 따라 어촌계 가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수협 조합원은 60일 이상 어업 활동을 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동백마을 어촌계 가입 절차는 최소 마을에서 1년은 거주해야 하며, 500만원을 마을 발전기금으로 내야 한다. 기준이 좀 까다롭다고 생각할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자면, 이전에는 더 어려웠다. 최소 5년 이상 거주해야 하고, 가입금도 1000만원이었다. 어촌계 가입 절차는 마을마다, 마을 어장의 가치와 크기, 어촌 계원의 수에 따라 다르다. 정부가 새롭게 어촌에 진입하는 귀촌인을 위해 진입 장벽을 낮추기를 권고하고 있지만, 결국 ‘마을법’에 의해 꾸려지는 일이라 강요할 수는 없다. 제도만으로 볼 때, 박씨는 갯벌을 이용할 수 없다. 직접 바지락을 캐고, 굴도 까고, 해초도 뜯어 밥상에 올리는 꿈을 실현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농촌처럼 텃밭을 얻거나 일궈서 씨를 뿌리고 채소를 키우듯이 갯벌을 이용할 수 없다. 물론 낚시는 가능하다. 그러나 갯벌은 안 된다. 역시 어촌의 특징이자 문화다.
박씨가 귀촌을 결정하고 가장 크게 걱정한 부분은 아이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동백마을에 있던 초등학교는 박씨가 이사하기 몇 년 전에 문을 닫았다. 먼저 귀촌한 젊은 부부 몇 명은 자가용이나 통학버스를 이용해 가까이에 있는 학교로 보내고 있었다.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를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사실 박씨 부부는 학교보다도 학원이 걱정이었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지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박씨 아내가 군청이 있는 중심지 학원도 돌아다녀 봤지만 마음에 차는 곳이 없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도 영어, 수학, 악기 등을 학원에 의지했는데, 이를 만족할 만한 곳이 시골 어디에 있겠는가. 젊은이들의 귀촌을 가로막는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자녀 교육 문제일 것이다. 결국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족의 손을 빌려 해결하곤 하는 게 한국 사회의 사정이다. 박씨 아내는 퇴직하고 시골로 내려가면서 서울의 언니에게 아이를 부탁하기로 했다. 박씨 부부는 도시에서 틈틈이 즐겼던 수영, 백화점 쇼핑, 영화, 외식을 포기했다. 그건 괜찮았다. 그러나 육아와 교육에서 ‘양보’나 ‘포기’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글은 픽션이지만, 실제 사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실을 반영한다. 오늘날 어촌이 당면한 여러 문제는 이렇게 개인의 삶에 개입한다. 국내 어촌의 대부분은 초고령사회로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젊은 인구가 수혈되지 않으면 소멸할 급박한 위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청년이 돌아오는 어촌을 만들겠다고 소리를 높이지만 어촌 마을 학교는 대부분 폐교되었다. 학교가 없는 곳에 돌아올 수 있는 젊은 가정은 없다. 젊은 사람들이 어촌을 안정된 정주 공간으로 여기도록 무슨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젊은이들의 귀촌을 위해 정착지원금을 내세운다. 그깟 지원금이 문제가 아니다. 생계, 주거, 교육, 의료를 포함한 구조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 어촌에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려면 어업 종사자여야 한다는 규정은 배제의 규정이다. 박씨처럼 어업이 아닌 어촌 생활이 그리워 귀촌하는 이들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 그런 이들이 적지 않은데 말이다.
귀어귀촌에는 교육이 필요하다. 앞서 묘사했듯이, 어촌의 주민들은 공동의 영역에서 자원을 획득한다. 각자의 소유권이 명확히 구분된 땅에서 생산을 하는 농촌과 구분되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 또한 어촌의 정체성이다. 귀촌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민들이 살아오며 축적된 이러한 삶의 방식과 규범을 존중하는 시선을 교육해야 한다. 자신의 권리를 앞세워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수십 년 동안 갯벌을 일구며 살아온 방식에 공감하는 자세를 교육해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촌 주민들은 이제 마을 규범과 규칙이 진입 장벽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장벽을 디딤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지 못하면, 어촌에 활력은 절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들어오려는 사람도 들이려는 사람도 모두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준은 광주전남연구원의 책임연구위원이다. 섬, 어촌의 문화 관광 관련 정책을 발굴하며, 슬로피시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바닷마을 인문학〉 〈한국 어촌사회학〉 〈섬: 살이〉 〈바다 인문학〉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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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WRITER 김준
    ILLUSTRATOR VERANDA STUDIO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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