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블 영화의 새 프랜차이즈 성공률은 DC보다 월등히 높을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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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블 영화의 새 프랜차이즈 성공률은 DC보다 월등히 높을까?

오성윤 BY 오성윤 2022.05.25
 
 
현재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주력 히어로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원래 그리 유명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무려 60여 년 전 만화책에서 탄생한 이 캐릭터는 소수의 열성 팬만을 갖고 있었고, 1978년에는 실사판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으나 그마저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러니 이 캐릭터로 처음 영화를 만드는 게 순탄할 리 없었다. 마블 스튜디오는 존 햄, 이완 맥그리거, 조니 뎁, 제이크 질렌홀, 재러드 레토 등 다양한 배우를 닥터 스트레인지 역할 후보에 올렸지만 큰 관심을 보이는 배우는 없어 보였다. 그나마 호아킨 피닉스 정도가 관심을 내비쳤을까. 마블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출연 제의를 했지만, 그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기괴한 오리엔탈리즘과 캐릭터의 여성 혐오적 시각, 구시대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와신상담한 마블은 오늘날의 시선에 맞게 모든 걸 뜯어고치겠다며 컴버배치를 설득했고, 결국 성공적으로 캐릭터와 영화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발표된 후속작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크린 점유율을 자랑하는 영화가 됐다.
이렇듯 MCU가 코믹스 속 캐릭터를 영화로 데뷔시키는 과정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코믹스 팬들이 열광했던 캐릭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마련이지만, 단순히 그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니다. 현시대와 조응하는 캐릭터를 골라 세심히 다듬어 내놓는다. MCU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캐릭터들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만 봐도 그렇다.
9월 11일은 미국이 멈춘 날이었다. 그들은 침공당했고,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저앉았다. 물론 소방관이나 경찰관도 생활 속의 영웅이지만, 사람들은 더 강력한 힘을 원했다. 누구도 다시는 미국을 침공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힘. 사실 그 시기 마블이 가장 영화화에 적합하다고 여긴 영웅은 스파이더맨이었다. 심지어 911테러가 벌어진 도시, 뉴욕을 지키는 친절한 이웃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이니까. 하지만 지독한 경영난을 겪던 마블은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주요 캐릭터들을 타사에 팔아버린 후였다. 그래서 그나마 자기들에게 영화화 권리가 있고 컨트롤도 가능하며 장난감도 팔 수 있는 캐릭터를 물색해야 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영원한 MCU의 상징 아이언맨이었다. 아이언맨, 즉 토니 스타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무기를 팔다 무장단체에 감금당한 뒤 기지를 발휘해 강철 슈트를 만들어 적들을 응징한다. 그뿐인가.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타고 말리부 대저택에 사는,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 CEO 같은 모습은 영락없는 미국 자본주의의 아이콘이었다. 첨단기술을 손발처럼 부리지만 늘 유머로 가득한 억만장자 천재 바람둥이 기업인. 아이언맨이 당시 미국인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여길 영웅상이라는 데에 반론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남았다. 이런 현실적인 영웅상에 결여된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래서 마블은 그 대척점에 캡틴 아메리카를 내세웠다. 미국의 건국 이념과 희생정신을 간직한 고결하고 진중한 전쟁 영웅을 냉동시켰다가 우리 시대에 깨우기로 한 것이다. 캡틴 스티브 로저스는 미국 역사의 유물 같은 남자다. 캡틴 아메리카 2편 〈윈터 솔져〉 인트로에서 워싱턴 DC 링컨 메모리얼 앞에서 그가 아침 조깅을 하는 장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자신의 오래된 전투복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시대를 역으로 이용한 캐릭터 설계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설계의 정점은 단연 〈어벤져스〉였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하이테크 기업 CEO 아이언맨과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 캡틴 아메리카가 함께 포스트 911 뉴욕 맨해튼에서 외계 침략자들과 싸우게 하다니. 미국인들의 애국심과 자부심이 실로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블랙 팬서도 현실주의와 시대정신 반영의 결과다. 흑인들의 의식을 고취시킬 캐릭터가 필요했던 마블은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히어로, 블랙 팬서를 영화화하기로 한다. 심지어 영화에서는 원작 코믹스와 달리 블랙 팬서가 아닌 여동생 슈리를 천재 과학자로 설정했다. 마치 세계 평화에 기여할 모든 기회의 균등을 실현하고 싶어 하듯이.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 당시 많은 흑인이 영화 속 티찰라처럼 팔을 교차하는 포즈를 취하거나 티찰라를 섬기는 와칸다인처럼 무릎을 꿇은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블랙 팬서는 흑인 사회의 궁극적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효과는 비교적 미미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샹치의 영화화가 품은 것도 비슷한 의도였다.
이런 게 가능했던 건 현 마블 스튜디오의 CEO, 케빈 파이기 덕분이다. 영화판에서 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세계적인 명감독들을 배출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 5수 끝에 입학하고, 리처드 도너 감독의 ‘가방모찌’ 생활(도너 부부의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세차까지 하는 생활을 2년 하고 나서야 유급 어시스턴트가 될 수 있었다)을 감수한 이 제작자는 한마디로 ‘진성 덕후’다. 히어로물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니, 바로 리처드 도너 감독의 아내 로렌 도너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을 제작하게 된 일이었다. 케빈은 엑스맨 세계관에 미처 통달하지 못한 제작진의 설정 오류를 수없이 캐치해냈고, 로렌은 감동한 나머지 케빈을 이 영화의 어소시에이트 프로듀서로 올려버렸다. 해당 영화의 제작 총지휘자는 당시 마블 스튜디오의 CEO인 아비 아라드였다. 그는 케빈을 마블에 입사시킨 데 이어 훗날 왕위를 넘겨주기에까지 이른다.
갑자기 CEO의 이력은 왜 훑는 건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케빈 파이기라는 인물이 이렇듯 진성 히어로 마니아고, 밑바닥부터 시작한 연출가이며, 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는 게 MCU의 성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CEO가 된 후 케빈 파이기가 확립한 MCU의 영화 전략은 단순하지만 신선했다. 첫째, 연속성과 크로스오버를 지킬 것. 솔로 영화는 팀업 무비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유지해야 하며, 각 캐릭터들은 작품 속에서 공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집요한 마케팅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극장으로 향하게 했고, 한 캐릭터의 팬이 되면 그 밖의 영화도 보게끔 만들었다. 둘째, 작품 퀄리티를 평준화할 것. 그게 말처럼 쉽냐고 하겠지만, 할리우드 최고의 스태프들로 이뤄진 제작팀을 구축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블 영화는 이제 듣도 보도 못 한 감독이 연출해도 퀄리티 면에서 큰 편차가 생기지 않는다. 케빈 파이기 이전의 MCU 작품, 예를 들어 〈데어데블〉 같은 작품만 봐도 납득이 될 것이며, 최근 벌이는 실험적인 감독 기용도 그런 자신감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다음 항목이다. 셋째, 현실성과 시대정신을 위해 원작을 배반하는 수준으로 뜯어고칠 것. 옆 동네의 DC가 철저하게 코믹스 시절 원작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 반면, 마블은 관객이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연하게 재건축을 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보는 바와 같다. MCU는 철옹성 같은 제국이 되었고, DC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원작의 방향성을 따라 히어로 개인의 고독과 고뇌를 깊이 탐색한 결과 DC에서도 간혹 〈다크나이트〉 〈조커〉 같은 걸작이 나오기도 했지만 캐릭터들은 여전히 겉돈다. DC는 심지어 자기 세계관을 직접 구축하고 검토하는 대신 각본이나 프로젝트를 외부에서 피칭받기도 했다. 배우 마고 로비가 들이민 〈버즈 오브 프레이〉 같은 졸작을 DCEU의 정사로 편입시켜준 것도 그런 운영 방식 때문이다.
이제 다시 발단의 〈닥터 스트레인지 2〉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MCU의 최신작인 이 영화는 새로운 영화적 시도와 어젠다로 점철되어 있다. 컬트 호러의 거장인 셈 레이미에게 메가폰을 쥐어주고, 히어로 영화 최초로 호러적 연출을 시도했으며, 멀티버스라는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에 쇠구슬 같은 캐릭터들을 쏟아부어 크로스오버의 끝을 본다. 인종, 성, 정치적 이념을 넘어서기 위해 유색인종과 LGBTQ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넣었고, 그 결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개봉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영화가 응당 가져야 할 연출과 서사가 전복되었다고 혹평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라고 칭송하는 이들도 있다. 무서운 속도로 흥행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제기됐다. 영화의 부제처럼 안팎으로 ‘대혼돈’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난리통 앞에서, 어떤 이들은 ‘히어로물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케빈 파이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 2〉를 두고 ‘MCU의 닻’이라고 명명했다. 이제 막 닻을 내려 새로운 항해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지는 ‘지금껏 가본 적 없는 곳.’ 911테러가 벌어진 맨해튼에 히어로들을 집결시켜 외계의 침략을 막아내던 MCU는 이제 맨해튼을 누비는 이슬람 문화권 소녀 히어로 미즈 마블을 기획하고 있다. 선뜻 상상이 안 된다고? 하지만 어쨌든 〈닥터 스트레인지 2〉 같은 ‘닻’ 덕분에, 우리는 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또 그들이 분명 그걸 설득력 있게 잘 만들어내고야 말 거라는 사실을. 빠르게 바뀌는 세상은 계속 새로운 히어로상을 갖게 될 것이고, MCU는 앞으로도 코믹스 시절의 유산에서 그와 호응하는 원석을 캐내 잘 닦고 가공해 내놓을 것이다. 가장 알맞은 형태로. 우리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며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가늠해보면 된다. 아니면 그저 즐기거나 말이다.
 
케이지는 가수 겸 음악 프로듀서이자 서브컬처 마니아다.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 〈기묘한 케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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