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미학적 관점과는 달리,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주택을 ‘패시브하우스’라 한다. 1991년 독일에서 시작된 개념으로, 건축 공간에 최대한의 열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 건축물에도 많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패시브하우스는 열효율적 관점으로만 건축에 접근하다 보니 디자인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독일식 패시브 인증을 위해서는 재료, 디테일, 마감 방식까지 모든 부분에서 미학보다는 기능적인 접근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 또한 하나의 관점에서만 건축에 접근하는 셈이니, 쉽게 정이 가질 않는다. 건축이란 궁극적으로 미학과 기능의 산물이라 내게는 그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건축가로 일하는 내내 이렇듯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두 개의 명제, 미감과 에너지 효율이 어우러진 공간을 개인적인 화두로 삼았다. 특히나 주택의 경우에는 좀 더 확실하게 에너지 효율의 관점을 디자인에 관철시키고자 했다. 건축 매스에서는 형태적 미감 차원에서 접근하되 그 자체가 에너지 효율을 고려한 결과물이 되고자 한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목표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민하면 언제나 방법은 있다. 예를 들어 과천 선유재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한옥의 선을 응용했다. 처마를 만들어 여름과 겨울의 태양 각도에 따라 채광량이 달라지도록 해 주변 풍광과 어울리도록 형태를 만들되 디자인 자체로서 자연광의 유입을 제어하도록 한 것이다. 고기밀, 고단열 방식으로 최대한의 열효율을 가진 공간을 구성해 내부의 열원이 쉽게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고, 폐열 회수 환기 시스템을 통해 늘 좋은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도록 했다.
이처럼 건축의 매력은 양립하기 힘든 개념들을 하나의 대상물로 구현하는 데 있다. 그만큼 복합적이고 다양한 영역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건축가는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궁극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공간적으로 통합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회적 이슈에 공감하고 그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 대표적으로는 르코르뷔지에를 들 수 있겠다. 그는 두꺼운 벽이 일반적이던 당대 건축양식에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새로운 공간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 양식의 모듈은 모두 그가 주창한 돔이노 시스템(Dom-inno System)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건축의 주된 양식은 벽돌과 석재를 혼용한 벽식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팽창은 빈부격차의 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곧 거주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 것이다. 콘크리트 구조는 기존 벽식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구축 방식이었다. 기존 벽돌식 구조가 높게 쌓기 위해 두꺼운 벽을 만들고 좁고 긴 수직 유리창을 내어야 했던 반면, 콘크리트 구조는 공간적 제약 없이 기둥 사이의 벽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혁신적인 공간 개념을 통해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가 되었다. 건축가들의 창조적 근원에는 늘 사용이 쉽고 자유로운 콘크리트 구조가 있었고, 이를 통해 손쉽게 도시를 만들고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르코르뷔지에가 제안한 유토피아처럼, 이전보다 좀 더 쾌적하고 진화된 도시 공간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콘크리트로 성장한 도시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만들어낸 최고의 문명들이 스스로 자초한 기후변화로 모든 것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물론 르코르뷔지에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르코르뷔지에가 이 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다른 건축을 제안했을 테니까. 최근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기후변화 문제를 보면서 내가 유난히 르코르뷔지에를 자주 떠올리는 이유다. ‘그가 오늘날의 세계를 본다면 어떤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어떤 건축을 제안했을까?’
전 세계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중 건축과 관련된 비율이 38% 정도라고 한다. 건물은 이산화탄소 배출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책이 가장 미비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특히 38% 중 10%는 건설 과정에서, 18%는 거주 중인 건물에서, 10%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건물에서 나온다. 설계 및 시공뿐 아니라 건물의 전반적 생애주기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가령 원자재를 수급하기 위한 과정, 공사 현장으로의 운반 과정, 건설폐기물의 배출 과정, 완공 후 에어컨과 보일러의 가동 등 모든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고 환경에 부하를 준다. 운용 단계에서 60~80%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에도 착안할 필요가 있다. 건축물의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해외의 경우 에너지 효율과 건축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순히 에너지 효율만을 추구하여 단열재만 두껍게 쓴 대안이 아닌, 디자인과 에너지 효율 자체가 결합된 형태가 일반화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 시대의 건축가는 건축 공간을 구축하는 논리를 새로운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라는 큰 바탕 위에 미학, 공학, 그리고 사회학적 해결책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건축은 해외에 비해 아직 기후변화, 건축의 생애에 대한 관심이 적은 듯하다. 부동산의 가치가 모든 사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효율은 법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요소일 뿐, 디자인 프로세스를 관통하는 주요 요소가 되지 못한다. 건축가에게도 이런 주제는 ‘좋아서 하는 공부’가 아닌 ‘억지로 해야 하는 숙제’처럼 인식되기 마련이고, 디자인의 방향성과 예산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좋은 건물을 짓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좀 더 적고, 오래도록 재건축이 필요 없도록 생애주기가 긴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논리지만 그게 답이다. 하지만 타들어가는 세계 속에서 한국의 건축은 아직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르코르뷔지에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바라본 세상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 건축가라는 직업의 숙명이기 때문에.
이정훈은 건축가다. 반 시게루와 자하 하디드의 건축사사무소에서 경력을 쌓고 2009년부터 조호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0 젊은건축가상, 서울시 건축상, 2013년 〈ARCHITECTURE RECORD〉 선정 ‘차세대 건축 선두 세계 10대 건축가’에 선정되기도 했다.