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라수마나라> 지창욱 "이야기 중 일부는 제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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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라수마나라> 지창욱 "이야기 중 일부는 제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지창욱과 차기작 얘기를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린 연기라는 기예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진짜라는 걸 믿는 게 중요하다고.

박세회 BY 박세회 2022.05.24
 
 
이번 작품인 〈안나라수마나라〉엔 CG가 정말 많더군요. 그린 스크린에서 연기하느라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지?’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잘못 생각했더라고요. 한 번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계속하는 건 정말 힘들더군요. 촬영은 커트 한 번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촬영이 잡히면 하루 종일 연기를 해야 한단 말이죠. 순수하게 연기하는 시간만 적게는 두세 시간, 많게는 서너 시간인데, 그 몇 시간 동안 그린 스크린 앞에서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더라고요.
저 역시 한 번도 연기를 그렇게 집중력의 총량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맞는 말이겠네요.  
상상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서 한 장면, 나는 말을 타고 하늘을 날고 내 뒤로는 서울의 밤 풍경이 펼쳐지는 걸 상상하는 건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벅찰 정도는 아니죠. 그런데 만약 한 번에 오케이가 안 되어서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게 되면 계속 그 상상력과 감정선을 유지하는 건 벅찰 정도로 힘든 일이에요.
그렇겠어요. 하물며 컴퓨터도 가상의 공간을 그리려면 발열이 생기는데, 사람의 뇌도 상상의 공간을 그리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쓰겠죠.
힘에 부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맞나?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작품을 찍은 지 좀 됐잖아요.
작년 9월쯤에 촬영을 마친 것 같은데 이제 공개됐죠.
기분이 어때요?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복잡한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그러다 막상 오픈을 하니까 오히려 좀 편해졌지요.
 
팬츠 돌체앤가바나. 네크리스 렉토. 벨트 폴로 랄프 로렌. 티셔츠, 카우보이 해트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 돌체앤가바나. 네크리스 렉토. 벨트 폴로 랄프 로렌. 티셔츠, 카우보이 해트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작품은 보셨어요?
아직 못 봤어요. 이런 인터뷰를 해야 하니까 사전에 넷플릭스 측에서 먼저 보라고 관계자들에게 오픈을 해주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다 못 봤어요. 정식 오픈한 뒤에도 못 봤고요. 제가 제 작품을 보면서 느껴지는 그 뭔가 오글거리는 감정을 잘 못 참아요. 쉽지가 않더라고요.
먼저 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아이처럼 굉장히 귀엽게 나왔어요.
(웃음) 리을(지창욱 분)은 굉장히 순수한 인물이에요. 솔직하고 아이처럼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죠. 소년미와 장난기, 어떤 지점을 건드렸을 때 급발진 하는 성격, 화를 낼 때는 진심으로 무서워지는 모습 등을 가지고 있어요. 본질적인 감정을 굉장히 솔직하게 드러내는 인물을 연기해야 해서 색다른 경험이었고 즐거웠어요.
이 작품에선 노래는 원 없이 불렀죠. 워낙 뮤지컬을 보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잖아요.
뮤지컬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직접 연기하는 것도 좋아하는 건 맞아요. 뮤지컬은 아니지만 노래가 자주 등장하는 이런 작품 안에서 제가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더라고요. 쉽지 않죠.(웃음) 저 역시 노래방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는 거랑 노래를 불러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잖아요. 게다가 프로페셔널로서 어떤 지점까지 도달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그렇죠. 프로라면 테스트를 통과할 만큼의 품질을 뽑아줘야죠. 그런데 뮤지컬 작품이 아닌가요?
음악이 주를 이루는 뮤지컬보다는 곡 수가 확연하게 적어요. 저는 음악극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뮤지컬 드라마는 쇼잉이나 비주얼적인 외양에 주목하는 반면, 이 드라마는 메시지가 매우 강하고 음악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 정도의 비중으로 음악을 활용한 드라마는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고민이 많았어요. 촬영이면 촬영, 조명이면 조명, 연출이면 연출. 의상, 분장, 성은(최성은)이, 인엽(황인엽)이를 비롯한 배우들까지 모든 스태프와 출연자가 함께 엄청 고민한 작품이에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도 딱히 참고할 만한 작품이 없었거든요. 준비 기간이 다른 작품에 비해서 꽤 많이 길었던 이유기도 하지요. 제작진들은 책정된 제작비 안에서 작품을 꾸려야 한다는 점 역시 난관이었죠. 그럼에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전 처음에는 가여운 소녀를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모티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완전 다른 얘기더군요. 하일권 작가 특유의 주제 의식이 두드러져요.
동명의 웹툰인 원작 〈안나라수마나라〉가 워낙 명작이에요. 뛰어넘기 힘든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또 동시대에 워낙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런 작품을 실사화했을 때의 부담감이 있잖아요? 전 사실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꼭 해보고 싶었어요. 가난에 대한 이야기, 돈이나 성적에 대한 이야기, 잃어버린 꿈과 동심에 대한 이야기들이요.
 
셔츠 구찌.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구찌.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일권 작가 특유의 표현 기법들이 있잖아요. 갑자기 실사를 쓴다든지, 사실적으로 그린 인물들 사이에 캐리커처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든지요.
현실 세계에 갑자기 비현실적인 장면이 끼어드는 식의 표현들이 있죠. 그런 것들이 저희 작품에서는 주로 음악과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들로 표현이 됐어요.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물론 제작진들과도 가까워진 티가 나요.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건 절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아무리 열심히 연기를 한다고 해서 그 작품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팀원들하고의 호흡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작진이랑 배우들이 쉬는 시간에 족구 하는 영화들이 잘된다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엠티를 가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코로나 상황을 봐서 괜찮다면요. 사이가 좀 편해진 상태에서 시작하면 현장에서 하기 힘든 부탁도 서로 부드럽게 할 수 있잖아요. 해야 할 말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죠.(웃음)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요? 이거 ‘꼰대’인가요?
그 정도는 꼰대는 아니죠. 최근에 SNS에서 이슈가 된 질문이 하나 있어요. ‘막내 직원이 일할 때 에어팟으로 음악 듣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그 직원이 에어팟을 꼈을 때 능률이 좋아진다면, 그의 상사 입장에선 좋은 거잖아요. 인간적인 그런 유대는 끊고, 기계적으로 대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또 그러면 너무 삭막한 관계가 되는 건 아닌지. 한쪽만 끼면 안 되나요?(웃음)
하하하. 그런 대답도 분명 있었어요.
아니면, 45분은 끼고 15분은 빼고 있고.(웃음)
차기작인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얘기도 살짝 해주세요. 지창욱 씨 역인 윤겨레에 대해 찾아봤더니 흥미로운 캐릭터더라고요.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역할이라고요?
마음에 상처가 많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친구예요. 보육원에서 지내며 심한 상처를 받으면서 자랐죠. 당연히 굉장히 염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친 벽도 너무 높아요. 이런 친구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지요.
‘죽음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남자’라는 설명도 붙어 있던데요.
약간의 스포일러인데, 항상 죽음과 매우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에요.
설명만 들어서는 윤겨레를 연기하는 게 좀 힘들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뇨. 아주 즐거웠어요. 그 캐릭터를 만나서 정말 감사하고 되게 벅찼어요. 매 순간이요. 제 안에 있던 어떤 감정들도 굉장히 해소가 많이 됐고요. 제가 재작년에 함께해온 반려견을 보냈어요. 잘 몰랐는데, 그때 상실감이 꽤 컸나 봐요.
함께하던 아이가 떠나면 그 타격이 엄청나지요.
극 중 윤겨레 역시 상실의 순간을 겪어요. 그 연기를 하면서 제 안에 상당 부분 쌓여 있던 감정들이 씻겨 내려가는 걸 느꼈어요. 배우마다 연기를 하면서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철학도 다르고 방식도 다른 것 같아요. 다만 제 경우에는 연기를 하면서 응어리졌던 감정이 좀 해결되기도 하더라고요.
반려견이 떠났을 때 작품 중이었나요?
그 당시에 〈도시남녀의 사랑법〉을 촬영 중이었어요. 힘들더라고요.
  
니트 베스트 세터. 팬츠, 이너 쇼츠 모두 프라다. 크로스 펜던트 네크리스 돌체앤가바나. 슈즈, 우드 비즈 네크리스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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